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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32 - 선택 1
S#1. 캠퍼스
로봇 올림피아에 대한 현수막들..
구경하러 오는 사람들 인파.
S#2. 올림피아드 행사장
사람들이 구경하고 있고.. 그리고 각 부스의 로봇들 모습.. 스케치..
그 중에 한 부스. (가장 정교해 보이는 로봇이 있는)
그 앞에서 구경을 하고 있는 민재. 우울한 모습이다.
민재, 돌아서 걸어나간다.
S#3. 전자동 로비
민재 들어서고 있다. 문득 멈춰서더니 뒤주머니에 접어서 쑤셔넣었던 서류 봉투를 꺼낸다.
우울한 얼굴. 봉투를 만지작거리는.. 그 위로.
명환 : (E) 취소를 한다구?
S#4. 이교수 랩
명환과 중희가 보는 앞에 서 있는 민재. 아까의 서류봉투에서 서류 하나를 꺼내고 있다.
민재 : (애써 밝게) 방법이 이거밖에 없잖아요. 졸업연구를 안하고.. 그래서 졸업을 못하고.. 5학년으루 눌러붙는거요.
안그러면 졸업을 하게 되니까.. 대학원도 못 가고, 그래서 군대가게 되면. 겨우 배워놓은 거 다 까먹을까봐요. (억지로 웃는)
명환 : 그..렇지. 야 그래도 아깝네. 너 지금까지 여기서 하던 거 계속 밀어붙이면 졸업연구는 그냥 먹는건데.. 이걸 중단하는거야?
중희 : 그럼 대학원은 내년 후기칠거지?
민재 : 예. 내년 6월쯤에 있다면서요?
중희 : 그래. (등을 툭툭 쳐주며) 연구의 길은 멀고 먼거야. 까짓 일년 늦어졌다구 기죽을 거 하나 없어.
명환 : 사실은 너 대학원 떨어진 거 우리가 더 아쉽다야. 니가 우리 밑으로 들어오면 정말 든든했을텐데 말야.
민재 : 말씀만이라도 고맙습니다.
중희 : 민재야.
민재 : 예?
중희 : 내가 선배로서 충고하는 건데 너 시간낭비하지 마라.
민재 : 시간 낭비요?
중희 : 넌 그야말로 황금같은 시간을 갖게 된거야. 졸업연구 안하지. 더 들을 과목도 별로 없지. 그러니까 이 기회에 건져봐.
민재 : ..뭘..요?
중희 : 뭐긴 뭐냐. 왕성하게 분비되는 호르몬의 분출대상자. 것두 한두명으로 절대 만족하지 마라. 실험데이터는 많으면 많을수록
좋은거 너두 알지? 그러니까 한달에 두세명씩 여자를 갈아보면서 충분한 데이터를 확보한 다음에..
명환 : 어이그. 류중희. 너나 잘 해. 소개팅 열세번을 백퍼센트 실패한 놈이 뭔 충고냐.
중희 : 그러지 마십쇼. 선배야말로 약혼자가 있는 주제에 맨날 후배들 미팅에나 기웃거리고 말입니다. 그럼 안되죠.
명환 : 약혼자가 태평양 건너에 있는데 그 정도 바람도 못 피냐.
민재 : (겨우 말 틈을 찾아서) 저기 근데요. 이거 취소신청서.. 제가 직접 가서 사인받아야 되나요?
명환 : ... 이교수님께?
민재 : ..예.
명환 : 왜. 직접 갖구 가기가 껄끄러워서?
민재 : .. (웃기만)
중희 : 껄끄럽죠 그럼. 이교수님도 참. 다 좋으신데 융통성이 너무 없어요. 민재 정도는 이교수님이 박박 우겨줬으면
붙여줄 수 있는 걸..
명환 : (중희를 퍽 때리고) 고만해. 어? 너 지금 이간질하냐?
중희 : 아니 제 말은 그냥 쉽게 생각하면 그렇다는 얘기지..
명환 : 안그래도 요즘 이교수님 신경이 무지하게 날카로운 거 알지? 말 조심하라고.
중희 : 압니다. 네. 그 놈의 돈때문에죠. 네.
민재 애써서 웃는 얼굴을 유지하며 보고 있다.
S#5. 복도
이교수가 처장 옆을 따라 붙으며 열심히 얘기하고 있다.
이교수 : 제가 그렇게 무리한 요구를 하는 건 아니잖아요. 지금까지 관례적으로 그렇게 한 예도 많았구요.
처장 : 물론 그렇게 해왔어요. 일이천만원 정도는 미리 학교에서 지원해 주고. 나중에 프로젝트비가 나오면 정산하고.
그렇게 해온 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이번 이교수 요청은 너무 액수가 커요. 얼마라구 했죠?
이교수 : ..2억.. 5천만원이요.
처장 : 허어.. (앞서 걸어가는) 예가 없어요. 예가. 학교 연구비 풀에서 그만한 돈을 먼저 요청한 예도 없고 지급한 예도 없다구요.
이교수 : (따라붙으며) 그럼 제가 선례를 만들면 안될까요. 예가 없었으면 예를 만들면 되잖아요. 네?
S#6. 처장실
들어와 소파쪽으로 앉는 처장. 계속 따라오는 이교수.
이교수 : 석달만 있으면 기업에서 2차연도 프로젝트비로 3억이 나오게 되 있어요. 그러니까 석달 후에 바로 정산할게요.
처장 : 그럼 그 때 구입하시면 되잖습니까.
이교수 : (옆의자로 붙어 앉으며) 석달동안 연구 중단하고 놀고 있으라구요? 로직애널라이즈만 사놓으면 석달 뒤에는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단 말이에요.
처장 : (피하듯 일어나 자기 책상 쪽으로 가며) 왜 손을 놓고 있어요. 이교수 랩에 다른 프로젝트들도 많잖아요.
이교수 : (따르며) 이건 아주 중요한 연구에요. 내가 알기만 해도 미국 일본 몇 개 회사에서 이거 연구하고 있어요.
우리가 늦어지면 또 이거 칩 하나 쓸때 마다 로열티 지급해야 되요. 그러니까..
처장 : (시계를 보며) 어이구 이거 또 회의 시간에 늦겠네요. 이교수 얘기는 나중에 계속하죠. (벌써 문으로 움직이는)
이교수 : (답답해서 보다가) 전 정말 이제 더 이상은 싫어요.
처장 : (멈춰 돌아보는)
이교수 : 할 수 있는 거. 돈이 없어서 시작도 못하고. 하다가 중단하고. 이런 거. 이제 더 이상은 싫다구요.
처장 : (멀뚱히 보다가) 지금 이교수 학부 학생때처럼 말하고 있는 거 알아요?
이교수 : ..(불퉁해서) 제가 그때 어땠는데요.
처장 : 그때 나한테 리포트 들고와서 비슷한 소리 했었죠. 교수님 시간 좀 더 주세요. 시간이 없어서 이렇게 대충 리포트 써오는 거
싫어요. 난 더 잘할 수 있다구요.
이교수 : 제..가요?
처장 : 내가 기억을 해요.
처장 웃으며 나가고. 이교수 혼자 남아 좀 어색해서 생각을 해본다.
S#7. 여사 기숙사 계단
경진이 배낭에 가방에 망원경 박스 등을 들고 낑낑대며 올라오고 있다.
지민이 팔랑거리며 지나가다가 보고.
지민 : 어머 경진언니.
경진 : 이름만 부르지 말고 이거 좀 들어볼래.
지민이 와서 몇 개를 들어주다가 휘청한다.
지민 : 아이구 이거 왜 이렇게 무거워. 뭐 든거야.
경진 : 그거 떨어뜨리면 넌 반죽음이야.
지민 : (겁나서) 뭔데.
경진 : 근데 305호가 워디여.
지민 : 305호?
S#8. 지원의 방
책상에서 뭔가 쓰던 지원이 돌아보면 경진과 지민이 짐가방을 들고 들어선다.
지원 일어나서 짐을 받아주며.
지원 : 내일 온다드니.
경진 : 방배정 된 김에 그냥 짐 갖구 왔어. 아이구 더워. 마실 거 없냐.
지원 : 사와야 되는데. (지민을 보면)
지민 : 잉 알았어. 돈만 줘여.
지원과 경진이 주머니를 뒤지는 동안.
지민 : 근데 어떻게 한방이 됐어? 경진언니가 떼 쓴거야. 아님 우연이야?
경진 : 넌 세상에 우연이란 게 있다고 생각하냐?
지민 : 뭐.. 있으니까 우연이란 말도 있는 거 아닌가.. ?
경진 : 40억년전에 원시 유기체 용액이 우연히 최초의 생명세포로 발전한거라고 생각하냐?
지민 : ??
경진 : 6억년 전에 세포들이 우연히 뭉쳐서 해초니 해파리니 곤충이 되었다는 거야? 다윈의 자연선택설을 따르자면
사람의 콩팥이나 눈같은 정교한 구조가 우연히 진화해서 만들어진걸까?
지민 : 나.. 아직 그런 거 안 배웠는데?
지원 : (돈 내주며 웃으며) 얘 지금 카오스 이론을 말하는거야.
경진 : 그럼 너하구 내가. 너하구 지원이가. 지원이하구 내가 만난 건 우연일까. 아니면 어떤 알 수 없는 시스템 속에서 이루어진
필연일까.
지원 : 고만해. 애 기죽잖아.
경진 : (웃지도 않고 빈 주머니 뒤집어 보이며) 현재 내 주머니 속에 한푼도 없는건 또 어떤 이론으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일까. 응?
지원 : 계속할거야?
지민 : 아이구 언니. 그냥 돈이 없다. 사주라. 이렇게 말하면 돼.
S#9. 정태/ 민재의 방
정태가 책 몇권을 들고 들어서다 보면.
민재가 방가운데.. 늘 정태가 개기던 자리에 길게 누워서 잡지를 보고 있다.
정태 : 대낮에 뭐하냐?
민재 : 이 자리, 이렇게 누워있으니까 보기보다 편한데?
정태 : 어쭈.. (웃으며 자기 책상에 책 챙겨넣으며..) 어머니껜 전화드렸어?
민재 : 어.
정태 : (돌아보는) 뭐라셔.
민재 : 대학원 떨어졌습니다. 그랬드니..
정태 : 자세한 사정도 설명드리지 왜.
민재 : 자세한 사정이란 것은 입밖에 내서 설명하다 보면 변명이 되는 거야.
정태 : 그래. 너 멋져. 그래서 어머님.. 걱정 안하셔?
민재 : 뭐. 이렇게 말씀하시대. (흉내) 그러냐? 떨어졌냐? 그럼 집에 올 거냐?
(자기 목소리) 아뇨. 끝까지 버틸건데요. (어머니 흉내) 그래? 그럼 계속 애써봐라. 끝.
정태 : (웃으며) 드디어 너도 나같이 되가는 거 아냐?
민재 : 너같이 뭐.
정태 : 집에서 내놓은 자식.
민재 : (생각해보다가 잡지 뒤적이며) 근데 너 졸업연구 아직 신청안했지.
정태 : 어. 할거야. 이번 주 내로.
민재 : (지나가는 말처럼) 이왕이면 이교수님 랩으로 하는 게 어때.
정태 : (보다가) 싫은데. 거기 못 자고 못 먹기로 유명한데잖아.
민재 : 그래도. 할만한 거 있어. (계속 보지도 않는 잡지를 뒤적이며) 예를 들면 DSP연구라든지..
정태 : 그거.. 니가 하던 거잖아. 넌.
민재 : 난.. 이번 학기는 놀거야.
정태 : ... 그래서 나보구 니 뒤를 이어서 해달라구?
민재 : 도와줄 수도 있지. 내 컴퓨터 안에 자료가 쌓여있지 아마.
정태 : ..너 지금 마치 자기 애인, 나한테 넘기는 놈같이 말하는 거 알어?
민재 : (힐끗 정태를 보더니 길게 누워버린다) 애인이라. 음.. 애인 조오치. (눈 감아버리는) 여자 꿈이나 꿔볼까.
정태 보다가 옆의 쿠션을 민재의 얼굴 위로 던져버린다.
민재, 쿠션을 치우고 정태를 보더니..
민재 : 근데 이교수님 랩에 들어가는 거, 그거 쉽지 않을걸.
S#10. 이교수 연구실
이교수 눈을 들어 보고 있다.
이교수 : 뭘 한다구?
정태 : (앞에 서서) 졸업연구를 신청하러 왔는데요.
이교수 : 남들 신청할 때 뭐하고 이제 와.
정태 : 깊이.. 생각해보느라구요. (웃는)
이교수 : 그래서.
정태 : 예?
이교수 : 졸업연구과제는 뭘로 할거냐구.
정태 : DSP에 대해서 해보고 싶은데요.
이교수 : 무슨 대답이 그래?
정태 : 예?
이교수 : 너 지금 어떻게 결혼할래? 하구 물으니까 여자랑 할건데요. 하고 대답하는 거잖아. 연구계획서는 어딨어.
정태 : (부시럭거리며 서류봉투에서 세장 정도되는 종이를 꺼내 내민다)
이교수 : (내용은 보지도 않고 휘리릭 장수를 보더니) 몇장이야.
정태 : 세장쯤 되는데요.
이교수 : (틱 던져주며) 돌아가.
정태 : 예?
이교수 : 더 할 얘기 없으니까 돌아가라구. (보고 있던 다른 서류를 펼쳐 보기 시작한다)
정태 : (말없이 보고 있다가) 뭐가 잘못됐는지 말씀해주시면 시정하겠습니다. 단지 계획서의 장수가 적은 게 문제입니까?
더 자세한 내용이 필요하면 이 자리에서 몇시간이고 브리핑 할 수 있는데요.
이교수 : (그제야 보더니) 너는 연구를 말로 하니? 연구는 몸으로 때우는 단계까지를 포함해서야.
아직도 뭐가 잘못 됐는지 모르겠니?
정태. 고개를 숙여보이고 던져진 자신의 서류를 챙겨드는데.
소리 : (전화벨소리)
이교수 : (수화기 들어서) 네 이희정입니다.. 아 처장님. ... 네?
정태. 문쪽으로 이동해가는데 이교수가 갑자기 벌떡 일어서며.
이교수 : 회의에 붙인다구요? 어머어머. 정말요?
정태 : (돌아보는)
이교수 : (좋아서 어쩔줄을 모르며) 그럼요. 책임각서 같은 거 얼마든지 쓸게요. 나중에 유진기업에서 돈 안주면 내 아파트 팔게요.
어.. 팔아봤자 그 돈이 안되나. 아. .하하. 그럼요. 그 에널라이저만 있음 바로 테스트 시작할 수 있어요. 정말 감사합니다.
너무 좋아요. 제가 처장님을 학부때부터 존경하는 거 아시죠? 정말이에요.
이교수 좋아서 떠드는데 정태 조용히 문을 열고 나간다.
S#11. 이교수 연구실 앞 복도
나서서 조용히 문을 닫은 정태. 몇걸음 걸어가다가 멈춰 교수의 방쪽을 돌아본다. 피식 웃음이 나온다.
다시 걸어가는데 이번에는 걸음걸이가 좀 더 기운차다.
S#12. 석학의 집
자현이 앉아서 자동차 잡지를 뒤적이고 있고. 그 옆에는 대욱이 스케치북에 뭔가를 그리고 있고.
(가끔 자현이 자동차 사진을 보여주면 들여다보기도 하며)
그 옆에서떠들고 있는 만수.
만수 : 니들 알지? 내가 지난 몇 달 간 DSP프로젝트의 중추적이고도 핵심적인 파아트를 담당하느라고 얼마나 불철주야
납땜질에 매달려 왔는지 알지? 알지?
자현 : (대욱에게) 어서 안다고 말해줘.
대욱 : (만수에게) 압니다. 네.
만수 : 그래그래. 그런데 고생 끝에 낙이 왔다 이거야. 우리가 연구를 계속하려구 해도 장비가 없어요.
석달 뒤. 응? 길고 긴 석달 뒤에 연구비가 들어오거든. 그때까지 우린 낮에 놀고. 밤에 자고. 술 먹고 싶음 먹고.
캬아.. 인간답게 한번 살아보는 것이야.
자현 : (대욱에게) 저런 걸 인간답게 사는거라고 하냐?
대욱 : (자현에게) 인간은 다양하잖어.
그 뒤로 정태가 다가오며 의자를 빼어 앉는다.
만수 : 아이구 정태 왔구나. 민재 뭐하냐. 민재한테 우리 이번 주 토요일날 수영장 가자구 해. 응?
정태 : 수영장은 학교 안에두 있잖아.
만수 : 거긴 비키니가 없잖어어. 비키니가 우글거리는데 응? 하이구우. (생각만 해도 좋은데)
대욱 : 야외 수영장은 문 닫았을 걸요.
만수 : 뭐? 언제. 언제 여름이 지나갔냐? 지금 몇월인데? 아직 8월 아냐?
정태 : 만수형. 랩 바쁘겠든데?
만수 : 그게 그렇지가 않대니까. 우리가 장비가 없어가지구요..
정태 : 로직 애널라이즈 말하는 거야?
만수 : 그렇지이. 그게 없어가지구..
정태 : 곧 살 모양이드라구.
만수 : 뭐? 어떻게? 무슨 돈으루?
정태 : 학교 연구비를 미리 빌렸나봐. 아까 이교수님 전화하시는 거 들었어.
만수 : (비틀거리며 일어선다) 그럴 리가.. 아니 그럴 수가 없는데..
만수 뛰어나간다.
만수와 부딪힐 뻔해서 마이클이 쟁반에 음료수를 받쳐들고 오다가.
마이클 : 만수형 돈 내고 가.
정태 : 이리 줘 내가 마실게. (하다가 앞치마까지 두른 마이클을 보고) 너 앞에 단 건 뭐냐.
마이클 : 이거 에이프론. 나 여기 잡 가졌어. 나 돈 벌어. 진영씨하구 돈 많이 벌어.
미순 : (다가오며) 보는 바와 같이 내가 군식구가 하나 더 늘었으니까 니들도 맨날 콜라만 마시지 말구 맥주도 좀 마시고.
안주도 좀 시키구 그래라. 어?
정태 : 오늘부턴 저두 좀 바쁜데요.
미순 : 민재는 왜 안오는거야? 걔 요즘 술 좀 마셔야될 시점 아냐?
S#13. 동아리방
모니터 화면에 스타크래프트의 전투 장면이 한창 벌어지고 있다.
컴 앞에서 민재가 정신없어하며 조작을 하고 있고. 그 옆에서 진수가 봐주며..
진수 : 벙커부터 지어야죠. 그대루 내보내서 다 죽이면 어뜩해요.
민재 : 가만있어봐. 저 놈들이 자꾸 쳐들어오잖아. 어어..
진수 : (한심해서 보며) 어떻게 이제까지 스타크를 한번도 안해봤어요?
민재 : 클났다. 다 죽었다.
진수 : (화면 보며) 포기해요 포기하구 다시 시작하는 게 낫겠어요.
소리 : (요란하게 터지고 부서지는 소리들..)
민재 : (속수무책으로 보며) 이게 뭐야. 이제 난 그냥 이대루 죽어야 되는거야? 우리 애들 다 죽게 냅둬야돼?
진수 : 자금이 하나도 없잖아요.
민재 : 자금이 뭐야.
진수, 한심해서 말도 하기 싫다. 일어나서 옆으로 가고.
그 뒤에서 프린트를 하던 지원이 웃으며 보고 있다.
민재 : 야. 이거 어떻게 저장하는 거라구 했지?
진수 : 저장을 뭐하러 해요. 다 죽었는데.
문이 열리며 들어서는 경진. 수첩과 볼펜을 들고 들어서며.
경진 : 뭐야. 둘밖에 없는거야?
지원 : 누구 둘을 말하는거야.
경진 : 남자 둘. 이거 참 네명은 만들어야 되는데. (수첩을 보는)
민재 : (불퉁해서 게임을 끄며) 뭐 이래. 이거 말고 딴 게임 없냐? 국산게임 줘봐. 우리가 만든 게임을 많이 해야지 임마.
경진 : 민재야 너 미팅 안할래?
민재 : 뭘해?
경진 : 미이팅. 꽃다운 음대생 네명과의 환상적인 하루저녁. 진수야. 너 이번 주 토요일에 시간 비워놔.
진수 : (웃으며 가방을 챙기며) 난 됐어요.
경진 : 야야 니가 아직 내 소문을 못 들었나본데.. 이래뵈도 퀸카와 킹카만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마담 민이라고 한다. 내가.
민재 : 몇학년들인데.
경진 : 오우 역시. 나긋나긋 아리따운 2학년들이다. 어때. 진수 너두 잔말말고 나와 알았지. 장소는..
진수 : 난 그런 거 싫은데요.
경진 : 너 여자 있냐?
진수 : (대답 못하고 가방을 둘러메는)
지원 : (웃으며 프린트물만 챙기고)
경진 : (나가려는 진수를 막아서며) 이봐. 니가 아무리 기존에 유닛이 빵빵하다고 해도 말이다.
언제나 호시탐탐. 새로운 유닛을 계속 스캔하는 걸 잊으면 안된다 이거야. 왜냐하면...
민재 : 얼마야?
경진 : 뭐가.
민재 : 니가 공짜로 미팅 주선해준 적이 없잖아.
경진 : 아아 자식. 나는 어디까지나 지구상의 평화를 위해서..에...내가 이번에 개별연구를 하는데..아주 낮은 수준의 제어시스템이
하나 필요하거든.. 그래서.. 근데 그 여자애들 진짜 이쁘다. 정말이야.
진수, 그 틈에 경진을 비켜 나가고.. 지원 혼자 웃고 있다.
S#14. 도서관 외경/ 밤
S#15. 도서관 내부
// 서가쪽
정태가 서가를 훑으며 책을 찾고 있다.
// 컴퓨터 쪽
지원이 책을 안고 오다가 문득 돌아보면 컴퓨터들 중 하나 앞에 정태가 앉아 있다.
책들을 옆에 쌓아놓고 현재는 자료들을 검색중이다.
지원, 두어걸음 다가가다가 멈춘다. 정태는 대단한 집중력으로 모니터에 빠져있다.
// 열람실 쪽
학생 하나가 하품을 하며 지나가는 뒤에 정태가 앉아서 책을 주욱죽 읽어나가고 있다.
S#16. 정태/ 민재의 방
민재가 가운데 쿠션에 누워 잠들어있다. 얼굴에 덮고 있는 잡지는 게임에 관련된 잡지이다.
그 위로 타닥타닥 타자를 치는 소리가 들린다. 정태가 책상 앞에 앉아서 뭔가를 열심히 쳐나가고 있다.
그 옆에는 책 뿐 아니라 자료 복사한 것들도 쌓여있고.
S#17. 캠퍼스 전경/ 낮
그 위로 들리는 박교수의 소리.
박교수 : 얼마라구요?
S#18. 경종민교수 랩 (칩스내)
앞에 보이는 로직 에널라이저.
옆에는 박교수와 이교수가 서있다. 그 뒤쪽으로는 명환과 남희가 서있고.
박교수 : 2억 5천만원이요? 요거 하나가? (만져보고 찔러보고)
이교수 : (불안해서) 물론 좀 비싸긴 해요. 그렇지만 이걸로 할 수 있는걸 생각해보면.. 근데 그거 그만 좀 만지시는 게 어때요.
박교수 : 햐아.. 그러니까 요게 아파트 두채 값은 되는거네. (아예 작동을 해볼 생각으로 스위치를 찾는)
이교수 : 아직 세팅 안해놓은 건데요. 그..그.. 그렇게 함부로 건드리면 안되는데..
박교수 : 그래요? 매뉴얼 있어요? 세팅하는 거 저도 도와드릴까.
이교수 : (박교수의 팔소매를 잡아 나가며) 그 전에 상의드릴 게 있는데요. 우리가 이번에 맡은 프로젝트 말이에요.
박교수 : 매뉴얼 없어요? (하며 끌려나가고..)
남희, 박교수를 불안해서 보고 있다가 명환과 시선이 마주치고 하. 하. 어색하게 웃는.
명환 : 언제나 즐거운 분이시군요.
남희 : 네.. 좀 지나치게 즐거우시긴 하죠. 하. 하.
명환 : 하. 하.
남희 : 근데 이거 뭐하는데 쓰는 거에요?
명환 : 아. 오실로스코프는 아날로그 신호를 체크하잖아요? 근데 이건 디지털 신호를 검사하는 거에요.
(근처에 있는 웨이퍼 상태의 DSP칩을 들어보이며) 우리가 만들고 있는 이 DSP의 기능을 검증하고 타이밍을 체크하고...
여러가질 할 수 있죠.
남희 : 아아.. 네에. (어색하게 웃고)
명환 : (역시 어색하게 웃는데)
들어서던 만수가 둘을 본다.
만수 : 어어. 남희선배!
남희 : 만수 왔니?
명환 : 넌 대체 어딜 돌아 다니는 거야.
만수 : (명환과 남희를 번갈아 의심스럽게 보며) 근데 왜 두분은 마주보며 미소짓고 있는 걸까.
명환 : 마. 이번 프로젝트에 박교수님께서 지원해주시기로 한 거 몰라. 그래서..
만수 : (안들린다) 그리고 두분 사이의 거리는 왜 이리 짧은거야. (둘을 떼어놓으며 사이로 끼어들며) 뭡니까. 예?
지금 두분 뭐하시는거냐고요. 명쾌하게 답변을 해보세요. 네?
명환과 남희 정말 대꾸하고 싶지도 않다.
S#19. 복도
민재와 정태가 걸어오는데 민재는 정태의 두툼한 계획서를 들춰보며 걸어오고 있다.
민재 : 아주 논문을 썼구나. 계획서가 아니구 논문이야.
정태 : (잠을 못자서 부시시한 몰골. 안떠지는 눈을 비비며) 맘에 들어. 안들어. 것만 말해봐.
민재 : 내 맘에 드냐고?
정태 : 아니 니가 잘 아는 이교수님 맘에 들겠냐고.
민재 : (멈추더니 정태를 본다) 맘에 안들어.
정태 : (멈춰서 보며) 뭐가. 어디가.
민재 : 니가 이교수님 맘에 드는 게 내 맘에 안든다구.
정태 : 무슨 말을 그렇게 비비 꼬냐.
민재 : 난 대학원에 가면 이교수님 랩으로 가고 싶어. 그런데 니가 내 라이벌이 된다는 얘기잖아. (진지하다)
정태 : (언뜻 말을 못하고 보는데)
민재 : 너, 내 라이벌이 될려면 제대로 해. 시시하게 굴면 내가 너 따라갈 재미가 없어지니까.
정태 : 너...
민재 : (그제야 피식 웃으며 정태를 퍽 치고) 응원해 주고 있는거야 지금. 잘 썼어. 아무쪼록 앞으로도 지금 같이만 해.
중간에 도망치지만 말고. (계획서 넘겨주며) 가봐.
정태 : (받아들고 좀 머뭇거리는 기분)
민재 : 가보라니까. 그 정도면 충분히 받아줄거야.
정태, 그제야 웃고 먼저 간다.
민재 가는 정태를 바라보고 있는데 미소짓고는 있지만 어쩐지 쓸쓸하다.
S#20. 경교수 랩 (칩스)
애널라이즈 옆에서 이교수와 명환 중희. 만수 등이 모여서 매뉴얼을 보며 얘기를 하고 있다가..
만수 : 어 정태 왔냐?
이교수 : (돌아보면)
정태가 들어와 서있다가 꾸벅 인사를 한다.
정태 : 졸업연구계획서 가져왔습니다.
이교수 : 그거니?
정태 : (들고있던 계획서를 준다)
이교수 : (받아서 앞의 목차부터 본다)
만수 : (낮게 정태에게) 너 여기서 졸업연구 할려구?
정태 : (끄덕이는)
만수 : (정태를 끌어 좀 옆으로 가며 소리 낮춰) 너 미쳤냐. 돌았냐?
정태 : 왜.
만수 : (거의 귀에 대고) 호랑이굴에 마녀가 사는데 거길 왜 기어들어와.
이교수 : (E) 정만수
만수 : (꿈쩍 놀라서) 예 교수님.
이교수 : 우리 랩에 책상 하나 더 놔줘야겠다. (명환과 중희를 둘러보며) 김정태가 졸업연구로 DSP를 하고 싶대니까
이번 프로젝트에 끼워서 일도 시키고. 여러 가지 가르쳐주고.
명환,중희 : 예.
이교수 : 김정태.
정태 : 예.
이교수 : 오후에 전산과 박교수님과 미팅 있는데 같이 참석하도록 해.
정태 : 감사합니다.
이교수 : 아까 어디까지 얘기했지?
중희 : (얼른 매뉴얼을 들며) 여기 연결 부분 말인데요..
정태, 미소 짓는데.
옆에서 만수가 이교수 몰래. 여기저기 치여서 꼴까닥 죽는 모습을 판토마임으로 보여준다.
S#21. 동아리방
민재가 혼자 컴퓨터 앞에 앉아있다. 게임의 효과음과 음악 소리가 시끄럽게 들리고,
민재는 옆의 매뉴얼을 봐가며 열심히 게임에 열중해있고. 방안에는 아무도 없다.
S#22. 박교수 연구실
이교수 명환 박교수 남희 정태가 둘러앉아서 회의중.
가운데 테이블에는 서류들이 가득하고..박교수는 서류를 하나 들춰보는 중.
이교수 : 총 3년짜리 프로젝트였고. 연구비는 10억이구요. 1차년도에 3억. 2차년도에 3억. 3년차 4억을 받기로 했고..
박교수 : 그러니까 현재는 어디까지 진행이 되있는거죠?
이교수 : 원래는 1년 동안 칩을 만들기로 했는데 우리가 3개월 앞섰어요.
박교수 : 오호..
이교수 : 시물레이션 상에서는 제대로 동작이 되긴 하는데요. 이제부터 기나긴 테스트를 해야되는거죠.
박교수 : 그럼 저희 쪽에서 맡아야 될 부분이란 게 퍼지 이론을 DSP칩을 통해 구현해보자.. 이런건가요?
이교수 : 현재 빠른 제어를 위해서는 병렬화가 요구되거든요. 그래서 하나의 DSP칩으로는 구현하기가 어려워요.
박교수 : 알겠네요. 그래서 여러개의 DSP칩을 병렬화해서 퍼지 제어기를 구성해보자..
이교수 : 퍼지제어를 하는 병렬 알고리즘에 대한 특허권을 갖구 계시잖아요.
박교수 : 맞다. 내가 그거 갖고 있다참.
남희 : 그럼 우리 랩에서 할 일은 이교수님께서 개발한 DSP를 이용해서 병렬구조를 설계하는 게 되겠네요.
명환 : 그리고 그것에 맞게 퍼지제어 알고리즘을 수정하고, 퍼지 제어 규칙을 설계해서 모의실험하는 순서가 되지 않을까요.
이교수 : 그렇지. 그런데..
소리 : (노크소리)
박교수 : 얼른 들어오세요.
문이 열리며 지원이 조심스레 들어서서 인사를 한다.
박교수 : 아아 지원양 잘 왔어. (이교수에게) 이번에 우리 랩에서 졸업연구를 할 학생인데요. (지원에게) 어서 와 어서.
지금 우리 아주우 재미난 일을 맡게 될 거 같거든. 지원양이 원하는 분야하고 얼추 맞는 거 같은데.
(남희에게) 남희양 그렇지? (지원에게) 거기 앉으라고. (이교수에게) 계속할까요?
이교수 : (정신없어서 보는데)
남희 : (미안해서 이교수에게) 언제나 좀 여러 가지 일을 한꺼번에 하시는 편이세요.
이교수 : (억지로 웃고 서류를 내주며) 여기 좀 보실래요.
지원이 의자가 없어서 두리번거리는데.
정태가 자기 의자를 내주더니 저만치 가서 다른 의자를 끌어온다.
지원, 의아해서 정태를 보면, 정태는 지원을 보지 않은 채 미소짓고 있다.
S#23. 캠퍼스 밤
S#24. 경교수 랩 / 밤
중희가 로직 애널라이즈 테스트를 하는 중이다.
그 옆에서 만수가 하품을 해가며 매뉴얼을 뒤적여 중희에게 보여주고 있다.
모니터에 나타나는 신호들 잠시 잡고..
S#25. 동아리방
민재가 멍하니 컴퓨터의 모니터를 바라보며 앉아있다. 손을 뒤로 깍지 끼고 의자를 비딱하게 해서 그저 보고만 있다.
모니터에서는 게임의 소리만 들리고 있고.
언제나 무언가를 바쁘게 하다가 갑자기 찾아온 빈 시간을 처치 할 수 없는...
S#26. 건물 앞 / 밤
민재가 어슬렁거리며 걸어나온다. 터덜터덜 걷는데 문득 들리는 소리.
자현 : (E) 우씨. 조명 좀 잘 비춰봐요.
돌아보면 거기 캠폴의 순찰차가 가로등 밑에 세워져있고.
자현이 본넷을 열고 들여다보고 있고. 백곰이 옆에서 랜턴을 비추고 있다.
자현, 안을 들여다보며 계속 투덜댄다.
자현 : 도대체 어떻게 차를 몰길래 일주일에 한번씩 고장을 내요?
백곰 : 글세 내가 오죽하면 너한테 부탁을 하겠냐. 이제 나 더 이상 위에다 수리비 청구 못해. 벼룩이도 낯짝이 있지.
자현 : 아저씨 얼굴이 벼룩이하고 비교가 되요?
백곰 : 거참. 이왕 해줄거 좀 선선하게 해주면 얼마나 좋냐. 너도 기분 좋고. 나도 기분 좋고.
민재 : (가까이 와 들여다보며) 뭐가 고장났어요?
백곰 : 이게 아무래도 나는 너무 크고. (차를 치며) 얘는 너무 작고 그게 문제가 아닐까.
자현 : 랜턴 좀 잘 잡아봐요오.
백곰 : (얼른 랜턴을 똑바로 비추고)
민재 : 낮에 하지. 어두운데서 뭐가 보여?
자현 : 내일 아침에 타고 다니셔야 된대잖아. (백곰에게서 아예 랜턴을 뺏어 안을 비춰보다가) 그렇지. 배터리 케이블 문제일 줄
알았어. (들고있던 드라이버로 뭔가를 ..배터리 쪽의 케이블 부분.. 건드려보는)
민재, 여기서도 별로 할 일이 없다. 괜히 차를 건드려보고.. 그러다가 지붕 위의 경광등을 만져보는데.
순간 경광등이 번쩍번쩍 웽웽 소리가 나더니 멈춘다. 민재 놀랐다가 돌아보는데..
백곰 : 된거야? 된거 같은데?
자현 운전석으로 와서 시동을 건다. 단번에 시원하게 시동이 걸린다.
백곰 좋아서 예에스 주먹을 흔드는데.
앞의 라디오 안테나가 주욱 올라오면서 커다랗게 라디오 소리가 들린다. 마감 뉴스 중이다.
어나운서 : (E) 여러 지엽적인 문제에도 불구하고 금강산 관광은 예정대로 진행 된다고 정부 관계자는 밝혔습니다. 다음 소식.
어나운스멘트가 들리는 가운데. 자현이 의기양양 운전석에서 나오며.
자현 : 이거 정비소 갖구 가면 얼마 받는지 아세요?
백곰 : 너하구 내 사이에 얼마라니. 얼마가 무슨 얼마.
자현 : 에헤. 아저씨하고 내 사이가 무슨 사인데..
민재 웃으며 그들을 보는데 라디오 뉴스는 계속된다.
어나운서 : (E) 국내 우수의 이동통신 제조업체인 유진 산업이 오늘 오후 시중 은행에 돌아온 어음 38억원을 막지 못해
최종 부도 처리되었습니다.
민재 뭐? 해서 라디오를 돌아보며.
민재 : 조용히 좀 해봐요.
백곰자현 : (돌아보는)
어나 : (E)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유진 산업은 무리한 사업확장과 구조조정의 실패로 지난달부터 자금 압박을 받아와
초단기 자금에 의존해 왔던 걸로 밝혀졌습니다.
민재 : (자현을 보며) 지금 분명히 유진산업이라고 했지?
어나 : (E) 다음 소식입니다.
자현 : 어디?
S#27. 랩 앞 복도 / 밤
명환이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자다가 나오는 것인지 흐트러진 머리 모양에 셔츠의 단추를 채우며 걸어오고 있다.
S#28. 이교수 랩 / 밤
명환,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서며.
명환 : 무슨 얘기야? 뭐가 어떻게 됐다구?
중희가 컴퓨터 앞에서 인터넷 신문 검색중. 그 옆에서 함께 들여다보고 있던 민재와 만수.
만수 : 이거 확실한 얘긴가본데요.
중희 : 내일짜 신문에 기사 나가요. 유진산업 부도 난 거 맞아요.
명환 : 이교수님은? 알구 계셔?
민재 : 좀 전에 연락 드렸어요.
명환 : (초조하여 의자에 주저앉으며) 뭐라셔.
민재 : 그냥 알았다구만..
만수 : 이럴 줄 알았다니까요. 그깐 석달을 못 참고 학교 돈 가불까지 하면서 기기 구입할 때.. 그때부터 뭔가 심상치 않았다구요.
사람은요. 쉴 때 쉴 줄 알아야 하는겁니다. 남들 다 가는 수영장도 가고 남들 다 마시는 술도 마시고..
명환 : 만수야. 부탁인데 입 좀 다물래?
만수 : 예. (자리에 앉는)
모두 심각한 분위기인데..
민재 : 그럼.. 프로젝트는 중단되는 건가요?
중희 : 끝이지 뭐. 망한 회사가 무슨 프로젝트를 하겠어. 그나저나. (명환에게) 우리 에널라이저 구입한 건 어떻게 되는거죠?
명환 : (한숨쉬며 더운듯 옷깃을 젖히며) 그거땜에 자다말구 이렇게 달려온거잖아. 학교연구비 풀어서 2억 5천만원이나 받았는데.
민재 : 그럼 어떻게 되는 건데요.
명환 : 모르겠다. 우리 교수님. 책임각서까지 쓰셨다는데..
아이들.. 모두 답답하다.
S#29. 지원/ 경진 방
경진의 침대 주위로 온갖 짐들이 너저분하게 늘어져 있는데.
경진이 침대에 걸터앉아 큰소리로 전화를 하고 있다.
경진 : 여보세요. 병석이냐? 나야 민경진. 너 내일 저녁에 뭐해. ...으흐흐 너 요즘 외롭지? 하늘과 땅 사이에 너 혼자 뿐인거 같지.
지원 책상 앞에서 일어나 돌아서다가 방의 어지러진 것을 둘러본다.
경진 : (계속) 이럴 때 누가 기가 막히게 이쁜 여자랑 미팅 시켜주면 너 무지하게 고마울 거 같지. ...그래애. 내가 누구냐.
상대는 음대생이고 2학년. 이쪽은 전자과로 모으고있는 중이다. 오냐오냐. 그렇게 말할줄 알았다. 무조건 오케이다 이거지.
그럼 자세한 내용은 내일 아침에 다시 전화하마. 끊어. (수화기를 내려놓고는 수첩에 적으며) 아이구 담부터는 일대일
소개팅만 해야지 네놈씩 끌어모을려니 힘들구만.
지원 : 민경진.
경진 : 와이.
지원 : 짐정리 언제 할거니.
경진 : 어.. 너무 지저분했지? 미안하다. 오늘 밤 안으로 싸악 치워놓을게.
지원 : 청소는 월수금은 내가 할테니까 화목토는 니가 해.
경진 : 엄마야. 청소를 맨날 하겠다고?
지원 : 전화는 꼭 필요한 게 아니면 삼가해줬음 좋겠고.
경진 : 내가 방금 너무... 떠들었나?
지원 : 그리고 이거. (둘둘 말려있는 포스터 뭉치를 들어보이며) 포스터지?
경진 : 어 그런데..
지원 : 이거 벽에 붙일거야?
경진 : (두손을 모으더니) 제발 그것만은 봐주라. 나 어려서부터 곰인형 대신에 그 포스터들 보면서 잤어. 그건. 응? 응?
지원 : (한숨 쉬어 보다가) 미팅 주선은 계속할거니?
경진 : 아니 계속은 안해. 필요한 게 있을 때만.
지원 : 그러는 넌 미팅 안해?
경진 : 미팅을 뭐할라고 해. 시간 없애고. 돈 없애고. 감정 소비하고.
지원 : (자기 침대에 놓인 경진의 짐들을 내리며) 넌 남자친구 없어? 미국에서두?
경진 : 내가 말했잖아. 내 꿈. 우주의 지배자. 그렇게 되면 온 우주의 남자가 다 내껀데 뭐하러 미리 애써서 만드냐.
지원 : (어이없어 웃는데)
소리 : (전화벨소리)
경진 : (얼른 받아서) 네에 구지원 민경진 방입니다. 민재냐? 왜. 지원이 여깄어. 잠깐.. (바꾸려다가) 아 너 내일 저녁 미팅 시간
잘 지켜. 빨래한 옷 입고 나오고. 노래방값 정도는 갖고 나와라. 알았지? (대답들을 생각도 없이 수화기를 지원에게 건넨다)
지원 : (받아서) 나야 지원이. 왜? 정태? 아까 회의 끝내구 도서관 간다고 하든데?
S#30. 도서관 내부 / 밤
민재 두리번거리며 걸어오다가 정태를 발견한다.
정태는 서가 옆에 선 채로 책을 읽고 있다.
민재 옆으로 와 설 때까지 정태는 꼼짝않고 책에 몰두해있다.
민재, 정태의 눈 앞에 손을 흔들어 보인다.
정태 멍한 눈으로 민재를 보더니 다시 고개를 숙여 책을 읽는다.
민재, 익숙한 모습이다. 한숨 쉬고. 정태의 책을 뺏어서 덮고.
민재 : 나와봐. 문제가 생겼어.
S#31. 도서관 외부 / 밤
정태와 민재 나란히 걸어오다가 정태, 먼저 멈춰서더니.
정태 : 젠장. 모처럼 맘잡고 공부 좀 할려구 했더니.
민재 : 그래 나도 너 그런 모습 오랜만에 본다.
정태 : 그럼 이교수님이 돈을 물어내야 되는거야?
민재 : 이교수님이 무슨 재벌이냐? 그 많은 돈을 어떻게 물어내.
정태 : 그럼.
민재 : 내일 쯤 연구위 회의가 있겠지.
정태 : 뭐하자는 회의.
민재 : 뭐.. 무슨 징계..이런 거 의논하지 않을까.
정태 : 바보들 아냐. 그 돈으로 밥 사먹은 것두 아니고. 옷 사입은 것도 아니고. 연구하자고 그런건데.
민재 : 그러니까 징계 정도로 끝나는거지.
정태 : 그 놈의 기계가 얼마라 그랬지?
민재 : 2억 5천이랬나.
정태 : 그럼 우리가 어느 회사 가서 몸 팔아봤자 안되겠네.
민재 : (보다가) 니가 그렇게 이교수님을 좋아하는 줄 몰랐다.
정태 : ..나도 몰랐어. ...아아 짜증나. (머리를 긁더니) 근데 말야. 이번에 이교수님이 개발한 DSP칩. 이거 무지하게 재밌드라.
너 어디까지 참여했었냐?
민재 : (어이없어 보는)
S#32. 캠퍼스 / 아침
S#33. 회의실 앞
교수들이 하나둘씩 들어가고 있다. (주로 보직 교수들입니다만)
그 중에는 옆의 교수와 얘기를 하며 들어가는 서교수의 모습도 보인다.
뒤에 오던 처장. 마악 들어가려다가 돌아보면 이교수가 거기 오고 있다.
이교수는 처장을 보더니 고개를 숙여 인사를 한다. 처장 이교수에게 가까이 간다.
이교수 : 면목없습니다.
처장 : 너무 심각하게 생각할 거 없어요. 자 일단 들어가서 이해를 구해봅시다.
처장, 이교수의 등을 밀어 들어간다.
문이 닫기고 난 뒤 닫겨진 문 위에 붙여진 [긴급 연구위원회 회의장]이라고 쓰인 종이가 보이고.
잠시 후 저만치에서 박교수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숨을 고르고 얌전히 들어간다.
닫긴 문 위로 들리기 시작하는 서교수의 소리. (경위서를 낭독 중이다)
서교수 : (E) 이희정 교수는 해당 프로젝트의 연구비가 입금되기도 전에 학교 연구비 풀에서 2억 5천만원을 선인출.
S#34. 회의장 내부
원탁에 둘러앉은 교수들.. 제일 상석에 앉은 처장. (위원장임)
이교수는 문 앞쪽 개인 좌석에 앉아있는데 그 옆에는 박교수가 앉아있다.
서교수가 경위서를 읽고 있는 중이다.
서교수 : (계속) 로직 애널라이저를 구입하여 연구를 진행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유진 기업의 갑작스러운 부도로 인해 프로젝트의
계속 진행이 불가능해짐에 따라, 기지출된 연구비 풀의 자금은 회수가 불가능하게 된 바,
이의 사후처리를 위해 오늘 연구위원 회가 개최되었습니다.
서교수의 낭독이 끝나자 다들 묵묵히 경위서를 뒤적여보는 분위기.
누가 먼저 말을 꺼내기가 어려운 분위기다. 답답한 침묵이 흐르고..
이교수 꼿꼿하게 고개를 들고 앉아있고.
그 옆의 박교수는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이교수가 들고 있는 경위서를 가져다 읽어본다.
처장 : 자 기탄없이 의견들을 말씀해주시지요.
교수1 : 글세요. 열심히 하려다가 이렇게 된건데 참.. 뭐라 말을 해야 될 지 모르겠습니다.
박교수 : 뭐 길게 얘기할 것두 없잖아요. 이왕 이렇게 된 거 그 에널라이 저는 학교에서 구입한 걸루다 하구요. 그리구..
처장 : 박교수.
박교수 : 저요?
처장 : 박교수께선 오늘 참고인 자격으로 오신 거니까. 일단 위원교수들 의 의견을 듣고.
질문이 있으면 그때 말씀을 하는 게 좋을거에요.
박교수 : ... 그러죠. (다시 깊숙이 앉는.. 그러다 이교수의 눈치를 보면)
이교수 : (여전히 같은 표정, 자세로 앉아있다)
오교수 :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 연구가 그렇게 급한 거였습니까?
이교수 : (보는)
오교수 : 2억5천만원이나 하는 기기를 학교 자금으로 구입할 만큼 그렇게 급한 연구였는지 그걸 먼저 알고 싶은데요.
이교수 : 그건..
오교수 : 그 정도의 금액을 먼저 사용하려면 회사쪽 사정이 어떤지 먼저 확인을 하고 나서 자금 지원을 요청하는 게
순서 아닐까요.
이교수 : 물론 회사쪽하고는 수시로 연락은 하고 있었습니다.
오교수 : 수시로 연락을 하고 있었다면 회사가 부도 직전이란 걸 미리 알았을 가능성도 있겠군요.
서교수 : 설마 이교수께서 부도가 날거라는 걸 미리 알면서도 학교 자금을 끌어 썼겠어요?
오교수 : 모든 가능성을 타진해보고 있는 겁니다. 우리 다 연구 욕심이 어떤 거라는 걸 알고 있어요. 아주 욕심이 나는 연구가
중단될 위기에 처했다.. 그런데 꼭 필요한 기기가 있다. 이럴 때 그 기기를 어떤 방법으로든 미리 구입해두고 싶을 수도
있지요.
박교수 : (오교수가 말하는 도중에 끼어들고 싶어 움찔거리고 있는)
서교수 : 말씀이 너무 과하십니다. 이교수께서 그럴 분도 아니구요. 이 자리는 사후 대책을 논의하자는 자리지.
잘잘못을 판단해서, 무슨 재판하는 자리가 아니잖아요.
오교수 : (여전히 냉정하게.. 흔들림없이) 자기 연구가 중요하면 그만큼 남의 연구도 중요한 겁니다.
이교수가 축낸 2억 5천은 다른 교수 들의 프로젝트비에서 벌충할 수 밖에 없는 거에요.
서교수, 더 할말이 없어서 이교수를 돌아보면.
이교수는 그저 시선을 아래로 내린 채 모든 걸 감수하겠다는 자세로 앉아있다.
오교수 : 물론 같은 교수의 입장에서 마음은 아픕니다만.. 이런 경우 그냥 넘어갈 수는 없다고 봅니다.
다른 교수들 두런두런 옆교수와 얘기를 나누고..
처장, 마음이 안좋아서 앞에 놓인 서류만 뒤적거리는데.
아까부터 꼼지락거리고 있던 박교수가 못 참고 손을 번쩍 들더니.
박교수 : 저도 한마디만 하면 안될까요. 한마디만.
처장 : 말씀하세요.
박교수 : (아예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이 회의를 일주일만 연기하면 안될까요.
처장과 다른 교수들.. 어이없어 쳐다보고..
박교수 : (처장에게) 그 무슨 기업이라구 했죠? 부도난 데.
처장 : 유진산업이요?
박교수 : 그렇죠. 거기서 돈을 못 대준다. 그래서 미리 구입한 기기 값을 갚을 수가 없다. 지금 이게 문제죠?
그럼 해결은 아주 간단해요. 다른 회사를 잡으면 됩니다. 그래서 그 회사에서 돈 내게 하고 그 돈으로 기기 값을 갚고.
그럼 디 앤드. 다 끝나는거죠?
의기양양해서 교수들을 둘러본다. 오교수 잠자코 보고 있다가.. 이교수에게.
오교수 : 이교수님.
이교수 : 네.
오교수 : 그 회사가 부도가 날거라는 거, 정말 몰랐습니까?
이교수 : (울컥하는 기분. 똑바로 오교수를 보고) 몰랐습니다. 제가 관심을 둔 건, 어떻게 하면 기한 내에 Tape-out을 할 수 있을지
어떻게 해야 제대로 Fab-out을 할 수 있을지 그런 것 뿐이었습니다.
자막 :
모두 조용한 가운데. 이교수는 똑바로 오교수를 보고 있고.
오교수. 그 시선을 받다가 천천히 앞의 경위서를 넘겨본다.
(오교수는 나쁜 사람은 아닙니다. 완벽주의자에 가깝고 좀 냉정하다고 할까요)
S#35. 동아리방
남희와 지원, 정태, 민재, 진수가 있는 상황. 모두 둘러앉아 남희의 설명을 듣고 있다.
남희 : 그래서 일주일의 여유를 받아내셨대. 우리 박교수님이.
진수 : 겨우 일주일로 다른 기업을 찾아낸다는 건 말도 안되요.
남희 : 우리 교수님이 언제는 말되는 말을 하시는 거 봤니?
정태 : 그래서 일주일 내에 다른 기업을 못 잡게 되면 어떻게 되는 거죠?
남희 : 정직...정도 받게 되지 않을까? 이교수님..
정태 : (화가 나고..)
남희 : 그치만 한번 기다려보자구. 우리 교수님이 항상 말이 안되는 말씀을 하시는데 그게 말이 될 때도 많거든.
민재 : 우리 랩 선배들한테도 얘기해줘야 되는 거 아냐?
정태 : 아. 얘기해주고 올게. (벌떡 일어나 나가며) 대체 우리나라에 그 많은 돈들, 어디에 다 쌓여있는거야.
정태가 문을 쾅 닫고. 민재 엉거주춤 일어났다가 도로 앉으며.
민재 : 이젠 우리 랩이 아니지 참. (혼자 웃는)
지원 : (그런 민재를 돌아보며) 오늘 미팅 아니었어?
민재 : 미팅? (시계를 들여다보더니) 아이구. (얼른 일어나 나가려다가 돌아오더니 남희에게)
근데 미팅에서 첨 만난 여자한텐 반말을 해요. 존댓말을 해요?
남희 : 모르는 사인데 반말로 시작하는 건 좀 그렇잖아?
민재 : 상대는 2학년이래는데요.
남희 : 넌 후배랑 미팅하니? 미팅은 여자랑 하는거지이.
민재 : 아..
민재, 나간다. 지원과 진수, 웃는데..
남희 : (지원에게) 이번 프로젝트 할 수 있었음 좋았을텐데. 지원이 니 졸업연구과제로 삼아도 좋을 뻔 했잖어.
지원 : 그러게 말이에요. 이 기회에 전자과 연구도 같이 해 보려구 했는데..
진수 : (지원을 돌아보는)
S#36. 건물 앞
경진이 시계를 들여다보며 초조해서 입구를 본다.
몇 명의 학생 뒤로 민재가 걸어나오는데 별로 급하지가 않다.
경진 : 아이구 이민재. 이 세상 모든 여자가 다 너를 기다려줄 줄 아냐. 다른 애들은 벌써 출발시켰어.
(시계보며) 빨랑 뛰면 아슬아슬 도착하겠다. 가자.. (민재를 끌어당기는데)
민재 : 민경진.
경진 : 왜애.
민재 : 영 맘이 안 내키는데.
경진 : (휙 돌아보는)
민재 : 진짜 미안한데.. 지금 이교수님 일이랑.. 뭐.. 여러 가지. 맘이 복잡해.
경진 : 맘이 복잡한 거 하구 미팅하는 거 하구 상관관계를 설명해봐.
민재 : 미팅이라는 게.. 모르는 사람들끼리 만나서 수인사를 하는건데.. 이런 맘으로 누구를 만나서.. 건성으로 대화를 하고..
그런 건.. 실례잖어.
경진 : 실례?
민재 : 그래. 이런 건 시간 내서 나와준 상대에게 미안한 일이라고 생각하는데.
경진 : (한숨을 쉬더니 머리를 긁고 팔짱을 끼고.. 다시 민재를 보고..) 너 요기 요자리에 고대로 가만있어봐.
하더니 경진 재빨리 주위를 살피다가 한곳을 보고 소리지른다.
경진 : 마이크을..
보드를 들고 오던 마이클이 하이... 손을 흔들어댄다.
경진 : (마주가서 들고 있던 복사 종이 한 장을 쥐어주며) 요거 약도거든.
마이클 : 약도? 맵?
경진 : 고기 있는 까페로 지금부터 뛰어가. 알았지.
마이클 : 뛰어가? 왜?
경진 : 가면 4학년 형들이 세명 앉아있을거야. 가서 인사하고. 그리고 옆에 앉으면 돼. 알았어 몰랐어.
마이클 : 몰랐어. 왜 그래야돼요?
경진 : 미팅이야. 너무너무 이쁜 아가씨들하고 미팅.
마이클 : 와우 미팅. 데이트.
경진 : 얼른 가. 벌써 늦었어. 얼른.
마이클 : 오케이 오케이. (자기도 급해서 달려간다)
경진 : (민재쪽으로 오며) 이제 우리 얘기 좀 하자.
민재 : 정말 미안하게 됐다.
경진 : 글세 그 미안한 마음을 뭔가로 보여줘야 되지 않겠나..이거지. 내말은.. (하는데)
마이클 : (헐레벌떡 다시 뛰어오더니) 누나 나 미팅 못해.
경진 : (발을 구르고 싶은 심정) 왜애애.
마이클 : 진영씨가 슬퍼해.
경진 : 절대 비밀로 하면 되잖아아.
마이클 : 비밀?
경진 : 그래 임마. 자고로 비밀을 간직한 남자가 진짜 멋진 남자인 법이야. 그거 몰랐어?
마이클 : 몰랐어.
경진 : 그러니까 빨랑 가서 비밀을 만들어 제발.
마이클 : 오우.
마이클 아직 이해는 안가지만 다시 간다. 경진 이마의 땀을 닦으며 민재를 돌아보고..
경진 : 근데 그.. 이교수님 일이라는 게 뭐야?
S#37. 동아리방
진수가 테이블 위에 로봇을 굴리다가 고개 들어 본다.
그 앞에서 지원이 등을 보인 채 앉아 컴퓨터의 부팅을 시키고 있다.
진수 : 나 가을 학기에 박교수님 랩에서 개별연구 신청했어요.
지원 : 그랬니?
진수 : 나로선 아주 복잡한 알고리즘 하나를 풀어가는 기분이에요.
지원 : (그제야 돌아보는)
진수 : 알고리즘을 정의하자면 유한한 단계를 통해 문제의 해나 질문의 답을 체계적으로 구하는 수학적 과정.. 이렇게 되겠죠.
지원 : 지금 니 개별연구 얘기하는 거야?
진수 : (그 말엔 대꾸 안하고) 문제 또는 질문은 정수 a는 소수인가. 아니면 두 정수 a와 b의 최대공약수는 무엇인가..
이런거처럼 무한개의 원소를 가져야 되는거구요.
지원 : ...너 나한테 하고 싶은 말 있니?
진수 : a를 누나로 놓고, b를 나로 놓고 풀어보는 중이라구요.
지원 : (보는)
진수 : 이 연구가 잘 되면 혹시 알아요? 사람 사이의 감정도 컴퓨터에 넣고 연산결과를 얻어낼 수 있게 될지 모르잖아요.
지원 : (웃지도 않고 보고 있다가) 그게 성공하게 되면 먼저 특허신청을 하는 게 좋을거야. 비싸게 팔릴거니까.
(돌아 앉더니 작업을 시작한다)
진수 그런 지원을 보고 혼자 웃더니, 만지고 있던 로봇을 아래 판에 올려놓는다.
S#38. 캠퍼스 일각/ 밤
어두운 밤. 교정은 조용하고.. 이따금 가로등 불빛만..
중앙로길을 차 한대가 헤드라이트를 비추며 느린 속도로 달려오다가 점점 속도가 느려지더니 길가에 세운다.
운전석의 이교수가 가로등 불빛 밑으로 보인다.
이교수, 핸들에 팔을 얹고 무심하게 앞으로 보고 있다가.
실내등을 켜더니 옆 좌석에 놓았던 여러장의 종이를 들어 본다.
종이에는 각 기업의 이름과 연구실 기획실의 전화번호 등이 주루루 프린트되어 있는데.
대부분의 이름 옆에 거칠게 X자가 그어져 있다.
그 중에 아무 표시가 안 된 기업을 손가락으로 짚어보다가... 문득 한쪽을 돌아본다. 그 쪽에는 학생회관이 서있다.
S#39. 석학의 집
미순이 진영과 바 쪽에 나란히 서서. 현재 미순은 힙합댄스의 모션 하나를 연구중이다.
(음악은 안나오는 중. 폐점 시간이라 손님은 아무도 없고)
미순 : (손짓을 해가며) 이게 이렇게 하드라구. 이렇게 이렇게..
진영 : 노래를 하면서 해봐요. 힙합은 리듬이 생명인데 리듬을 타봐야죠.
미순 : 노래?
생각해보다가 요즘 유행하는 노래 하나를 하면서 모션을 취해본다.
카메라에 대고 손가락질을 하는 흉내까지 내가며 점점 신이 나서 돌아서다가 히익...해서 선다.
입구에 이교수가 어정쩡하니 서서 보고 있다.
미순 : 에구 교수님 웬일이세요.
이교수 : 아.. 저.. (손님없는 실내를 둘러보며) 문닫을 시간이 넘었나보죠.
미순 : 아 뭐 까짓거 내가 사장인데 문이야 내 맘대로 닫으면 되구요. 일루 앉으세요. 뭐 드릴까. 맥주 하시나?
이교수 : 아니 그냥.. 지나가다가 불이 켜져 있길래.. 마침 목도 마르고..
미순 : (이교수를 이끌어 자리로 안내하며) 잘 오셨어요. 진영아 맥주 시원한 거 있지.
진영 : 네에.. (급해서 안으로 들어가려는데)
미순 : 거 뭣이냐. 특별 서비스 안주 다 내오고.
이교수 : 저 조금만 앉았다 갈거에요.
미순 : 거 무슨 섭한 말씀을 하십네까. 이 고미순. 어쩐지 오늘은 대화할 상대가 필요했걸랑요.
보아하니 교수님도 그러신 모양인데 우리 오늘 밤, 대화를 해보죠. 밤의 대화.
// 시디 플레이어에서 음악이 나오고.. 그 옆에 진영이 졸고 있고.
테이블에는 맥주잔에 반 넘어 비어있고. 미순과 이교수가 마주앉아 대작 중이다.
미순 : 인간 고미순. 아직 시집을 한번도 못갔어요. 남들은 두 번 세 번도 간다드만 내는 아직 한번도 못 갔다고요.
이교수 : 그건 저두 마찬가진데요.
미순 : 따라서 자식새끼 하나 없어요. 이 무슨 우울한 팔자냐.. 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꿈이 있어요.
뭐냐. 바로 요 자리에서 환갑잔치를 하는 겁니다.
이교수 : 환갑잔치요?
미순 : 그렇죠. 그 있잖아요. 나이 육십 넘으면 하는 거.
이교수 : 그걸 여기서 하신다구요.
미순 : 바로 그겁니다. 그때에. 여기가 미어터지게 우리집 단골했던 학생들이 와주는 거. 그게 내 꿈입니다.
나이 스무살짜리 애들부터 나이 사십이 넘은 박사들이 우루루 와서 나하구 같이 환갑 잔치 술을 마시는 거.
에.. 교수님 듣기엔 좀 우습죠이.
이교수 : ..아니요. (따스해져서 웃는)
미순 : 뭐.. 교수님같은 분이야 환갑잔치를 하면 대강당이 터지게 제자들이 와주겠지만요.
저야 그저 요기.. 요 가게 메꿀만큼만 와주면 소원이 없겠다.. 이것이죠.
이교수 : ...좋으네요. 그런 꿈. (끄덕이는)
미순 : 교수님은 소원이 뭣인지 여쭤봐도 될랑가 모르겠네요.
이교수 : 난.. (그냥 웃는)
미순 : 로봇 축구를 지도하시는 분이니까 그 뭐냐. 스타워즈에 나오는 그런 로봇 만드는 것이 소원이실까?
이교수 : 글세요. 난.. (여전히 대답을 못하는)
미순 : 어라.. 우리 교수님 술 떨어졌네. 가만 계셔보셔요. 내가 특급 맥주로다가 더 가져올테니까.
미순 부지런히 일어나 가고.. 남은 이교수, 혼자 생각에 잠긴다.
S#40. 위성중계소 / 낮
위성이 돌아가는 모습..
잠시 보여지고 그 위로 전화 신호음이 가는 소리가 들리고.
소리 : (신호음.. / 전화 받는 소리)
박교수 : (E) 박기훈입니다. 어디십니까?
서교수 : (E) 박교수? 나야.
S#41. 인공위성실 내 서교수 연구실
서교수가 전화를 하고 있다.
서교수 : 이교수가 개발한다는 DSP칩 말이야. 그거 자세한 내용 알지? 우리 연구실하고 잘 아는 기업 중에 광통신용 모듈을
생산하는 데가 있거든. 거기서 초고속 DSP칩에 광소자를 집적해가지고 광중계기로 사용하려고 하나봐.
현재 그거 연구해줄 데를 찾고 있대. 이교수 프로젝트, 일루 연결시킬 수 없나?
S#42. 이교수 랩/ 낮
랩식구들이 각자 정신없이 자료들을 준비하고 있다. 프린트를 하기도 하고, 컴에서 자료를 뽑기도 하고. 그 중에는 정태도 있다.
민재는 없고. 정태 재빨리 서류들을 철해서 명환에게 넘기고 있고.
명환 : (넘겨주는 자료들을 챙기며) 정만수.
만수 : (뭔가 하고 있다가) 예 선배님.
명환 : 세미나실 먼저 가있어. 음료수랑 준비해놓고.
만수 : 에이. (달려나가고)
명환 : 지금 몇시야.
정태 : (시계보며) 두시 10분전이요.
명환 : 중희야.
중희 : (컴 앞에서 작업하며) 예.
명환 : 시뮬레이션 자료들은 다 준비 된거야?
S#43. 복도
이교수와 박교수가 빠른 걸음으로 오며.
이교수 : 이 기업은 재무구조 튼튼하겠죠? 중간에 부도나거나 그러진 않겠지요?
박교수 : 사실은.. 에.. (멈추더니 주위를 살핀다)
이교수 : (따라서 긴장해 보는)
박교수 : (은밀하게) 사실은 제가 어제 밤에 그 회사 사정을 샅샅이 검색해봤거든요.
이교수 : ..그래서요?
박교수 : (손가락으로 동그라미를 그려보이며) 걱정 없습니다. 그러니까 걱정마세요.
이교수 : (겨우 안심이 되서) ..고마워요. 저녁에 서교수랑 두분께 제가 저녁 살게요.
박교수 : 저녁만요? 술은요?
이교수 웃고 앞서는..
S#44. 세미나실
명환이 스크린 앞에서 브리핑 중. 앞에는 이교수 박교수 남희 중희.
그리고 회사간부인 듯한 40대의 남자 둘이 앉아서 듣고 있다.
명환 : 저희가 개발하고 있는 것은 GaAs를 이용해서 기존의 실리콘베 이스의 RF칩보다 빠른 RF칩입니다.
먼저 갈륨아세나이드베이스를 사용하면 Noise를 실리콘보다 작게 줄일 수 있고 속도가 매우 빨라집니다.
그리고 MMIC 기술과 MCM 팩키지 기술을 이용해서 기존의 통신단말기의 고주파 영역모듈과 저주파 영역 모듈을
하나의 칩으로 집적하는 기술이 이 프로젝트의 주된 내용입니다.
// (시간경과)
세미나실 내에는 전등불이 들어와있고. 모두 둘러앉아 회의하는 분위기.
이교수 : 갈륨아세나이드 기판을 이용한 초고속 통신 모듈칩은 이미 카이스트 갈륨아세나이드 칩 제작 연구실에
제작 의뢰한 상탭니다.
간부1 : 예. 아주 놀랍습니다. 아주 인상적이에요.
하더니 옆의 간부와 뭐라 수근거리기 시작한다.
이교수, 저도 모르게 긴장해서 슬쩍 그들을 보고 있고. 다른 이들도 긴장되긴 마찬가진데..
숙의를 끝냈는지..
간부1 : 저희로선 교수님 연구실에 의뢰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습니다. (웃으며) 그런데 몇가지 조건이 있는데요.
이교수 : 말씀하세요.
간부1 : 첫째는 생산을 이곳 학교에서 해주십사는 겁니다.
이교수 : 학교당국하고 얘기해봐야겠지만 별 무리는 없을거라고 봐요. 이미 그런 예들이 있으니까요.
간부2 : 두 번째는 (자료를 뒤지며) 현재 예상되는 수율이 약 30퍼센트 내외로 나와있던데..
자막 : 수율 : Yield - 전 공정을 한번 수행했을 때 정상동작하는 칩의 퍼센테이지.
간부2 : (계속) 이걸 최소한 50퍼센트 이상으로 올려줘야겠다는 겁니다.
이교수 : 그건 저희도 이미 생각해 놓은 게 있는데요. 32페이지를 봐주세요.
사람들 자료를 뒤지고. 박교수도 가벼운 마음으로 뒤진다.
이교수 : 거기 갈륨아세나이드 라인에서 광소자와 전자모듈간의 집적에 대한 부분이 있죠? 이때 광소자의 제작에는 C/2라는
물질이 기존에 사용되어 왔었는데요. 그 대신 메조클로로플로린이라는 물질을 사용할 생각이에요.
박교수 : (문득 찌푸려서 그 부분을 자세히 읽는다)
이교수 : (E) 그렇게 되면 프로젝트 수행기간 내에 그만한 수율을 맞출 수 있게 될겁니다.
간부1 : (E) 호오 그래요. 그럼 마지막 조건인데요. 우린 이걸 광중계기용으로 사용할 생각이니까 광소자를 DSP칩에
집적해줘야되거든요.
박교수 여전히 생각을 하고 있다. 뭔가 머리 속에서 마구 돌아가고 있는 중.
S#45. 박교수 연구실
정태와 지원이 테이블 주위에 서서 자료들을 정리하고 있다.
그 때 문이 열리며 박교수와 이교수가 들어선다.
이교수는 아주 기분이 좋아져있고. 박교수는 아직도 생각에 빠져있다.
정태 : 다녀오셨습니까?
이교수 : 어 그래.
지원 : 자료 정리는 다 끝내놨는데요.
이교수 : 그래 니들두 이번에 수고 많았다. (박교수에게) 서교수께 전화 넣어보죠. 저녁 시간 다 되가는데.
박교수 : (이교수를 향해 천천이 돌아서는)
이교수 : 내가 전화할까요?
박교수 : 아까 말씀하신 메조클로로플로린 말입니다.
이교수 : 네?
박교수 : 그게 없으면 기업에서 요구한 수율을 맞출 수 없는 건가요?
이교수 : 그런 셈이죠. 왜요?
박교수 : 그거 어떤 물질인지 아세요?
이교수 : 어떤 물질이라니.. 어떤 점에서요?
박교수 : 아까부터 그 이름이 낯이 익어서 잘 생각해봤는데요. 그거 저 미국 대학에 있을 때 한동안 문제가 됐던 물질이었다는 게
기억났어요.
이교수 : (보는)
박교수 : 거기에 불소 성분이 있죠?
이교수 : ...있어요.
박교수 : 오존층 파괴물질로 판명이 났었죠. 그거. 그래서 그걸 이용해서 연구하던 미국내 프로젝트 하나가 중단됐었어요.
내가 알기로 수십억불짜리 연구였는데 말이죠.
이교수 : (말없이 보다가) 그래서요?
박교수 : 그래서요..라니요?
정태와 지원. 심상치 않아서 눈치를 보고 있다.
이교수 : 내가 알기로 이 물질, 우리나라에선 아직 사용금지가 된 적이 없는데. 뭐가 문제가 되는거죠?
박교수 : (굳은 얼굴로 보다가) 방금 하신 말씀. 무슨 뜻으로 하신건지 물어봐도 될까요?
의아해서 보고 있는 두 학생.
그리고 그렇게 마주보는 두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