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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동정맥 보고 1. 전체의 얼개 명칭 : 낙동정맥 종주 답사
목적 「산경표」상의 낙동정맥을 종주 답사하며 「산경표」와 국립지리원 지도의 정확한 맥 실체를 확인하고 낙동정맥 종주에 대한 기초자료를 제공함에 있다.
산행 횟수 -- 20회 총등반일수 -- 21일 (숙박했던 날은 제외한 실제 등반일 수) 종주거리 -- 394.5 Km
2. 낙동정맥 소개 낙동정맥은 영남지방을 남쪽으로 달리는 산줄기이다. 시작이 강원도 태백시 매봉산의 1145봉에서 시작하여 강원도의 땅을 조금 지나간 이후에는 계속 경상도 땅의 낙동강과 동해안쪽으로 흐르는 물길을 가르면서 계속 남진한다. 한마디로 낙동강의 동쪽 분수령(分水嶺)이 되는 셈이다. 낙동정맥의 산경표를 보면 낙동정맥(洛東正脈)은 백두대간의 태백산에서 분기하여 유치(楡峙) 마읍산(麻邑山) 말흔산(末欣山) 백병산 고초산 검마산 백령산 덕현 서읍령 용두산 임물현 죽현 주방산 어화산 보현산 응봉 성현 무학산 주사산 사룡산 지화산 단석산 운문산 가지산 천화현 취서산 원적산 금정산 화지산 엄광산을 거쳐서 몰운대에서 끝을 맺는다. 그러나 현재의 지도를 펼쳐놓고 낙동정맥의 마루금을 그으면 산경표와는 조금 틀린 부분이 있다. 이런 부분적인 약간의 오류에도 불구하고 옛 선인들은 거의 정확하게 낙동정맥의 줄기를 찾아서 정리했던 것이다. 우리 조상들의 산줄기 개념이 얼마나 세심했던지는 산경표를 보면 절로 고개가 숙여 진다. 이것은 곧 우리의 삶의 바탕이 되기도 했으니 지금이라도 우리는 산경표를 배우고 잃어버린 우리의 산줄기를 다시 되새겨야 할 것이다. 낙동정맥은 종주하는 사람에 따라서 거리가 조금씩 차이가 난다. 이런 차이는 거리를 어떻게 산출하고 출발지점을 태백시 매봉산자락의 1145봉에서 백두대간과 분기하여 종착점을 부산 다대포의 몰운대까지로 계산한다. 본 탐사대의 1:5만지도를 기준으로 측정했을때 줄자를 가지고 수동으로 계산했을 때(정확도는 조금 떨어지지만) 도상거리로 약 394.5Km가 된다. 사람과 산의 신 영철 종주대장은 도상거리를 380.5Km로 계산하고 있고, 포스에너지 이 순복씨는 도상거리를 417.1Km로 계산하고 있다. 거리가 워낙 멀다 보니 측정하는 기준에 조금씩 차이가 있으나 도상거리는 약 400Km 전후로 생각하면 된다.
3. 낙동정맥 종주 개요 낙동정맥 탐사대의 하루 산행 이동거리는 약 12∼25.5km 까지 다양하다. 그러나 평균적으로 계산을 했을때 약 21km 전 후로 산행을 하였다. 산행시간은 약 10시간이 거의 기본이고 때에 따라서 12시간까지 산행을 한 적도 여러번 있었다. 대원들 모두가 서로에게 피해를 주지 않기 위해서 서로 노력했으며, 그 결과 아무런 사고 없이 완주할 수 있었다. 낙동정맥은 경상도의 동쪽 해안과 육지 내륙을 가르는 산줄기인데 이 정맥을 중심으로 생활습관이나 언어, 그리고 음식문화, 제례의식 등 여러가지가 다르며, 사람들의 성격까지도 서로가 다르다. 정맥종주는 일곱산군에 따라서 장기간 종주하는 방법도 있고, 본 탐사대처럼 하루 산행으로 종주하는 방법도 있다. 회사의 일을 마치고 쉬는 날을 기준으로 산행을 해야 하는 우리들은 하루 당일 산행을 하는 것을 원칙으로 삼고 산행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산군에 따른 산행은 하지 못하고, 고개에서 고개까지 이어지는 산행을 계속했다. 때로는 그 거리가 너무 멀어서 조난까지 당했고, 때로는 그 거리가 너무 짧아서 아쉬운 산행을 한적도 있다. 다른 팀들이 하지 못한 구간교차산행을 시험해 보았으며 그 결과 정확히 정맥길을 걸어가면 구간 교차산행이 가능하다는 것을 당 탐사대가 입증하였다. 낙동정맥의 최고봉은 1259m의 백병산이고 두 번째는 면산이 1245m이다. 그 다음으로는 가지산이 1240m로 세번째이다. 최저지점은 괴정고개로서 30m이다. 다음은 경부 고속도로로 통도환타지아 근처의 지경고개(110m)와 경주의 아화고개(130m)가 있다. 산맥의 험하고 순함은 최저 높이인 고개가 결정한다. 이런 기준으로 보면 낙동정맥은 7개의 산군으로 나눌 수 있다. 백병산군은 고개높이가 600m가 넘는 고산군이다. 1천미터 이상의 산만 해도 6개나 있다. 그런 만큼 인적이 드물고 산길이 험악하며, 산죽이 진행을 상당히 더디게 만든다. 백암산군의 재높이는 5백미터 쯤이다. 우리나라 지형상 특징인 고위평탄면이 발달해 있어 고냉지 채소 재배단지가 능선까지 올라온 곳이 있다. 맹동산 근처가 그러하며 종주속도가 상당히 빠르게 진행이 될 수 있는 곳이다. 주왕산군의 고개높이는 4백미터 쯤이다. 낙동정맥의 허리부분에 가까운 곳이며, 주왕산의 왕거암 전후 13km에서는 산높이가 600미터 이상을 계속 유지한다. 이 곳은 길이 비교적 잘 나와 있는 곳이 많다. 운주산군은 고개높이 200미터 쯤이다. 야산지형이 많으면서 낙동정맥의 거의 중심에 해당하는 지역이다. 숲에 큰 나무가 많지 않아서 잡목이나 덤불이 많아서 상당히 애로가 많다. 길도 희미한 곳이 많고, 산의 기복도 심하지 않아서 독도하기가 까다로운 곳이다. 야산이라고 얕보았다간 낭패하기 쉽다. 가지산군은 낙동정맥의 영남알프스라고 불리는 구간인데 크게 한번 용틀임을 하여 산군을 이룬다. 이 구간에는 억새밭이 발달하여, 억새를 헤치고 나가는 구간이 많다. 길도 상당히 양호하여 산행속도도 빠르다. 원효산군은 골프장과 군부대가 많아서 능선의 정맥을 종주하기가 상당히 어렵다. 우회하는 길도 막아서 가지 못했지만 어려움이 있는 곳이다. 금정산군은 길이 아주 좋다. 부산시민의 휴식처이자 산행하기 쉬운 금정산은 낙동정맥의 마지막 부분에서 많은 경관을 보여준다. 백양산을 섭렵한 낙동정맥이 부산의 시가 지를 가로지르면서 다대포의 몰운대에 이른다. 낙동정맥은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끝난다. 그곳은 임진왜란때 녹도만호정운이 전사한 곳이기도 하다. 이 몰운대의 파도 철석이는 절벽 끝에서 군부대가 있어서 가지를 못하고, 1:5만지도의 몰운대 표기지점에서 우리탐사대는 쥐섬을 바라보면서 종주를 마쳤다.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지점이기도 하다.
4. 낙동정맥 산행 소개 ▲ 1차 산행(1998년 2월 27일) 도상거리 22km 지난 1월 포항제철 낙동정맥 탐사대를 모집 구성하였는데 인원은 총10명이었으나 1명이 근무조가 바뀌어서 현재는 9명으로 구성되어 있다. 회장 정 진욱, 총무 이 경수외 7명이다. 백두대간의 분기점에서 출발을 하든지, 다대포의 몰운대에서 출발을 하는 2가지 방법이 있으나, 우리 탐사대는 안강의 시티재를 중심으로 북상하여 백두대간을 만나고, 백두대간을 만난 후에는 다시 안강 시티재에서 남쪽으로 향하여, 다대포의 몰운대까지 가기로 하였다. 구간 설정도 중간지점에서 출발하니 약간 모호한 면도 있지만, 포항의 지리적 잇점을 최대한 살려서 중앙에서 상하로 탐사하는 것이다. 산행은 2대의 차량을 이용한 구간교차산행하는 방식을 선택하였다. 현재 우리팀 말고도 포스에너지 및 포스데이타에서 낙동정맥을 종주하고 있으며, 차츰 포항지역 다른 산악인들도 낙동정맥에 관심을 보이고 있어서 우선 기쁘다. 여기에 종주기를 싣는 것은 이것을 참고로 하여 낙동정맥을 종주해 보시라는 것이다. 산넘어 산이라고 시작지점의 첫 봉우리에서 목표지점을 바라보니 까마득히 저멀리 있다. 마지막 봉우리에서 뒤돌아 보니 지나온 산들이 저멀리 보인다. 그래도 물길은 절대로 하나도 건너지 않았다. 설악산 공룡능선보다도 더 힘들다고 입술이 다 부르텃니더 능선길이라고 쉽게 생각했다가 아이고 죽겄네 몇일 동안 다리가 안풀려서 혼났어 ▲2차산행(1998년 3월 12일) 도상거리 22km 이 구간은 낙동강 수계와 형산강 수계를 나누는 경계가 성법령 옆709봉에서 오십천 수계와 나누어지는 구간으로 바뀐다. 성법령에서 동쪽으로 방향을 전환하면 낙동형북기맥으로 이어지는 분기점이며, 가사령 위의 742봉은 내륙으로 향하는 거대한 낙동팔공지맥의 분기점이다. 또한 사관령은 낙동정맥의 중앙이 되는 지점이다. 대부분의 모든 지역이 정맥을 중심으로 행정구역이 나누어져 있느나 예외인 지역이 있다.삼성산과 도덕산의 중간에 있는 오룡리 마을은 형산강 수계에 있는데 영천시로 편입되어 있고 , 죽장면은 낙동강 수계인데 포항시로 편입되어 있다. 또한 상옥과 하옥도 오십천 수계에 있는데 포항시의 죽장면으로 편입되어 있다. 오룡리 주민들은 자옥산과 삼성산의 험한 계곡물줄기 아래로 물물교환적인 상거래를 하지 않고,재넘어 삼포리 주민들과 교류를 가졌을 것이다.정맥이 낮은 고개를 했기에!? 죽장면의 사람들도 바다와 관련된 소금등을 쉽게 구할 수 있는 곳이 아마 기계장이었을 것이다. 그래서 물길따라 자양댐을 막은 험산물길을 따라가지 않고 한티재를 넘어서 기계장으로 온것 같다. 상옥은 사방이 산으로 둘러 쌓인 분지인데, 하옥을 통해서 옥계쪽의 험한 물길을 따라서 영덕쪽으로 가지 않고, 샘재를 넘어 청하장을 보러오는 것이 훨씬 더 생필품을 장만하는데 수월했을 것이다. 또한 정맥을 넘어 죽장까지도 왔다 갔겠지. ▲3차산행(1998년 3월 25일) 도상거리 20km 이 구간의 특징은 해발 약 300m의 내룡리, 나리, 항리까지의 넓은 내륙분지를 거의 3/4 바퀴를 돌아간다. 상옥의 400m에 비해서는 조금 낮지만 분지가 넓어서 질고개 위의 산불감시초소에서는 이곳 분지의 모든것을 볼 수 있다. 이곳의 물길은 옥계계곡에서 상옥,하옥의 물줄기와 만나지만 행정구역은 청송군 부동면으로 속하는 지역이다. 제3구간의 청송군 부동면 내룡리 나리 항리 등은 낙동정맥의 동쪽으로 흐르는 물줄기이며, 옥계계곡에서 상옥과 하옥을 흘러온 물과 합한다. 옥계계곡의 험한 지형이 사람들의 생활권을 바꾼것 같은 생각이 든다. ▲4차산행(1998년 4월 14일) 도상거리 21km 4월 13일은 비가 많이 왔다. 몇일 전부터 계속 일기예보에 신경이 쓰였는데!!!. 내일(14일)의 산행이 걱정되어 131을 돌려보니 안개가 많이 끼일것 같다는 예보를 들었다. 그래도 비가 안온다니 천만중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벽 5시 낙동정맥 탐사대원은 공대 주차장에 모였다. 이제는 어느정도 정맥길에 익숙해진듯 모두들 자신감있는 표정이다. 인원이 많이 줄어든 느낌이다. 그러나 낙동정맥을 완주하겠다는 정신에는 한치의 변함도 없다. 이번 구간의 특징은 국립공원 주왕산의 아름다운 경치를 보면서 통과하는 아주 좋은 구간이지만 안타깝게도 안개(gas)때문에 모두 놓치고 말았다. ▲5차 산행(1998년 4월 27일)도상거리25km 낙동정맥 탐사대는 황장재에서 화매재까지의 4Km구간을 나중에 탐사하기로 하고 화매재에서 창수령(지도표기 자래목이)까지 도상거리 25.5Km를 탐사대상으로 삼았다. 다소 무리가 되는 줄은 알지만 다음 구간인 백암산에서 진입과 퇴출의 어려움 때문이다. 1박을 하려 했으나 장비의 무게와 식량등 모든 면에서 해결해야할 사항이 많았다. 이번 구간의 특성은 정맥길의 경사도가 다소 낮은 방면에 뚜렸한 마루금의 지형이 형성 되어 있지 않아서 여러가지로 혼돈을 주는 지형이 많았고, 정맥길 바로 옆으로 차량도로가 형성되어 있는 곳이 많았다. ▲6차 산행(1998년 5월 4일) 도상거리 18.5km 시작이 반이라고 우리 탐사대는 정맥길을 도상거리로 128Km를 걸었다. 우리는 총산행을 20회로 나누었으며, 아직도 완주를 하기 위해서는 넘어야 할 많은 문제가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이제는 푸르른 잎과 풀들이 자라기 시작하기 때문에 더욱더 산행에 어려움이 있으며 더위와 벌래들도 우리들에게 고통을 줄것같다. 그러나 이제는 체력적으로 정신적으로 이를 극복할 수 있게끔 단련이 되어 버렸다. 여름철에 낙동정맥을 갈려면 이런 글귀를 외우고 가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정맥길은 있어도 안보이고, 안보여도 반듯이 있다. 지도와 나침판 정맥길의 마루금을 믿고서 간다면, 반듯이 해법이 있다. ▲7차 산행(1998년 5월 31일) 도상거리 21.5km 어제(5월 30일) 탐사대원 5명이 황장재에서 화매재까지 4Km구간을 탐사하였다. 저녁에 백암의 금천리 마을의 개울가에서 저녁을 지어 먹고 저녁에는 백암수련관에서 술한잔하며 휴식을 취했다. 탐사대원 모두가 백암수련관에서 합류하기로 되어있었는데, 회사에 급한 일이 발생하여 정진욱씨를 포함한 3명은 합류하지 못하고 대원 5명이 다시 백암산을 오르게 되었다. 두팀이 짝을지어 구간교차산행을 하다가 한팀만 산행을 하니 우선 교통이 우리를 불편하게 했다. 추령에서 백암수련관까지 오는 길은 참으로 산행하는 것만큼 어려웠다. 다행히 하루 3번 다니는 노선 버스와 지나가는 승용차를 겨우 얻어타고 와야 했다. 정 진욱(leader)씨와 김 기환씨 김 경중씨 3명은 6월 13일 7구간에 도전했으나 비가 억수로 오는 악천후 때문에 백암산 정상까지만 갔다 되돌아 왔다. 그다음 6월 27일에 구간종주를 완료했다. 산행거리가 길기 때문에 비가 많이 오는 날에는 체력저하 등 모든 조건을 고려하는 것이 좋다. ▲8차 산행(1998년 6월 20일) 도상거리 23km 장마전선의 영향으로 날씨에 잔뜩 신경을 쓰고 있었는데 다행히 주간 일기예보에서 20일은 날씨가 흐리고 21일은 맑은 날씨가 된다는 예보에 우리는 산행을 추진하기로 하였다. 탐사대원은 19일 16:00에 공대에 모여서 20분에 백암으로 출발하였다. 백암수련관에서 저녁식사를 맛있게 한 후 대원들은 모두 모여서 내일 산행을 어떻게 할 것인지를 토의 하였다. 추령에서 광비령까지의 산행이 쉽지만은 않지만 이 구간을 잘 해결해야만 이후의 구간이 쉽게 풀려나가기 때문이다. 온천욕을 마친후에 대원들은 방의 숙소에서 간단하게 맥주와 음료수 그리고 죽순을 곁들여 여러가지 정담을 나누었다. 죽순을 처음 먹어보는 경우도 있었으며 내일의 산행을 위해서 23:00에 취침에 들었다. 낙동정맥의 고도가 낮아지는 한티재의 주변과 수비면 일원은 독도하기와 산행하기가 무척이나 까다로운 곳이다. 사람의 키보다 약간 큰 여러 잡목들이 길을 막고 서서 산행의 진행을 어렵게 하는 곳이다. 어찌되었든 산행 시작점을 찾기 어려웠던 구간이 었으며, 산행속도도 상당히 느리게 진행되었다. ▲9차 산행(1998년 6월 27일) 도상거리 12km 26일 포항의 날씨는 오전에 비 오후에는 개인 날이었다.오늘(26일)과 내일의 일기예보는 그래도 약간의 희망이 있어보인다. 내일(27일)의 산행은 비가 조금와도 강행하기로 하였다. 연속되는 장마철의 비가 그래도 우리들의 산행때는 오지 말았으면 하는 마음을 가지고 26일 18:00 포항을 출발하여 백암으로 향했다. 26일 아침 08:00에 정진욱씨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한 두 차례 비가 와도 오늘 미리 가서 전번에 탐사 못한 6Km구간 산행을 하고 신암분교가 있는 신내마을에서 민박을 하겠다는 것이다. 정회장은 먼저 광비령쪽으로 갔다. 그리고 산행을 했다. 20:00에 온천욕을 하고 숙소를 찾았다. 21:10 정회장으로 부터 연락이 왔다. 우재일씨의 집에서 저녁을 먹고 현재 휴식을 취하고 있으며, 명일 광비령과 답운치에서 06:00에 출발하기로 서로 약속을 했다. 숙소에서 우리들은 축구이야기며 살아가는 이야기 산행에 얽힌 이야기 등을 소주한잔과 함께 나누다가 잠을 청했다. 오늘 산행은 구간이 짧은 관계로 비가 조금 와도 강행하기로 하고 산행에 임했으나 실제로는 비를 맞지 않았다. ▲10차 산행(1998년 7월 23일) 도상거리 24km 1998년 7월 23일은 낙동정맥 탐사대가 평생 잊지 못할 만큼 중요한 사건이 벌어진 날이다. 장마가 끝났다고 생각했었는데, 이 날은 하루종일 비와 안개로 우리들의 길을 막고 방해한 날이다. 정맥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느끼게 해 주었고, 산에서 조난 및 한계상황에 닥쳤을 때 우리 산악인들이 마음가짐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알게 해준 것이다. 비 때문에 기록 또한 제대로 되지 못했다. 그러나 개념도 만큼은 정확히 그렸으니 관심있는 분들은 보고 참고 하시기 바란다. 포항등산학교 7기 낙동정맥종주 리본을 여러개 발견하여 기쁜 날이기도 했다. 정진욱(리더)씨가 어제 (21일) 울진산악회에 전화하여, 이번 구간의 기상 및 등산로의 상태를 물으니 “강원도와 경상도를 연결하는 이번 구간에는 산의 정상에 항상 안개가 자욱하여 기상의 변화가 상당히 심한 곳이며, 독도하기 어려운 구간이 많기 때문에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비와 안개로 인하여 많은 애로를 느꼈고 한계상황이 닥쳤을 때 대피하는 방법을 알아두는 것도 좋다고 생각한다. 장거리 산행에는 필히 비상식량과 불을 피울 수 있는 도구가 필요한 것이다. ▲11차 산행(1998년 8월 25일) 도상거리 17km(통리에서 1박) 낙동정맥 탐사대는 7월과 8월의 게릴라식 폭우때문에 산행을 연기하거나 하반기 구간부터 먼저 한 곳도 있다. 시티재에서 아화고개까지의 구간과 아화고개에서 수의동고개까지의 구간을 먼저 탐사하고 이번에 백두대간을 만나는 11과 12차 구간을 완주한 것이다. 멀고 먼 길을 오직 걸어서만 간다는 것이 불가능해 보였지만 실제로 해보니 힘든것은 많아도 가능한 일이었다. 힘들때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있었으나 정맥은 우리에게 많은 매력을 제공하기 때문이다. 매봉산자락의 1145봉에 올랐을 때의 기쁨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이다. 이 봉우리를 중심으로 3개 강의 물줄기가 갈라진다. 바로 옆에 떨어지는 물줄기가 하나는 한강으로 또하나는 낙동강으로 또하나는 삼척의 오십천으로 떨어진다. 그러나 아쉽게도 1145봉은 목장지로서 개인땅이기 때문에 철조망을 통과해야만 한다는 제한된 장소이다. 어제까지는 구간 교차산행을 했으나 오늘은 전대원이 다함께 매봉산까지 가는 산행을 하였다. 백두대간에서 낙동정맥으로 분기하는 매봉산의 1145봉을 우리 모두 다같이 산행하면서 지금까지 서로 다른 방향에서 산행하는 분위기와는 달리 모든 대원이 마음을 함께하는 산행인 것이다. 거리가 짧아서 모두가 홀가분한 마음으로 산행을 하였고, 매봉산의 낙동정맥 분기점을 보왔을 때이 기쁜 마음은 아직도 생생하다. 삼강(낙동강, 한강, 오십천)이 발원하는 삼수령피재입니다라는 입간판이 서있고, 큰 돌로된 비문도 있다. 정확히 말한다면 큰피재는 한강과 삼척의 오십천을 나누고, 작은피재는 낙동강과 삼척의 오십천을 나눈다. 그로므로 큰피재과 작은피재 두곳을 합하면 삼강을 나누어 발원하는 삼수령이 되는 셈이다. 버스를 기다리던 탐사대는 경남 합천이 고향인 아주머니가 운전하는 프라이드와 티코를 얻어타고 태백까지 왔다. 태백에서 통리까지는 택시를 이용했다. 산적몰골을 하고 땀 냄새가 물씬 풍기는 우리 대원들을 태워준 태백의 인심에 후한 점수를 주고 싶다. ▲13차 산행(1998년 8월 12일, 9월 1일) 도상거리 23km 게릴라식 폭우가 전국을 이리저리 왔다갔다 하는 바람에 탐사대원들은 산행날짜를 잡아놓고서도 걱정이 태산이다. 장거리 산행에서는 날씨가 그래도 우리들을 도와 주어야만 모든것이 조금은 수월하기 때문이다. 8월의 휴가철과 정진욱회장이 9월부터 근무가 상주로 바뀌는 바람에 산행계획을 많이 앞당기기로 했으며, A팀과 B팀이 따로 따로 산행을 한번씩 하게 되었다. 만약의 경우 비가 많이 내릴 경우 강원도에서 포기 하기 보다는 가까운 경주지방에서 포기하는 것이 시간을 아끼는 비결이었기에 하반기 산행계획을 먼저 두 구간 실시하게 된 것이다. 산의 높이가 낮아도 정맥은 정확히 흐르고 있었으며,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고 이어지는 정맥이 참으로 신기했다. 태백의 통리가 그렇고, 아화고개가 그러하며, 산내면 어미리 고갯길이 또한 그렇고, 산내면 불고기A단지가 그러하다. 앞으로 통도사의 지경고개가 그러할 것이며, 부산시내의 여러곳이 또한 끊어질듯 끊어지지 않는 정맥길이 될 것이다. ▲14차 산행(1998년 8월 19일) 도상거리 20.5km 14구간을 걷고나서 대부분의 대원들은 가려움증에 시달려야 했다. 풀쐐기와 푹독등잡다한 벌레들을 털어내고 지나가야 했으니!!!! 그래도 비가 안온것만도 다행이라 생각하면서 걸었다. 거미줄을 걷어내야만 하는 구간이 상당히 많아서 애를 많이 먹었다. 산성터의 썩은 무우밭을 바라보며 계속되는 비를 원망했지만 강원도의 매봉산에서는 아주 신선한 배추를 보았다.생식마을도 인상적이었으며, 수의동의 우방목장 및 교회 넓은 잔디밭 등은 14구간의 볼거리이다. 또한 고속도로를 건너야 하는데 고속도로 지하도를 건너야 하는 우회구간이 있음도 유의해야 할 사항이다. ▲15차 산행(1998년 9월 4일) 도상거리 23km 올 2월부터 시작한 낙동정맥 종주는 벌써 15회 산행을 마치고 16회 산행을 시작할 것이다. 시작이 반이라고 그 먼 거리를 어떻게 걸을까 하고 걱정이 태산 같았는데 이제는 자신감이 넘쳐 흐른다. 안개속에서 비를 맞으면서 짙푸른 녹음과 잡목속에서도 결코 물러서지 않고 계속 앞으로 전진하면서 중간지점에서 만나고 헤어지기를 계속했다. 남은 5개 구간에서는 함께 낙동정맥을 체험할 산악인들이 많았으면 좋겠다. 산경표에서 낙동정맥의 종착점이 몰운대이므로 우리들의 완주하는 종점도 몰운대가 될 것이다. 태백산맥이라고 불리던 낙동정맥이 이젠 거의 모든 산악인들에게 아니 모든 한국인에게 사랑받는 정맥이 되어야 할 것이다. 백두대간은 알아도 낙동정맥을 모르는 현실이 조금은 안타깝지만 정맥의 거의 모든 구간을 두눈으로 확인하고 직접 두발로 걸었다는 그 자체가 너무도 기쁘다. ▲16차 산행(1998년 9월 28일) 도상거리 23km 영남 알프스라 하는 곳을 통과한 것이 이번 구간의 특색이다. 정맥에서 조금 벗어난 천황산, 재약산, 운문산, 문복산 등 높은 산들이 있지만 낙동정맥은 가지산, 능동산, 간월산, 신불산, 취서(영취)산 등 고도 1000m가 넘는 산들이 용틀임 하다가 통도환타지아의 왼편을 경유하여 지경고개로 이어진다. 일기예보에서는 비올 확율이 많다고 했는데 실제로 비와 안개와 바람이 하루 종일 우리와 함께 했다. 날씨가 좋았다면 산행시에 영남알프스의 아름다운 경관을 볼 수 있었을 터인데 10m 앞을 분간할 수 없는 안개 때문에 길만 바라보고 가는 산행이었다. 이번 구간에서는 낙동정맥 종주 리본을 보기가 상당히 어려웠다. 영남지역 산악인들이라면 대부분 한 두번씩 왔다 간 곳이라서!!! 이번 구간을 생략했을까??? 아니면 다른 많은 리본에 가려서 안보인 것인가??? 안개속의 산행을 또 하게 되니 예전의 묘봉의 사건이 생각나지만 오늘의 길은 예전에 한 두번씩 지나가 본 경험이 있는 길이고, 등산로가 모두 뚜렷하게 형성되어 있는 고속도로 같은 길이라서 산행 속도도 상당히 빨랐다. 취서산 아래의 억새분지에서 짙은 안개 때문에 길을 잘못들었다가 빠져 나오면서 억새분지에 생성된 도로가 인위적인 것인지? 자연적인 것인지? 참으로 희안했다. 예전 약 7년 전에 왔었을 때는 못보고 지나갔는데!!!!! ▲17차 산행(1998년 10월 11일) 도상거리 21km 낙동정맥을 종주한지 9개월이 되었다. 그동안 낙동정맥에만 매달리다 보니 다른 일을 못한 것도 많다. 탐사대원들 역시 다른 약속 모두 뒤로 미루고 종주에 모든 열의를 보였다. 탐사대원들의 평균 연령은 43.8세이며 젊은 20대 못지 않은 체력과 지구력이 있다. 만나고 헤어짐이 무엇이런가?? 시작 할 때는 같이 시작을 했는데 한분은 상주로, 또 한분은 B조로 가셨다. 그래도 완주를 위한 집념이 대단해서 모두 연차를 사용해서 산행을 한다. 손 태목형님이 이번 구간을 먼저 10월 8일 산행하고 온 다음 우리에게 정보를 제공했고 우리들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이번에는 합동산행을 하게 되었다. 낙동정맥을 단독완주(97.04.04∼98.09.27)한 포스에너지 이 순복씨가 필자에게 연락이 와서 이번구간에 부대가 있다는 것을 미리 알았고, 정맥의 주릉으로는 종주가 불가능하며 우회로를 이용해야 한다고 미리 알려 주었다. 그리하여 먼저 산행한 손형님에게 정보를 제공했으나 부대 철조망에 매설한 지뢰가 먼저번 폭우에 유실되었기 때문에 우회로도 군인들이 통제하여 지나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우리들도 당일 부대앞에 가보았으나 역시 통행금지였고 이 우회로의 통행이 언재쯤 해제될지는 모른다. 정 진욱회장의 의견은 지뢰우회구간은 생략하자는 것이다. 조금 아쉽지만 지금까지 사고 없이 왔는데 안전제일로 가야 한다는 것이다. 어떻게 수단을 내서든지 우회로를 지나가야 한다는 의견과 생략하자는 의견이 있었는데 결국은 약 2.5Km의 구간을 생략하기로 했다. 목표지점 3Km를 남겨두고 하산하는 심정은 그리 좋지많은 않았다. 그러나 강원도 묘봉에서의 악몽이 나의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기에 나 또한 무리수를 두지 않키로 했다. ▲18차 산행(1998년 11월 7일) 도상거리 19km 이번 구간의 특성은 부산시가지를 가로지르면서 종주한다는 것이 큰 특성이라고 하겠다. 부산 시민들의 휴식처이자 산행과 체력단련등을 겸할 수 있는 아주 좋은 곳이다. 산성안에는 먹거리가 풍부하고, 산성을 벗어나니 많은 부산의 선남선녀들이 정맥을 걸어간다. 정맥을 걸어가면서도 정맥임을 알고 걷는 사람들도 있었지만 정맥임을 모르고 걷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우리나라의 산줄기인 대간과 정맥을 모든 국민이 올바르게 알고 배울수 있는 날은 어느때일까??? 아직도 학생들이 배우는 교과서에는 일본인이 이름 붙여준 산맥을 왜우고 배우고 있는 실정이기에 저많은 사람들에게 낙동정맥을 설명하기는 쉬운일이 아니다. 부산시 개금동에서 엄광산으로 오를때 한 등산하는 나이 지긋한 분에게 엄광산이 고원견산으로 불리는 이유를 물었더니 그분의 말씀이“고원견산은 일본인이 고향을 바라볼 수 있는 산이라는 뜻의 고원견산이고 지금은 본래의 이름을 되찾아서 엄광산이 되었습니다.”라고 하신다. 아직도 우리 주위에는 본래의 이름을 찾지 못한체 계속사용되는 지명이 무척이나 많다. 이것 또한 어떻게 설명해야 할 것인가??? 오늘의 산행 날씨는 맑고 쾌청해서 저멀리 정맥의 능선이 아주 뚜렷이 구분되어 독도하기가 아주 쉬웠다. 안개속을 독도하다가 이렇게 좋은날을 만나니 참으로 좋다. 또한 오늘은 베낭에 나뭇잎 하나도 얻혀오지 못하고 허리숙여서 지나가야 하는 구간도 없는 아주 좋은 능선길이었다. 한백기대원은 포항에서 발목부상을 입었다. 그는 발목이 부어 절룩거리면서도 이번구간을 무사히 완주했다. 쉬는 시간에 물파스를 바르고 압박붕대 감는 것을 볼 때 내 마음은 안타까웠지만 고통을 참아내는 그의 의지는 대단한 것이었다. 우리들은 구덕산과 시락산을 더 넘어가려다가 아무래도 그의 부상이 심해질까봐 구덕령에서 끝마치고 우리는 포항으로 되돌아 왔다. A팀은 총무부의 10월 25일 정기산행을 하고 11월 1일 이번구간을 통과했다. ▲19차 산행(1998년 11월 7일) 도상거리 19km ▲20차 산행(1998년 11월 8일) 도상거리 14km 구덕령에서 시작한 낙동정맥 마지막 구간 출발하는 발걸음은 모두 가볍기만 했다.부산 시내를 가로지르는 구간이라서 쉽게 생각했지만 예상과는 달리 낮은고개가 많고 주택과 학교, 군부대와 도로가 정맥길을 가로막고 있어서 쉽지만은 않았다. 한치의 오차도 없는 낙동정맥 종주를 완성하려 했는데 우회하는 구간이 상당히 많고 군부대의 특수성 때문에 완벽한 마루금을 밟는데는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꼈다. 그러나 경상도 땅의 지붕을 거의 완벽하게 소화해냈기 때문에 상당히 기쁘다. 부산시내의 여러산을 지나갈 때마다 산불감시원들의 저지를 받았다. 산불감시하는 많은 분들께서 우리탐사대의 탐사목적과 통과해 나아가는 지점을 말씀드렸더니 모두들 통과시켜 주어서 그분들께도 새삼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 산불 때문에 등산로를 폐쇠하여 많은 선량한 시민들의 쉼터가 없어지는 것이 상당히 안타깝기도 하다. 다대포해수욕장에 들어서는 순간 우리 모두는 기쁨의 환호성을 질렀으며 지금까지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처럼 느껴졌다. 몰운대의 자갈마당 위 군의 초소에 들어서기 전에 완주를 눈앞에 두고 손형님께서 회장과 총무에게 자리를 양보하는 것을 보고 미안했었다. 낙동정맥의 완주는 탐사대원 전체의 몫이기 때문이다. 샴페인을 터뜨리고 간단한 완주의식을 행할 때 정회장을 위시한 우리모두는 기쁨의 눈물을 흘렀다. 죽을 고비를 넘기고 여기까지 온 정회장과 김경중씨의 완주는 타 대원들과는 다른 감회가 있었을 것이다. 모든 대원들이 악천후와 앞을 가로막는 잡목과 억새를 물리치고 여기까지 왔으니 낙동정맥완주는 우리 탐사대원 모두의 기쁨이고 자랑이다. 동해와 남해를 가르는 분기점이 어디일까? 그것은 다름아닌 몰운대인 것이다. 다대포 해수욕장의 넓은 모래사장과 개펄은 남해바다 전형의 아주 완만한 해수욕장 모래와 개펄이었다. 이와는 반대로 몰운대의 동쪽편은 가파른 경사각을 지닌 전형적인 동해의 풍경이었다. 우리의 선조들이 낙동정맥의 종착점을 왜 몰운대로 했는지 여기에 와서야 알게 되었다. 선조들의 지혜에 새삼 고개가 숙여진다. --- 끝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