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y New Life, 방거치 농군의 세상사는 법
‘아는 길도 물어 가라’
그런 속담이 있다.
제 아무리 잘 하는 일이라도 많이 생각하여 실패가 없도록 단단히 해야 한다는 뜻이라고들 한다.
지난날에는 나도 그런 풀이에 익숙했다.
낭패하지 않기 위해서 주위에 물어보고는 했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니다.
일흔 나이를 넘어 세상을 살아오다 보니, 인생사 세상사 온갖 경험이 이미 푹 익어있어서, 그 어느 것도 딱히 물어볼 일이 없고, 혹 물어본다 한들 선뜻 나서서 답해줄 주위가 없다.
이제는 뭔가 물어보고 할 일이라면, 안 하는 것이 낫다.
낭패를 되돌릴 시간적 여유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해서 안 물어보는 것이 아니다.
물어볼 때가 있다.
그러나 목적이 다르다.
낭패하지 않으려는 목적이 아니라, 감사를 하기 위한 목적이다.
목적이 그러니 어떤 때는 일부러 물어보기도 한다.
상대에게 답을 하는 기쁨을 주기 위해서다.
당연히 감사하는 내 마음을 전한다.
그렇게 내 감사함으로써 우선 그가 기뻐한다.
그리고 또 내가 기쁘다.
아름다운 인간관계가 엮어지기 때문이다.
별 것 아닌 것을 물어보고 답을 얻기도 한다.
상대가 나보다 한 수 위임을 나 스스로 인정해주겠다는 의미에서다.
때론 내 뜻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몇몇 주위에게 된통 당하기도 하지만, 그래도 내 그 처신을 멈추지 않는다.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더 많고 크기 때문이다.
우리말로 ‘이해한다’로 풀이 되는 영어 단어가 있다.
바로 이 단어다.
‘understand’
그 단어는 ‘아래’라는 의미의 ‘under’라는 단어와 ‘서다’라는 의미의 ‘stand’라는 단어가 합쳐진 말이다.
곧 상대의 아래에 서는 것이 곧 이해라는 가르침이 담겨있다.
내 농사짓는 것을 두고 주위에서 말들이 많다.
얼마나 못 짓는지 이런 별명까지 붙여주기도 했다.
‘방거치 농군’
농사를 제대로 못 짓는다는 놀림이다.
그러나 나는 놀림으로 듣지 않는다.
현실적 지적으로 순순하게 받아들인다.
농사를 제대로 짓지 못하는 것이 사실이기 때문이다.
좀 짓는다고 해도, 그것은 아내의 손길이 구석구석 닿은 결과일 뿐이다.
그렇다고 해서 농사를 못 짓는 것도 아니다.
내 솔직히 고백해서 속내로는 나만큼 농사 잘 짓는 사람이 없다는 자부심이 없잖다.
앞집 사과과수원을 하는 내 또해 안가현 친구에게 묻고 또 물어서 그런대로 잘 감당해내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내 물음에 그 친구는 언제나 성심성의를 다해서 답을 해준다.
그 답으로 충분치 않다 싶으면, 아예 팔 걷어 부치고 나서서 땀 흘려 일손을 보태서라도 우리 농사를 도와준다.
그래서 남 보기에는 그런대로 번듯한 텃밭을 일구어 가고 있는 중이다.
그 애써줌이 감사해서 엊그제는 읍내 추어탕 집에서 부부동반으로 저녁을 같이 했다.
부담스럽다고 안 나오려는 것을, 아내가 그 집까지 찾아가서 소매를 잡아끌다시피 해서 데리고 나왔다.
부부동반으로 문간을 나서는 그 부부에게 내 한마디 건넸다.
그냥 건넨 말이 아니다.
‘임금희’라는 부인의 이름을 생각하면서 던진 말이었다.
그 한마디에 방거치 농군의 세상사는 법을 녹아냈다.
곧 이 한마디였다.
“어렵게 임금님 모십니다. 오늘 저녁은 읍내 장수추어탕에서 모시겠습니다. 저녁상을 한 상에 받게 되어 영광 영광이로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