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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꼴 】───────────────
(1-2) - 다시 1년 전으로‥
2층, 내 방이다. 침대, 책상, 선반, 장롱 위 인형이 놓이지 않은 곳이 없다.
1년 전까지만 해도 내가 좋아하는 인형을 닥치는 대로 사들일 만큼 우리 집은 경제적으로 여유가 있었다.
치과의사이셨던 아빠와 경찰인 우리 삼촌, 그리고 노래 부르는 것이 취미인 엄마에게는 40평 남짓의 노래방이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의 일이다. 난 침대에 엉덩이를 대고 걸터앉는다. 내 몸의 무게로 인해 침대 속의 물이 출렁인다.
유리창을 통해 햇살이 방안에 내려 비친다. 시간이 조금 지나자 침대 속의 물은 곧 잠잠해졌다. 나는 몸을 이리저리 움직여 보았다.
그러자 물침대는 다시 한번 흐물흐물 춤을 추기 시작한다. 내 몸도 침대의 박자에 맞추어 춤을 춘다. 벌컥! 방문이 열렸다.
“야, 내 목소리 들었어, 못 들었어?!”
다짜고짜 화부터 내는 삼촌이다. 경찰복에 손에는 경찰 모자를 들고 있다. 일을 하러 갈 모양이다.
내 몸은 물결에 따라 여전히 흔들렸고 머리만이 삼촌을 향하고 있었다.
“배신자, 지금 개기는 거냐?”
험악한 인상으로 삼촌이 목소리를 깔면서 묻는다. 삼촌 주위의 공기가 냉랭해졌다. 지금은 1년 전인 만큼 삼촌도 다시 무서워졌다.
“다녀오세요.”
나는 모기만한 목소리로 삼촌에게 말한다. 하지만 삼촌의 인상은 여전히 험악하다. 불꽃이 이글거리는 눈으로 지그시 나를 본다.
인사가 마음에 안 든 것이다. 나는 침대에서 일어섰다. 두 손을 배꼽에 모으고 허리를 숙였다.
“다녀오세요.”
쾅! 고개를 살짝 들어 방문을 보니 닫혀 있다. 삼촌은 이제야 인사가 마음에 들었는지 그렇게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방안의 공기는 다시 원래대로 되돌아왔다. 고요하다. 책상이 있는 곳으로 갔다. 노란 너구리 인형이 안경너머로 나를 본다.
책상 책꽂이에는 교과서들과 참고서, 노트 등이 빼곡히 꽂혀 있다. 나는 책 한권을 빼내었다. 3학년 문학책이다.
책장을 차례대로 펼쳐 보았다. 그러다가 책을 덮고는 코로 가까이 들이밀었다. 냄새를 맡았다. 그리웠던 냄새다.
의자에 앉아 책 이것저것을 살펴본다. 교과서는 대다수가 낙서로 인해 더러워져 있었다. 책들을 책상 한 곳에 둔 뒤 책상위에 엎드렸다.
책상의 유리덮개가 내 뺨에 닿자 차가운 감촉이 맴돌았다. 나는 눈을 감았다. 아니 다시 눈을 떴다.
만약, 여기서 내가 잠이 든다면 이 꿈이 사라질 것만 같았다. 나는 이 꿈이 너무나도 마음에 든다. 이런 꿈을 꿀 줄 알았다면
진작에 죽어버릴 것을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행복하다.
똑똑.
“신자야, 저녁 먹어.”
노크소리에 이어 들려오는 엄마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방안은 어느새 어두컴컴해진 상태이다. 끝내 잠이 들었던 모양이다.
하지만 모든 것은 변하지 않은 모습이었다.
“휴-.”
나는 짧게 한숨을 토해낸다. 의자에서 일어나 방문을 열었다. 고무장갑은 끼지 않았지만 앞치마는 여전히 두르고 계신 엄마가 서 있었다.
“잤니? 어서 밥 먹자.”
어두운 방안을 힐끔 보시더니 생긋 웃으시며 말씀하신다. 나는 엄마의 뒤를 따라 계단을 밟고 1층으로 내려간다.
그리고 1층에는 나를 깜짝 놀래켜 줄 선물이 기다리고 있었다.
“누나다!”
변성기가 오지 않은 깨끗한 목소리, 혀 짧은 말투. 나의 귀여운 동생 장수다. 장수는 내려오고 있는 나를 보자 누군가에게 안긴 체
손을 흔들었다. 나는 다섯 칸을 남겨두고 제자리에 멈추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지금 장수를 안고 있는 사람을 보자 울컥 울음이
목구멍까지 치솟았기 때문이다. 한걸음이라도 더 떼어 그 사람과의 거리가 가까워지면 울음이 터질 것만 같았다.
“허허, 정말 신자가 일찍 왔구나.”
“아‥빠‥?”
난 방금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내 귀를 의심해야만 했다. 눈앞에 있는 사람은 1년 동안 얼굴을 볼 수 없었던 나의 아버지였다.
따지고 보면 이것은 그리 크게 놀랄만한 일도 아니다. 꿈이든 현실이든 지금은 1년 전이다. 2003년 5월 27일.
그것도 아빠가 사고가 나기 전인 것이다. 아빠는 예전처럼 인자하신 모습으로 나를 보고 계신다.
“그래. 오늘은 즐거웠니?”
그리고 따뜻한 음성으로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윽고 오른발이 떨어지고 다음 계단을 밟았다.
도저히 현실이라고 밖엔 생각할 수 없을 만큼 뜨거운 눈물이 내 뺨을 타고 흘러내린다.
“으흐‥으‥으어엉!”
난 빠르게 계단을 마저 내려가서는 아빠에게로 몸을 던졌다. 내 두 팔 안으로 아빠의 어깨가 들어왔다.
안심이 될 정도로 아빠의 넓은 어깨다. 난 아빠를 안은 체, 아니 다시 안긴 체 그동안의 힘들었던 마음을 눈물로 쏟아내었다.
“다들 식사하러 오세요. 어머!”
앞치마를 풀며 주방에서 나오던 엄마가 울고 있는 나를 보자 제자리에 정지해버린다. 아빠도 멍하니 한 손으로 나를 안아주기만 할뿐이다.
“누나, 왜 울어?”
아빠의 다른 한손에 안겨있던 장수가 어벙벙한 얼굴을 해 보인다. 평소에 나를 무척이나 따랐던 동생인 만큼 울고 있는 나를 보자
금방 눈물을 글썽이었다. 내 소원이 이루어진 믿을 수 없는 첫째 날 밤, 그렇게 나는 실신이라도 할 것처럼 울고 또 울며 밤을 지새웠다.
다음날. 퉁퉁 부운 눈을 떴을 때 자명종 시계의 시침과 분침은 각각 숫자 5와 숫자 6을 가리키고 있었다. 새벽 5시 30분.
출렁이는 침대에서 내려와 거울 앞에 섰다. 어두운 거울 속에는 차마 보기에 무섭게 생긴 여자가 나를 보고 있다.
붕 뜬 파마머리에 작아진 눈, 찐빵처럼 부은 얼굴. 이것이 어떻게 나란 말인가. 예전 같았으면 경악을 금치 못하고 소리부터 질렀을 나지만
지금의 나는 소리 없이 웃고 있었다. 어젯밤 다함께 저녁을 먹고 거실에 모여 대화를 나누면서 나는 오랜만에 행복함을 느꼈다.
그리고 잠자리에 들기 전 내 자신에게 다짐했다. 이 행복을 두 번 다신 놓치지 않겠다고, 전과 같은 불행은 절대 없을 거라고,
운명을 반드시 바꾸어보겠다고‥. 나는 방에서 나와 욕실로 들어갔다. 머리를 감고 샤워를 하고 방으로 돌아와 교복을 입었다.
단정하게 꾸미며 마지막 점검을 해본다. 아무래도 부운 눈과 얼굴은 얼음찜질로 밖엔 해결할 수 없다는 결론이 나왔다.
당장 실행에 옮기기 위해 1층으로 내려갔다. 거실과 주방 모두 불이 켜져 있다. 아빠와 엄마 모두 일어나신 모양이다.
주방으로 들어가니 역시나 엄마가 깨어있었다. 아침밥을 준비 중이시다. 엄마는 인기척에 뒤를 돌아보셨다. 나와 눈이 마주쳤다.
“주무셨어요?”
난 인사를 한 후 냉동실의 문을 연다. 마침 차갑게 얼려놓은 수저 3개가 있었다. 하나를 꺼내었다. 차가운 수저의 머리부분을
제일 먼저 오른쪽 눈에 가져다대며 식탁의자에 앉았다. 엄마는 아직까지도 나를 보고 계신다.
“왜 그러세요?”
의아함에 내가 묻자 엄마가 너털웃음을 흘러내신다.
“신자, 네가 이 시간에 웬일이니? 아니 내가 너무 늦게 일어난 건가? 여보, 여보! 이리 좀 와보세요.”
“응? 무슨 일인데? 아니‥?”
면도를 하시던 아빠가 주방으로 오시더니 엄마와 동일한 표정을 지으시며 나를 보신다. 나는 수저를 왼쪽 눈으로 옮겼다.
눈 속까지 시원해지는 기분이다.
“신자야, 오늘 학교에 무슨 일 있니?”
아빠의 물음과 동시에 턱에 붙어있던 비누거품이 바닥에 떨어졌다. 나는 아무 일도 없다고 말씀드렸다.
“그런데 웬일로 일찍 일어난 거냐?”
두 분 모두 놀라시는 이유가 저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예전의 나는 항상 늦잠을 자곤 했었다. 하루는 엄마가 깜빡하고 깨워주시지 않아
학교수업이 끝날 때까지 잔적도 있다. 그 날 나는 삼촌에게 죽기 직전까지 맞았던 것 같다. 그런 내가 새벽에 일어났으니
부모님이 놀라실 만도 하다. 그리고 회사에 다니면서 내 습관이 바뀌었다는 것은 아무도 모를 것이다. 오늘은 내가 일찍 일어난
기념이라며 아빠가 학교까지 태워다주셨다. 아빠의 값 비싼 승용차가 학교정문에 다다랐을 때 학교는 한산하기만 했다.
“신자야, 너 요즘 무슨 일 있는 건 아니지?”
안전벨트를 풀고 있는 나에게 아빠가 물으셨다. 나는 안전벨트를 푼 뒤 무릎 위에 놓았던 가방을 어깨에 메었다.
“네. 왜 그러세요?”
“아니. 요즘 네가 좀 이상해서. 신자야.”
“네?”
“이렇게 변한 너도 좋지만, 아빠는 그 전의 활기찬 신자도 좋단다. 그러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고 사렴.
아빠가 뭐든지 도와줄 테니까.”
아버지, 당신은 여전히 마음이 좋으시군요.
나는 대답을 미소로 대신하였다. 인사로 아빠의 뺨에 입을 맞춘 뒤 차에서 내렸다. 아빠의 검은 승용차가 내 눈에서 사라질 때까지
나는 제자리에 서있었다. 3학년 5반 교실. 아무도 없다. 하지만 창문은 열려 있고 하나뿐이지만 4분단 책상위에 가방도 있다.
내가 두 번째로 온 것 같다. 난 내 자리로 가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에 앉는다.
달칵. 교실 앞문이 열렸다. 먼저 온 아이인 듯 하다.(남자아이였다.) 손에는 걸레를 들고 있었다.
나를 발견하자 그 자리에 얼어버린다. 나는 그 아이를 위해 고개를 돌려 창밖을 보았다. 그러자 긴장한 얼굴로 교탁부터 닦기 시작한다.
내가 무섭기라도 한 것일까? 창밖으로 보이는 정문으로 교복을 입은 아이들이 속속들이 들어오고 있었다. 나는 책상에 엎드렸다.
그리고 눈을 감는다.
*************
“뭐야, 배신자, 정민숙, 또 지각이야? 이 녀석들은 어떻게 된 게 선생인 나보다 더 늦게 들어와?”
“선생님, 신자는 왔는 데요‥?”
“엉? 왔어? 아니, 정말이잖아?”
엎드려 있는 동안 깜빡 잠이 든 나는 선생님의 목소리에 눈을 떴다. 하지만 눈이 번쩍 떠지지는 않는 것이 졸음이 쏟아진다.
내가 엎드려 있는 것을 보셨을 선생님은 일어나라는 말씀은 한마디로 하지 않으셨다. 내가 일찍 온 것만으로도 만족스러우셨나 보다.
덕분에 나는 1교시 수업이 시작될 때까지 잠을 청할 수 있었다. 1교시가 끝나고 민숙이는 담임선생님이 계신 교무실로 불리어 갔다.
2교시가 끝나자 성희가 날 보러 우리 교실로 찾아왔다.
3교시가 끝나고 새로운 1학년 후배들이 인사를 다녀갔다.
점심시간에는 성희와 또 다른 친구들과 함께 옥상에서 탕수육을 시켜먹었다.
5교시가 끝나자마자 곧장 책상에 엎드려 졸음을 달래었다.
6교시가 끝나자 민숙이와 함께 매점에서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그리고 지금 7교시, 마지막 시간이다.
교련선생님께서 대학시절 아프리카로 봉사활동을 갔었던 이야기를 하고 계신다. 운동장에서는 노란색 체육복을 입은 2학년들이
체육을 하고 있다. 드르르-. 허벅지가 떨리는 것이 느껴졌다. 교복 주머니에 들어있는 핸드폰이 원인이었다.
나는 선생님의 눈치를 살피며 핸드폰을 꺼내보았다. 드르르-. 핸드폰의 진동이 손바닥으로 이어졌다. 슬그머니 발신자를 보았다.
[빌어먹을 짭새]. 삼촌이 건 전화이다. 반드시 받아야만 되는 전화였지만 선생님이 유난히도 내 쪽을 자주 보시는 바람에 그럴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눈치만 살피다보니 결국 전화가 끊어지고 말았다. 삼촌의 성난 얼굴이 눈에 선하다. 7교시의 끝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이 나가시자마자 핸드폰을 꺼내어 삼촌에게 전화를 걸었다. 받으면 그나마 다행이고 안 받으면 죽음이다.
뚜르르르-. 뚜르르르-. 신호가 길어질수록 수명이 단축되는 것만 같았다. 손안에 땀이 베인다. 하지만 운은 좋았다. 철커덕.
“여보세요.”
굳어 있었지만 삼촌의 목소리가 틀림없다. 전화 안은 자판 두드리는 소리, 팩스기 소리 등으로 무척이나 어수선하다.
“삼촌, 나야. 전화했었지?”
“그래! 너 왜 전화 안받아?!”
언성이 높아졌다. 역시 무섭다.
“수업 중이었어요.”
나름대로 이유를 대었지만 이런 것은 삼촌에게 변명 중 하나일 뿐이다.
“그 선생이 나보다 더 무섭다 이거냐?”
말도 안돼는 소리다. 세상에서 삼촌보다 무서운 것이 존재할리 없다.
“그게 아니라‥.”
“잔말 말고 당장 경찰서로 와!”
“경찰서요? 갑자기 왜요‥?”
“어허! 너 많이 컸다?”
솔직히 이유정도는 알고 가야 하는 것이 아닌가.
“아니예요. 지금 갈게요.”
전화는 끊기었고 난 한숨을 내쉬며 가방을 챙겨 메었다. 아직 종례전이지만 어쩔 수가 없다. 담임선생님보다 삼촌이 더 무서우니까.
1년 전으로 되돌아온 건 좋지만 삼촌까지 되돌아 올 줄이야. 그래도 말만 잘 들으면 괜찮으니까. 그걸로 만족할 수밖에.
“너 어디가?”
내가 자리에서 일어나자 짝인 민숙이가 내 손목을 잡았다. 난 말하기도 귀찮아서 단지 ‘놔.’ 이 말 한마디만 했다.
그러자 순순히 놓아주는 민숙이다. 내가 나가려고 하자 반 아이들이 일제히 나를 주목한다. 뒷문을 열고 교실에서 나왔다.
일단 복도를 살폈다. 종례가 끝난 반이 없어서인지 개미 한 마리도 보이지 않는다. 난 썰렁한 복도를 확인한 뒤 앞머리가 휘날리도록
복도를 달려 나갔다. 사람이 갑자기 튀어나올 것을 고려해 주변 환경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나의 이런 가벼운 모습을 남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다. 이 학교에는 나를 우상으로 생각하는 아이들이 무수히 많다. 그런 이들 앞에서 난 항상 무게 있는 모습만 보여 왔다.
그리고 남자들에게는 언제나 예쁘고 깔끔한 이미지만 심어주었다. 나에게 대쉬(Dash)를 해오는 남자들도 꽤 많았지만
나는 매번 퇴짜를 놓으며 도도한 척만 해왔다. 교복을 입고 있는 이상 그때와 다를 건 없다.
“허억허억.”
무사히 교문을 빠져 나왔다. 갑자기 뛰어서인지 전신이 후끈거린다. 난 늦기 전에 도로가로 달려갔다.
벅찬 숨을 진정시키며 택시를 기다렸다. 택시를 기다리는 동안 생각했다. 왜 삼촌은 날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었을까?
집에 늦게 들어올 때도, 성적표가 엉망이었을 때도 정작 우리 아빠는 가만히 계시는데 매번 삼촌이 난리였다.
그리고 더욱이 이상한 것은 내가 삼촌에게 야단을 맞거나 심지어는 매를 맞더라도 부모님은 크게 관여하지 않으셨다는 거다.
난 그게 항상 불만이었다. 끼익. 3분 즈음 지나자 택시 한대가 내 앞에 섰다. 뒷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며
“마포경찰서로 가주세요.”라고 미리 말했다. 그래야 조금이라도 빨리 출발할 테니까 말이다. 어쨌든 택시에 탄 나는 문을 닫으려는데
“잠까-안!”
웬 남자 한명이 문짝을 잡아버렸다. 난 조금 황당하였지만 평소와 다름없이 이미지관리부터 했다.
다행이도 남자는 교복차림이 아니었고 나와 앞면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 마포 경찰서로 간다고 했지?”
내 얼굴에 손가락질을 하며 뜬금없이 질문을 하는 남자다. 나는 상황파악이 안된 얼굴로 “네.”하고 대답했다.
그러자 얼굴에 웃음꽃을 피우며 차안으로 들어온다. 덕분에 나는 한쪽으로 밀려야만 했다. 타악. 뒷문을 닫는 남자다. 눈이 큰 편이다.
“아저씨, 우리 일행이예요.”
택시기사에게 말도 안돼는 소리를 한다. 택시기사는 별말 없이 차를 출발시킨다. 그러자 남자는 좌석 등받이에 편하게 기대어 앉는다.
고개를 옆으로 돌려 자신을 보고 있는 나에게 환한 미소를 던진다. 입도 엄청 크다. 다시 앞을 응시하는 남자.
칠흑 같은 머리색 때문에 눈동자까지 검게 보인다. 피부는 하얀 편이다. 엄지에 끼고 있는 의미 없어 보이는 넓은 면적의 은반지에는
용 한 마리가 그려져 있고 엄지손가락 아래로 늘어진 얇은 체인이 가로로 연결되어 있다. 이런 특이한 반지 2개를 양쪽 엄지 모두에
끼고 있었다. 옷은 검은 정장바지에 가는 회색 세로줄무늬가 있는 흰 셔츠를 입고 있다. 소매를 팔꿈치 조금 아래까지 걷어 올렸다.
다시 얼굴을 보았다. 왼쪽 귀에 한 피어싱이 보인다.
“뭐야? 동생 지금 나한테 반한거야?”
어느새 나를 보고 있는 남자다. 조금 귀염상이기는 하지만 너무 가벼워보인다. 나는 대꾸 없이 고개를 돌렸다.
주머니에서 검은 고무줄을 꺼내어 머리를 한 갈래로 묶었다. 여전히 한 손 가득인 머리숱이다.
“그래, 묶으니까 낫네. 앞으로는 풀지 마. 귀신같아.”
뭔가가 내 자존심을 건드렸다. 나는 묶었던 고무줄을 도로 풀어버렸다. 머리칼이 다시 어깨위로 늘어져 내린다.
왠지 상했던 자존심이 회복되는 것 같다.
“어라? 묶는 게 더 나은데.”
남자의 말을 듣자마자 나는 손으로 머리를 마구 흐트렸다. 부시시하게 퍼진 내 머리. 이제 좀 만족스럽다.
남자는 그런 나를 보더니 피식 웃으며 정면으로 고개를 돌린다. 정말 짜증나게 만드는 스타일이다.
택시는 어느덧 삼촌이 일하는 경찰서 앞에 도착하였다. 택시요금은 총 4,200원이 나왔다. 나는 반만 내면 되겠지 싶어
가방에서 지갑을 꺼내었다. 그리고는 정확히 2,100원을 내려는데 앗뿔싸, 그냥 태연하게 택시에서 내리는 남자가 아닌가!
난 남자를 불렀다.
“이봐요! 그냥 내리면 어떡해요? 돈 내야죠!”
“응? 아~, 알았어. 고마워, 됐지?”
기가 막힌다. 택시기사가 빨리 달라며 재촉을 하였다. 나는 하는 수없이 일단 요금을 모두 계산하고 내렸다.
택시가 부리나케 가버리고 나는 남자를 노려보았다. 그리고는 한손엔 지갑을 들고 다른 한손은 남자에게 내밀었다.
손바닥을 펼쳤다. 그 손을 응시하는 남자다. 그는 내 손을 무시하는 가 싶더니 이내 자신의 손을 내 손바닥 위에 얹어 보인다.
내 손을 잡고 세우더니 마구 흔들기 시작했다.
“그래, 나도 만나서 반가웠어.”
속빈 인간처럼 웃어 보인다. 나는 그의 손을 쳐버리며 목소리를 높였다.
“지금 장난 하는 거야?!”
휘익-. 그때였다. 어떤 인간이 내 뒤를 스쳐 지나가고 지갑을 들고 있던 내 손이 허전해졌다. 나는 왼손을 들어본다.
텅 비어있는 손. 그리고 빠르게 달려가고 있는 처음 보는 뒷모습. 이것은 분명.
“소매치기다.”
남자의 말에 따라 영락없는 소매치기였던 것이다. 경찰서 앞에서 소매치기를 하다니 정말 겁 없는 인간이다.
멍하니 서있는 나에게 남자가 묻는다.
“안 잡아도 돼?”
“미쳤어? 잡아야지!”
나는 삼촌에게 알리기 위해 경찰서로 향했다. 하지만 그런 나를 붙잡아버리는 남자였다.
“오케이! 그럼 여기서 잠자코 기다리고 있어. 이 오빠가 잡아올 테니까.”
남자는 내 양쪽 어깨를 두 손으로 툭 치더니 이내 소매치기를 쫓아가기 시작했다. 소매치기를 쫓는 남자의 모습이
어느새 보이지가 앉자 왠지 속았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택시비를 요구할까봐 도망친 게 아닐까? 역시 그럴 가능성이 충분하다.
나는 땅이 꺼져라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지갑에 만원밖에 들어있지 않아 그나마 다행이다. 하지만 아까운 것은 지갑이다.
비싸게 준 명품지갑인데‥. 난 앞을 응시하며 또 한번 한숨을 내쉰다. 그냥 재수 옴 붙었다고 생각하는 거야.
나는 터덜터덜 경찰서 안으로 들어갔다. 낯익은 경찰아저씨들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었다. 나와 눈이 마주친 이형사 아저씨께서
먼저 아는 척을 했다. 앞에는 몸이 우락부락한 대머리 아저씨를 둔 채 말이다. 시원하게 민 머리에는 호랑이 한 마리가 사슴을
잡아먹고 있다. 무서운 문신이다.
“신자구나? 점점 더 예뻐지는 게 며느리 삼으면 딱 좋겠다.”
“집안 거덜 낼일 있어요?”
탁! 딱딱한 책으로 뒤에서 내 머리를 치는 삼촌이다. 나는 찍소리 못하고 머리만 어루만졌다. 이형사 아저씨는 그냥 웃기만 한다.
왜 그런 말을 해가지고.
“왜 이제 왔어!”
나름대로 일찍 왔다고 생각했는데 삼촌에게는 아닌 모양이다.
“이 앞에서 지갑을 소매치기 당하는 바람에‥.”
난 말꼬리를 흐렸다. 왠지 삼촌의 표정은 1%도 안 믿는 눈치였기 때문이다. 이럴 때는 아무리 우겨봤자 증거가 없는 단에는 소용이 없다.
삼촌은 경찰이라는 직업답게 남을 잘 믿지 않는 편이다. 특히 나를 말이다.
“넌 경찰서 앞에서 소매치기하는 미친 놈 봤냐?”
“진짜야‥ 정말 뺏겼는데‥”
“너 진짜 많이 컸다.”
차라리 말이 되는 거짓말을 할 걸. 괜히 사실대로 말해서 이게 뭐람. 하지만 이제 와서 거짓말이라고 할 수는 없다.
그리고 사실을 거짓말이라고 하다니 말도 안 된다. 끝까지 밀고 나가는 수밖에 없다.
“정말이야! 내가 왜 삼촌한테 거짓말을 하겠어? 제발 한번만 믿어줘.”
“어쭈? 그래, 누구 말이 맞는 지 보자. 따라와!”
내 귀를 잡아당기며 취조실로 향하는 삼촌이다. 그 곳은 개인적으로 내가 가장 싫어하는 곳이다.
난 내 귀를 잡아당기는 삼촌의 손을 붙잡으며 결백을 했다.
“삼촌, 거짓말 아니라니까! 아아! 아파!”
쾅! 그때 삼촌의 걸음을 멈추게 할 정도로 큰 소리가 났다. 관내의 사람들은 일제히 입구를 보았다.
오른쪽 콧망울에 왕 점이 있는 빼빼 마른 남자의 두 손에 꽁꽁 감겨 있는 밧줄을 잡아당기며 들어오는 사람.
검은 머리칼, 흰 피부의 검은 눈동자, 특이한 반지. 그리고 큰 입을 벌리며 웃고 있는‥저사람.
“여어-! 역시 여기 있었구나?”
손을 흔드는 가 싶더니 들고 있던 지갑을 던지며 남자가 말한다.
“이걸로 택시비는 갚았다!”
그리고 그 지갑은 공중에서 굴곡을 그리며 이쪽으로 떨어진다. 정확히 삼촌의 머리위로.
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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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까이야기1□
First Story。그녀석의 슬픈인형.
Second Story。ⓐⓝⓖⓛⓔ" ⓣⓞⓡⓨ.
Third Story。 전국 고교 일진협회.
Fourth Story。대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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