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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 생명 말씀(2010. 10.31)
말씀/ 요한 11:25-26 사 55:6
주님을 만나면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얼마 전에 꽃계잡이 폴보츠로 알려진 남현봉씨 신문 기사를 유심히 읽어보았습니다. 스타킹에도 나왔었던 분인데 어려서부터 장래가 총망되는 성악도로 파바로티를 꿈꾸는 소년이었습니다. 그러나 어머니 병환과 어려운 집안 형편으로 꿈을 접고 친구와 함께 꽃계잡이 배를 탔습니다. 그러다가 친구가 배에서 노래하는 남씨의 영상을 촬영하여 방송사 게시판에 영상을 올린 것이 계기가 되어 촬영섭외가 들어왔고 스타킹에 출연도 하게 되고 서울대 김인혜 교수도 만나 듀엣 부대에 서는 약속도 받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만 5청명이 모이는 명성교회 본당 무대에 서게 되었습니다. 김교수도 줄이아드 음대 최초박사로 뉴욕타임즈가 극찬한 목소리의 주인공인데 찢어지게 가난한 삶을 살아서 더 관심을 갖게 된 것 같습니다. 이 분이 말하기를 남씨는 대단한 미성으로 루치아노 파바로티, 플라시도밍고, 호세카레라스등 3대 테너중에 호세카레라스라고 치켜세웠습니다. 저는 남현봉씨가 얼마나 노래를 잘하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사람들에게 그렇게 관심을 모으는 이유는 알 수가 있습니다. 김교수와의 대화 중에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수퍼스타 k의 허각, 폴포츠,남현봉이 주는 메시지가 뭘까요? 바로 히스토리예요. 전 세계 60억 인구가 열광하는 대상은 부자집에서 평안하게 자라 성공한 사람이 아니에요.” 바로 ‘삶의 히스토리’라는 것입니다. 그 히스토리가 사람을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아마 유명한 성악가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어려서부터 물심양명 지원을 받아 해외 유학까지 해서 성공한 사람이라면 그재능은 인정받아도 뭇 사람들의 관심과 감동은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어려운 가정 형편에서 꽃계잡이를 하고 있었다는 것이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 것 같습니다. 유덕 가난하게 살아왔던 김인혜 교수는 이런 남씨의 돕고자 스스로 멘토링을 자처하고 나섰습니다.
재능 자체는 사람들을 놀라게는 하지만 감동은 시키지 못합니다. 감동을 주려면 삶의 히스토리가 있어야 합니다. 찢어지게 가난하게 살았는데... 학교공부할 형편도 못 되었는데... 키도 작고 몸이 허약하여 아무 것도 할 수 없을 것 같았는데... 절망을 딛고 희망을 노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삶의 이야기에 사람들은 감동을 느끼며 삶의 동일한 희망을 갖게 되는 것입니다. 진정한 삶, 의미 있고 뜻 깊은 삶이라면 단지 성공적인 삶에 그쳐서는 안되고 사람들에게 감동을 주는 삶의 희스토리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니다.
흑인가수 에텔 웥터의 ‘폭풍우를 지날 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그 노래는 그의 태어남의 충경을 노래한 것입니다. 그녀는 그의 어머니가 처녀 때 직장에서 돌아오다가 강간을 당해서 태어났습니다. 외가에서 온갖 천대와 멸시 저주로 정상적인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목소리가 좋아서 훌륭한 가수가 되었습니다. 한번은 어느 파티에 있을 때 "폭풍우를 지날 때"를 불러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이제 나에게는 폭풍우가 지나갔습니다. 나의 인생은 그리스도 안에서 고요한 평화만 있을 뿐입니다." ‘폭풍우를 지날 때’는 바로 이러한 그의 운명을 노래한 것입니다. 이 노래를 부르며 자신도 눈물을 흘리고, 듣는 이도 눈물을 흘리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을 때 그는 얼굴도 모르는 아버지에 대한 원한, 목을 조르던 어머니에 대한 원망, 질시와 모욕의 눈으로 대했던 사회 등 이 모두를 용서할 수 있었습니다. 그리고 상처와 아픈 추억은 하나님 안에서 치유되고 아비 없는 자식이 아니라 만군의 여로와의 딸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과거에 불렀던 한탄과 운명의 노래 대신 영광과 기쁨이 충만한 노래를 부르는 자가 되었습니다. 단지 목소리가 좋아서가 아니라 노래에 그의 변화된 삶의 스토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감동 받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단지 위대한 능력이 아닙니다. 기적이 아닙니다. 불가능 한일, 도저히 희망을 가질 수 없는 절망을 딛고 일어서는 이야기를 통해서 은혜를 받고 있습니다. 요셉의 신앙 이야기가 왜 은혜가 있습니까? 그의 삶에 감동의 스토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야곱의 열두 아들 중에 11번째 였습니다. 어려서부터 부친의 사랑을 받으며 채색 옷을 입고 자랐습니다. 꿈도 꾸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그가 형들의 시기로 미운 털이 박혔습니다. 한번은 심부름 으로 도단에 형들을 만나러 갔는데 그런 동생을 무자비하게 굴에 쳐 넣어버리고 애굽의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그리고 아비에게는 짐승에게 물려 죽었다고 거짓말을 고했습니다. 하루아침에 형들에게 버림받은 요셉은 죽을 고비를 넘기고 그날부터 노예로 팔려 애굽의 종살이를 하게 되었습니다. 애굽의 보디발의 집에 가정총무로 일을 하였지만 보디발 여사의 유혹을 받게 됩니다. 이를 뿌리치다 옥에 갇혀 몇 년을 정처 없이 지냅니다. 그리고 술 맡은 관원장의 꿈을 해몽 해 줌으로 풀려나갈 기회가 있었지만 그가 요셉을 잊어버리는 바람에 또 청처 없는 옥중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그러다가 때가 되어 바로의 꿈을 해몽하게 되었고 마침 대흉년의 때에 기지를 발휘하여 애굽의 총리까지 됩니다. 그리고 신기하게도 자기를 팔았던 형들을 외 나무 다리에서 만납니다. 이번에는 반대로 나약한 형들의 모습, 막강한 힘을 갖고 있는 요셉으로.... 그 에게는 복수의 기회였고, 형들에게는 두려움의 시간 참회의 시간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요셉은 아비 야곱이 세상을 떠나고 두려워 하는 형들에게 말합니다.
“ 요셉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려워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19-21)
여러번 들어도 은혜스럽지만 이 요셉의 이야기 가운데 가장 감동을 주는 내용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그 인생을 축복하여 역전 시키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일을 하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하셨다는 것입니다. 요셉은 형들에게 분명하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만민의 생명을 구원게 하시려 하셨나니” ‘세상의 이런 일이’에도 보면 신기하고 감동을 주는 이야기들이 얼마나 많습니다. 그러나 감동을 주어도 단지 사람의 이야기라면 삶의 스토리는 결국 죽음으로 끝납니다. 대통령도 장관도, 학자도, 사업가도 예술가도 ....모두 같은 곳으로 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우리의 삶에 개입하셔서 일을 하시면 절망이 소망으로 바뀌고 죽은 자가 살아나고 생명의 열매가 맺혀지는 역사가 일어난다는 것입니다. 죽은 송장과 같았던 문둥병자가 주님께 나와 깨끗함을 받고, 12해 혈루증 앓은 여인이 옷가에라도 손을 대면 나음을 받으리라는 믿음으로 나가 나음을 받는 역사가 나고, 병들어 죽은 나사로가 몸을 수건으로 동인채로 나옵니다.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그리고 또 말씀하십니다.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 요한 11:26)
때로 우리는 이런 생각을 합니다. “만일 내가 더 좋은 조건에서 태어났다면 만일 내가 좀 더 부요환 환경에서 자랐더라면, 만일 내가 좀 더 능력이 많았더라. 만일 내가 좀더 낳은 상대와 결혼을 하였더라면 내 인생이 더 멋있고 아름답게 바뀌지 않았을까? " 그러나 그렇게 삶이 바뀌어져도 하나님이 개입하지 않는 인생은 희망이 없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개입하신 인생은 어떤 인생을 살아가던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삶에 개입하셔서 영과 육을 축복하시고 그를 통하여 또한 많은 생명을 거두는 역사를 이루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의 어려운 형편, 조건을 원망하거나 할 필요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내가 그러한 하나님을 만나서 감동의 스토리 있는 삶이 되면 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요셉의 이야기 외에 또한 다윗의 삶에 감동을 받습니다. 그의 삶의 히스토리 속에 하나님이 개입하시며 함께 하심을 누구보다도 강력하게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다윗은 이새의 막내 아들 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선지자 사무엘을 보내서 기름부음을 받을 자를 찾을 때에 그는 아에 소망이 없는 아들로 밖에서 양을 치고 있게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오히려 그 다윗을 찾게 하셨고 머리에 기름을 붓도록 하셨습니다. 그 어린 다윗과 하나님이 함께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에 불레셋을 맞써 싸울 때 적의 군대에는 골리앗이라는 장수가 있었습니다. 창 하나가 베틀채만 했고, 방패도 얼마나 큰지 다른 군사가 들고 나왔습니다. 그를 본 이스라엘 모든 군사들이 다 벌벌 떨며 사울 기력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형들의 안부를 알아오라는 아비의 심부름으로 전장터에 갔다가 이를 목격하고 마음에 분노가 일어납니다. 곧 사울에게 자신이 나가서 싸우겠다고 신청합니다. 형들에게 이런 다윗의 모습은 너무나도 어처구니없는 일이어서 책망을 합니다. 그러나 그는 사울이 주는 칼과 방패를 나두고 양치는 지팡이 하나와 물매 돌을 갖고 나가면서 이렇게 외칩니다.
“ 45 다윗이 블레셋 사람에게 이르되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46 오늘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내가 너를 쳐서 네 머리를 베고 블레셋 군대의 시체로 오늘날 공중의 새와 땅의 들짐승에게 주어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47 또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전쟁은 여호와께 속한 것인즉 그가 너희를 우리 손에 붙이시리라 (삼상 17:45-47)
“여호와께서 너를 내 손에 붙이시리니”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 여호와의 구원하심이 칼과 창에 있지 아니함을 이 무리로 알게 하리라” 그는 자신의 힘과 능력을 의지 하지 않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하심을 의지하여 나갑니다. 그리고 도저히 게임이 되지 않는 게임에서 이기고 온 이스라엘 군대의 사기를 높여 승전고를ㄹ 올리게 합니다. 다윗과 골리앗은 지금도 도저히 싸움이 되지 않는 일에 따라다니는 하나의 유행어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면 이렇게 인생에 멋진 스토리가 생깁니다. 그 스토리는 나만이 아니라 그 이야기를 듣는 모든 사람들에게 힘을 주고 그들의 삶에도 힘과 용기를 줍니다.
그리고 모든 삶 중에서 가장 감동이 되는 스토리는 바로 주님 자신의 히스토리입니다. 주님은 본체가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십니다. 태초에 창조자와 함께 옆에서 만물 창조의 역사를 이루신 분이십니다. 모든 만물의 근원이시며 생명의 원천이십니다. 그런데 그 분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목수의 아들로 태어나셨습니다. 아무 죄 없으신 분이 우리 죄 때문에 온간 멸시와 천대와 조롱을 받으시고 침 뱉음과 채찍을 맞으셨습니다. 유대인이 왕이라는 죄목으로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셨습니다. 그런데 단 3일 동안만 무덤에 갇히셨다가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셨습니다. 이 주님의 부활은 죄와 사망과 권세를 파하시고 첫 열매가 되어 모든 죽을 인생에 삶의 희망의 메시지가 되셨습니다. 그 주님의 스토리는 구원의 스토리가 되어 모든 사람들의 삶에 희망을 주는 구원의 복음이 되었습니다. 주님을 믿는 모든 사람들은 어떤 죄인이던 어떤 운명을 갖고 태어났던 상관이 없습니다. 새 사람으로 바꾸어 하나님의 자녀 되게 합니다. 이 주님의 히스토리는 2000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듣는 이들의 마음에 감동을 주며 눈물로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게 합니다. 저도 여러분도 이 주님의 히스토리에 감동을 받았고 회개를하고 구원을 구원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주님의 십자가에 죽음 부활 히스토리는 사람들을 변화시키는 생명의 복음입니다.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의 삶과 비교하여 나의 삶을 운명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합니다. 왜 나는 가난해야하고, 나는 힘들게 살아야하고, 다른 사람들은 부모 형제 남편이 능력이 많아서 호강을 하는데 나는 이렇게 살아야 하는가 생각합니다. 힘들고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자체가 운명은 아닙니다. 모든 인생은 이렇게 사나 저렇게 사나 이미 아담 이후 벌써 심판을 받은 자들입니다. 아담 안에서 죽을 자들로 운명지어졌습니다. 이렇게 살던 저렇게 살던 다 똑같습니다. 그러나 이런 운명이 주님을 만나면 섭리가 됩니다. 아담 안에서 죽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삶을 누리게 됩니다. 운명적인 것 같은 과거의 삶이나 현재의 삶은 오히려 아름다운 삶의 일부가 되고 감동을 주는 스토리가 됩니다. 성악가 남현봉씨 앞에 따라다니는 수식어가 꽃계잡이 입니다. 너무나 가난하고 형편에 어려워서 모든 것을 포기하고 타게 된 ‘꽃계잡이’ 수식어가 오히려 그의 삶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주님을 만났으니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는 무대에 서서 “공평하신 하나님이 나 남이 없는 걸 갖게 하셨네‘ 노래를 불렀습니다. 10년 전 성악에 입문시켰던 그 노래를가 다시 잊혀진 그의 꿈을 불태우게 하였습니다. 운명은 형편이 아니라 주님을 만나지 못한 것입니다. 주님은 만난 사람들은 인생이 AD 와 BC로 나뉘어집니다. 어렵고 힘든 삶의 환경도 주 안에서 아름다운 삶의 스토리가 됩니다. 주님은 자녀들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가난한 내 인생의 끝은 부입니다. 죽음으로 가는 내 인생의 끝은 생명과 부활입니다. 약한 자로 살아가는 내 인생의 끝은 강함입니다. 비천함으로 고통하던 삶의 끝은 영화로움입니다. 고린도 전서 15장 을 보시렵니까?
“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43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44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45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산 영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고전 15:42-45)
단지 세상에서 화려하고 성공적인 삶이 아닌 감동의 스토리가 있는 삶이 아름다운 삶입니다. 주님이 내 삶에 개입하시면 운명도 아름다운 섭리가 됩니다. 꽃계 잡이가 되었던, 용접공이었던, 과부였던, 사회 낙방생이었던 아무 상관이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오히려 더 영광스러운 컴백이 됩니다. 그러므로 이사야 55장 6은 말합니다.“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날마다 순간마다 주님 만나는 삶을 통해 자와 여러분들의 삶이 스토리가 있는 감동의 삶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김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