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이 글을 쓰면서 ‘가장’이라는 말을 아끼며 경계한다. 왜냐하면 여기에 소개되는 사람들이 ‘가장’ 아름답게 잘 사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싶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저 내가 알고 듣고 보았던 사람들일 뿐, 어쩌면 여러분이 알고 있는 사람들이나 혹시 바로 ‘당신’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답게 잘 사는 사람일 수 있기 때문이다. 진정이다.
나는 차마 이 깨끗한 책자에 왜 내가 정치인이 되었는지를 쓰지는 못하겠는데, 그 ‘정치인’이 된 후에 안타까운 일 중에 하나가 내 산골의 일들이 좀 소원해졌다는 것이다. 흙을 일구어 씨를 뿌려 가꾸고 열매를 맺는 자연의 순리를 푸근한 마음으로 바라보기 힘들게 됐다는 뜻이다.
그만큼 흙과 더불기를 좋아하는데, 웬일인지 실내에 있는 화분 건사하기는 썩 좋아하지 않는다. 아마 지나친 손길을 기다리는 그 자세가 싫거나 조금 소홀하게 했다가 죽어가는 그 꼴이 보기 싫음이 아닌가 한다.
그런데도 시골집 거실에는 다섯 개의 화분이 언제나 내 손길을 기다리며 억지로 살고 있다. 때맞추어 물을 줄 때마다 ‘분갈이’를 해야 할 터인데를 생각하다 보니 서울 강남에 사는 어떤 분이 들려준 ‘분갈이 부부’가 생각났다.
서울의 강남땅에는 어떤 사람들이 살고 있을까. 언론에서 자꾸 오도하여 아주 돈 많고 욕심 많고 이기주의적이고 마치 하늘에서 떨어진 돈벼락 때문에 배부르게 사는 사람들만 사는 것처럼 인식돼 있지만, 그 강남땅에도 여러분과 똑같은 사람들이 살고 있을 뿐이다. 그곳에 살아서 부자가 된 것이 아니라 부자들이 모여 살 환경이 됐기 때문에 모여 살 것이며 그들은 돈을 벌기 위하여 무진 고생을 하였을 것이다.
내게 강남땅 분갈이 부부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도 그런 분이며 누구보다 선하고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분이다.
봄이 오면 강남에는 아파트 단지를 돌며 분갈이를 해주는 젊은 부부가 있다. 서울 가까운 곳에 농원을 하는 평범한 부부이겠지만 그들 부부가 하는 일과 내외의 대화를 들으면 미소가 지어질 만큼 아름답다고 한다.
허름한 트럭에, 분갈이 재료와 약재, 분무기, 화초 등을 싣고 와서는 아파트 광장에 자리를 잡으면 아파트 사람들이 너도 나도 겨우내 고생한 화분들을 들고 병원을 찾듯 모여들기 시작한다.
남편은 활짝 미소 진 얼굴과 믿음직스럽게 거친 손으로 정성껏 분갈이를 하고 아내는 조수가 되어 종달새 같은 목소리로 화분 주인들에게 화초 기르기 조언을 해주면서 회계일까지 한다. 남편은 농약을 분무하면서도 흰 이를 드러내며 웃고, 아내는 그 남편을 자랑스럽게 바라보며 응원하듯 하는데 그 모습은 강남 부자들 앞이어서 더욱 당당해 보인다. 그 부부에겐 비록 허름한 집과 삶의 터전인 수백 평의 땅이 고작이겠지만 건강하게 커가는 아이들과 행복한 가정이 있기 때문일 것이다. 그 부부에게는 그곳 강남땅 사람들이 적대감의 대상이 아니라 대등한 삶의 파트너이며 고마운 사람들일 것이다.
까다로운 주문이 있어도 부부는 불평 한 번 없이 완벽한 예절로 ‘예, 예’를 연발하고 무거운 화분은 남편이 들고 가벼운 것은 아내가 끌어안고 아파트를 오르내리며 분갈이한 화분을 사랑으로 배달한다. 그들이라고 왜 노동이 힘들지 않을까.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다가도 점심때가 되면 아내는 싸가지고 온 도시락을 풀어 놓으며 “여보, 진지 잡수세요. …” 하는 공손하기 그지없는 말씨로 남편의 일손을 멈추게 한다. 부부의 사랑이 꽃피고 비둘기떼와 함께하는 점심 풍경은 아직 차가운 봄바람 속에서도 평화롭기만 하다.
올봄에도 그 부부는 강남 어느 아파트 단지를 돌며 행복을 팔 것이다. 우리 집 화분의 자스민을 들여다보니 꽃망울이 생기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