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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금화정역연구소(金火正易硏究所) 원문보기 글쓴이: 고운성
천문학(astronomy, 天文學)
우주하는 모든 천체와 물질의 기원·진화·성분·거리·운동을 다루는 과학. 모든 우주 물질에 대한 물리적인 성질과 구조를 논의하는 천체물리학도 포함된다. 천문학은 기록 문명이 시작된 이후로 가장 오래된 과학이다. 망원경이 발명되고 17세기에 운동과 중력 법칙이 발견되기 전에 천문학은 주로 태양·달·행성의 위치를 관찰·예측하는 것에 관계되었기 때문에 초기에는 역법과 점성술, 나중에는 항해를 위한 응용과 과학적 관심 등의 목적으로 사용되었다. 현재 연구되는 천체의 종류는 더욱 많아져 태양계와 우리은하를 구성하는 별들, 그리고 보다 멀리 떨어진 별·은하 들을 포함하고 있다. 천체에 관한 가장 초기의 지식 중 상당 부분은 바빌로니아인들에 의해 이루어졌다고 믿고 있다. 이들은 이미 BC 3000년경에 유명한 별자리들을 많이 알고 있었으며, 이후에 여러 세기 동안 일어난 몇몇 천문 현상의 규칙성을 바탕으로 달력을 개발했던 것으로 생각된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에 대한 여러 가지 개념을 소개했다. BC 6세기경에 피타고라스는 지구는 둥글며, 조화를 이루는 자연법칙들에 의해 운동을 하는 천체들이 우주를 구성한다고 생각했다. 후기 그리스의 철학자들은 하늘이 지구를 둘러 싸고 있으며 안쪽 표면에 보석과 같은 별들이 박혀 있는 속이 텅빈 공이라고 생각했다. 하늘은 지구를 관통하는 축(軸)에 떠받쳐 있으며, 이 축을 중심으로 매일 서쪽으로 회전하므로 천체들이 뜨고 진다고 했다. 2세기경에 고대 그리스의 가장 유명한 천문학자들 가운데 한 사람인 프톨레마이오스는 1,300년 이상 천문학적 사고에 영향을 미친 지구 중심의 우주관을 펼쳤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체계에 의하면 각각의 행성은 주전원(周轉圓)이라는 작은 원을 그리면서 태양위치에 대해 상대적인 위치에 있는 하늘 주위를 실제 공전주기로 움직인다. 그동안 주전원의 중심은 별들에 대한 행성의 관측적인 공전주기로 큰 원을 그리면서 동쪽으로 지구 주위를 움직인다. 16세기경에 폴란드의 천문학자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을 우주의 중심에 놓아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의 복잡성을 대부분 제거했다. 이러한 혁명적인 체계에서 달을 포함한 지구는 태양 주위를 공전하는 행성들 중 하나가 되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매일 서에서 동으로 자전하고 단순히 겉보기 운동 때문에 천체가 지구를 중심으로 매일 원을 그리는 것처럼 보인다고 설명했다.〈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1543)로 출판된 코페르니쿠스의 태양중심론은 현대 천문학의 시대를 열었다. 17세기에는 천문학의 주요한 진보를 이끈 몇몇 중대한 발전이 있었다. 이것들은 요하네스 케플러에 의한 행성 운동의 원리 발견, 갈릴레오 갈릴레이에 의한 천문 관측에서의 망원경 이용, 아이작 뉴턴에 의한 운동법칙과 중력법칙 완성 등이다. 곧이어 다른 중요한 발전들이 뒤따랐다. 예를 들어 1750년 토머스 라이트는 우주가 수많은 은하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가정했다. 같은 세기 후반에 영국의 천문학자 윌리엄 허셜은 최초로 하늘을 망원경으로 조사하여 현대의 항성천문학(恒星天文學)의 기초를 세웠다. 19세기에는 천문학 연구를 위해 분광학(分光學)과 사진학이 이용되었다. 이것들을 이용하여 연구자들은 별과 성운(성간 가스와 먼지로 이루어진 구름)에서 방출되는 빛의 특성과 양을 측정할 수 있게 되어서, 천체들의 밝기·온도·화학조성에 대한 연구를 할 수 있게 되었다. 곧이어 행성과 태양계를 포함한 모든 천체의 성질은 천체의 대기와 내부의 물리적 성질로부터 이해할 수 있음을 깨달았다. 1920년대 초반 동안 관측 자료의 해석에 물리법칙을 적용하는 경향이 촉진되어 많은 천문학자들이 스스로를 천체물리학자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이러한 경향은 계속 널리 퍼졌다. 현재의 주요관심 분야인 X선천문학·감마선천문학·적외선천문학·전파천문학은 모두 기본적으로 물리학과 공학에 관련되어 있으며, 공학지식은 관측기기와 보조장비의 제작에 있어서 가장 중요하다. 전자식 레이더 및 전파 장치, 고속 컴퓨터, 전자식 복사검출기, 그리고 지구궤도천문대 및 장거리 행성간 탐사선과 같은 기술적 진보 덕분에 천문 현상에 대한 이론 및 관측 연구의 영역이 크게 넓어졌다.
1, 히파르코스[Hipparchos] : 그리스의 천문학자·수학자. 세차운동(歲差運動)을 발견했으며 1년의 길이를 6½분의 오차 내로 계산했다. 처음으로 별의 목록을 작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초기에 3각법의 공식을 만들었다. 히파르코스는 그가 오랜 시간을 보냈던 비티니아의 로도스와 알렉산드리아에서 관측을 수행했다. 그가 마지막으로 실질적인 연구를 수행한 것은 BC 127년이라고 전해진다. 프랑스의 천문학자인 J.-B.-J. 들랑브르(1749~1822)는 큰개자리의 에타 별을 관측한 히파르코스의 기록 중 일부가 바로 그해에 수행한 것이라고 명확히 밝혔다. 히파르코스에 대한 오늘날 지식의 대부분은 아마세이아의 스트라보(21경 활동)의 저술과 프톨레마이오스(127~151 활동)가 쓴 위대한 천문학개론서인〈알마게스트 Almagest〉에 수록된 것에서 얻은 것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종종 히파르코스를 언급했으며 프톨레마이오스는 그를 높이 평가했음이 분명하다. 그 두 사람의 연구업적이 거의 300년 정도의 차이를 두고 이루어진 것임에도 불구하고, 고대의 과학발전은 느리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는 뛰어난 동시대의 사람에게 대하듯이 존경심을 가지고 그에 대해 이야기했다. 이때문에 둘 중 누구에게 연구업적이 돌아가야 하는지를 구별하기가 어렵다. 히파르코스는 모든 저서에서 명확한 생각을 보여주었으며, 불필요하게 복잡한 가설은 좋아하지 않음을 분명히 보여주었다. 그는 모든 점성술적인 교육을 거부했을 뿐만 아니라, 아르키메데스에 따르면 사모스의 아리스타르코스에 의해서 제안되었고 히파르코스와 동시대 인물인 바빌로니아의 셀레우코스에 의해 재조명된 태양중심설도 거부했다. 이러한 상황과 관련지어 상기해볼 것은 당시에는 지구가 운동한다는 생각에 반대하는 격렬한 논쟁이 있었으며, 전체적인 여론의 분위기가 아리스타르코스의 견해에 한번도 호의적이지 않았다는 것이다. 움직이는 이심원(異心圓) 체계와 주전원(周轉圓)·주원(周圓) 체계는 태양·달·행성의 운동에서 관측되는 대부분의 불규칙성을 잘 설명할 수 있었다. 이러한 2가지 체계는 모든 천체가 규칙적인 원형의 운동을 하거나, 최소한 원을 그리면서 규칙적으로 운동한다는 체계로 가장 잘 설명할 수 있다는 잘못된 신념에 바탕을 둔 것이었다. 움직이는 이심원 체계는 지구 주위를 돌고 있는 천체의 궤도로 생각되는 것의 중심 그 자체도 지구를 중심으로 회전한다는 것이다. 다른 체계에서는 주전원이 주원이라고 불리는 큰 원형궤도에 놓여 있는 조그마한 원이었다. 주전원·주원 체계는 움직이는 이심원 체계와 더불어 프톨레마이오스의 후기 지구중심우주론에서 등장한다. 이때문에 이러한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은 서유럽의 과학에 전해졌지만, 프톨레마이오스 자신도 인정했던 것처럼 히파르코스의 생각이 프톨레마이오스에게 아주 큰 영향을 미쳤다는 것을 기억해야만 한다. 15세기가 되어서 매우 오랜 기간의 관측결과 비로소 지구중심설이 너무 복잡해서 받아들일 수 없음을 알게 되었고, 코페르니쿠스는 태양이 우주의 중심이라고 주장했다. 히파르코스가 사용했던 기구들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다. 비록 프롤레마이오스에 따르면 히파르코스가 각도를 측정하기 위해 진보한 형태의 경위의를 발명했다고는 하지만, 히파르코스가 이용한 관측기기는 그당시에 일반적으로 쓰이던 기기였던 것 같다.
2, 프톨레마이오스[Claudius Ptolemaeos] : 천동설, AD 127~145년에 알렉산드리아에서 활동한 고대 그리스의 천문학자·지리학자·수학자.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고 생각했다. 그의 생애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천문학적 업적은 나중에〈위대한 천문학자 Ho megas astronomos〉로 알려지게 된 걸작〈수학적 모음집 Hē mathēmatikēsyntaxis〉에 들어 있다. 그러나 9세기 아라비아의 천문학자들은 이 책을〈메지스테 Megistē〉('최고'라는 뜻)라고 했다. 이 낱말에 접두어로서 정관사 알(al)이 붙어 그 이후로는〈알마게스트 Almagest〉(13권)라는 제목으로 오늘날까지 불리고 있다.〈알마게스트〉는 각 권마다 별들과 태양계의 천체들에 대한 천문학적 개념을 다루고 있다. 이 책은 백과사전적이기 때문에 후기의 천문학자들은 이 책을 매우 유용하게 생각하고 이 책에 있는 관점에 의해 매우 깊은 영향을 받았을 것이다. 본질적으로 이 책은 그리스의 천문학이 얻은 결과를 종합한 것이며, 고대의 가장 위대한 천문학자라고 할 수 있는 히파르코스의 업적을 찾아볼 수 있는 주요한 자료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업적과 히파르코스의 업적을 구별하기 어려운 경우도 종종 있지만 프톨레마이오스가 히파르코스의 천문기기와 비슷한 기기를 사용·관측해 히파르코스의 연구 영역을 더욱 넓힌 것은 틀림없다. 히파르코스는 850개의 별이 들어 있는 최초의 항성목록을 만들었는데, 프톨레마이오스는 여기에 별의 수를 늘려 1,022개 별에 대한 목록을 만들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태양과 달, 다른 행성들의 운동에 대해서도 히파르코스의 관측사실과 결론을 더욱 확장해 프톨레마이오스 체계라고 널리 알려지게 된 천동설(天動說)을 확립했다. 그는〈알마게스트〉제1권에 그의 천동설에 대해 언급하고 지구가 우주의 중심에 있으며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한 많은 논증을 했다. 그중에서도 지구가 몇몇 초기 철학자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움직이고 있다면 그 결과로 특별한 현상이 관측되어야 한다는 것을 보였다. 그는 모든 물체가 우주의 중심으로 떨어지기 때문에 지구는 우주의 중심에 고정되어 있어야 하고, 그렇지 않다면 낙하하는 물체가 지구의 중심을 향해 떨어지는 것을 볼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지구가 24시간에 1번씩 자전한다면, 수직으로 위를 향해 던진 물체는 같은 지점에 떨어지지 않아야 하지만 실제로는 그 반대라고 주장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이 이론에 반대되는 어떤 것도 관측되지 않았음을 증명했고, 그결과 천동설은 15세기까지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에서 거의 독보적인 것이 되었으나, 자세히 관측해 본 결과 이 체계는 복잡하게 되어 있어 타당성이 크게 의심받게 되었다. 1543년 폴란드의 천문학자인 코페르니쿠스 의 태양 중심설이 천동설을 대체하게 되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지구가 중심에 있고 태양계의 천체들은 달·수성·금성·태양·화성·목성·토성의 순서로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히파르코스가 생각했던 것처럼 천체들의 서로 다른 운동을 일정한 원운동으로 설명하기 위해서는 이심원(離心圓)-주전원(周轉圓) 체계나 편심 체계(이 2가지는 BC 3세기 그리스의 기하학자인 페르가의 아폴로니오스가 고안한 것임)가 필요함을 깨달았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이심원은 중심이 지구에 있는 거대한 원이고, 주전원은 중심이 이심원의 원주를 따라 회전하는 작은 원이다. 태양과 달, 그리고 다른 행성들은 각각의 주전원의 원주를 따라 움직인다. 편심체계에는 하나의 원이 있는데, 이것의 중심은 지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있으며 이 원주를 따라 행성이 운동한다. 이 두 체계는 수학적으로는 같은 것이다. 그러나 이 이론으로도 모든 행성들의 관측된 현상을 완전히 설명할 수 없었기 때문에 프톨레마이오스는 천재성을 발휘해 여기에 1가지 개념을 더 도입했다. 그는 지구가 각 행성의 이심원 중심에서 약간 떨어져 있으며, 행성의 이심원 중심과 주전원의 중심이 그가 이심(離心)이라고 부르는 점을 중심으로 일정한 원운동을 하고 있다고 가정했다. 이심은 가상점으로서 이심원의 지름 위에 있으나 이심원의 중심을 기준으로 할 때는 지구의 반대쪽에 있는 점이다. 이심원의 중심은 지구와 이심의 중간에 있게 된다. 이심의 중심에서 지구까지의 거리와 이심원의 중심에서 이심까지의 거리가 똑같다고 가정했다. 이러한 가정에 의해 프톨레마이오스는 관측된 많은 행성운동(行星運動)을 더 잘 설명할 수 있었다. 프톨레마이오스 체계에서 황도면(黃道面)은 태양이 별 사이를 매년 지나가는 경로를 기준으로 한 것이다. 행성의 이심원은 황도면에 대해서 약간 경사져 있으며, 주전원도 이심원과 같은 기울기로 경사져 있어, 주전원면은 황도면과 항상 평행하다고 믿었다. 금성과 수성의 이심원은 황도면의 아래위로 진동한다고 가정했으며 이 행성들의 주전원면도 같은 식으로 이심원면에 대해 진동한다고 믿었다. 프톨레마이오스는 행성이 고정된 별(항성)보다 지구에 훨씬 가깝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천체들이 붙어 있다고 전해지는 유리로 된 구가 존재한다고 믿은 것 같다. 그는 별이 고정되어 있는 구 바깥에 또다른 구들이 있고 제일 바깥에 제1운동자(primum mobile)라는 것이 있어 그가 생각한 우주를 이루는 구들이 움직일 수 있도록 동력을 공급해준다고 가정했다. 수학과 지리학에 대한 업적 프톨레마이오스는 뛰어난 기하학자로서 수학 분야에 중요한 업적을 많이 남겼다. 그는 기하학 분야에서 새로운 증명과 정리를 만들고〈아날렘마 Analemma〉라는 책에서 천구면(天球面 : 지구에서 무한대 거리에 있으며, 그 면에 우주 공간의 물체가 위치하고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상의 구)에 있는 점을 수평면·자오선면·수직면으로 구성되는 서로 직각인 3개의 평면에 사상시키는 문제에 대해서 자세히 논했다.〈플라니스파이리움 Planisphaerium〉이라는 책에서는 입체를 평면에 묘사하는 방법인 평사(平射) 도법에 대한 문제를 다루면서 천구의 남극을 사상(寫像)의 중심으로 썼다. 그는 또한 날씨 뿐만 아니라 아침과 저녁에 뜨고 지는 별까지 나타낸 달력을 만들었다. 다른 수학분야의 출판물로서는〈행성가설 Hypotheseis tōn planōmenōn〉이라는 책을 포함한 2권과 3차원 공간 이상은 없다는 것을 증명한 것과 에우클레이데스가 고안한 평행선에 대한 가정을 증명하려고 시도한 것이 포함되어 있는 2권의 기하학에 대한 책이 있다. 그는 역학에 대한 3권의 책을 썼는데, 그가 쓴 것은〈평형에 대해서 Peri ropōn〉라는 단 1권의 책뿐이라는 설도 있다. 광학 현상에 대한 그의 업적은 〈광학 Optica〉에 수록되어 있다. 이 책은 원래 5권으로 되어 있었는데, 마지막 권에 굴절(屈折 : 빛 또는 다른 에너지 파가 밀도가 서로 다른 두 매질 사이를 비스듬하게 지나갈 때 방향이 변하는 현상)이론을 다루었으며, 서로 다른 높이에 있는 천체의 빛이 굴절되는 것에 대해서도 논했다. 이것은 관측적 문제에 대한 해결을 시도했던 것들 중 기록된 최초의 것이다. 음악에 대한 논문〈화성악 Harmonica〉(3권)을 썼다. 그는 지리학자로서〈지리학 안내 Geōgraphikō hyphēgēsis〉(8권)라는 책으로 명성을 떨쳤다. 이 책에는 지도를 만드는 방법에 대한 것과 유럽·아프리카·아시아의 여러 지역의 목록을 위도와 경도에 따라 표로 나타낸 것이 들어 있다. 이 책에는 많은 오류가 있는데 지구의 적도는 너무 북쪽에 위치해 있고, 지구의 둘레로 사용한 값은 이미 알려져 있던 더욱 정확한 값보다 30%나 작았다. 책의 내용과 지도 사이에 맞지 않는 것도 발견되어서 전체적으로 이 책은 '좋은 지리서'라고 생각할 수 없다. 이 책에서 다루는 나라의 기후나 천연생산물, 서식동물과 고유의 특징 같은 것에 대한 언급이 전혀 없으며, 지리학적으로 중요한 요소인 강이나 산맥에 대한 취급은 무성의하거나 거의 쓸모없는 것이었다. 이와 같은 결점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역사적으로〈알마게스트〉처럼 후세에 매우 큰 영향을 미쳤기 때문에 중요한 책이다. 프톨레마이오스는 아시아가 실제보다 동쪽으로 훨씬 더 확장되어 있다고 했기 때문에 크리스토퍼 콜럼버스는 서쪽으로 계속 항해하면 아시아에 도착할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1775년까지도 프톨레마이오스가 말했던 것처럼 인도양이 남쪽의 대륙에 의해 막혀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그러나 이것은 같은 해 7월 제임스 쿡이 남반구 항해에서 돌아옴으로써 틀렸다는 것이 증명되었다.
*, 알마게스트[Almagest] : 프톨레마이오스 사전[辭典] : 140년경 알렉산드리아의 클라우디우스 프톨레마이오스가 편찬한 천문학과 수학 백과사전. 대략 17세기 초반까지 아랍과 유럽의 천문학자들에게 기초안내서 역할을 했다. 아랍어에서 와전된 이 이름은 '최고의 책'이라는 뜻인데, '위대한 논문', '위대한 천문학자', '수리(數理) 집합' 등으로도 불렸다. 827년에 처음으로 아랍어로 번역되었고 12세기 후반에 아랍어에서 라틴어로 재번역되었다. 이 책은 13권으로 되어 있다. 제1권은 포괄적인 개론으로서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에 입각한 태양계의 개요가 나온다. 제2권에는 3각법에 대한 가장 오래된 기록이 있는데, 0.5°마다 원의 간격에 대한 현(弦)의 값이 최소한 소수점 다섯째 자리까지 정확히 계산된 표(表)와 구면(球面) 3각형의 해법에 대한 연구가 들어있다. 제3권에서는 태양의 운동과 1년의 길이를 다루었고, 제4·5권에서는 달과 1개월에 대해 설명했으며, 특히 제5권에서는 지구에서부터 태양 및 달과의 거리를 언급했으며 아스트롤라베(천체관측기의 일종) 사용법을 설명했다. 제6권에서는 일식과 월식을 다루었고, 행성의 합(合)과 충(衝)이 설명되어 있다. 제7·8권은 주로 항성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항성 가운데 1,022개에 달하는 별의 황도좌표와 등급을 다루었는데, 이 별의 광도를 등급화한 목록은 히파르커스의 일람표(BC 129)를 기초로 한 것이다. 이 두 책은 또한 세차와 천구의 구조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나머지 5권의 책은 매우 독창적인 내용으로서 제1권에서 개론한 천동설을 자세히 다루고 있다.
3,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 지동설, 1473. 2. 19 폴란드 비수아 강 근처 토루인~ 1543. 5. 24 플라우엔부르크. 폴란드의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가 1543년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 De revolutionibus orbium coelestium, libri Ⅵ〉를 출간한 것은 서구사상에 커다란 공헌을 한 것이었다. 코페르니쿠스는 지구가 자전축을 중심으로 자전하고 정지해 있는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근대과학의 출현에 지대한 의미를 가지는 개념을 발전시켰다. 그후 지구는 더이상 우주의 중심이 아닌 수많은 천체 중 하나로 여겨지게 되었고 수학적으로도 기술할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