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람들은 모두 배불리 먹었다. ★
오늘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힘을 얻으려고 성체를 모십니다.군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풍요로웠지만 육신은 배고팠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라고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뿐이었습니다.
어른 한두 사람이 먹어도 모자라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군중이 배불리 먹도록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요즈음은 각종 세균 때문에 먹을거리에 무척 민감해졌습니다.
그러나 내적 음식에는 무관심합니다. 영혼에게도 음식이 필요하건만 그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삶이 우울하고 이유 없이 불안한 것은 영혼이 굶주렸다는
신호입니다.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영혼에 양식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의 힘을 얻고 마음이 밝아집니다.
삶의 기쁨을 얻습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의 힘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기쁘게 살아가도록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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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기념하는 그리스도의 성체와 성혈 대축일은 성체성사의 신비를 깊이 묵상하는
날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힘을 얻으려고 성체를 모십니다.
군중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그분을 따라왔습니다.
그들의 영혼은 풍요로웠지만 육신은 배고팠습니다. 그러나 먹을 것이라고는 물고기
두 마리와 빵 다섯 개뿐이었습니다. 어른 한두 사람이 먹어도 모자라는 음식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모든 군중이 배불리 먹도록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요즈음은 각종 세균 때문에 먹을거리에 무척 민감해졌습니다.
그러나 내적 음식에는 무관심합니다. 영혼에게도 음식이 필요하건만 그것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삶이 우울하고 이유 없이 불안한 것은 영혼이 굶주렸다는 신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살을 먹고 당신의 피를 마시라고 하십니다.
영혼에 양식을 주라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영성체를 통해 예수님의 힘을 얻고 마음이
밝아집니다. 삶의 기쁨을 얻습니다. 이것이 성체성사의 힘입니다.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성체를 받아 모시고, 기쁘게 살아가도록 스스로 다짐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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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 예수, 사랑 깊은 펠리칸이여!
프랑스 시인 알프레드 뮈세는 ‘5월의 밤’이라는 시로 유명합니다.
이 아름다운 시 속에는 어미 새 펠리칸이 등장합니다. 어미 새 펠리칸은
갓 낳은 굶주린 새끼 새들을 해변에 놓아두고 먹이를 구하러 여행을 떠납니다.
그러나 오랜 여행에도 어미 새는 단 한 줌의 먹이도 구하지 못하고 되돌아오고 맙니다.
여행에 지친 어미 새 펠리칸이 저녁 안개 속에서 갈대숲으로 돌아올 때 굶주린
새끼 떼들은 어미 새에게 몰려갑니다. 그러자 어미 새는 목을 흔들면서 늘어진
날개 속으로 새끼들을 포옹합니다.
다음 순간 어미 새는 해변에 누운 채 자신의 심장을 새끼들의 먹이로 내놓습니다.
어미 새의 심장과 내장이 새끼들의 입으로 사라지기도 전에 어미 새는
숨을 거두고 맙니다.
자신의 심장과 생명을 내주면서까지 또 하나의 생명을 살아가게 하는 것,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사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당신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남김없이
내주신 한없는 사랑. 그래서 성 토마스는 ‘성체찬미’에서
‘ 주 예수, 사랑 깊은 펠리칸이여’라고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의 성체 성혈 대축일입니다.
우리는 매일 세 끼의 밥 이외에도 주님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사람으로서
성체의 의미를 좀 더 새롭고, 가슴에 와 닿는 실제적 의미로 묵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먼저 우리가 매일 대하는 밥상을 생각해 봅시다.
나에게 살 수 있는 생기를 주는 이 밥은 어떻게 해서 내 밥상 위에 놓이게 되었는가?
그것은 부모의 피와 땀이 한 그릇의 밥을 상 위에 올려놓은 것이고, 이것이
자녀의 생명을 자라게 하고 유지시키는 것입니다. 이처럼 밥의 앞면에는
‘자녀의 성장’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부모의 죽음’이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는 ‘성체성사’라는 밥상 위에 당신을 밥으로,
제물로 올려놓으셨습니다. 당신 스스로를 밥이라고 선언하시는 성체성사 안에서
우리는 그리스도 사랑의 절정을 맛볼 수 있습니다. 성체성사의 앞면에는
‘영원한 생명’이 있지만 그 이면에는 ‘십자가의 죽음’이 있습니다.
이렇게 우리가 미사 안에서 받아 모시는 성체는 한갓 밀가루를 구운 빵 조각에
불과한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생기와 살아갈 힘을 주는 예수님의 몸인 것입니다.
다른 이들을 위해 부서지고 나눠지고 먹히는 삶을 사신 주님께서는 오늘도
여전히 똑같은 모습으로 성체성사 안에서 부서지고 나누어지고 먹히고 계십니다.
그리스도의 몸을 모신 우리도 가정과 이웃 안에서 조건 없이 내어주는 존재,
쪼개어지는 존재 봉사하는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습니다.
마더 데레사는 성체의 의미를 이렇게 설명하였습니다.
“성체는 바로 나를 지탱해 주는 음식이기에 성체 없이는 나의 봉헌생활은
하루 한 시간도 지탱할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돌보는 가난한 이들은 바로
예수님의 성체라는 것을 잊지 마십시오.”
- 김지영 신부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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