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나무 松 - 읽다
소나무의 한자 표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소나무 松, 나무[木]와 공[公] 자의 결합이다. 그렇다면 소나무 송, 이 이름에 담긴 비밀은 당연히 公자에 있을 것이다. 한자 公에는 아주 많은 뜻이 담겨 있는데 그중에는 ‘높은 벼슬아치’의 의미도 있다. 여기에는 중국의 진시황이 대궐을 나섰다가 갑작스레 만난 비를 피한 나무가 소나무였고 황제가 그 고마움을 표현하기 위해 公이란 벼슬을 준 사연이 숨어 있다. 당시 벼슬 품계였던 공(公)-후(侯)-백(伯) 가운데 가장 높은 품계를 하사 받은 나무. 이렇게 소나무는 그 명칭부터 첫 번째이자 가장 높은 나무의 지위를 타고났다. 이와 유사한 일이 우리에게도 있으니 조선 세조로부터 벼슬을 하사 받았다는 충북 보은의 정이품송(正二品松)이 그것이다. 늘어진 가지를 스스로 들어 올려 왕의 행차를 도와 세조로부터 정이품 높은 벼슬을 하사 받았다는 전설을 품고 있는 정이품송, 이쯤되면 소나무는 영물에 가깝다.
이제 보통의 사람들에게 소나무는 근경보다 원경으로 존재하는 일이 더 많다. 땔감으로 솔가지를 태우거나 송편을 위해 솔가지를 꺾거나 지게를 만들기 위해 목재로 다듬거나 혹은, 껍질을 벗겨 낸 소나무의 속살로 허기를 달래던 일들은 이제 우리네 일상에서는 거의 일어나지 않는 일이 되었다. 다식을 만들기 위해 송홧가루를 따던 소나무꽃, 산불이라도 나면 자연에서 가장 손쉬운 불끄기 도구가 되던 푸른 솔잎이 두툼하던 소나무가지, 그럴 때 손에 묻어 오랫동안 손바닥을 새까맣게 더럽히던 끈적하기 이를 데 없던 송진… 이런 소나무의 근경들을 모르는 사람들에게 위의 사진들이 줄 느낌들을 생각해 본다. 소나무에도 이런 아름다운 꽃이 있었구나, 송홧가루로 이용한 것이 알고 보니 수꽃이었네, 소나무도 새싹은 너무나 작고 여리구나, 비듬처럼 벗겨지던 껍질을 가진 소나무가 어린 나무라고? … 어쩌면 이 사진들을 통해 내 몸 근처 어딘가에 있을 소나무를 새삼 찬찬히 살펴보는 이들 새로 몇 명 있을지 모르겠다. 다행이다.
소나무가 궁궐, 한옥 등 전통 건축물의 건축재로 첫 손가락 꼽히는 나무라는 것은 이제 누구나 알게 됐다. 화재로 전소된 국보 1호 숭례문 복구 작업과 더불어 삼척이나 태안, 서산 등지의 금강송 벌목 장면이 언론에 보도된 이후부터다. 수백 년 된 소나무가 이 땅에 없었다면 숭례문 복원이란 애초 생각조차 할 수 없는 일임이 분명하다. 이외에도 소나무는 조운선이나 판옥선 등 배는 물론 이승을 하직한 사람이 땅에 묻힐 때 들어가던 관의 주요 재료로도 쓰였다. 특히 임금의 관은 소나무의 가장 깊은 쪽 황장(黃腸, 소나무의 속고갱이)만을 사용했는데 조선시대의 갖가지 금산(禁山), 봉산(封山) 정책이 이해되는 순간이다. 이 많은 소나무의 쓰임 가운데서 가장 극적인 것은 아마도 백자를 만들던 가마터에서 쓰던 소나무 장작이었을지도 모른다. 굽는 과정에서 도자기에 불티가 튀지 않아 표면을 매끄럽게 만들어 주는 땔감은 소나무뿐이었던 탓이다. 한 점 티도 흠집도 없는 완벽한 조선 백자가 마지막으로 완성되는 순간엔 언제나 자신의 몸을 남김없이 태워 사라진 소나무가 있었다.
지금도 가끔 생각난다. 추석 전날이면 할머니 한 해에 한 번 어김없이 치르는 행사 하나 있으셨다. 묵은 먼지를 털고 시렁 위에서 동전보다 조금 큰 구멍이 송송 뚫린 나무판을 꺼내신다. 다식판이다. 이미 준비된 밤가루, 콩가루, 참깨가루, 쌀가루에 꿀을 반죽하여 쏙쏙 각색의 다식(茶食)을 참 잘도 만드셨다. 어느새 할머니 다식판을 깨끗이 다시 닦는 걸 보니 드디어 송화다식 차례인가 보다. 꿀과 송홧가루를 정성들여 한참 섞어 알맞은 반죽으로 만드신 할머니, 쓰다듬듯 다식판을 살짝 누른다. 곱디 고운 노란 송화다식이다. 한 번 먹어 보련? 오랫동안 입 속을 오가던 씁쓸달콤은근한 솔향기들… 부엌에선 고모, 누나, 큰엄마, 작은엄마들이 오랜만에 모여 오순도순 만든 예쁜 송편이 소나무 장작 위에서 칙칙 김을 내며 익고 있다. 사랑방에 계신 할아버지가 해마다 차례로 담가 두신 솔잎주 항아리를 반짝반짝 닦고 계실 때도 아마 그쯤이었겠다. 그런데 할머니, 송화다식은 왜 항상 마지막에 만드셨을까?
이제 거의 없는 풍속이지만 예전에 아이를 갓 낳은 집 대문에는 어김없이 금줄이 걸렸다. 고추가 걸리느냐 아니냐에 따라 아들인지 딸인지가 구별되었으나 소나무 가지만큼은 어김없이 걸렸다. 장을 담근 장독대 항아리에도 마찬가지로 솔가지로 만든 금줄을 쳤다. 소나무가 잡귀와 부정을 막아 주며, 장수를 의미하고, 비바람 눈보라의 역경 속에서도 사철 푸른 모습이 절개와 의지를 나타내는 상징으로 쓰여 왔기 때문이다. 옛 어머니나 할머니들이 뒤란에서 정한수 기도를 올릴 때도 그 앞엔 늘 청솔가지가 놓였다. 소나무가 몸과 마음을 정갈하고 깨끗하게 해준다고 믿었던 탓이다. 단종의 무덤을 향해 읍(
)을 하는 것처럼 가지가 굽어져 자라고 있는 강원 영월의 장릉 주위에 심어진 소나무들은, 어떻게 이 나무가 충절과 지조를 보여 주는 상징이자 습속으로 굳어지게 되었는지를 증거하는 예가 되기도 한다. 율곡 이이가 「세한삼우(歲寒三友)」에서, 고산 윤선도는 「오우가(五友歌)」에서 소나무를 벗 삼아 그린 것은 우연이 아니다.
창밖에 소나무가 너울대고/ 솔 위로 밝은 달이 떠 있구나/ 솔의 곧음과 달의 빛남이 어울리니/ 운치와 절조가 절경을 이루는구나최자, 1188~1260” “나무 한 그루가 숲을 못 이룬다고 누가 말했는가/ 뜰 앞의 반송 한 그루 녹음이 우거졌구나/ 깊고 깊은 뿌리는 자맥에 이르렀고/ 일산처럼 둥근 가지 하늘을 받쳤구나김식, 1485~1520” “가느디 가는 솔잎이여/ 어찌하여 너희는/ 이름도 없이 무수히/ 그러나 햇빛과 바람에 어울려 그렇게도 반짝반짝 빛나는가박재삼, 1933~1997” “남산 위에 저 소나무 철갑을 두른 듯/ 바람서리 불변함은 우리 기상일세애국가 2절, 작사자 미상” “지상의 소나무는 하늘로 뻗어 가고/ 하늘의 소나무는 지상으로 뻗어 와서/ 서로 얼싸안고 하나를 이루는 곳/ 그윽한 향기 인다 신묘한 소리 난다박희진, 1931~ ” 예나 지금이나 시와 그림과 문학의 소재로 우리 민족에게 소나무보다 더 많이 이용된 식물은 없다. 어떤 이유에서일까? 지조, 절개, 장수, 풍류, 탈속, 고향, 자연, 인간… 우리네 정서와 밀접하게 관련된 이런 아름다운 수식어들을 소나무보다 더 많이 거느릴 수 있는 것은 없는 탓이었겠다.
새 신부가 혼례복을 입는다. 빗치개1로 가지런히 가르마를 탄 머리 위로 화려하게 장식된 화관을 얹은 신부, 찰랑거리는 밀화 귀걸이 귀밑으로 찰랑대고 다홍치마 앞자락에서 은 노리개가 설레듯 딸랑댄다. 이 여인 오늘보다 아름다운 날이 또 있을까, 부끄러움에 살짝 돌린 머리 뒤 찰진 쪽머리가 흘러내리지 않도록 가로지른 은비녀, 그 밑으로 살짝살짝 고이댕기2 나풀대니 보는 이도 어지럽다. 이토록 예쁜 신부가 또 있을까, 서로들 조금이라도 더 잘 보기 위해 고개를 길게 빼어드는 사람들, 누군가 더 잘 보고 싶었나 보다, 안경을 빼어 드는데 안경집3이 보통이 아니다. 왕으로부터 선물 받았을 정도의 대대로 큰 집안이었을 듯 학과 매, 소나무, 세 가지 십장생이 한 곳에 장식이다. 며칠 후, 친전(親展)을 다녀온 새아기로부터 선물 받은 복(귀)주머니4를 가만가만 어루만지며 손 모으는 시어머니. 고맙다 고맙다, 행복하게 잘 살거라.
기둥, 서까래, 대들보, 책장, 도마, 다듬이, 병풍틀, 말, 되, 벼룻집, 소반, 주걱, 제상, 떡판, 지게, 쟁기, 풍구, …. 솔의 눈, 송염치약, 송염 은예보, 맑은솔잎 자연퐁, 내몸사랑 욕실세정제, 황토솔림욕, 가습기 메이트, 솔잎비누, 솔잎차, 솔잎목욕, 솔잎가루, 에프킬라 실버매트, 솔바람 케어 보솜이, 솔잎기름, 송편, 송떡, 사탕, 계란, 페인트 산소벽지, 로진백(송진가루), 종이, 향료, 의약품, 농약, 전기 부품… . 소나무로 지은 집에서 금줄에 소나무를 끼워 태어남을 알리고, 마른 솔잎과 소나무 장작을 태워 지은 밥을 먹고 동네 어귀 솔밭을 놀이터 삼아 자란 아이. 결혼할 때 초례상에 소나무를 꽂아 변치 앉을 정절과 사랑을 맹세하던 어른. 이승을 하직할 때엔 송판으로 만든 관에 누워 소나무 우거진 뒷산에 묻혀 생을 마감한 노인. 이 사람들이 평생 동안 사용했던 소나무를 이용한 물품들이다. 그런데 아마, 기억 못하는 것들이 더 많지 않았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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