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24일 춘천에서 개최된 2010 조선일보 춘천마라톤대회는 1위부터 6위를 케냐인들이 싹쓸이는 하는 케냐인들의 잔치가 되였다. 우승자는 케냐 선수 벤자민 킵투 콜롬(Kolum Benjamin Kiptoo)이며 2시간 7분54초의 기록으로 대회신기록을 수립하였다. 콜롬은 우승상금 5만 달러와 1997년 케냐선수 모세스 타누이가 수립한 종전 기록을 13년 만에 깨어 기록경신 보너스 3만 달러의 상금을 추가로 받았다.
콜롬선수는 케냐 육상선수의 75%를 배출하고 있는 칼렌진(Kalenjin)부족 출신이다. 세계육상 경기에서 1인당 가장 많은 메달을 딴 집단은 칼렌진 부족이고 그 중에서 난디족 출신이 특출하다. 난디족은 케냐의 다른 부족집단과 비교해서 최고의 성취동기를 가지고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과거 사자를 창으로 잡은 부족원에게 수여하는 반게퉁(Bamgetung)이 되는 것이 대다수 부족원의 소원이라고 한다. 또한 이 부족은 과거 이웃 부족의 가축을 약탈하는데 발군의 실력을 발휘 한 것으로 알려 지고 있다. 난디족은 지구력과 근면, 희생, 극기 능력이 필요한 과거의 부족 활동을 현대 사회에서 달리기 경주로 전환한 것으로 보여진다. 그러나 이러한 유전적 요인만을 케냐선수들이 마라톤에서 발군의 성적을 내는 배경으로 설명 할 수 있을까?
115년의 전통을 자랑하는 보스턴 마라톤 대회의 역사 (Boston Marathon Milestones)를 살펴보면 한국 선수를 칭찬하는 두 가지 역사적 사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 1947년 4월19일
남자부 경기에서 역사상 처음으로 한국의 서윤복 선수가 2시간25분39초의 기록을 달성하여 보스턴 마라톤 대회에서 세계기록을 수립하였다.
● 2001년 4월16일
케냐선수들이 전대미문의 10연승(1991-2000)을 달성한 후 남자부경기에서 한국의 이봉주선수가 2시간9분43초의 기록으로 케냐선수의 연승을 저지하였다. 이봉주 선수 직전에 우승한 한국선수는 1950년에 남자부에서 우승한 함기용 선수 이다.
2010년 춘천 마라톤에서 가장 빠른 국내 선수는 건국대 소속의 은동영 선수로 기록은 2시간17분28초이다. 우승자 콜롬선수에 비하여 10여분가량 뒤지는 저조한 기록이다. 1분 1초를 단축하기 위하여 사력을 다해 결승선을 향해 뛰는 마라톤경기에서 10분은 매우 큰 격차이다.
비단 마라톤뿐만 아니고 우리사회각분에서 의욕을 상실한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어 지금까지 우리가 자랑으로 내세웠던 역동성이 사라지지 않을 까 하는 염려를 하게 된다.
얼마전 조선일보에 지면에 우리사회에 ‘일본형 하류의식’이 팽배하고 있다는 기획기사가 실린 적이 있다. “하류”란 경쟁에서 뒤처진 일본 젊은이들이 아예 신분상승을 포기하고 아르바이트로 전전하며 하류층으로 살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여론조사를 통해 분석한 기사는 이런 일본형 침체병이 한국사회에 옮겨 붙기 시작했다고 진단하고 있다. 이러한 의욕상실, 좌절과 포기, 현실안주는 과거 일본이 장기침체를 겪은 중요한 원인으로 보고 있으며 한국이 ‘일본의 침체 증” 초기 증세에 감염 되여 있다고 전문가들은 진단하고 있다.
우리사회에 ‘괴로움이나 고통’을 참는 힘이 감퇴한 것은 주위에서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자살의 증가, 희망의 포기, 마약, 게임, 불로소득을 탐하는 도박에 중독, 먹고 튀는 사기행위의 증가 등은 심각한 사회병리현상이다.
괴로움이나 고통을 참는 힘을 주는 것이 희망이다. 희망을 가진 사람이 많은 사회에 활력이 넘친다. 사회심리학자 랜돌프 넷세(Randolph Nesse)는 희망이라는 감정은 정당한 노력이 보상을 받을 수 있는 전망이 있을 때 생긴다고 했다. 아무리 사회가 발전하고 풍요로워져도 괴로움이나 고통은 사라지지 않는다. 이를 극복하는 노력을 포기하는 것은 “하류(下流)를 자청하는 패배행위이다.
이번에 춘천마라톤에서 우승한 콜롬(31세)은 4년 전 만 해도 케냐서부에서 밀 농사를 짓던 농부였다. 그런 그의 인생이 27살 때 시작한 마라톤으로 완전히 바뀐 것이다. 마라톤데뷔 후 3년 만에 2009 로마마라톤에서 2시간 7분 17초로 우승을 차지 하였다. 이번 대회는 그의 6번째 풀 코스 완주였다.
콜롬은 “마라톤으로 번 돈으로 고향에 방15개짜리 집을 지었다”며 “이 대회 상금으로 집을 여러 채 더 사고 싶다”고 말했다. 콜롬은 “마라톤이 내 인생의 모든 것을 바꾸어 놓았다”고 말했다.
위에서 언급한 랜돌프 넷세는 ‘고생의 면역이론’을 제창하였다. 그에 의하면 젊은이들이 사회에 나오기 전에 ‘작은 고생’을 겪고 그 고생이 헛되지 않고 반드시 보상을 받는다는 경험을 쌓으면 고생에 대한 면역이 생겨 사회에 나와서도 큰 고생에 대해 희망을 자지고 긍정적으로 대처한다는 것이다.
필자가 마라톤을 시작한지 3년이 가까워 지고 있다. 물론 동기는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 아마 그보다 더 큰 이유는 한국의 다른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괴로움이나 고통을 참는 힘이 그리 강하지 않는(아버지의 눈에 비친 자식의 모습) 내 자식이나 사위에게 고통을 참으면 반드시 성취와 보람이 따른다는 사실을 몸으로 입증해서 고통의 면역에 가까이 가도록 유도하는 마음이 작용한 때문일 것 이다.
성취동기가 뛰어난 케냐선수의 연승을 저지한 이봉주 선수야 말로 고생을 감내하고 극기하는 능력이 월등하다는 취지의 평가를 보스턴 마라톤 당국이 기술한 Boston Marathon Milestones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내가 생각하기는 이봉주 선수는 특출한 재능이 있다기보다 근면하고 성실하며 끈기 있게 자신의 길을 간 보통의 한국인이다. 그리고 그는 마라톤을 통하여 자신의 능력에 합당한 성취를 이룩하여 고생의 면역 이론을 입증한 좋은 역할 모델(Role Model)이다.
2010년 조선일보마라톤대회에서 나간 줄 아는 아들이 대회를 마치고 집으로 돌아온 나에게 물었다. “아버지 잘 뛰셨습니까?” 나의 대답은 “4시간을 넘기지 않으려고 3시간 59분 58초에 결승선을 통과했다.” 이 말 속에는 목표시간을 달성하기 위해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한 순간의 휴식도 허용하지 않겠다는 출발 전 나의 의지를 관철했다는 메시지가 담겨있다.
“우리는 왜 달리는 가”의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는 “사람은 환경이라는 모루(Envil)와 마음이라는 망치의 산물”이라고 했다. 콜롬이 좋은 유전인자를 물려받은 환경의 수혜자이지만 마음이라는 망치를 사용하여 자신을 마라톤선수로 단련하지 않았다면 케냐의 가난한 농부의 지위를 벋어 나지 못했을 것이다.
어른들은 젊은이들을 위하여 가정에서 사회에서 본인들에게 건전한 환경을 만들어 주기 위해 노력 할 뿐 마음이라는 망치를 적절하게 사용하는 것은 오직 본인들의 선택일 뿐 이다.
2010년 조선일보 춘천 마라톤 대회의 결과를 보고 두서 없이 느낀 점을 적어 보았다. 10월24일 날씨가 마라톤 하기에 너무 좋았다. 필자도 4시간 완주의 목표를 세워 대회공식 기록 3시간 59분58초로 완주하였다. 내년에도 D그룹(3시간 50분 1초에서 3시간 59분 59초 사이 기록보유자)에서 출발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 하였다. 2010년 10월24일은 기억에 남을 만큼 잘 보낸 하루였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