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아침 모 라디오 방송에서 한희철님의 글이
낭독 되었다
내용이 너무 좋아 인터넷에서 찾아 올려 봅니다
이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뭔가를 새삼 느끼게 합니다
꽤 오래 전 강원도 단강이라고 하는 시골마을에서 지낼 때였습니다.
어느 해 겨울이었지요.
아랫마을로 내려가던 나는 저만치 논둑길을 따라 걸어오고 있는 한 사람을 보았습니다.
작은 키에 독특한 걸음, 나무를 한 짐 얹은 지게를 진 채 땅만 바라보며 걸어오고 있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대번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지난해 가을 초가지붕을 슬레이트 지붕으로 바꾼 조그만 오두막집에서 어린 아들 하나를 데리고 힘겹게 살아가는 아랫마을 아주머니였습니다.
신작로에 기다리고 있다가 막 길 위로 올라서는 아주머니를 만났습니다.
아주머니의 콧등에는 땀이 송송 맺혀 있었습니다.
잠시 길 위에 서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며 안부를 물었습니다.
이야기를 마친 뒤 아주머니 집까지 지게를 져 드리기로 했습니다.
아주머니는 펄쩍 뛰며 만류를 했지만 도와 드리고 싶었습니다.
아주머니 집까지는 아직도 제법 거리가 남아 있었거든요.
그런데 아무래도 뭔가 이상했습니다.
지게 아래에 한 쪽 무릎을 꿇고 앉아 등을 바싹 붙이곤 어깨띠를 어깨에 걸치고 일어서려는데, 웬일인지 어깨끈이 자꾸만 팔뚝 아래로 흘러내리는 것이었습니다.
지게를 져 본 지가 오래되어 그렇겠지 싶어 그럴수록 지게에 바싹 다가앉으며 몇 차례 더 해보았지만 마찬가지였습니다.
주르르 주르륵 때마다 어깨끈은 팔뚝 아래쪽으로 흘러내렸습니다.
그런 모습을 바라보며 아주머니가 깔깔 웃어댔습니다.
눈물이 많았던 만큼 웃음도 흔했던 분이었습니다.
난 그제야 이유를 알게 되었습니다.
그 지게는 체구가 작은 아주머니가 당신 체구에 맞게 만든 작은 크기의 지게였던 것입니다.
지게도 여느 것보다 작았고, 어깨끈도 여느 지게보다 짧은 것이었습니다.
덩치가 큰 내게 맞을 리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나는 말로만 아주머니를 도왔을 뿐 지게는 다시 아주머니가 졌고,
난 아주머니를 따라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지게를 져 드리겠다는 말은 공연한 빈말이 되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날 밤, 책상에 앉은 나는 낮에 지지 못한 지게를 두고 이렇게 노트에 적었습니다.
“아주머니, 사람에겐 저마다의 고통이 있나 봅니다.
다른 사람이 져 줄 수 없는, 저만이 감당해야 할 고통이 저마다에겐 있나 봅니다.
내가 얼마나 작아져야 당신의 고통의 자리, 바로 그 자리에 닿을 수 있는 건지,
오늘 지지 못한 당신의 지게를 두고선 한참을 생각했습니다.”
오래 전에 있었던 그 일이 다시 떠오르는 건 왜일까요?
내가 작아지지 않으면 이웃의 아픔은 나눠질 수 없는 것,
구경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그 날 지지 못한 지게를 두고서 다시 한 번 생각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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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좋은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