서른 일곱살의 김기동은 나이의 편견에 맞서며 K리그 역사 한 페이지를 새로 쓰고 있다. (왼쪽부터) 아내 조현경씨, 둘째 준호, 김기동. 애완견 '까미'의 옷은 10월25일 포항-수원전 서포터스 데이를 맞아 아내 조현경씨가 김기동 선수의 축구양말로 손수 만들었다. |
이립(而立). 뜻을 세운다는 뜻으로 나이 서른을 말한다. 인생의 주춧돌을 놓는 기회와 도전의 때다. 공자의 시대가 멀지만 속뜻만은 변함없다. 이립의 풀이가 축구선수라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뜻을 세우는 것이 아닌 접는 나이로 받아들인다. 이립이 아닌 ‘이접(而摺)’인 셈이다. 유독 우리네가 심하다. 나이 서른을 넘으면 은퇴시기부터 묻는다. 나이와 출신 등 형식적인 틀에 얽매는 분위기 탓이다.
축구선수에게 서른이 적은 나이는 아니다. 운동량이 전제돼야 하는 종목 특성상 나이는 하나의 시선 잣대다. 그렇지만 말 그대로 하나의 부분이다. 절대적이지 않다. 세월의 기억이 거울이다. 쉰 살까지 선수로 뛴 잉글랜드의 스탠리 매튜스 예까지 거슬러 올라가지 않더라도 불혹의 경계를 뛰어넘은 이탈리아의 파올로 말디니, 잉글랜드의 테디 셰링엄, 카메룬의 로저 밀러 등이 그랬다. 고정관념에 맞서는 도전은 이어졌다.
오늘 만남의 주인공, 이 남자의 길도 다르지 않다. 포항의 주장 김기동의 얘기다.
서른을 넘어서자 ‘꿈’이 아닌 ‘끝’을 물었다. 종착역을 향한 시선이 서로 다른 곳을 향했다. 포기할 수 없었다. 지독한 시련의 연습생 시절을 이겨낸 추억이 스스로를 채찍질했다. 편견과 싸우다 보니 어느 덧 서른일곱이 되었다. 황선홍 부산 감독과 4살 차이로 현역 선수 중 가장 나이가 많다. K리그 26년사를 통틀어도 38세30일에 수원서 경기에 나선 윤성효(현 숭실대 감독)에 이어 역대 두 번째로 나이가 많은 필드플레이어다. 멈춤 없이 ‘끝’이 아닌 ‘꿈’을 향한다는 37살, 이 남자가 사는 법을 함께했다.
편견과 고정관념에 맞서는 도전
남들 태어나 성인이 되는 세월만큼 프로무대를 누볐으니 대단한 일이다. 연습생 신분으로 포항에 입단한 1991년부터 따지면 18년 동안 K리그에서 활약한 셈이다. 특별한 비결이 있는 걸까? 타고난 체력인가?
의외로 본디 체력은 약했단다. 프로 입단해 첫 체력테스트서 꼴지를 했다. 프로의 벽이 높기도 했지만 주저앉을 순 없었다. 이를 악물었다. 다리 근육이 올라올 때마다 손에 쥐고 다니던 바늘로 종아리를 마구 쑤셔댔다. 숨이 턱에 차오르는 사점을 넘기길 십 수번, 한 해가 지난 뒤 체력테스트 상위권에 이름이 올라 있었다. 92년 라데가 포항에 입단했을 때 체력훈련 파트너로 김기동이 낙점됐을 만큼 훌쩍 강해져 있었다. 이 시절 땀과 눈물은 지금의 김기동을 이끄는 동력이다.
특별히 챙겨먹는 보약이나 건강식은 딱히 내세울만한 게 없다. 한약과 비타민 영양제 등 다른 선수들과 별반 다르지 않다. 해산물을 즐겨먹지만 이는 어디까지나 개인의 입맛 문제다. 그러다 보니 주위서 괜한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서른 중반을 넘어서도 펄펄 뛸 수 있는 데는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을 것이라는 추측이 발단이었다. 한 첩에 수 백 만원에 이르는 한약 등 보양식을 남 몰래 챙겨 먹는다는 소문이 동네 찜질방의 아줌마들의 입을 타고 퍼져나갔다. 처음엔 해명 해볼까도 했지만 주위의 관심이 싫지만은 않은 눈치다.
나쁜 거 안 하면 돼요
김기동이 말하는 비결 아닌 비결은 잘 먹고 잘 쉬는 것이다. 불가피한 경우가 아니면 10시 이전에 잠을 청한다. 유공 시절 니폼니시 감독이 숙소생활을 폐지하되 각자 집에서 자율적으로 일상을 관리하게끔 하기 위해 불시에 집 전화로 ‘확인’ 연락을 했던 습관의 연장이기도 하다. 연애 시절이었던 터라 맘 놓고 데이트는 물론 집에 바래다주지 못해 아내의 원성을 고스란히 받아야만 했던 미안함의 추억이기도 하다.
김기동이 한 마디를 덧붙인다. “나쁜 거 안 하면 돼요.” 중요한 건 기본인가보다. 근데 나쁜 게 뭘까?
아내 조현경씨와 오는 12월 결혼 10주년을 맞는다. 고비마다 가족들은 더 없는 힘이 돼 주었다. 올 시즌 부상으로 4개월여를 쉬는 동안에도 가족여행을 떠나 몸과 마음을 추슬렀다. 전지훈련과 원정경기 등으로 자주 집을 비우는 축구선수 아내가 그렇듯 김기동의 아내 조현경씨도 남편의 빈자리를 삶으로 체감해야 했다.
조명 만지다 합선 사고 그리고 한전직원
10년 동안 8번 이삿짐을 쌌다. 거의 1년에 한 번 꼴이다. 남편이 바쁘기도 했지만 축구 외에 신경 쓸 일을 줄어줄 마음으로 그 힘든 이사를 혼자서 해결하다시피 했다. 한 번은 김기동이 브라질 전지훈련을 갔다 왔는데 집이 바뀌어 혼났단다. 이사가 아니더라도 남편의 기분 전환을 위해 집안 인테리어를 틈만 나면 손본다. 김기동은 고마우면서도 침대며 러닝머신 등 제법 무게가 나가는 가구들을 혼자 정리하는 아내에게 늘 미안하다.
김기동은 아내를 ‘맥가이버 조’라 부른다. 뭔가를 뚝딱 잘 만들어내서도 그렇지만 전기며 못질 등 집안일 대개를 아내가 도맡아 처리하기 때문이다. 김기동이 집을 비우는 시간이 많아서도 하지만 사실 김기동은 전기를 무서워한다.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 아내가 집안 분위기를 바꾸기 위해 할로겐 조명을 구입했다. 그 날도 두 팔을 걷어붙이고 거실에서 직접 ‘작업’을 하고 있는데 때마침 김기동이 집으로 들어왔다. 아내의 부탁에 공구를 손에 쥔 김기동이지만 서툰 손놀림 탓에 합선으로 불꽃이 튀면서 정전이 되고 말았다. 놀란 김기동은 한 동안 말을 잇지 못했고 한 숨 돌린 뒤 전문가에게 SOS를 요청했다. 한국전력에 근무하는 지인에게 전화를 넣었다. 해 봐야 할 수 있다. 서툴면 탈이 나는 법인가 보다. 그런데 집안 전기제품에 문제가 있다고 한전 직원을 부르다니. 셋이서 한참을 웃었단다.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한계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
한계를 움직이는 모델이자 멘토
김기동의 우선 목표는 마흔 살을 넘긴 현역 선수 생활이다. 귀화선수였던 골키퍼 신의손이 마흔 넘어서까지 현역으로 활약했지만 필드플레이어에게는 쉽지 않은 도전이다. 개인적인 욕심만이 아니다. 편견을 깨고 또 후배들에게 길을 보여주고 쉽기 때문이다. 나중에 지도자가 돼서도 선수들의 마음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는 믿음이다.
“형은 우리의 길이에요. 할 수 있다는 것을 실제로 보여주고 있으니까요” 서른 중반의 이창원, 김정겸 등 포항 후배들이 김기동에게 전하는 말이다. 서른 만 넘기면 은퇴할 선수로 지레 여기던 우리네 인식을 깨고 있는 모델이자 멘토로 선배 김기동을 바라본다.
쉽지 않은 길임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김기동이다. 부상이 닥칠 때마다 가슴이 철렁 내려앉곤 한다. 회복이 걱정이지만 “나이 때문에 복귀가 어려울 거야”라는 차가운 시선이 더 마음을 아리게 한다. 아내 조현경씨는 마음이 더 무겁고 아프다. 고독한 길을 걷는 남편을 옆에서 지켜보는 게 쉽지 않은 까닭이다.
김기동은 한계와 싸워왔고 지금도 싸우고 있다. 2년 반의 연습생 시설이 그랬고 98월드컵 예선 때의 국가대표 시련이 그랬고 나이에 대한 편견과 싸우는 현재가 그렇다.
“그거 아세요. 진짜 한계는 스스로 인정할 때 인거요. 도전을 멈추지 않는 한 한계는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고 믿습니다.”
출처: http://news.naver.com/sports/index.nhn?category=soccer&ctg=issue&mod=read&issue_id=341&issue_item_id=6406&office_id=208&article_id=0000000231
첫댓글 출처를 안남겨서 삭제 당한거같아 다시올립니다.
잘하죠..이선수도
포항경기 볼때 마다 느끼는 건 김기동 선수가 다른 선수보다 한단계 위로 보인다는 것, 포항이 중원에서의 우위를 가지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선수로 생각 됩니다.
진정 존경스러운 김기동선수. 꼭 500경기를 채우셔서, 전설을 만들어주세요.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