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尙州 2008.10.25~26
三白의 고을
① 三白米라는 尙州쌀
경기미와 쌍벽, 수랏상의 진상품
② 누에... 4000년의 역사
함창읍은 신라시대부터 명주산지로 유명
은척면 두곡리 은척뽕나무 - 350년 된 토종 뽕나무
③ 곶감
연간 4,550톤 생산 - 500억원 매출 전국생산량의 60%
둥시(둥글게 생긴 감)으로 만든 곶감
일반 감에 비해 당분 4배, 비타민A 7배, C가 1.5배
②고등시 전북完州, 南原 등지
③둥시 - 떫은 맛(尙州지방)
곶감이 되면서 떫은 맛이 없어지고 당도가 2배로 증가
- 여느 고을의 곶감을 앞지름
영남지방 확고한 권위
행정명 경상도 - 慶州와 尙州에서 따서 지은 것
영남의 젖줄인 낙동강
삼한시대 상주에서 자리잡았던 沙伐國의 도읍이던
洛陽에서 由來
“낙양의 동쪽에 와서야 江다운 면모를 갖추고 흐른다”
에서 붙은 이름
낙동강주변 기름지고 넓은 들녘 - 곡창
천혜의 방어벽인 백두대간 삼국시대에 전략적 요충지
금, 철과 같은 지하지원
→ 화북면 속리산 자락의 견훤산성
모동면 백화산의 금돌산성 등.
삼한시대 - 沙伐國이라는 부족국가 번성
249년 신라에 합병 - 沙伐州
525년(법흥왕 12년) 2京 5州의 하나인 上州
757년(경덕왕 16년) 尙州
고려시대 尙州
983년(성종 2년) 牧使
조선 세종때 경주와 함께 이곳에 경상도 監營설치
1593년(선조 26년) 임진왜란 중에 감영이 大邱로 옮겨감
尙州는 牧으로 강등
1895년(고종 32년)
尙州牧은 尙州郡으로
咸昌縣은 咸昌郡으로
1914년 함창군이 상주군으로 통합
현재 상주시(6동), 1읍(함창읍), 17면(사벌,중동,낙동,청리,공성,외남, 내서,모동,모서,화동,화서,화북,외서,은척,공검,이안,화남)
李重煥 先生 “擇里志”
朝鮮人才의 半은 嶺南에 있고, 嶺南人才의 半은 尙善(尙州와 善山)에 있다
俗離山 (1058m) - 兄弟峰 지나 南進 윤지미산(538m 화서면 동쪽)
- 숭덕산(225m)
소머리산과 숭덕산 사이 동쪽능선 가장 높은산이 露陰山(728.5m) - 동進 天鳳山(435.2m)
→ 분가하는 능선(기양지맥)
기양산(706m) - 수선산(684m) - 돌티고개
- 甲長山(805.7m) - 백원산 - 병풍산
尙州三嶽
天峰山 (石嶽) -- 상주 북쪽
기양지맥上의 甲長山 (淵嶽) -- 상주 남쪽
尙州三嶽은 尙州의 案山 -- 四長寺
南長寺
勝長寺 (승장계곡 상류 절터골의 마지막 빈집부분) 승장사지
① 忠烈王이 잠시 쉬며 嶺南第一名山이라는 말을 남겨
甲長山이라 命名했다는 說
② 甲長寺가 있어 甲長山으로 ”
俗離山
경관이 빼어나 小金剛 또는 金剛山
소백산맥 중의 靈山
忠北과 경북의 道界 - 상주, 문경, 보은, 괴산에 걸침
主峰은 천황봉(1057.7m), 묘봉, 관음봉, 문장대, 입석대, 비로봉, 형제봉 등
문장대가 第一景
文藏臺 (1054m)
속리산의 中心部에 위치
조선 世祖가 이곳에 올라 天下를 조감하며 文臣들과 詩文을 읊었다 하여 文莊임.
구름위에 솟은 대라 하여 雲藏臺라고
낙동강과 한강, 錦江의 발원지
문장대 발원한 물은 五松폭포(10m가 넘는 7단폭포)
⇒ 서쪽에서 동쪽으로 흘러 도장산과 청화산 사이로 龍遊溪谷과 병천의 絶勝 이루어 쌍용30리 계곡을 이룸
李重煥 先生 용유리 일대를 秘地로
白華山 (933m)
모동과 모서, 충북 영동군 황간면에 걸침
신라시대이래 국방의 요새 - 660년(무열왕7년) 백제 정벌시, 6월 21일 이후 한달여를 이곳의 금돌산성에 머물며 총지휘(대궐터유존)
1254년(고종41년) 10月 몽고의 車羅大 이성 침공 - 황령사의 중
洪之가 이끄는 군관병에 의해 참패 - 주봉을 恨城峰
이 산의 북쪽 자락에 저승골이 생긴 것도 이때부터
壬亂時 이곳 龍湫계곡 향병주둔 - 왜적에게 항거
병든 아우 蒼石 李埈을 업고 九死一生 禍를 면하게 하는 兄 月澗 李琠이 있어 ‘兄弟急難圖’를 탄생시킨 곳.
사찰이 많음
용추계곡 정북에 용문사, 산 남쪽에 眞佛庵址, 산의 중간에 普門寺址, 산의 끝 북녘자락에 般若寺
보문사지 맞은 서쪽 만경산 자락의 3층석대(林千石臺)
신라의 악사 임천석, 고려 태조의 부름을 받고 분개 구수천 깊은 소에 투신
甲長山 (805.7m) 淵嶽山
商山三嶽의 하나로 尙州의 案山
서쪽에 商山을 앉히고, 그 품이 흡사 큰 못을 연상케하여 淵嶽山이라고
甲長山 이름은 고려 충렬왕이 산의 동편 勝長폭포에 있던 勝長寺에 잠시 머물며 영남의 제일명산이라하여 생김.
서남 동구에 龍興寺
정상부에 甲長寺 - 서쪽 수십보에 想思바위
광해군 폭정을 피해 낙향한 이준이 이곳에서 유상하다가 仁祖로 부터 舍人벼슬받음 - 舍人岩
이곳에 서면 연악의 진면목을 다 볼 수 있다고 最勝岩
- 이곳에서 동쪽으로 지나면 北石門
甲長山 石泉과 남북으로 위치한 절의 산 뒤쪽에 九龍淵 - 商山 제일의 祈雨祭터
산능선을 따라 북으로 둘째 봉우리가 文筆峰 - 이봉의 영향으로 甲長山일대 사람이 많이 났다하여 그 일대(장천,청리등)를 壯元鄕
갑장산 동쪽 주봉 능선따라 남으로 가면 시루봉(떡시루)
이웃하여 南石門
조선조까지 상주관아에서 가깝고 절경이 많음-사대부들의 유상처
- 詩文의 창작공간
연악서당(뒤에 서원)은 학문의 전당
甲長山은 학문과 문학의 産室
露陰山 (725.4m)
商山三嶽의 하나. 일명 露岳. 상주 서쪽 진호하는 산.
유명사찰이 많음.
830년 이전 長栢寺 - 眞鑑 慧昭國師 동국최초 梵唄보급.
南長寺 귀한 유물.
노음산 서편 北長寺 뒷산을 天柱山 -
영남 八景之一
근대末 시인 趙元杚이 우거 - 명시
남장사 보광전에 沿해 있는 淸泉療(교남강당)는 승려는 물론 상산선비들의 文會, 詩會의 공간
天峰山(435.8m)
一名 石嶽. 商山의 鎭山
일찍부터 신앙터
山神祭壇 - 성황사(父老들이 계조직 1년 1회 제사)
岩石신앙에서 비롯된 靈岩閣
거궁한 바위 한덩어리
전설 ~ 尙州부임목사 北行하면 자주 해를 입는 불상사 잦음.
어느 목사의 꿈 현몽 - 큰 바위가 나타나 자신의 몸을 風雨로부터 막아주면 재앙을 멸해주겠다.
집을 지어 모시니 재앙 사라짐.
불바위. 알바위로 숭앙 - 미륵바위까지 변모.
민속문화의 보고
尙州市
1. 복룡동 석물좌상 (상주시 서성동 163-48) 보물 119호
央山 복룡동 358에서 王山으로 옮겨진 석불좌상. 높이 147m. 파손극심.
智拳印
光背와 臺座缺失. 풍만한 相好와 雄麗한 衣紋.
둔중한 느낌.
인간적인 미소.
10C경 조성(고려후기)
※ 王山(약 100m)
상주성內에 눌러 앉은 商山의 核으로 상주 山川精氣가
모두 이곳에 모인 靈山.
일명 장원봉
이산에 의지해 朝鮮朝의 관아가 있었고,
每 子午時에 潮水가 이곳까지 비치어 인물이 많은 고장이 되었다는 傳說
露嶽, 石嶽, 淵嶽이 이산을 알처럼 품고 앉았으며
南川, 北川이 탯줄처럼 靈氣를 낙동강으로 이어 멀리 바다에 까지 미치게 되니 三山二水, 三嶽의 고장이란 이름도
王山을 中心으로 하여 생겨남.
2. 복룡동 당간지주 (有形6호) 복룡동 207-2 우방APT 길가
원래는 동서 두쌍이 있었다고. 東方寺址 추정
3. 무양리 석조귀부 (有形129호) 상주시 거동동 산 99-10
조선전기 巨大한 龜趺.
완전한 상태
4. 인평동 폐탑 (有形238호) 상주시 인평동 산 11-5
北長寺에 移建
5. 尙州 石刻 天人像 (상주시 신본동) 보물 661호
현재 남산공원에 移安 → 상주박물관
(원래 남성동 9-6 龍華殿에 安置)
1886년 박인술이 쓴 용화전 창건기
신라, 고려시대 작은 암자가 王山의 서남쪽 수십보거리에 있었다. 萬石寺.
지금은 폐허가 되어 서성내의 도창지
2구의 석불이 창고 남쪽 뜰에.
용화전을 짓고 안치
용화전 창건후 古老들을 祭主로 모시고 매년 정월보름과
4月 8日에 공양. 기도하면 영험이 있었다고.
왼쪽 奏樂天人像 비파 - 신비한 미소. 높이 129㎝, 너비 123㎝
오른쪽 오른손에 연꽃을 받쳐든 공양상 높이 127㎝, 너비 112㎝
손가락, 옷주름 섬세하고 사실적 -신라下代의 유려한 조각솜씨
석탑의 기단이나 塔身石인듯
石塔材. 옥개석. 석등의 연화대석.
9C작품인듯.
6. 尙州鄕校 (상주시 신봉동 203-1)
대성전 (有形155호) - 창건연대 미상
1426년(世宗8) 판목 曺致가 남루를 세움
1485년(成宗15) 목사 姜龜孫이 대성전과 재루를 중창
壬亂(1592) 완전소실
중건
7. 서곡동사지1 (상주시 동성동)
석탑1기 - 삼층인듯
1991년 4월 5일 청동제 범종1점등 8건 11점의 일괄유물발견
(경주박물관 소장)
辛亥銘 동종
一行의 음각명문 28자
높이 47㎝
8. 서곡동사지2 (상주시 서곡1동 산 227-3) 息山 東海寺(일명 寒山寺)
1993년 서곡리 대밭골에서 석조약사여래불 입상 출토-東海寺 奉安
→ 직지사 성보박물관 移安.
높이 126㎝
고려시대
商山誌卷三 사찰조
동해사는 일명 寒山寺. 고을10리 지점 息山의 高秀臺 아래 無覺上人이 邑基를 위하여 창건. 절뒤에 大明壇이 있어 李景南이 明나라 황제를 위하여 매년 제사 지냈다.
高水臺 - 息山의 정상부에 위치한 祭壇.
1600년대 李景南이 明나라 황제를 위하여 매일 치성. 제단부는 길이 5.3m 폭 1m 정도의 평평한 자연석 상면을 곱게 治石. 日月岩이라는 명문.
제단옆에 擎天台(명문음각)
9. 長栢寺址 (상주시 남원동) 흥암서원터인듯 (연화문 주초석)
흥암서원 동쪽 - 절터라고 부름.
석탑재. 장대석. 석조천인상 조각부재. 석탑옥개석
통일신라시대
眞鑑 慧昭國師
10. 興巖書院(기념물61호) 상주시 연원동 769
同春堂 宋浚吉(1606-1672) 主享
숙종 28년(1702) 창건
숙종 42년(1716) 賜額
동춘당 - 愚伏 鄭經世 선생의 사위 - 상주와 각별한 인연
→ 영남에서 드물게 서인인 율곡학문이 상주일부 선비에 의해 크게 장려.
어필각(숙종의 흥암서원 四大字 음각판)
閔鎭宇의 글씨인 備忘記
11. 趙靖 壬辰亂 記錄(보물1003호) 상주시 신봉동 179-4(동아APT)
六種七冊
趙靖(1555-1636)
字 安仲. 号 黔澗. 本貫 豊壤
鄭 球 金誠一의 弟子. 尙州 涑水書院에 奉享
壬亂시 倡義 (都體察使 李元翼 막하에서 활약)
상주-함창은 물론 경상도와 충청도지역의 義兵 및 관료들의
活動, 百姓들의 動向과 苦痛상 및 倭賊의 갖가지 蠻行을 구체적,
사실적으로 기록 → 상주 임란사 연구 귀중자료
1592. 4. 14 ~ 1592. 8. 24의 일기 2권
1592. 8. 25 ~ 1593. 1. 7 南行錄 1권
1593. 12. 25 ~ 1594. 2. 4 日記附雜錄 1권 6종 7책
1597. 1. 24 ~ 1597. 3. 19 西行日記 1권
見聞錄 1권
12. 趙靖 宗孫家 所藏文籍 10종 62점 (보물1004호) 상주시 신봉동
검간 趙靖선생의 宗孫家 소장 문서와 전적
古文書 명종9년에서 현종11년 사이 작성 敎旨와 分財記 등
3종 55점
分財記
조씨문중 소유 토지와 노비의 규모 형성과정, 상속 등을 적은 자료 → 서지학과 교육문화사 연구귀중자료
典籍 7종 7책
조선초기 刊行本 三峯先生集(1487년)
筆苑雜記 (四佳亭 徐居正作) (1469-1494)
論語諺解(宣祖初)
宋朝明賢五百家播芳大全文粹(1542)
惕若齋
學吟集
田算成法(선조 -인조 년간)
※尙州布敎院(尙樂寺) 상주시 서성동
문경의 金龍寺에서 상주지역 포교를 위해 건립(1921년)
木造釋迦如來坐像
1921년 창건당시 김룡사에서 이운된 불상
降魔觸地印.
조선시대 불상 전형적 양식
13. 尙州商山館(유형157호) 상주시 만산동 산 73-1
北川戰蹟地 內
客館.
창건연대 미상.
商山誌에 의하면 1307년(忠烈王33년) 牧使 김영후 중수.
1526년(중종21년) 소실 - 尹宕 중건
1592년 壬亂 소실
1666년(현종7년) 목사 李松齡이 王山 남쪽(현 상주경찰서 자리)
으로 옮겨 세움
1940년 남성동 현 상주여중자리로 이전
1991년 현위치 이건
客館記
謹齋 安 裕(1282-1348)가 1343년 상주목사시 지음
객관
목사 부임시 向闕望拜儀式.
사신의 숙소.
文會, 詩會의 공간
白雲居士 李奎報(1168-1241)는 1196년 9월 2일 당시 공검지를
수축한 사록 최정빈의 초청으로 牧使 비롯 商山의 선비들과 성대한 詩會를 베품
鄭球, 趙浚, 金宗直 등의 時文
14. 尙州壬亂 北川 戰蹟地(기념물 77호) 상주시 만산동 699
尙州牧의 二香亭을 옮겨(1914. 5. 10) 枕泉亭으로 개명
이 정자의 서편에 戶長 朴 傑의 壇과 判官 權吉의 死義碑
사근도 察訪 金宗武 壇所
1592년 4월 13일 왜적 부산 상륙
목사 도주한 尙州牧. 判官 權 吉과 戶長 朴 傑 募兵함.
민병 800여명
4월 25일 조총무장 왜적 주력부대 17,000명 침공
장군 李 鎰 도주
판관 권길, 호장 박걸, 중사관 尹暹(섬), 李慶流, 朴虎 등의 軍京軍
사근도 찰방 김종무, 義兵長 金俊臣등 800여명의 민병과 역전분투 -散華 (壬亂중 조선중앙군과 왜적 선봉주력부대-小西行長-가 내륙에서 최초로 본격적인 전투)
屍山血海 - 후세인들은 이 산을 鐵丸山.
이들이 빠져죽은 甑淵을 學士潭이라고 부름.
15. 忠臣義士壇碑(기념물133호) 상주시 연원동 140-2
8인의 위패봉안 ⇒ 충의단 - 이일, 이경류, 박지 三忠臣, 김준신, 김익 二義士
현지단 - 권길, 박걸
충렬단 - 김종무
壬亂 北川전투 순국한 尹暹, 李景流, 朴虎 三忠臣
(巡邊使 李鎰 휘하의 중앙군)과 상주출신 의병장 二義士
金俊臣, 金鎰 도합 5인의 충절 포상하기 위해
正祖가 내린 壇碑
※西山書院
16. 尙州鄕廳 (상주시 인봉동 90) 문화재자료 336호
鄕射堂. 風憲堂. 貳衙 등으로 통용
여말선초성립
향청의 기능
① 지방행정의 보조자
② 향촌의 民風순화
鮮初에 이미 留鄕所와 재경소(鄕土 出身人士 모임)라는 2원조직
상주향청의 유래
1551년(명종6년) 尙州鄕射堂題名書(周世鵬撰)에 의하면
상주에 유향소와 재경소 있었을 것으로 추측
商山誌 공서 조
향사단은 북문 밖에 있고, 현감 韓 順(1432-1500)이 창건
임란소실
1610년(광해군2년) 한순의 손자 進士 韓珽이 鄕正이 되어
舊址에 다시 세움
전면5칸 측면2칸 팔작지붕.
수차례 중수
일제강점기 일본군 주둔 - 상주관아로 사용
在地士族의 향촌에서의 정치, 사회적 지위를 보장받고, 이곳에서
향토선현들이 鄕案을 닦고 향토사회의 보다 나은 발전을 위해
자발적으로 참여의식 고취.
향청잔존 희소가치
17. 道南書院 (상주시 도남리 175) 낙동강을 내려보는 승경
洛東江 無任浦에 있음
1606년 (선조39년) 창건
1676년 (숙종 2년) 賜額
1871년 훼철
1992년 복원
道南 - 程顥가 제자 楊時를 고향으로 보낼 때
吳道將行於南方이라 함 - 여기에서 由來 (조선유학의
전통은 嶺南에 있다는 자부심에서 이 서원 창건)
1601년 12월 21일 상량시 五先生位版奉安
東方儒道開彰, 宣揚한 분.
圃隱 鄭夢周, 寒暄堂 金宏弼,
一蠹 鄭汝昌, 晦齋 李彦迪, 退溪 李滉
뒤에 追配
蘇齋 盧守愼, 西厓 柳成龍, 愚伏 鄭經世
영남의 으뜸서원으로 鄒魯之鄕의 位相을 수백년 지켜옴.
18. 石刻神將像
상주시 제2청사 - 25번국도 서보가는 길 600m지점 우측 논
높이 1.5m 폭 80㎝ 不正形平石
신장의 무릎밑에 매물. 탁본으로 보면 양발까지 完形
왼손에 지팡이.
소박한 조각.
화랑상이라는 견해도.
19. 豊壤趙氏 족보 版木 및 譜閣 (문화재자료208호) 상주시 남장동
一棟 및 674매
풍양조씨 호군공파 보판은 총 934版 중 폐판된 260판을
제외한 674판
1924년 南長寺에 있던 譜閣을 현위치 소재 南長齋 경내에 이건 보존
1731년 辛亥譜(창간보)
1760년 중간된 庚辰譜
1826년 三重刊된 丙戌譜
20. 天雲精舍 (상주시 외답동 167-1 : 논실마을) 민속자료 76호
息山 李萬敷(1664-1732)선생이 1697년 서울에서 이주.
학문과 교육, 문학과 서도에 一家를 이룬 공간으로 息山精舍 중 유일하게 보존된 天雲亭.
1700년 완성
北向한 精舍 - 산자락 경사를 이용해 건물, 화단, 연못의 3단계 구성
天雲 -朱子의 天光雲影共徘徊라는 시구에서 취 한것
實心實學者. 自家說 확립한 성리학자(퇴계의 주자학계승. 역학에도 조예. 그의 학문은 성호 이익에게 영향을 주어 그의 존경을 받음)
八分体의 대가.
음악, 회화, 예악에도 탁월
21. 洛上里 馬堂 (상주시 낙상리 도룡산 170m 기슭)
洞祭堂
正月대보름 동제때 말꼬랑지털을 문주에 걸어놓고 동제사 모심 - 馬堂祭라 부름
馬堂의 諸神位 파평윤씨(정부인)경주최씨(숙부인)충주지씨(의인)등
세 姓씨의 골맥이 시조신을 모심
이 세성씨의 할매신을 낙상리 부락의 시조신 守護神으로 모시고
지금도 동제지냄
22. 露嶽山 南長寺 노악산(725m)... 영남 八景之一
한때 長栢寺라고도
감나무 - 곶감(상주곶감). 우리재래종인 분시, 고동시로
息山 李萬敷(1664-1732) 1716년 南長寺寺蹟記
眞鑑慧昭 830 귀국 - 露陰山長栢寺주처 - 신라흥덕왕 7년(832) 무량전을 지어 大刹 되었다고.
(孤雲 四山碑銘之一인 쌍계사 진감비명에)
1186년 覺圓國師 住錫 - 寺名 改額하고 현재위치로 이건
(상주지역 四長寺 - 北長寺, 甲長寺, 勝長寺)
四溟住錫 - 金堂인 寶光殿에서 수도
임란소실
1635년 중창(正修스님).
梵唄의 本山을 자처
石장승 키 186㎝ 경북 민속자료 33호
퉁방울같은 눈, 주먹코, 일자입술아래 튀어나온 송곳니
우리나라 장승 가운데 가장 해학적.
멀리서 보면 男根 모습
下元周將軍
1832년 壬辰 七月 立 (남장사 법당 중수시 인듯)
고려 강감찬과 관련된 설화
※골맥이 입석(남장동 상주초등교 남장분교)
130㎝입석 윗부분 30㎝만 남겨놓고 아래 1m는 지름 3.5m의 원통형으로 돌을 쌓고 시멘트로 고정
마을의 厄을 막아준다고 치성 - 박정희 시대 미신이라고 치웠다가
불상사 많이 발생 - 다시 세운 것.
극락보전 영역
보광전 영역 - 원래의 寺址 - (화엄종 사찰로 개창 된 듯)
極樂寶殿
1635년 소실 - 1776년과 1856년 중수
정면 3칸 측면 3칸 맞배지붕 - 조선중기 건물의 장중함.
어칸 사분합문의 꽃창살 - 청색을 많이 사용하여 경쾌한 느낌.
건칠아미타불좌상 十 관음 세지협시
1701년 감로탱을 비롯 18~19세기의 불화
아미타후불탱 1741년조성
頭光의 강한 초록색
琵琶 타는 사천왕 섬세한 정밀묘사
業鏡臺 2점
1788년 掛佛幀 掛佛 2점 ①영조52년 (1776) 훼손심함
②정조12년 (1788)
1790년 조성 영산전의 16존상 탱화
靈山殿
懶翁이 조성했다고 전하는 玉石 16나한상
전각의 갖가지 벽화
1978년 7월 영산전 후불탱화에서 진신사리 4과와 칠보류 발견
응향각 12폭의 祖師眞影
달마영정 순조12년(1812) 조성
부도골 4기의 부도
부속암자 觀音殿 中高庵
다시 삼문
寶光殿 .. 원래 無量殿
鐵造 毘盧遮那佛坐像 (보물990호)
懶翁이 14C조성했다고 1.33m
商山誌에 따르면 兵亂이나 심한 가뭄이 닥칠 때에는
땀을 흘린다고.
智拳印. 왼손이 위로가서 오른손의 검지손가락을 쥠
(일반적인 수인과는 반대로)
木刻後佛幀 (보물922호)
나무7장을 잇대고 위쪽으로 1장을 덧대어 조성
아미타불. 관음. 세지. 4보살상 양각
주위로 비천. 나한 사천왕 등 24구 조각
높이 226㎝. 폭 236㎝. 두께 12㎝ 돋을 새김
약간 울상인듯한 사천왕상.
친근감.
보살의 화관 붉은색과 녹색 → 화려.
19C조성
佛事成功錄을 통해 본 남장사 掛佛 (통도사 괘불탱특별전)
正祖12년(1788) 조성된 佛畵에 관한 서술
掛佛腹藏願文
幽冥敎主地藏大聖新畵成腹藏願文
佛事錢穀雜物等入記
緣化帙 등
극락보전 2개의 괘불함
1. 英祖 41년(1776) 조성 - 심하게 손상
2. 正祖 12년(1788) 조성
※한 사찰에 2점의 괘불이 남아 있는 예
①南長寺 ②浮石寺 ③七長寺 ④通度寺
남장사 - 앞의 괘불이 훼손되어 새로 조성하고 1776년 괘불은 태우거나 매장하지 않은 例
七長寺
五佛會掛佛(1628년) - 상태양호
靈山會괘불(1710년) - 상태양호
寺中의 思想的 기반의 변화로 새로 괘불조성한 例
※2점의 掛佛 동시 조성된 경우
英祖40년(1764) 大芚寺 조성 三尊丈六掛佛과
阿彌陀掛佛 (蓮潭林下錄卷之三點眼疏 大芚寺 甲申春)
南長寺掛佛新成畵記
正祖 12년 괘불조성하기 전, 몇차례 괘불조성
이전의 괘불(영조41년 1776) 10여년 동안 절에서 사용하다가
전 해에 城안으로 옮겨 祈雨祭를 기내던 도중 비를 맞아
훼손되었다고
괘불 새로 조성 이유
寺中 老比丘 省學 열반 - 그 제자 摠活 戒軒 漢柱 聖益 등이 스승천도위해 幽冥會 관련 불사, 그때 寺家의 의견으로 괘불조성
→ 당시 조성된 幽冥會 관련 佛畵중 現王탱 1점만 보광전에 보존
①現王幀畵記 施主帙에 省學기록
②괘불복장과 동경보관 위한 복장함 명문(정조7년 1783)
省學, 振樞
③정조12년 掛佛 - 省學은 大施主로 振樞는 都監으로 참여
→정조12년 남장사 불사는 省學 入寂前 계획되어 그의 遺訓에
따라 제자들이 마무리한 것
※ 南長寺 掛佛의 圖像과 思想
靈山會掛佛 (佛事成功錄에 괘불 내용 설명)
法華經 見寶塔品에 비유하여 설명
(서가모니불. 6大菩薩. 十大弟子. 四天王)
서가모니불 ┌右手 - 어깨높이로 들어올려 연꽃을 들고 手印
└左手 - 가슴위로 올린
→ 拈華示衆을 상징
法華經에 없는 내용
禪家의 三處傳心
※ 연꽃을 든 서가모니불 도상
光海君4년(1622) 淸淨寺版 ⌉ ⇒ 法華經 變相圖
孝宗 6년(1655) 法住寺版 ⌋
顯宗 1년(1660) 禪門祖師禮懺法의 서가모니불
掛佛 1. 南長寺 掛佛
2. 龍門寺 掛佛 (1708년)
3. 奉恩寺 掛佛 (1886년)
4. 開 寺 괘불 (1897년)
幀畵 金龍寺 應眞殿 서가모니후불탱(1803)
掛佛中 釋迦牟尼佛을 外護하는 여러 부처가운데 注目되는
부처는 瑞光 안에 자리한 毘盧遮那佛
글을 쓴 影波堂 聖奎 (1728-1812)
化身인 釋迦牟尼佛과 不變眞理의 存在인 法身 毘盧遮那佛을 동시에 성취해야만 올바른 깨달음에 이른다고.
더 나아가 大衆자신이 지닌 佛性을 깨우치도록.
→ 당시 華嚴강백으로 이름 높았던 影波 聖奎의
華嚴思想과 證師인 括虛堂 取如(1720-1789)와
南岳堂 暎悟(生沒年代未詳)의 思想을 알 수 있다.
南長寺 掛佛이 다른 靈山會掛佛에서 보이지 않는 法身 毘盧遮那佛을 석가모니불의 정수리 위, 瑞光이 시작되는 곳에 표현한 것도 이런 사상에 근거.
※ 影波聖奎 : 화엄종사
화엄경 탐독. 普賢과 觀音을 화엄경에 입각하여 願佛로 삼다.
眞影 - 통도사. 용문사. 김룡사.
※ 括虛取如
대승사출신 金龍寺 양진암 열반.
진영이 華藏庵에 전한다.
※ 南岳暎悟
眞影 金龍寺.
갑장사에 南岳影閣
水多寺十王圖(1771)에 施主者로
惠國寺 神衆幀(1781)과 황령사 신중탱(1786)에
括虛取如와 證師로 참여
南長寺掛佛과 參與畵師
湖南畵工(良工) - 有眼. 快允 등 25명 총 60명 참여
大乘畵工(良工), 弘眼 - 信謙 등 18명
湖南畵師와 大乘畵師는 地藏幀과 十王幀 제작
京城畵師 掛佛 담당
이 불사의 흔적 南長寺掛佛
幽冥會 관련 유물 - 동자상 1점. 現王幀 1점
掛佛 세로 1070㎝ x 675㎝ 규모. 서울화사 17명 20일동안 제작
靑谷寺掛佛 1722년 1020 x 500 → 10명 화사 40일간
廣德寺괘불 1749년 1080 x 718 → 6인이 60일간
大乘畵師 錦淳(錦珣)이 혼자 그린 100.5㎝ x 73.5㎝의 現王탱
괘불제작참여. 京城畵工 가운데 주목되는 이는 龍峰堂 敬還과 尙謙
尙謙
정조10년(1786) 상주 황령사 아미타불후불탱과 신중탱 제작
(尙謙. 唱謙. 性玧. 快全. 法成. 有弘)
정조12년 남장사 괘불
정조14년(1790) 남장사 나한탱
(尙謙. 戒寬. 宥弘. 法成. 宇悅)
정조14년(1790) 용주사 감로탱
(聖上之十四年庚戌九月 日畵成甘露會. 奉安
于隋城花山龍珠寺
畵師 尙謙. 弘旻 性允. 宥弘 法性 등)
掛佛 畵師帙 첫머리 龍峰堂敬還
정조6년(1780) 奉先寺 대웅전 佛像改金시 寬虛堂 雪訓과 함께
金魚로 활동. 이때 尙謙은 낮은 위치인 龍眼의 위치.
정조14년(1790) 설훈과 함께 현등사 신중탱 제작
尙謙은 서울지역 畵僧. 雪訓- 敬還의 畵脈 계승한 듯
大乘畵工 - 四佛山 大乘寺를 중심으로 이루어진 畵師集團
(四佛山派)
18C 후반부터 19C 전반까지 대승화공의 중추적 역할 담당
→ 弘眼과 信謙
19C 전반 金龍寺, 惠國寺, 龍門寺, 南長寺 등에서 소위 信謙畵風으로 분류되는 佛畵製作
초기작품 - 月精寺 觀音變相墨幀(1790년)
法住寺 神衆탱(1795년)
直指寺 神衆탱(1797년)
→ 偉伝의 화맥을 계승했다는 의견 (안귀숙)
19C전반 弘眼과 함께 한 일련의 불사 → 弘眼과의 영향관계 추정의견 (김경아,신효섭)
⁂ 信謙이 弘眼의 畵脈계승 가능성이 높다
信謙畵風 - 타원형의 둥근 얼굴. 양볼이 약간 볼록한 옆 얼굴
긴코 안에 안으로 몰린 눈. 작은 입의 개성적인 인상.
細長한 신체표현 등으로 특징
弘眼 - 정조5년(1781) 혜국사 신중탱
순조4년(1804) 혜국사 석가모니후불탱
순조3년(1803) 金龍寺 대웅전 석가모니후불탱(畵師比丘 弘眼.
都畵 愼謙....)
응진전 석가모니후불탱(畵師 弘眼. 愼謙...)
“佛事成功錄” ... 美術史적 意味
① 18C후반 활동 畵師들의 행적을 밝힐 수 있는 자료
② 충청, 경기 또는 경상도 화사로 분류되던 尙謙이 서울화사였음
③ 尙謙과 함께 활동한 雪訓과 敬還에 대한 행적 정리
→ 18C후반 경기도 활동 화사에 대해 알려줌
④ 19C전반 경북북부 불화제작 주도한 信謙의 화맥과
그의 톡특한 화풍이 형성되게 된 계기를 南長寺佛畵와
연결, 검토
信謙은 大乘寺畵僧으로 弘眼의 화맥계승 가능성. 그의 화풍이
南長寺괘불 조성담당 京城畵工의 화풍에 영향받음
23. 觀音殿 (10여분 산길)
1668년 창건
관세음보살좌상
木刻탱 (보물923호)
龍門寺木刻탱과 함께 우리나라 木刻탱중 돋보이는 秀作
1694년 조성(숙종20년) 현존한 것 중 최고의 작품
(改金記에 따르면 관세음보살좌상과 이 목각탱은 天柱山
北長寺의 上蓮庵에서 19C초 移安한 것)
本尊佛은 네 보살이 圍繞, 좌우로 가섭과 아난
사천왕이 바깥쪽 外護
아래쪽 - 큰 연꽃이 피어 불보살을 받치고
위쪽 - 天上의 구름가운데 地方佛을 모심
145 x 185㎝
寶光殿 것보다 작으나 자연스러움이나 破格의 美에서는 生動感이 더 있다
24. 甲長山(淵岳山) 龍興寺 - 상주시 지천동 713
839년(문성왕1) 진감혜소 창건
공민왕시 나옹혜근 중창
極樂寶殿 1680년 중건
목조아미타삼존불(조선후기조성) - 중건당시 작품
후불탱화(1701년)조성 - 잔잔한 감동(괘불과 같은 金魚의 작품인듯)
신중탱(1806년)
掛佛탱 - 1684년(숙종10년) 康熙23년 印圭비구등 5인의 畵僧조성.
높이 10.03m x 너비 6.2m
중앙 釋迦. 藥師. 彌陀 三尊佛(文殊와 普賢. 日光과 月光. 觀音과 勢至菩薩)
四天王 十大弟子
5층석탑 - 1976년 극락전 후불탱 복장에서 사리발견 → 세운것
괘불대
극락보전 뒤쪽. 석중형 부도 2기. 品岩堂塔.
절위 계곡 건너 150㎝ 큰 석중형 부도1기(원추모양)
→南向의 陽地 → 古寺址 일듯(?)
나한전 塑造 羅漢님들의 해학적인 미소 감동
25. 甲長山(淵岳山) 甲長寺
龍興寺에서 1시간 下甲長寺址.
相思바위
戒行이 높은 스님. 女信徒의 戀情.
불사를 마치고 갑장사에서 수행 → 여인이 찾아옴. 下山(아미타불 염불하며)
잘못을 깨달은 신도. 죽음으로 참회
용흥사 2㎞ (1시간 20분) 甲長寺
정상과 불과 50m(10분거리)
1373년 나옹 창건
1797년 (正祖21년) 蓮坡중수
1990년 전소 - 因法堂 5칸(조중훈 회장 헬리콥터 지원)
寺額 如初書
작은 삼층석탑(문화재자료 525호) 고려시대
山中의 懶翁塔 - 제2봉.
2m정도의 자연석탑. 그옆에 1.5m가량의
탑을 작은 돌로 조성. 공양
甘露水
震黙大師 住錫설
鮮末 水中坐脫했다고 전하는 錦峰스님 수도하던 곳
金銅觀世音菩薩坐像(복장기 1689년 조성) 조각수법은 高麗양식
절뒤에 蘇塗 - 지금도 가끔 군수가 祈雨祭
부도3기(석로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