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잡지 초기의 운동성을 회복하여 다시 치열한 현장성을 확보하겠습니다. 뚜렷한 시대인식과 사명감을 갖고 아카데믹한 틀에서 벗어나 간결하고 쉽게 글을 쓰는 기풍을 확보할 뿐 아니라 실명비판을 강화하여 실천적이고 논쟁적인 잡지로 다시 태어나겠습니다."
민족문학과 진보적 사회담론을 만들어내는 발전소 역할을 해온 계간 <창작과 비평>(이하 창비)이 올해 창간 40주년을 맞았다. 창비는 이를 기념해 22일 오후6시30분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에서 각계인사를 초청한 가운데 축하모임을 가질 예정이다.
이에 앞서 창비의 편집인 백낙청 서울대 명예교수, 편집주간 백영서 연세대 사학과 교수 등은 14일 서울 프레스센터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초기의 운동성과 활력을 되찾겠다"고 선언했다.
미국 유학에서 돌아온 백낙청 교수가 창비를 창간했을 때 나이는 스물여덟. 사회변혁의 열망을 갖고 있던 젊은 문학평론가는 창간호의 권두논문 '새로운 창작과 비평의 자세'를 통해 보수적인 한국문단에 충격을 주며 순수-참여문학 논쟁에 불을 붙였다.
이듬해 여름호부터는 방영웅의 장편 '분례기'를 연재하기 시작했고, 1974년 도서출판 창비를 설립해 황석영 소설집 <객지>, 조태일 시집 <국토>, 신경림의 <농무>, 신동엽 전집, 김지하의 <타는 목마름으로>, 고은의 <만인보> 등 '민족문학'을 표방한 작품을 잇따라 펴냈다.
이와 함께 리영희의 <전환시대의 논리><8억인과의 대화>를 비롯해 경제평론가 고 박현채, 역사학자 강만길 등 군사독재정권에 저항한 지식인들의 정직하고 용기있는 비판을 잡지와 단행본에 담아내며 1970~80년대 우리사회의 진보담론을 주도했다.
이러한 창비의 존재는 정통성을 갖지 못한 비민주적 군사정권에 위협이 아닐 수 없었다. 김지하의 시 '빈 산', '모래내' 등과 백낙청의 '민족문학의 현단계' 등을 게재한 1975년 창비 봄호는 긴급조치 9호 선포 후 회수됐고, 그 해 출간된 <신동엽 전집>은 판매금지됐다.
1977년 9월 <8억인과의 대화>를 편역한 리영희 교수가 구속됐고, 1980년 창비 봄호는 서남동·송건호·강만길·백낙청의 좌담을 마련했다가 계엄사 검열단에 의해 전문 삭제되어 발행됐다. 그 해 4월 양성우 시집 <북치는 앉은뱅이>는 판금됐고, 급기야 7월말 창비는 신군부에 의해 강제 폐간되고 만다.
1980년대에도 정권의 탄압은 계속 됐다. 1982년 김지하 시선집 <타는 목마름으로><대설 남>이 판금됐고, 1985년에는 부정기간행물 제1호 <창작과비평>을 간행했다가 서울시로부터 출판사 등록을 취소당하기도 했다. 이렇듯 군사정권하에서 판금, 강제 폐간, 등록 취소의 가시밭길을 걸어온 창비는 6월 항쟁의 성과로 1988년 복간돼 지금에 이르고 있다.
창비는 동구권 사회주의 몰락과 이데올로기의 붕괴에 뒤이은 포스트모더니즘의 대두 등으로 1990년대 들어 활력을 크게 잃었다. 이 시기는 인문학 전체가 위협받은 시기와도 맞물린다. 여기서 비롯된 창비의 정체성 혼란은 진보진영 내부의 비판을 감당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했다.
"창비가 백무산, 김남주, 박노해 등의 첫 시집을 외면한 것은 정치적 폭발력 때문에 회피한 것이며, 이는 안전한 길을 가고자 후방기지로서 소임을 자처한 것"(시인 이영진)이라거나 "창비의 민족문학론이 문화산업의 공장으로 변한 문단을 통제하는 권력으로 탈바꿈했다"(평론가 조정환)는 훗날의 비판들은 1990년대 이후 창비의 불안정한 위치를 설명해준다.
중장년기에 접어든 창비는 이제 1990년대의 느슨해진 고삐를 다잡고 독자들에게 좀더 가깝게 다가갈 뿐 아니라 '실천적이고 논쟁적인 잡지'로 다시 태어나겠다고 다짐하고 있다.
백낙청 교수는 "세계화의 물결이 거세질수록 이 대세가 세계문학의 진정한 꽃핌을 가져오기는 커녕 진정한 문학의 존속을 위협하는 흐름이 아닌지 성찰할 필요가 커진다"면서 "현재 진행중인 세계화에 그러한 위험이 내재하는 한에서는 민족어 내지 지역언어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문학이야말로 다른 어떤 예술도 대신할 수 없는 성찰과 방어의 근거가 된다"(평론집 <통일시대 한국문학의 보람> 중)고 말했다.
'분단체제극복에 기여하는 문학'에서 민족적 차원이 차지하는 결정적 비중이 도리어 전지구적인 문학옹호ㆍ예술옹호의 강화라는 세계적 차원마저 획득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는 창비가 견지해온 '민족문학'의 가치와 효용성이 결코 사라지지 않았음을 강조한 것이다.
창간 40주년을 계기로 창비는 동아시아 질서에 대해 오랫동안 연구해온 백영서 교수를 새로운 편집주간으로 영입했다. 이는 창비의 문학ㆍ인문ㆍ사회적 담론을 동아시아 지역으로 확장할 뿐 아니라 이 지역의 진보지식인 네트워크를 형성하겠다는 의도를 엿보게 한다.
이를 위해 창비는 4월 일본어판 웹진을 개설한데 이어 중국어판 웹진의 개설도 준비하고 있다. 한·중·일 지적 연대를 강화하기 위해 24~25일 일본 교토에서 '한류' 현상을 주제로 국제 세미나를 개최하며, 6월 8~9일에는 서울과 도라산에서 동아시아 비판적 잡지 편집자들의 국제회의를 개최할 계획이다.
또 창비는 4월부터 시의성이 떨어지는 계간지의 한계를 벗어나 온라인 주간논평을 발행하기로 했다. 이는 인터넷 시대에 걸맞은 체질 개선을 통해 진보담론의 발전소 역할을 계속하겠다는 의지를 드러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같은 창비의 새로운 모색이 우리 지식사회에 어떤 변화를 몰고 올지 주목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