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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Heavy_French_Grenadiers_a_Cheval \n\nGrenadiers ? Cheval ride the largest and strongest steeds. Although relatively slow, their charge into an enemy is almost certain to do terrible damage. Once in close combat, the grenadiers are strong enough to continue the slaughter. They may meet their match charging against infantry in square, or in a fight with well-disciplined elite infantry but, even then, they embrace death with the same resolve they display in attack.\n\nTo modern eyes, the concept of a mounted grenadier looks more than a little odd: surely the horses would panic at the first grenade explosion? Like all other grenadiers, the Grenadiers ? Cheval were large men, chosen for their physical qualities. To be admitted to the grenadiers, a man had to been cited for bravery, have several campaigns under his belt, and be a strapping fellow. Mounted on large black horses, and resplendent in their bearskins, they made for an intimidating presence and were nicknamed ‘The Giants’ or ‘The Gods’ by their fellow Frenchmen.
\n\n척탄기병은 가장 크고 튼튼한 군마를 탑니다. 상대적으로 느리지만, 적을 향한 돌진은 끔찍한 피해를 입힐것이 거의 확실합니다. 일단 근접전에 들어가면, 척탄병들은 학살을 계속하기에 충분히 강합니다. 그들이 잘 훈련된 엘리트 보병과 싸우거나 방진대형의 보병에게 돌진하는 것은 상대를 잘못 고른 상황이 될 수도 있습니다만, 그들은 공격시 보여준 결의대로 죽음을 맞이합니다.\n\n현대의 시각으로 보면, 기마 척탄병의 개념은 다소 이상해 보입니다: 분명 말들은 첫 척탄의 폭발시 놀랬을 것입니다. 모든 다른 척탄병들처럼, 척탄기병은 그들의 신체적 자질로 뽑히기에 몸집이 큰 남자들이었습니다. 척탄병으로 인정받기 위해선, 용감하다는 평판이 있어야 했고 벨트 아래에 캠페인 경력 다수를 가지며 건장한 놈이어야 했습니다. 커다른 흑마를 타고 곰가죽을 입은채로 눈부시게 빛나는 그들은 겁을 주는 존재감에 걸맞아 동료 프랑스인들에게서 '거인들' 혹은 '신들'과 같은 별명이 붙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Heavy_Italian_Guards_of_Honour \n\nThese men make excellent melee troops, riding hard into battle with their sabres drawn. Their only weakness is when facing well-disciplined elite infantry in square formation; this combination is one that proves deadly to slow heavy cavalry. Guards of Honour sacrifice speed for power, and are not expected to chase down an enemy. They are a brute force, a fist to smash against an enemy line, used to deal the blow that drives an enemy from the battlefield.\n\nFollowing his disastrous campaign in Russia, Napoleon returned home and set about rebuilding his Grande Arm?e. Cavalry units were incredibly expensive to recruit, yet Napoleon managed to recruit 10,000 elite horsemen at no expense to France’s budget. He recruited new cavalry units from the nobles and bourgeois, who were expected to provide their own horses, equipment and uniform. In return they would be assured the rank of sous-lieutenant, providing they completed 12 months service. This qualifier was to prove extremely important, as desertion was rife amongst these pampered children of the upper classes.
\n\n이 남자들은 기병대 칼을 뽑아들고 전투현장으로 거칠게 말을 모는 뛰어난 근접전 병사들이 됩니다. 유일한 약점은 잘 훈련된 방진대형의 엘리트 보병을 마주칠 때입니다; 이 상황은 중기병을 느리게 한다고 입증된 것입니다. 의장 근위대는 힘을 대신해 속도가 희생되었고 적을 추격해서 쓰러뜨리지 못합니다. 그들은 적의 대열을 뭉개는 일격을 지닌 잔인한 부대로 적을 전장에서 몰아내는 한방을 날리는데 사용됩니다.\n\n러시아에서의 재앙과 같은 원정길 이후 나폴레옹은 귀향하여 대육군의 재육성을 시작했습니다. 기병 유닛은 모집하는데 믿기 힘들 정도의 돈이 들었습니다. 하지만, 나폴레옹은 프랑스 재정의 비용은 전혀 쓰지 않고 10,000명의 고급 기병을 모집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새로운 기병 유닛들을 귀족들과 부르조아에서 뽑아냈습니다. 그들에게서 자신들의 말과 장비, 제복을 스스로 마련토록 하는 것이 가능하였습니다. 보답으로 그들은 12개월의 복무기간을 마치면 소위 계급을 보장받을 것이었습니다. 곱게 자란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 탈영이 만연함에 따라 이 자격취득은 대단히 중요해졌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Heavy_Ottoman_Siphai_Cavalry \n\nThe Siphai are unswervingly faithful and deserving of their elite status. Mounted on the finest horses, they carry ornate lances that are deadly when used at the charge. When delivered to the flanks or rear of an enemy, such a charge often proves decisive in a fight. Their heavy lances mean the Siphai are vulnerable during prolonged melee and against well-trained line infantry.\n\nAs almost feudal fief-holders, Siphai were granted the income from a parcel of land in exchange for their military service, and were expected to supply a number of armed men. They enjoyed the high status common to many cavalry corps, and the disciplined Siphai saw themselves as superior to the oft-unruly janissaries. Rivalry between the two corps was a barely concealed simmering hatred at times. A contributing factor was that Siphai were all ethnic Turks, whereas the janissaries recruited as children from provincial Christian families and converted to the Islamic faith. Despite these petty matters, Siphai represented the best horsemen available to the Sublime Porte.
\n\n시파이는 충성심이 약해지지 않으며 고급 대우을 받을만한 사람들입니다. 가장 좋은 말에 올라타서 돌진할 때 사용하면 치명적이고 화려한 랜스창을 지닙니다. 적의 측면이나 배후로 그러한 돌진을 하면 전투에서 종종 결정적임이 입증되었습니다. 무거운 랜스창은 계속되는 근접전과 잘 훈련된 전열 보병에 맞선 상황에선 취약할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n\n시파이는 대개가 봉건 영지 소유주로써 군복무 대가로 땅의 구획으로부터의 수입을 수여받아 수많은 무장 군인들을 유지했습니다. 그들은 많은 기병 유닛에게 흔한 고급 대우를 즐겼고 규율잡힌 시파이는 종종 통제가 안되는 예니체리보다 자신들이 더 우수하다고 보았습니다. 두 부대간의 경쟁의식은 거의 숨겨져서 때때로 증오심으로 나타날 뿐이었습니다. 그것을 부추기는 요소는 시파이는 민족주의적 투르크족인 반면 예니체리는 지방의 기독교 가정의 아이들로 모집되어 이슬람으로 개종했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하찮은 문제에도 불구하고, 시파이는 쉬블림 포르트(오스만 제국 정부)에서 가장 좋은 기병들의 대표주자였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Heavy_Spanish_Guardias_da_Corp \n\nThese cavalrymen are expected to protect the king and his household, but they are not just a court regiment for show. With a powerful charge, they can deal a devastating blow to an enemy line. However, their horses are slow moving and, like all cavalry, vulnerable to infantry in square. As heavy cavalry they are little use chasing down enemies; they are at their best when used to deal a crushing blow to an enemy.\n\nHistorically, Spain’s reputation as a European power had suffered greatly under the rule of the Hapsburg family and Charles II. However, King Carlos III instigated a cultural revival, and his reign quickly became known as the “Ilustracion”. The arts, sciences and economy flourished as intellectuals embraced new ideas from all over the globe and travelled Europe to broaden their understanding. The army also saw a marked improvement, thanks to forward-thinking generals, who attempted to emulate the French army, correctly regarded as the best in western Europe.
\n\n이 기병들은 왕과 왕가를 보호하기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쇼를 보여주는 단순한 궁정 연대는 아닙니다. 강력한 돌진으로 적 대열에 무시무시한 한방을 날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말들의 움직임은 느리고 모든 기병처럼, 방진형 보병에겐 취약합니다. 중기병으로써의 그들은 적을 추격해서 쓰러뜨리는 용도로는 별로 안쓰입니다; 그들은 적에게 짓이기는 한방을 날릴 때 사용하면 최고입니다. 유럽의 힘이라는 스페인의 평판은 합스부르크가와 찰스2세의 통치하에서 치명타를 입었습니다. 그러나, 왕 카를로스 3세는 문화 재조명 작업에 착수해서 그의 통치는 신속하게 "계몽정신"으로 알려지게 되었습니다. 예술과 과학 그리고 경제는 지식인들이 전 세계로부터 새로운 아이디어를 끌어들여 이해를 넓히기 위해 유럽을 여행하게 되면서 꽃을 피웠습니다. 육군 또한 앞선 생각을 가진 장군들 덕택에 현저한 진전을 보였습니다. 장군들은 서유럽에서 최고라고 간주된 프랑스 육군을 모방하기 위한 시도를 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ancer_French_Dutch_Guard_Lancers \n\nTrained to ride hard into battle with their lances down, these superb horsemen are ideal shock troops: the moment of impact is the moment of truth for their attack. They either break enemies, or should withdraw to charge again. Their steeds are fast moving and carry them to key points on the battlefield very quickly. Their morale is superb, but they are not suitably equipped for prolonged melee. A lancer is at a disadvantage in a close-in fight. Used against elite infantry in square their skills and lances will, of course, count for very little.\n\nOriginally formed as a hussar regiment, these men were transformed into lancers by a decree issued on the 23rd September 1810. Their first challenge was to learn how to handle the apparently unwieldy, but deadly lance. Several officers were sent to the Polish Lancers’ Chantilly barracks where they were drilled in the much-needed skills of the lance. These men then passed their new found wisdom to the rest of their regiment in Versailles. The reorganisation of the new Guard Lancers resulted in a number of uniform changes that proved extremely costly. The Minister of War had to ask Napoleon himself to provide them with more money to pay for new uniforms for the men!
\n\n랜스창을 누인채 전쟁터로 거칠게 말을 몰도록 훈련된 이 우수한 기병들은 병사들을 놀래키는데 이상적입니다: 접전 순간은 그들의 공격에 있어 진리의 순간입니다. 그들은 적을 뽀개거나 재돌진하기 위해 철수하기도 합니다. 그들의 군마는 움직임이 신속하고 전장의 중요 지점까지 재빠르게 데려다 줍니다. 그들의 사기는 좋으나 계속되는 근접전에는 맞지 않습니다. 랜스창병은 근접 전투에선 약점을 보이고 방진대형의 보병과 맞설때는 그들의 기술과 랜스창은 물론 별로 중요치 않을 것입니다.\n\n원래 후사르 연대로 구성된 이 사내들은 1810년 9월 23일에 시행된 규정에 따라 랜스창병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의 첫번째 도전은 분명하게 다루기 힘든 치명적인 랜스창 사용법을 배우는 것이었습니다. 몇몇 장교들은 폴란드 창병의 샹티이 병영으로 보내져서 더 필요한 랜스창 기술을 배웠습니다. 그런후 이 사내들은 새로 발견한 지혜를 베르사유에 있던 연대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전달했습니다. 새로운 근위 창기병의 재조직은 대단히 많은 돈이 드는 제복의 변화를 가져왔습니다. 전쟁 장관은 새로운 제복을 위해 지불할 돈을 더 대는 문제를 나폴레옹 본인에게 물어봐야 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ancer_French_Polish_Guard_Lancers \n\nTrained to ride hard into battle with their lances couched, these superb horsemen are ideal shock troops. Their steeds are fast and carry them to key points on the battlefield in what seems like a heartbeat. The morale of these brave men is unrivalled, but should they become caught in a prolonged melee their weakness in close combat will become apparent. Employed against elite infantry formed in square their charge and lance skills will be largely wasted.\n\nThe Polish Guard were originally raised from among a party of exiled Polish noblemen who accompanied Napoleon into Warsaw in 1807. He was so impressed with the loyalty of these men that he insisted the new regiment be attached to his own Imperial Guard. From that moment on candidates for the regiment had to be Polish landowners between the ages of 18 and 40; they were expected to provide their own horses and equipment. It wasn’t until after the Battle of Wagram in 1809 that these men were issued with the lance as standard equipment. When Napoleon was forced exiled on Elba in 1814, 150 loyalists of the Polish Guard Lancers followed their Emperor to prison.
\n\n랜스창을 누인채 전쟁터로 거칠게 말을 몰도록 훈련된 이 우수한 기병들은 병사들을 놀래키는데 이상적입니다. 그들의 군마는 움직임이 신속하고 전장의 중요 지점까지 심장박동과 같은 속도로 데려다 줍니다. 이 용감한 사내들의 사기와 버금가는 것은 없습니만, 계속적인 난투전에 덜미를 잡힌다면, 근접전에서의 약점이 드러날 것입니다. 방진대형의 보병과 맞설때는 그들의 돌진과 랜스창 기술은 대개 쓸모 없게 될 것입니다.\n\n폴란드 근위병은 1807년에 나폴레옹과 함께 바르샤바로 들어갔던 망명한 폴란드 귀족들중에서 양성되었습니다. 그는 이 사람들의 충성심에 너무 감동해서 자신의 황제 근위대에 새로운 연대를 붙일 것을 주장했습니다. 그 때부터 쭉 그 연대의 후보자들은 18세에서 40세까지의 폴란드 지주여야 했습니다; 그들은 자신의 말과 장비를 준비하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사람들에게 랜스창을 표준장비로 명령을 내린 것은 1809년 와그람 전투 이후였습니다. 나폴레옹이 1814년에 엘바로 망명을 떠나게 되었을 때 폴란드 근위 랜스대중 150명의 충성파들은 그들의 황제를 따라 감옥까지 가게 되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ancer_Prussian_Towarczys \n\nThe Towarczys lancers are a unique force in Prussian service: fast moving, and with high morale thanks to their self-belief. Trained to attack at the full gallop, their lances give them an advantage in the first few moments of hand-to-hand combat. This is often enough to break unprepared or disorganised enemies. Like all lancers, however, they are not good in a prolonged fight, and should withdraw and regroup rather than stay in a melee. Only a foolish commander would order them to attack prepared infantry in a square.\n\nOriginally, these troops had been the Bosniaks in Prussian service but, after 1800 they were recruited from Polish territory that had been recently conquered by Prussia. Despite the changes, they remained light lancers, indeed the only lancers in the Prussian army until the Uhlans were raised in 1808. The regiment adapted a traditional Polish idea of the nobility serving as cavalry officers called “towarzysz”, or companions. Originally, these men had joined the army with their followers, and their pay and privileges were entirely dependent on the size of their personal retinue. The Corps Towarczys was present at the Battle of Eylau in 1807, as part of the 3rd Division of the Prussian Corps; this small force was pretty much all that was left of the Prussian military after their crushing defeat at the Battle of Jena-Auerstedt in 1806.
\n\nTowarczys 랜스창병은 프로이센 군대내에서도 독특합니다: 신속한 기동과 스스로의 믿음덕에 사기가 높습니다. 전력질주 공격 훈련을 받아서 그들의 랜스창은 육박전으로 들어가는 최초의 짧은 순간에 그들에게 우위를 줍니다. 이것은 보통 준비가 되있지 않거나 조직적이지 않은 적을 깨부수기에 충분합니다. 다른 모든 랜스창병들처럼, 길어지는 싸움에선 좋지 않고 근접전에 남겨진 것보다 철수해서 재편성되어야 합니다. 바보스런 지휘관들만 준비하고 있는 방진형 보병대에 공격 명령을 내릴 것입니다.\n\n원래 이 병사들은 프로이센 군대내의 보스니아인이었습니다만, 1800년 이후 최근에 프로이센에 의해 정복된 폴란드 영토에서 징집되었습니다. 많은 변화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경무장 랜스창병으로 남았습니다. 1808년 울란 창기병이 양성되기 전까진 프로이센 군대의 유일한 진짜배기 랜스창병이었습니다. 그 연대는 "towarzysz" 즉, 동료들이라 불리는 기병 장교들로써 복무하는 귀족의 전통적인 폴란드식 개념을 채택했습니다. 원래, 이 사람들은 추종자들과 함께 군대에 들어왔습니다. 그들의 급여와 특권은 전적으로 그들의 수행원 규모에 달려있습니다. Towarczys 부대는 1807년 아이라우 전투때도 프로이센군의 3사단의 일부로 존재했습니다: 이 작은 부대는 1806년 예나-아우어슈테트 전투의 괴멸적인 패배 이후에 프로이센 군대에 상당수가 남아있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ancer_Russian_Cossack_Cavalry \n\nCossacks are cavalrymen without peer, as might be expected of steppe folk. There are few soldiers that can withstand their terrifying charge, making them excellent shock troops. As is often the case, their courage and eagerness to enter battle betrays a certain wildness; their undisciplined nature can find them plunging blindly into trouble, making them particularly vulnerable in melee.\n\nHistorically, Russians and other Eastern Europeans had an ambiguous relationship with the Cossacks. There was admiration for their warrior culture and freewheeling ways, yet a certain wariness of their wild nature. They lacked the discipline of other troops and had a certain fondness for drink, but it was their constant harassment that helped destroy Napoleon’s Grand Arm?e. Their reputation inspired fear in their enemies and won many a fight even before the Cossacks voiced their deafening war cries.
\n\n코삭은 대평원의 촌놈들에게서 예상되는 것처럼 동료가 없는 기병들입니다. 그들의 무서운 돌진을 견뎌낼 수 있는 병사들은 몇 안됩니다. 이것이 그들을 우수한 충격 부대가 되게 합니다. 흔한 경우로써 그들의 용기와 전투로 돌입하려는 열심은 확실하게 거칠음도 무색케 합니다: 그들의 무규율성은 눈을 가린채 불로 뛰어들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특히 근접전에 취악하게 만듭니다.\n\n역사적으로, 러시아와 동부 유럽국가들은 코삭과 애매한 관계에 있었습니다. 그들의 전사적 문화와 자유분방함에 대해선 존경심이 있었지만, 야성 본능에는 우려가 있었습니다. 그들은 다른 부대원들에게서 보이는 규율이 부족했고 술마시기를 좀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나폴레옹의 대육군을 무너뜨리는데 도움이 된 것은 그들의 꾸준한 괴롭힘이었습니다. 그들의 평판은 적에게 두려움을 일으켰고 코삭이 귀를 멀게할 정도로 전쟁 나팔을 울리기 전에 이미 전투에 승리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ight_French_Chasseurs_a_Cheval \n\nThese light cavalrymen do not hold with armour, even the sensible steel skull caps many other units favour beneath their officially-sanctioned hats and caps. Chasseurs ? Cheval carry swords, carbines and pistols, but they are not expected to charge home, merely harass and pursue enemies. This makes them effective against skirmishers and artillery. Their horses have good endurance, are fast and properly looked after: a cavalryman without his horse is useless. They are vulnerable when matched against heavier cavalry and well-trained infantry in square.\n\nHistorically, the Chasseurs ? Cheval were given the impressive nickname of ‘Invincibles’ by Napoleon. The men of this regiment were veterans from the Guides ? Cheval, a regiment created to guard Napoleon’s headquarters when he was on campaign in Italy. The Chasseurs went on to act as a personal escort to Napoleon, following him everywhere. So deep was Napoleon’s respect for this unit and its men that he regularly chose to appear in public sporting their green undress uniform. This affectation also suited his sense of theatre and emphasised his common touch with the ordinary soldiers.
\n\n이 경기병들은 갑옷에 의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그들이 공식적으로 인정한 모자 밑에 다른 유닛들이 쓰기 좋아하는 실용적인 강철 스컬캡 조차에도 기대지 않습니다. 추격기병연대(Chasseurs ? Cheval)는 검과 카빈총 그리고 권총을 지니지만 그들에게서 돌진하거나 그저 괴롭히고 적을 추적하리란 기대를 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근접전투병들과 포병에 맞설 때 효과적입니다. 그들의 말들은 잘 견디고 빠르며 돌보기 좋습니다: 말없는 기병은 아무짝에도 쓸모가 없습니다. 그들은 중기병과 방진형의 잘 훈련된 보병대에 맞설 때 취약합니다.\n\n역사적으로, 추격기병연대에게 나폴레옹은 '천하무적'이란 인상적인 별명을 붙였습니다. 이 연대 사람들은 나폴레옹이 이탈리아에서 장기전을 치를 때, 나폴레옹의 본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Guides ? Cheval 출신의 고참들입니다. 샤쇠르는 나폴레옹을 어디든 따라다니며 사적인 보호대로써의 역할을 계속 수행했습니다. 이 유닛과 그 병사들을 깊게 존경하는 나폴레옹은 정기적으로 공식석상에서 그들의 당당한 녹색 약식 제복을 선택했습니다. 이러한 꾸밈은 또한 그의 전장 감각에 어울렸고 보통의 병사들과 같다는 느낌을 강하게 주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ight_French_Guard_Chasseurs_a_Cheval \n\nThese light cavalrymen carry swords and carbines, but they are not expected to charge home, instead they are a superb force to disrupt enemy plans and pursue the routing foes. They are, for example, incredibly effective against skirmishers and artillery. Their horses have good endurance and are fast: a cavalryman without his horse is, after all, fairly useless. They are vulnerable when facing heavier cavalry and well-trained infantry in square, but they can fire their carbines when mounted.\n\nThe Guard Chasseurs ? Cheval, Napoleon’s closest guards, had their origins on the battlefields of northern Italy and the “Guides” that Napoleon raised there. When the regiment was officially constituted in 1800 it had four officers and 113 men, all chosen from among the Guides and other veterans of the Italian campaign. Napoleon’s respect for his regiment was obvious and he was often seen wearing the green undress uniform of the chasseurs. These men followed Napoleon from Arcola to Waterloo, and remained loyal to him even in his exile. Few Chasseurs consented to serve under the restored Bourbons when the Emperor finally abdicated.
\n\n이 경기병들은 검과 카빈총을 지니지만 그들에게서 돌진을 기대 할 수 없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적의 계획을 방해하고 도망치는 적들을 쫓는데 탁월한 부대입니다. 그들은 예를들면, 근접 전투병과 포병에게 놀랄만치 효과적입니다. 그들의 말은 잘 견디고 빠릅니다: 말없는 경기병은 결국 거의 쓸모가 없습니다. 그들은 중기병과 방진형의 잘 훈련된 보병대에 맞설 때 취약합니다만 말을 탄채 카빈총을 쏠 수 있습니다.\n\n나폴레옹의 최측근 샤쇠르 근위 기병대는 북이탈리아 전장과 그가 그곳에서 양성한 "Guides"에 그 뿌리를 두고 있습니다. 그 연대가 1800년에 공식적으로 창군되었을 때, 장교는 4명이었고 부하가 113명이었습니다. 모두 Guides에서 뽑혔고 이탈리아 캠페인을 경험한 고참병들이었습니다. 이 연대에 대한 나폴레옹의 애정은 명백했고 그가 샤쇠르의 녹색 약식 제복을 입는 것이 종종 눈에 띄었습니다. 이들은 나폴레옹을 따라 아르콜라에서 워털루까지 갔습니다. 심지어 그가 망명중일 때도 충성스럽게 남아있었습니다. 몇몇 샤쇠르는 제국이 완전히 물러날때까지 복권된 부르봉가에 복무하는 것에 동의를 표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ight_Hussars \n\nThese superb horsemen can be used as a screen for the main army, or for strategic scouting to locate the enemy. Hussar speed makes them ideal for targeting skirmishers and artillery: enemies have little chance to escape if hussars are sent against them. Hussars are armed with curved sabres, and can acquit themselves well in melee or during a charge, although they do not fare well against disciplined infantry or heavy cavalry.\n\nHistorically, hussars of all nations enjoyed the freebooting attitude of the Hungarian originals, and acted independently of the main army as much as they could. This was useful, because they could be sent out to do long patrols or reconnaissance, and possibly a little plundering. Their high-spirited approach to war was matched by their popinjay uniforms, some of the gaudiest ever to have been worn into battle. Hussar arrogance, however, was well deserved: in 1806 some 500 French hussars bluffed a 6,000-strong Prussian garrison at Stettin into surrendering the fortress there.
\n\n이 우수한 기병들은 본대의 차단막이거나 적을 찾기 위한 전략적 수색용도로 사용될 수 있습니다. 후사르의 속도는 근접전투병과 포병을 표적으로 삼기에 더할나위 없이 좋습니다: 후사르가 내보내진다면 적들의 탈출 가능성이 희박해집니다. 후사르는 굽은 기병대 칼로 무장하고 근접전이나 돌진할 때 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만 규율잡힌 보병대나 중기병에 맞설때는 잘 대처하지 못합니다.\n\n역사적으로, 모든 나라의 후사르는 원조격인 헝가리식 약탈 분위기를 즐겼고 될 수 있으면 본대로부터 독립적으로 활동했습니다. 그들은 장기순찰 또는 정찰을 하면서 가능하면 약간의 약탈을 하도록 내보내지기 때문에 이러한 분위기가 유용했습니다. 전쟁에 대한 그들의 높은 정신력은 그들의 멋스런 제복과 어울렸습니다. 특히 여지껏 전쟁에서 헤어지고 닳은 요란스런 몇몇 제복이 그랬습니다. 그러나 후사르의 오만은 대우를 받을만 했습니다: 1806년에 약 500명의 프랑스 후사르는 슈테틴에 있던 6000명의 강력한 프로이센 수비대에 엄포를 놓아서 그곳의 성채를 포위해 버렸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Light_Ottoman_Deli_Horsemen \n\nThese troops are recruited from many peoples, and have an ethos of personal, rather than collective, bravery. They are armed with curved sabres and these can cause terrible wounds in hand-to-hand combat. Although they are skilled in close combat and cavalry charges, Deli Horsemen are primarily favoured for their speed across ground. This makes them an obvious choice to destroy vulnerable skirmishers and artillery.\n\nHistorically, Deli infantrymen and cavalry were irregular troops, and horsemen would often find employment guarding caravans and important dignitaries. By the late 18th century, the elite horsemen of the feudal Sipahis had largely disappeared, and most of the Ottoman cavalry force was made up of the irregular Deli horse. They had no uniforms to speak of, but could be recognised by their black felt hats. The other point of recognition, for as long as an enemy lived, was their spectacular mixture of whatever weaponry they could find or steal!
\n\n이 병사들은 많은 민족으로부터 모집되었고, 집단적인 용감함보다는 개인적인 기풍을 띕니다. 그들은 굽은 기병대 칼로 무장하고 근접전에서 끔찍한 상처를 낼 수 있습니다. 그들은 근접전과 기병 돌진의 전문가이지만 델리 기병은 주로 땅을 가로지르는 속도때문에 인기가 있습니다. 이것때문에 취약한 근접 전투병과 포병을 쳐부시기 위해선 선택의 여지가 없습니다.\n\n역사적으로, 델리 보병과 기병대는 비정규 병력이었고 기병들은 캐러반과 중요 인사를 호위하는 일감을 찾곤 했습니다. 18세기 말엽까지 봉건적 시파이의 우수한 기병들은 대대적으로 사라졌고 오스만 기병대의 대부분은 비정규 델리 기병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제복 없는 것은 말할 것도 없으나 검정 가죽 모자로 식별할 수 있었습니다. 그들을 인식할 만한 다른 방법은 적이 살아 있는 한, 그들이 찾을 수 있거나 훔칠 수 있는 어떤 무기건 막 섞어 사용하는 것이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Miss_Ottoman_Shaturnal_Camel_Gunners \n\nThese men have been hardened for battle by the merciless nature of the desert, a place that is utterly unforgiving to the weak. A man who cannot fight is unlikely to survive the life of feuding and banditry that is his lot. Unlike many of their enemies, the shaturnal camel gunners are extremely swift and manoeuvrable force, and have perfected their skirmish tactics. An extra edge in combat is gained from their camels: enemy horses are easily scared by these gurning, spitting creatures!\n\nHistorically, a shaturnal was a kind of swivel gun mounted on the back of a camel or an elephant. Rather than using the camel to simply transport the gun, the weapon was actually fired with the gun still attached to the animal. Because there was no need to dismount to use the weapon, it could be brought into action very quickly.
\n\n이 사람들은 약한 자에겐 사정을 봐주지 않는 사막의 거친 환경에 의해 전투용으로 단련되었습니다. 싸울 수 없는 사람은 대결의 삶과 운 요소가 강한 도적의 삶에서 살아날 수 없습니다. 그들의 다른 많은 적들과 달리 샤투르날 낙타 총병들은 대단히 빠르고 기동성이 좋은 부대이고 맞부딪쳐 싸우는 전략을 완성시켰습니다. 전장에서 추가적인 잇점은 낙타로부터 얻어집니다: 적의 말들은 이 우스꽝스럽고 침을 뱉는 생물체를 쉽게 무서워 합니다!\n\n역사적으로, 샤투르날은 낙타나 코끼리 등에 탑재한 일종의 회전포였습니다. 총을 단순히 옮기기 위해 낙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실제적으로 동물에 부착된 총을 쏘는 무기였습니다. 무기를 사용하기 위해 내릴 필요가 없었기 때문에 신속하게 작동시킬 수 있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Stand_Portuguese_Cavalry \n\nPortuguese horses, although hardy and reliable, are neither large nor fast enough to be used for heavy or light cavalry. For this reason, they are used as mounts in a kind of all-purpose cavalry, slower than light cavalry and weaker than most heavy cavalry units. Despite this lack of specialisation, they are still useful on the battlefield and fight courageously. They must be deployed with a little care, as charging them into well-trained line infantry squares will only lead to heavy losses.\n\nHistorically, cavalry regiments were the weakest arm of the Portuguese forces. They had difficulty raising effective cavalry due to Portugal’s lack of natural resources required to produce remounts. It was hard to find enough forage to sustain the horses, and the native animals were not large, or swift. As a result, Portuguese cavalry was never organised as specialised regiments and failed to fulfil the needed tactical roles. To be fair, Portugal simply did not have the spare land required for large herds of horses.
\n\n견실하고 믿을만한 포르투갈산 말들은 중,경기병대에서 사용되기에는 충분히 크지도 빠르지도 않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경기병대보단 느리고 대부분의 중기병대 유닛보다 약한 다목적 기병대의 탈 것으로 사용됩니다. 이러한 무 특징에도 불구하고 전장에서 여전히 유용하고 용감하게 싸웁니다. 그들은 좀 주의 깊게 배치해야 하는데 잘 훈련된 전열 보병의 방진에 돌진시키면 큰 피해를 입을 것이기 때문입니다.\n\n역사적으로, 기병연대는 포르투갈군에서 가장 약한 병력이었습니다. 그들은 재조직에 필요한 자연 자원이 포르투갈에 부족했기 때문에 효과적인 기병대를 양성하기에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말을 유지할 충분한 먹이를 찾는 것이 어려웠고 야생마들은 크지도 빠르지도 못했습니다. 결과적으로, 포르투갈 기병대는 특수 연대로 조직되지 못했고 필요한 전술적 역할을 수행하지 못했습니다. 공정하게 말하자면, 포르투갈은 대규모 말 무리에게 필요한 충분한 땅을 갖지 못했습니다.
unit_description_texts_long_description_text_Cav_Stand_Spanish_Line_Cavalry \n\nArmed with a traditional straight sword, as opposed to the ever-popular sabre, these cavalrymen are a multipurpose unit. They are light enough to chase down a routing enemy, but heavy enough to charge effectively into enemy lines. However, their versatility comes at the cost of specialisation: should they be pitted against the likes of horse guards, their lack of specialist training will become apparent. \n\nSpain and the Peninsular War proved to be a major part in the downfall of Napoleon and this was thanks, in part, to his older brother Joseph. Joseph helped his brother to take control of France during the revolution and was rewarded with the throne of Naples in 1806. His time as king was brief, and he was soon sent elsewhere when Spain fell under Napoleon’s control. Napoleon needed someone he could trust on the Spanish throne and Joseph was the obvious choice. However, French occupation of Spain was unpopular to say the least and Joseph never really managed to gain a steady grip on the country. French control was eventually broken at the Battle of Vitoria and Joseph abdicated, fleeing back to France.
\n\n여지껏 인기있던 기병대 칼과는 반대로 전통적인 일자형 칼로 무장한 이 기병들은 다목적 유닛입니다. 그들은 도망가는 적을 추격하기에 충분히 가벼우나, 적 대오에 효과적으로 돌진하는데도 충분히 묵직합니다. 하지만, 그들의 다용성은 특수함을 희생하고 얻어진 것입니다: 기마 근위대류와 맞붙게 된다면 그들의 특수 기술 부족은 치명적일 것입니다.\n\n스페인과 반도 전쟁은 나폴레옹의 몰락에 중요한 대목이었고 이것은 부분적으로 그의 큰형 조제프때문이었습니다. 조제프는 자기 동생이 혁명기간중에 프랑스를 통제하도록 도왔고 1806년에 나폴리의 왕관으로 보상받았습니다. 그의 제왕 기간은 짧았고, 스페인이 나폴레옹의 수중에 떨어졌을 때 곧바로 어딘가로 보내졌습니다. 나폴레옹은 스페인 왕 자리에 믿을 수 있는 누군가가 필요했고 조제프는 분명한 선택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프랑스의 스페인 점령은 인기가 없었고 조제프는 그 나라를 지속해서 손아귀에 쥐고 흔들 수 없었습니다. 프랑스의 지배는 결국 비토리아 전투에서 끝나버렸고 조제프는 퇴위하여 프랑스로 도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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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맨 마지막에 조셉이 아니고 조제프 인듯합니다
ㄳ요 프랑스어는 까막눈이라서요
오 수고하셨습니다~ 하도 바빠가지고 신경도 못썼네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