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수 꽃동네현도사회복지대학교 교수의 기본소득 비판 논리에 대해
“기본소득제도는 워낙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기 때문에 기존 복지제도에 들어가는 비용을 전환하더라도 가히 혁명적인 조세제도의 개혁이 함께 논의되어야만 가능하다. 일례로 민주노총 산하 정책연구소에서 제시한 기본소득제 도입안에 따르면 연간 약 290조원의 재원 조달이 요구된다고 밝히고 있다.
이러한 기본소득제 발상은 매우 혁신적이기는 하나, 그 이념과 실현수단의 유효성에 있어 복잡한 고려요인들이 포함되어있다. 우선 이념적으로는 차등한 지급이 아닌 일정액의 지급이라면 절대적 빈곤이나 기본생활욕구 해소 효과는 있으나 여전히 상대적 빈곤에 따른 박탈감은 가시지 않으므로 궁극적인 형평성 확보가 어려운 상태이다. 또한 실현수단으로서의 현실적 유용성 측면에서는 더 많은 고려점들을 배태하고 있는데, 예를 들어 다양한 복지제도의 의의와 효과가 부정되고 현금급여를 주된 것으로 하여 기존의 각종 제도를 대체한다고 사회구성원들의 다양한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각 나라의 경로의존성에 따라 한국적 상황에서 이러한 혁명적 대안을 누가 수용하고 관철시킬 수 있을 것인지, 현재 우리나라에서 국가의 성격과 자본-노동간의 관계, 그리고 복지정치의 지형 등을 고려할 때 선뜻 받아들이기 쉽지 않은 측면이 존재한다.”
출처: [프레시안/2009-09-17] 2백만 빈곤층의 수급권을 허(許)하라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917154832
1.
기본소득은 혁명적인 조세제도 개혁 함께 하자는 것이다. 앞으로 이 부분이 좀 더 많이 토론되고 다듬어져야 하겠지만, 그 방향은 분명하게 제시되고 있다. 이태수 교수는 이러한 혁명적인 조세제도 개혁의 필요성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있는지 궁금하다. 어떤 일을 도모할 때 흔히 능력, 의지, 정당성이라는 세 요소를 중요하게 살핀다. 혁명적인 조세제도 개혁을 위한 능력의 부족이야 당장 맞닥뜨리고 있는 객관적인 현실이지만,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의지와 정당성을 강조하고 있고, 이를 통해 그러한 능력을 키울 것을 주문한다. 이태수 교수는 현실적인 능력의 부족을 탓하며, 이를 지렛대로 의지와 정당성마저 낮게 평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2.
이태수 교수는 이념적인 차원에서 기본소득이 절대적 빈곤 등은 해소해 주지만 ‘상대적 빈곤에 따른 박탈감’은 해결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 문제가 왜 이념적인 차원에서 제기되는 것인지의 문제는 차치하더라도, 이런 논리가 과연 기본소득 비판으로서의 정합성을 갖는지조차 의문이다. 기본소득 제도의 완전한 실현은 당연히 다른 모든 여타의 제도에 비해 상대적 빈곤을 감소시킬 수 있다. 이태수 교수의 주장대로 2백만 빈곤층의 기초생활보장 수급권 보장은 ‘상대적 빈곤에 따른 박탈감’을 기본소득보다 더 줄일 수 있는 대안인가. 기본소득과 비교할 수 있는 제도 가운데 그런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않았다. 물론 기본소득 자체로 ‘빈곤’ 일체를 해소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왜냐하면, 빈곤은 다차원적이고 복합적인 개념이기 때문이다. 소득이 그 핵심적인 부분을 이루지만, 다양한 사회적 서비스 영역들이 이러한 소득 보장의 영역과 조화를 이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본소득 지지자들은 일부를 제외하고는 기본복지의 확충을 함께 주장한다.
3.
실현수단의 유용성 부분에서 이태수 교수는 완전히 과녁이 빗나간 비판을 하고 있다. 이태수 교수는 기본소득을 기존 복지제도의 의의와 효과를 부정하고 현금 급여를 위주로 기존 제도를 대체하자는 주장으로 오인하고 있기 때문이다. 기본소득 지지자들이 기존의 복지제도를 비판하는 것은 분명한데, 그것은 기존의 제도를 해체하자는 입장에서의 비판이 아니라 완성해야 한다는 입장에서의 현실 비판이다. 판 빠레이스 교수가 ‘dismantle’이 아니라 ‘culminate’임을 누누이 강조하는 것도 이러한 왜곡에 대처하기 위해서다. 기존 제도의 대체는 각종 연금이나 사회수당 등과 같은 기존 현금 급여가 기본소득으로 통합될 때 일어날 뿐이다. 의료, 교육, 주거, 장애인 등과 관련된 다양한 사회적 복지서비스를 기본소득이라는 현금 급여를 줄 테니 없애자고 말하는 기본소득 지지자는 거의 없다.
4.
이태수 교수는 마지막으로 이러한 혁명적 대안을 누가 받아들일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다. 국가의 성격, 노자관계, 복지정치 지형 모두 어려운 조건이라고 말한다. 그렇다면, 기초생활보장제도 수급권자를 2백만 명 늘이는 일은 쉬운 일인가. 마찬가지로 힘든 일이다. 아직 실현된 일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똑같다. 현존 질서의 지배자들이 걱정해야 할 고민을 사서 하는 사람들이 줄어드는 만큼, 실현가능성은 좀 더 커질 것이다. 우리에게 혁명적 대안을 관철시킬 의지가 없는데, 정당성에 대한 확신조차 없는데, 그런 능력이 따라올 리가 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