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강(27)가래떡과 떡국
어제께 시골집에 가서 설을 온 가족과 함께 나누면서 단란한 시간을 보냈다. 조카가 대학에 들어가 그것이 첫 번째 이야기 거리가 되었고 국회의원 선거가 몇 달 남지 않아 지역 정치인에 대한 얘기, FTA가 우리 농촌에 미치는 영향, 농민들의 어쩔 수 없이 짊어지는 빚 등에 관한 얘기를 나누었다. 농촌의 거의 모든 집이 수천 만원 혹은 일 억 이상의 부채를 가지고 있는 집이 있다는 말에 마음이 무거워졌다. 그러한 무거운 얘기들이 자리하고 있는 농촌이지만 설의 풍습은 그대로 살아 있어 훈훈한 정을 더해주고 있었다. 무엇보다도 떡국을 먹으면서 나이 한 살이 더 먹는 것이 아쉽게 느껴졌지만 흰떡에 대한 옛 생각이 떠올랐
다.
우리들이 어렸을 때 설이 가까워지면 어머니는 쌀을 큰 양동이에 담그셨다. 보통 가정에서는 쌀을 두말 혹은 세 말을 담그셨는데 많은 집은 다섯 말을 담그는 집도 있었다. 지금은 쌀만 가지고가면 방앗간에 다 알아서 가래떡을 만들어주지만 내가 어렸을 때는 어머니께서 전날 밤에 쌀을 담근 후에 다음날 아침에 시루에 불린 쌀을 넣은 후 장작을 이용해서 불을 피워 오랫동안 찐 후 그것을 가지고 동네의 방앗간으로 아버지께서 지게에 지고 가셨고 잠시 시간이 지나면 어머니께서 그것을 가래떡으로 만들어 가지고 오셨다.
처음에는 아주 신기하였지만 어머니와 함께 떡 방앗간에 가 보았을 때 그 신비를 벗길 수 있었다. 쌀을 기계의 입에 집어넣으면 그 안에서 섞어지고 찌어지면서 가래로 변신하여 물이 많은 양동이로 들어가는데 그 아래에는 주인이 가위를 가지고 일정한 길이로 잘라나는데 희한한 것은 자로 잰 것이 아닌데도 똑 고르게 길이를 맞춘다는 것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따끈따끈한 것을 잘라서 하나씩 우리들에게 건네주었고 우리들은 하나씩 손에 쥐고 어머니께서 며칠 전에 집에서 만든 쌀엿을 찍어서 먹었는데 정말로 맛이 있었다.
떡이 굳어 가면 우리들의 손이 기다리고 있었는데 떡을 써는 작두로 아버지께서 시범을 보여준 후 우리들은 따라서 떡을 썰었는데 형이 일 순위 누나가 이 순위 나는 삼 순위 였는데 나는 늘 칼로 썰어야만 했다. 가래떡을 썰어서 대나무소쿠리에 넣어놓고 조금씩 끓여 먹곤 하였는데 정월이 일년 중에 가장 풍성한 시기였다. 물론 어머니께서는 소뼈를 사다가 푹 고아서 그 물을 이용해서 떡국을 끓여주셨는데 참 맛이 있었다. 아마 어린 시절의 떡국 맛은 아내로 내지 못하리라 생각을 하지만 아내 앞에서 그 말은 결코 하지 않는다.
어머니께서는 가래떡을 썰어서 찬물 속에 담가두었는데 그것은 떡에 곰팡이에 서는 것을 막기 위하고 또 끓였을 때 쉽게 익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라고 생각을 했다. 떡국에 어머니께서는 계란 고명을 올려주셨다. 물론 김을 부셔서 넣어서 먹기도 했지만 나는 그것을 그리 좋아하지는 않았다. 우리 마을에서는 몇 가구되지 않았는데 정월 보름이 되기 전에 번갈아 가면서 식사를 나누는 풍습이 있었다. 물론 그리 많은 음식을 차리지는 못했지만 배추김치와 시원한 동치미가 식탁을 채웠고 동네에서 만든 두부를 넣은 김치찌개가 우리들의 입맛을 가시게 했다. 거기다가 호탕한 웃음을 나누며 동동주 잔을 비우며 서로 덕담을 나누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내가 초등학교 일 학년에 다닐 때 아버지께서 떡국을 먹으면 한 살을 더 먹는다는 말에 나는 한 그릇을 더 먹고도 또 달라는 말을 해서 가족을 웃게 만들었다는 이야기를 어머니로부터 들었다. '한 그릇에 한 살'이라는 말에 서로 더 먹으려했다는 말에 웃음이 난다. 가래떡의 또 다른 맛은 바로 가래로 구워먹는 것이었다. 10cm정도의 가래떡을 화롯불에 구워 기억이 새롭다. 정말로 흰떡의 맛은 구워서 먹는 것이 제격이다. 조금 탄 것이 고소한 맛을 더 했기에 더 구우려다 숯으로 만든 적도 있었다.
어머니께서는 흰떡을 자루에 넣어서 방안에 말리고 뻥 할아버지가 나타나기를 기다려서 뻥튀기를 해먹으면 정말로 맛이 있었다. 아마 어떤 과자가 그 맛을 대신 할 수 있을까? 그 당시의 아이들에게 가장 맛있는 겨울철의 간식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았다. 지금도 가끔 그 생각이 나서 아파트 입구에 뻥튀기 장사가 오면 한 자루를 사서 뻥튀기 파티를 하면서 미소를 지어본다. 내일 아침은 아내에게 어머니께서 싸준 흰떡으로 떡국을 끓여달라고 말을 해야겠다.
2004/01/23/20/30
첫댓글 여기에 한 가지 빠진 비법!^^*양푼에 떡국을 넣고 연탄불 위에서 겨울이면,떡볶이를 해 먹었지요.거의 매일 떡이 떨어질 때 까지.고추장만 넣는 것이 왜 그렇게 맛 있던지...,전 내일 떡볶이 해서 먹어야징!
떡국드셨어요? 그래요. 떡볶이도 참 맛이 있어요. 역시 떡볶이는 고추장을 넣은 것이 맛이 있어요. 오늘 점심에 떡뽁이를 해 달라라고 해야되겠어요. 감사드립니다
^^*
선생님 글을 볼때마다 어디에서 그렇게 좋은 글감이 끝없이 나오시는지 부럽기만 합니다. 꼭 마주보고 앉아 이야기를 나누는것 같이 그림처럼 그려지고 정감이 있습니다. 그리고 어쩌면 그리도 유년시절 추억을 그대로 기억하고 간직하고 계신지 진짜 부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