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보름 전야제 때는 1960년 후반쯤 며칠전 부터 산으로 들로 땔감 준비하려 부산하게 움직인다 특히나 화력좋은 소나무광솔은 신의선물 이였다 불놀이 하는데 가장좋은 땔감으로서 그화력은 엄청나기에 우리모두의 로망이였던 것이다 어느정도 땔감을 마련하면 이번에는 깡통과 비비선을 준비해야 한다 저학년은 통조림 깡통을 고학년이면 케첩통쯤 되는 큰통을 준비하고 거기에 전보대에 널려있는 비비선을 뺀찌로 짤라내어 내가 캉통을 편안하게 돌릴수 있을만큼 잘라서 깡통 끝자락에 대못으로 구멍을 뚫어 비비선을 올가매고 또 통주변에 바람이 잘통하라고 구멍을 숭숭 뚫어놓으면 우선적으로 대보룸 전쟁준비는 어느정도 .... 다음으로 빠리빠리한 특공대를 조직해 수색역 객화차 사무실로 침투해서 그곳에서 쓰던 기름걸레를 훔쳐 오는 것이다 여러명이 무등까지 태워가며 일단 담을 넘으면 창고쪽으로 접근 바닥에 널려있는 가름걸래를 수거해서 다시 담치기 해서 넘어오면 끝
그기름걸레를 철사줄에 묶어서 보름날 환하게 비추는 안내자 역활도 하지만 아래동네 하고 싸움을 하는데 기선제압 용으로도 쓰이는 것이다
그날저녁 모든준비를 다해놓고 여러명의 특공대를 편성해 이제부터 오곡밥과 나물을 얻으러 다니는데 두세군데로 조를 짜서 소쿠리를 들고서 집집마다 방문하면 융통성 있고 넉넉한 집은 아예 대문입구에 음식을 미리 내다 놓거나 아니면 대문을 두들겨 음식을 소쿠리에 얻기도 하는데 중고등 형들은 어디서 구했는지 복조리를 하나씩 집집마다 걸어놓고 갔다가 다음날 복조리 값을 받으러 다니기도 했다 저녁에 얻어온 잡곡밥과 나물을 빙둘러 앉아 장작불을 피우고 그렇게 음식을 나눠 먹어야 병에 걸리지 않은다는 징크스가 있었다 . 당련히 땅콩과 잣 그리고 호두도 가져와 그곳에서 까먹으며 내일 벌어질 전쟁에 대한 작전회의가 진지하게 열리기도 했다
기름걸레 방망이는 맨앞에 서고 뒤에는 큰깡통 돌리는 고학년 저학년은 맨뒤에 서서 아래동네 친구들과 땅따먹기 전쟁을 벌이는 것이였다
첫댓글 ㅎㅎ 옛날생각에 웃음이
나는군요.
지도 오빠,집안 아제들 동네
친구들 틈바구에 끼어서
쥐불놀이 연날리기 엄청스레
했네요.
아마도 그러셨을거란 ㅎㅎㅎ
대보름 문화를 제대로 즐기셨군요?
사진을 보니 갑자기 오곡밥 생각이 간절하네요
예전에야 많이들 이렇게 놀았지요 ㅎㅎ
역시 어렷을 적 부터 개구장이
성품으로 즐거운 놀이 문화까지 맘껏 누렸군요
촌에서만 지불 놀이를
누린줄 알았는데
서울에서도 ㅎ
어린 시절의 추억들을
생각나게 하는 글 읽으며 쌩긋
웃어보는 아침이 기분
좋아요 덕분에~~♡ 👍
지금이야 최첨단 동네지만 상암동은 사골이였지요
지존이 시는데도 깡통돌리기 했나봐
나도 어렸을때 우리동네 논에서 오빠들이 마구 돌리는거 보았는데
몸살이 나아졌다니
다행이네용
여긴 완전 서울속에 사골이였지
동네 아이들이 쥐불놀이 하다가 불붙은 깡통이 옆집 초가지붕에 떨어져 동네 어른들이 우리집 우물에서 물을 퍼다가 주욱 열을 서서 나르던 모습이 기억납니다. 금방 꺼지긴 했지만.
동네에서 놀면 종종 초가집 태우곤했자요 ㅎㅎ
독립군님도 정월대보름 풍성하게 보내십시요
아니에유 ㅎㅎ
그 깡통속에다 꺼먹고무신 짤라서 넣었든 기억도 나는 구려 그땐 참으로 좋았었든 기억이 듭니다
배곱았든 시절이라서 이집 저집 돌아 댕기믄서 밥을 아홉번을 먹어야 된다 했든 기억도 나는군요
에고 끄름이 넘심해서 ㅎㅎㅎ
지존님 글에서 예전 대보름 추억을
상기합니다 오늘은 오곡밥 나물로
추억을 달래봅니디ㅡ
그렇지요 ㅎㅎ
아 참 잊었네요
보름날이면 복조리 샀던 것을...
좋은 추억을 일깨워주십니다
그런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