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하이부르스
일정 2007년 8월 20일~8월 27일
金海空港出發 상하이 푸둥(포동공항도착)
스타렉스차가 나왔다. 한국보다 엄청 덥다.(한국 32도정도 중국 35도정도)
꾸베이古北 ‘임비곰비’식당으로 가서 깨끗한 한식으로 식사를 했다. 아직까지는 중국이 실감이 나지를 않는다. 옛날 먹고살기 힘들어 북간도로 이주하여 터 잡은 조선족의 힘이 지금의 신선족으로 가득하다. 朝鮮族 (과거 못 살 때의 한국인)→ 新鮮族(한류열풍 이후의 한국인) 어디가나 한국간판 한국말 여기가 한국인가 중국인가.
은혜샘 언니가 운영하는 友莉米糕廠 <WOOREE RICE CAKE> ‘우리떡카페’으로 갔다. 떡 이름과 식혜 팥빙수 등의 메뉴가 한지에 적혀있다. 모시 발을 친 창가에 앉아 팥빙수를 먹었다. 대학생들이 상해여행 중 명소로 인터넷에 자주 올린다고 한다.
와이탄(外灘)으로 가 ‘동양의 빛나는 진주’라는 <東方明珠>탑. 근대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수많은 우여곡절을 겪은 상하이 역사를 재현해놓은 <近代史博物館>을 관람했다. 그동안 중국어를 공부해서 인지, 고향에 돌아온 듯 모두가 자연스럽다. 나는 아무래도 오래전 중국의 후예였던 것 같다.
우먼루 (澳門路)에 있는 <홍자지>(紅子鷄-우리식으로 발음하면 성난 남정네 거시기) 라는 중국음식점은 얼마나 큰지 종업원들이 음식을 들고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다닌다. 어마어마하면 뭘 하나. 물 차 음식 물수건 휴지를 일일이 다 계산을 한다. 한국은 밥만 먹으면 마음대로 물마시고, 빈 컵 사용하고, 과일 먹고, 커피까지 다 서비스로 마셨으니, 적응이 안 되어 뭐든지 “미엔페이”(免費) 공짜냐고 물어야하는 수고에 간이 오그라들기 시작. 다른 건 그렇다 치고 물 인심 참 사납다.
저녁식사 후, 상하이 시내를 관통하는 황푸 강. 누런 흙탕물이 흐르는 ‘상하이의 젖줄’이라는 <푸동강>浦江游覽으로 야경을 보기위해 선착장으로 가는 도중 앞에 ‘實習’이라는 차가 보인다. 우리나라로 치자면 ‘초보운전’ 표시란다. 상해택시의 고유글자는 ‘滬’자를 쓰는데 거리에 ‘蘇’자도 많이 보인다. 소자는 호자에 비해 10분의 1가량 등록세가 싸다는데, 그 대신 아침저녁 출퇴근시간에 고가도로 등의 편리한 길을 통행할 수 없다고 한다. 말이 사회주의지 도로에 차들도 돈대로 움직임이 보인다.
유람선에서 바라보이는 푸동浦東(강남)과 푸시浦西(강북)가 나란히 마주하고 있다. 과거의 아픈 역사를 (독일 영국 프랑스 일본) 를 그대로 간직하여 관광화 시키는 중국은 역시 華商(장사꾼)들이다. 휘황찬란한 건물들이 하나도 같은 것이 없다. 건축미학이 세계 속에 ‘건축전시장’ 이라 하더니 아름답다. 그중 LG 간판이 가장 자랑스럽다.
상하이 꾸베이(古北)에서 가장 좋다는 ‘名都城’ 아파트단지에는 외국인이 80%라는데, 그중 한국인이 많다고 한다. 곳곳에 대일학원, 어학원, 24시불가마, 한국간판이 즐비하다. 우리가 머무는 곳은 <保利名苑>이다. 연희동이나 일산의 빌라쯤의 수준으로 1층은 거실, 2층은 식당과 주방이 있으며, 나와 남편이 머물 손님방이 있다. 3층은 부부침실과 아이들 방이 있는 잔디와 건물이 예쁜 주거단지다. 입구부터 경비원이 있어 일일이 드나들 때마다 방문을 확인하니, 문을 열어놓고 잘 수 있을 정도의 치안이 되어있다. 일단 여행준비로 들떴던 심신을 따뜻한 물에 씻어냈다. 물에서 중국의 흙냄새가 난다.
8월 21일 화요일
<우리떡집> 견학을 갔다. 한국에서 시장 속에 있는 떡 방앗간을 연상하고 갔는데 웬걸. 시내 외곽에 위치한 공장은 1800평의 대단지 공장이다. 공장안은 벽으로 칸 지어져, 곡식을 쌓는 창고, 자동화 기계로 가루를 부스는 방, 떡을 찌는 방, 등등 실험실 직원들 탈의실 균실험실 위생실 화장실 포장실 사무실 휴게실 등등 시설이 완벽하게 갖추어져있다. 직원도 40여명이나 된다고 한다. 누가 중국을 더럽다고 했나. 시설을 다 갖추지 않으면 허가를 내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허가를 받은 후의 관리는 소홀하다고 한다. 언니부부는 1년씩의 연장으로 10년을 살고 있는데, 외국인이 지불해야하는 돈이 만만치 않다고. 결국 거대 중국을 키우고 있는 셈이다.
靑浦城區 <朱家角>으로 가는 길, 사방을 둘러봐도 평야다. 三國志의 근원지라고 하니, 그 넓은 곡창지대를 서로 차지하려고 왜들 싸우지 않았겠는가. ‘강남 갔던 제비가 돌아온다. 는 말이 이곳을 두고 하는 말이라나. 주가각에서 배를 타고 옛 주택의 골목골목을 돌았다.
도시의 소란스러움에 지친 여행자들이 한숨을 돌릴 수 있는 아늑한 곳이다. 아직 관광지로서는 개발이 덜된 편이라 화장실 시설이나 식당가가 다른 곳에 비해 낙후되어 불편했지만, 물과 옛날의 고가와 배를 탄 우리들이 어우러져 추억의 풍경화를 그려냈다.
<新天地> 옛 프랑스 조계지의 일부가 홍콩자본으로 재탄생된 곳. 먹고 마시고 즐길 수 있는 모든 것들이 모여 있다. 상하이 다운타운에서 가장 먼저 도심개발을 한 지역으로 고급카페, 부티크 숍, 외국 계열의 레스토랑 등이 모여 있는 서울 강남의 로데오거리와 같다.
이곳은 중국 속의 유럽이다. 각 나라의 음식과 건물이 섞여 다국적의 동네다. 그 바로 옆 골목 도보로 5분 거리에 초라하게 <大韓民國 臨時政府>가 있으니…, 고국이 없던 시절, 그때 우리가 얼마나 힘이 없었는지 실감이 난다. 지금은 꼬마에서 노인까지 “我是韓國人” 나는 한국 사람이다. 한마디면 모두 부러운 눈길로 반갑게 맞이하니, 격세지감을 느낀다. 먼저 간 선열들에게 감사하다. 그들이 몸 바쳐 구한 나라를 우리가 누리고 있다. 명품거리를 둘러보고 스타벅스에서 커피한잔마시니 애국심은 어디 갔는지, 금세 국제적인 환경에 적응이 되어 콧노래 흥얼대니, 이 사람들 선생 맞나. 반성!
<黃山>은 安徽城 徽州에 있다. 과거에는 소금상인으로 부를 누렸다고 하나 부자들이 근거지를 항주로 옮기고 지금은 소박한 농촌이다. 비행기 타고 핫비合肥공항으로 갔다. 택시는 ‘晩’자를 쓴다. 벼는 이모작을 하고 산등성이마다 차밭이 있고 밭에는 목화와 하얀 소국(국화꽃)이 환하게 피었다. 황산 밑에 4성급 호텔에서 숙박. (상해의 2성급보다 좀 못한 것 같다)
8월 22일 수요일
‘황산에 오르니 천하에 산이 없더라 (歸來黃山不看岳)’ 라는 말처럼 수묵화의 신비로운 산봉우리와 여백이 살아 숨 쉰다는 황산! 새벽부터 설쳐 케불카 타고 산에 오르니, 헌량콰이! (청량함) 헌수프! (쾌적함) 늦가을 날씨처럼 서늘하다. 완전한 천연 콩티아오 (에어컨). 산책로는 모두 돌계단으로 되어있다. 이까짓 것쯤이야 슬슬 얕잡아 보고 걷기 시작했는데 너무 힘들다.
까얼푸(골프)로 몸짱을 만들었다는 의호선생님 다리 뭉치기 시작. 주말마다 등산으로 몇 년간 트레이닝 했다는 홍아샘 다리뭉치기 시작. 나의 남편만 싱싱하게 잘도 걷는다. 산에 가면 늘 민폐만 끼치는 나는 중국체질인지 아직은 견딜 만하다. 황산 정상 ‘北海飯店’에서, 맨몸으로 등지게 지고 음식재료들을 나른 짐꾼들이 있어 점심뷔페식이 특혜나 받은 듯 감사하다. 온 발아래가 구름의 바다 ‘雲海’다 어디 신선이 따로 있겠는가. 좋은 사람과 좋은 곳에 있는 시간.
“왜 이리 인생이 멋진 거야” 북받치는 “헌까오씽” 이기지 못해, 김샘 홍샘(음악전공) 두 분이 듀엣으로 소프라노 엘토의 선율, 황산의 메아리도 감동받아 화답하는 경이로움 괜히 벅차 눈물이 난다.
행복행복 누릴 사이도 없이 청량하고 맑던 날씨는 어디가고 갑자기 산중에 장대비! 부랴부랴 걸어도 빗물에, 아~ 나는 ‘실루엣 선녀’가 되다. (덥다고 속옷을 입지 않은 나는 神農氏의 딸 ‘요희’ 런가. 아침이면 멋진 구름이 되어 산위를 휘젓다가 저녁에는 골짜기 찾아들어 외로움을 달래는 불꽃같은 ‘雲雨之情’을 즐겼다 하더니만… 정신 차리고!) 황산 청소부 순발력 있게 우비장사로 변신했다. 쫄딱 비 맞은 꼴에 흥정해볼 사이도 없다. 체온이라도 보존해야하니. 근데 뭐야! 입은 지 10분도 안되어 비 뚝 그치고 햇볕은 쨍쨍. 밑에 내려와 정말 맛없는 무늬만 한식으로 저녁 먹고 발마사지. 고놈들! 작은 놈들이 중국말로 말 시키니 신이 나서 꾹꾹 잘도 누른다.
비행기 시간을 기다리며 <宋老街> 宋나라 老街 걸으며, 나의 장난꾸러기 남편 장난기가 발동하여, 장난감 나무칼을 “얍!” 휘두르다 부러뜨렸다. 상인들이 떼거리로 몰려나와 물어내라 덤빈다. 오히려 “불량품을 판다”고 “꽁안 꽁안” 경찰을 부르겠다고 화를 내며 소리치니, 2천원 물어내라 외치던 상인들 천 원 천 원 하더니 기가 죽어 얼른 들어간다. 어찌 중국어로 경찰이 ‘꽁안’ 이라는 말은 외웠었는지, 우리남편 순발력 완전 ‘쩐빵!’ 새벽 1시넘어 다시 상해로 돌아왔다.
8월23일 목요일
남편은 일이 있어 예정보다 먼저 한국으로 돌아갔다. 기죽지 말아야 하는데, 하기야 규하선생님 없어도 홍아샘 씩씩하게 잘 지내니….
老거리 <七寶老街>를 갔다. 금방 손으로 비틀어 짜도 될 만큼 옷이 다 젖었다. 헉헉 숨이 막히도록 더우니, 어디 냉방이나 잘 된 곳에 들어가 한숨 쉬면 좋으련만, 좁은 거리를 비집고 들어가 청색면치파오를 70원을 주고 사 입었다. 밖에 나오니 청색물감이 몸에 문신처럼 배이도록 도로 흠뻑 젖는다.
이 더위를 이길 수 있는 방법은 건물 안으로 들어가는 수밖에. 全身按摩를 받았다. “아~악! 살살 ~ 더 쎄게~ ” 곱상하게 생긴 총각이 누르고 잡아당기고 문지르는데, ‘아~ 남편 너무 보고 싶다.’
허구한 날 엄살떨고 죽는 소리하는 아내와, 뭐라고 야단쳐도 실실 쪼개는 두 놈의 자식을 위해 오늘도 벌어먹여 살리느라, 80원짜리 값싼 안마도 한번 못 받아보고… 중국을 떠나다니.
코끝이 찡하다. 구석구석 몽땅 부위별로 쾌락을 느꼈던 부분을 외워 남편에게 실습할 생각을 해본다. 그나마 위로가 되어 맘껏 호사를 누렸다.
대만사람이 운영한다는 일식집에 가서 이모부가 튀김 초밥 생선회 등을 시켰다. 한도 끝도 없이 나오는 음식, 아무래도 바가지 옴팍 뒤집어쓰는 기분. 제대로 씹어지지도 않고 혀끝에 감촉도 없다. 1인당 100위안 이라니, 내가 차라리 중국 글을 모르던가, 아니면 중국말을 못 알아들었으면 조금 배가 덜 아팠을라나. 맛있는 음식 앞에 입맛이 쓰다.
<찐회루 金滙路 上海虹橋大通陽商厦> 일명 <짝퉁시장>신천지 옆에 있던 상양시장이 1년 반쯤 전에 외각인 지하로 숨어들어 찐회루로 옮겨왔다는데, 무국적의 가짜 명품들. 없는 것이 없다. 나 같이 진짜 명품의 브랜드를 잘 모르는 족속은 열심히 봐 봐야 다리만 아프다.
“에이 친구! 이거 진짜 가짜!” 외친다. 딴에는 ‘진짜 같은 가짜다’라고 하는 말인 것 같은데, 연방 “싸다 싸다” 사지도 않을 거면서 목에 핏대를 세워 흥정을 해본다. 그러다 불리하면 못 알아들은 척 “팅부동 (못 알아들었다)” 라고 말하면, 버럭 성을 내며 “니 지금 알아듣는 것 다 알고 있다. 왜 거짓말 하느냐”고 약발을 받아 삿대질까지 한다.
그러거나 말거나 “팅부동” “뿌쯔다오” 모른다고 빡빡 우기다가 힘 빠지면, 서로 쳐다보고 웃는 재미, 물건 사는 것은 뒷전이고 신난다. 그들과 오가는 묘한 눈길 억양 어투 목소리 정말 ‘헌요우이스야 (재미있다)’ 누구는 부르는 가격에 10분의 1만 지불하라는데, 그래도 초보자는 4분의1수준으로 결정되는 것 같다. 김샘 홍샘은 기내용가방까지 갖춰진 까오얼푸채를 한 세트씩, 큰 가방 작은 가방 시계 핸드백 몇 개씩 샀다. 며칠 후 나의 한국친구들을 데리고 올 것이다. 그러니 싸게 해 달라고 애교 섞인 말로 흥정을 하여 70위안짜리 꾸찌 슬리퍼와 50위안짜리 핸드백을 한개 샀다. 금세 짝퉁 족이 되었다. 괜히 어깨 으쓱하다. (내 깊은 곳에 숨겨 두었던 본성을 찾았나 보다)
저녁은 <수라>에 가서 한국보다 더 한식답게 갖춰진 한식을 푸짐하게 먹었다. 물도 물수건도 후식도 빈 접시도 물론 다 공짜다. 값이야 어디 갔던지 의자가 아닌 방석에 퍼질러 앉아 맘 놓고 먹는 맛 맛있다.
<상해 이케야매장 宜家> 크다크다 해도 진짜 중국답다. 스웨덴 이케야라는 사람의 브랜드인데, 인테리어 쇼핑몰로 전 세계에 체인을 갖고 있다. 저렴하고 실용적인 제품들로 유명한 곳인데 상하이 매장이 아시아에서 가장 크다나. 들어가는 문 나오는 문이 따로 있는데, 단일브랜드로 이마트나 메가 마트보다 훨씬 대형이다. 따뜻하고 보드라운 빨간 담요를 29위안에 샀다.
8월 24일 금요일
아침부터 양샤우지에(일하는 아이)가 다리미질을 한다. 입고 나가면 금세 젖을 옷을 내가 벗어놓은 등산복 바지까지 깨끗이 빨아 다리고 있다. 된장찌개와 김치도 잘 담근다는데. 아침마다 잣죽은 일품이었다.
<CHINA DECO 나비장 옥돌장>- 40평쯤 되는 아파트 안에 나비장이 가득 전시되어있다. <궁> 이라는 연속극에 협찬을 한 물건이라는데, 궁을 안 봐서 모르겠고, 원색의 빨강나비 노랑나비 은색나비 온 집안을 훨훨 날아다니고 있다. 나야 아들만 둘이니 밍크코트나 짧은 것 긴 것 잘 봐두었다 받으면 그만이지만, (절대아님. 이런 말 한 죄로 손들고 벌서고 있음) 은혜샘 홍샘은 딸이 둘이니 열심히 도록을 보면서 가구들을 고른다. 택배비만도 1건당 1십만 원이라는데, 배(가구)보다 배꼽이 클 것 같다. 고 틈새 컴퓨터만 보이면 주인의 양해를 구해 우리중국어 카페에 소식을 전하며 ㅋㄷㅋㄷ, 글로벌세상 지구촌은 하나다. 어디서든 열기만 하면 열리는 세상. 쾌속의 빠른 속도를 쫓아가기 ‘쎄’가 빠진다.
꾸베이 쌈밥집에서 일행들과 헤어지는 점심을 먹고, 실버학교팀들이 쓸 런민삐를 받아들고 <뚱야환띠엔 東亞飯店 East Asia hotel>으로 감. 핸드폰을 로밍해간 덕분으로 문자와 전화 수시로 확인하니 좋은 세상이다.
<뚱야환띠엔> 우리로 치면 서울 명동이나 소공동에 위치한 조선호텔처럼 지은 지 오래된 호텔이지만, 가장 번화가 <난징루뿌씽지에 南京東路步行街>에 있어, 문밖만 나가면 상해의 진국은 다 맛볼 수 있다. 이 호텔을 숙소로 정한 우리 중국어반의 탁월한 선택은 여행의 달인들이다.
쨘! 드디어 우리 중국어팀 <남파(김영대) 산다화(강미자) 찐티엔(이금자) 리지앙(정혜윤) 예쮜(김미선)> 를 만나다. “러리에더 환잉환잉 광린!” 너희들이 온 것을 열렬하게 환영한다. 내 맘대로 지껄여도 눈치 안보이고, 얼굴 보기만 해도 좋은 우리 통쉐들. 얼싸안고 회포 풀고, 이리 좋은 걸. 지하철 타고 환승하여 동방명주를 중심으로 푸둥푸시를 다 다녔다. 상해 역으로 가서 소주 항주 주장 등의 기차표를 예매하려니 모두 매진되어 표가 없단다.
<찐마오빌딩 金茂大厦 하이얏트호텔> 여러모로 동방명주와 비교되는 건물이다. 맨 꼭대기 88층은 전망대로 쓰인다는 정보를 듣고, 88층으로 올라가는 도중 환승하는 층인 54층으로 가서 한 바퀴 돌며 커피값 술값 물어보고, 다시 88층 전망대에 올라가 레스토랑 지우바(酒吧) 순회, 물론 먹지는 않았다. 밖으로 내다보이는 야경 “쩐 피아올리앙-정말 아름답다” 지하로 내려와 키위쥬스 한잔씩 바닥에 퍼대앉아 마시니 중국이 실감난다. 원래 나의 상식은 4성급 5성급의 고급호텔은 1층 로비와 화장실 이용만 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하다고 알고 있다.
쾌적한 환경에서 벗어나 푸둥강가에 인해전술 같은 사람들 속에 섞이니, 광안리 불꽃 축제를 보러온 인파에 섞인 듯 괜히 흥분이 된다. 중국인들의 특이한 땀 냄새 거리냄새가 마취성이 있는지. 아편 전쟁 없이도 몽롱하고 정신이 혼미하다. 난징루에 들어와 아픈 다리 질질 끌며 꼬마유람관광열차타고 호텔로 들어오는데 여행 속의 또 다른 여행의 운치가 있다.
긴장이 풀려서일까. 아니면 목소리 큰 은혜샘 형부에게서 벗어나서일까, 일시에 피곤이 밀려온다. 일정보다 하루 먼저 합류한 바람에 지야창加床(간이침대)에서, 기침 콧물 편도 열이 화끈화끈 빨간 담요 뒤집어쓰고 “꽁~ 꽁 ~” 앓음. 예쥐가 타이레놀을 주고 아스피린과 수면제를 같이 먹어도, 기침 때문에 말을 할 수가 없다. 목소리도 아주 갔다. 아무래도 내일은 병원에 가서 주사(‘다쩐 打針)’ 를 맞아야 될까보다. “왜 다쩐 한대 맞지 그랬어~” 리지앙이 골골대는 나를 놀리느라 상해있는 동안 남편한테서 “주사 안 맞았어?” 묻는다. 난 주인이 무서워 손도 못 잡고 잤다고 엄살을 떨었다.
에어컨 빵빵한 호텔방에서 빨간 담요를 뒤집어쓰고, 중국의 4대 미인 중에 ‘王昭君’이 되었다. 아~ 나도 나의 미모가 버겁다. 감기에 걸려서까지도 이렇게 양귀비꽃 색깔처럼 선정적이라니…. 밤새 콜록거리며 에어컨을 조정하며 일행들 깰까봐 불도 못 켜고 오줌만 살살 누러 다녔다.
8월 25일 토요일
나는 호텔을 예약하지 않은 관계로 조식표가 없어 굶어야 할 판이다. 한국에서는 원래 미인체질이라 설사하느라 50평생 살이 안 쪘다. 매번 중국만 오면 식욕이 당기기 시작, 보는 이 마다 “그만 좀 먹어라” 할 때까지 강행군. 조식25원에 눈이 번쩍. 아침뷔페에서 비닐봉지 준비는 필수, 젖은 음식은 뱃속에 채우고 마른 음식은 쭈워예(作業?)를 열심히 했다.
택시타고 <豫園>으로 갔는데 나만 택시비가 배로 나왔다. 축 쳐진 눈길이 착해보였나 보다. 그렇다. 운전사가 더 착하다. 본래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을 알아보게 마련이다.
<예원>은 1559년 명나라의 관료였던 반윤달이 아버지의 안락한 노후를 위해 정자와 누각 연못 공간 등을 연결하는 오솔길을 배치해 지어준 정원이라는데, 동양적인 아름다움을 찾는 내 외국인이 모두 선망하는 곳이다. 일찍 서둘렀는데도 불구하고 줄줄이 깃발을 들고 각양각색의 인간들이 밀려들어온다. 쇼우피아우추 (매표소)에서 표를 끊고, 바로 상하이 전통만두인 <샤오룽바오쯔 小龍包子>유명하다는 <남상만두집 南翔饅頭店>’ 예원표사는 줄보다 더 길게 서 있다. 우리 일행은 선채로 만두 두통을 꾸역꾸역 먹었다. 예원에서 이 팀 저 팀 뒤를 따라 다니며, 일본어로 듣고, 영어로 듣고, 중국어로 듣고. 한국어 팀이 없어 조금은 갑갑했다. 사실은 엄청 답답했다.
신천지로 나와 인도인이 하는 <上海錦江拉丁餐廳 Latina> 코쟁이들 속에 근사한 식사를 했다. 가지가지 고기를 들고 식탁까지 와서 썰어주는데, 촌놈처럼 먼저 이것저것 먹어 더 이상 먹지 못하고 그림의 떡이다. 이색적인 음식들 아깝다. 식사 값은 70위안정도. 생맥주도 맛있고. 신천지 걸어걸어 명품들 구경하는 재미 좋지만. 모두들 이케야 매장으로 가라하고, 난 더 이상 ‘못 걷겠다 꾀꼬리~’ 혼자 택시타고 호텔에 와 휴식. 과연 남은 날을 견딜 수 있을까.
<상하이 위스키>드디어 남파가 밤에 혼자 나가 드디어 사고를 쳤다.
이야기인즉, 예쁜 처자가 커피한잔 사달라고 해, 바에 들어가 두 명의 샤우지에에게 커피한잔씩과 상하이위스키 한잔씩을 사줬다는데, 가격이 2500위안이 나왔다. 주머니에 있는 돈을 다 터니 300위안 뿐이라 지불을 하고, 나머지 돈을 카드를 긁으니 비자카드가 안 긁어져, 급기야 똘마니처럼 생긴 지배인 놈과 한 아가씨를 데리고 와서, 나보고 돈을 빌려달라고 한다. (참고로 중국체류기간 1인당 경비로 2300씩 나눠주었음)
나는 얼른 화장실로 들어가 버리고, 리지앙은 문을 닫아버렸다. 예쥐와 산다화 진티엔언니가 해결사로 나갔는데, 시간이 늦어도 돌아오지 않는다. 간이 작은 나는 한 1500위안쯤으로 합의 보면 안 될까 궁리를 하고, 리지앙은 상해의 사기공갈단 이야기를 하며, 이제 잠시 후면 우리 둘에게 엄청난 거금을 요구하러 올 것이다 며, 그동안 인터넷에서 읽은 카드까지 다 털리거나 장기까지 다 빼 갈 수도 있다는 무서운 이야기를 한다. 아무래도 이 사람들이 다 잡혀갔나. 어디 가서 두드려 맞나. 별아 별 생각에 걱정은 태산이지만, 우리라도 남아서 구출을 해야 하니 어쩌겠는가.
뒤에 들은 이야기, 그들이 보는데서 언니들이 남파를 때려 들여보내고, 그들이 자기를 술집으로 가자는데, 예쥐가 “미쳤나” 소리 지르며 주문서와 계산서를 가지고 오라고 오히려 닦달을 해, 몇 번이나 가짜주문서와 영수증을 들고 와 신갱이를 하다가, 마침내 300원을 더 주는 것으로 해결을 봤단다.
말이 해결이지 현지에서 ‘뙤놈’들과 싸워 이기는 쾌거! 사기단을 호통 쳐 보내는 일이 어디 보통인가. 일등공신은 예쥐이다. 예쥐의 일 해결능력, 배짱, 해결중국어, 존경스럽다. 강의실에서 신랄하게 질문할 때, 벌써 그의 능력은 수준을 넘었다. 멋있다. 단연 이 여행의 그랑프리이다.
그제야 리지앙과 나는 그 조폭 같은 놈들의 해코지가 두려워 호텔 프론트로 내겨가서 방을 바꿔달라고 했다. 문제가 있으면 자기들이 해결해 준다고 전화하라는 말만 듣고 올라왔다. 쫓아왔던 한 중국아가씨는 그 와중에도 남파의 전신마사지를 하러왔다고 버티고 서있다.
남자! 남자들! 정말 문제다. 나이가 들어도 철이 없으니, 보면 모르나 사기인지 아닌지. 자꾸 공부하는 유학생이라고 그들 편을 든다. 중국은 명문대 생들도 아르바이트로 현지처 역할을 한다고는 들었으나,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신기하다. 이런 상황에서 여자들은 절대 안 속는다.
여자는 총명하다. 남자 남자! 그들은 어리석다.
8월 26일 일요일
호텔에서 <人民廣場> 난징뚱루와 난징시루를 구분하는 런민광창은 명실상부한 상하이 중심이다. 도보로 10분 거리에 <상하이박물관 上海博物館>이 있다. 天圓地方 즉 ‘하늘은 둥글고 땅은 네모’ 라고 본 중국의 전통적 우주관이 반영된 건물이 인상적이다. 박물관이 시내복판에 있으니 찾기도 쉽고 교통이 편리하다. 규모와 전시물이 광대하다. 12만 3000여점의 유물을 약 21개 전시관에 나눠 전시한다는데 볼거리도 많고 사람들도 많다. 날은 덥고 박물관 안에서 식사 해결까지 깔끔하다.
<둥타이루골동시장 東臺路古玩市場> 60여 곳의 골동품 상점들이 모여 있는 시장. 오래된 도자기에는 청나라 황제들의 연호가 찍힌 것부터 금세 공장에서 만들어온 모조품 같은 녹 처리 가 된 물건이 그득하다. 50위안에 촛불을 넣어 운치를 더하는 등잔을 하나 샀다. 더워서 그런가 보러 나온 사람보다 파는 사람들이 더 많다. 잡동사니들이 다 버릴 쓰레기 같지만, 안목을 갖췄다면 ‘횡재수’도 있을 수 있겠다. 터무니없이 부르고 터무니없이 깎으니, 나를 보고 “따오매이 倒梅” 재수 없다고 가라고 소리친다.
드디어 <짝퉁시장> 두 번째 갔다. 전전날 만났던 상인들이 나를 보더니, 정말 친구들 데려왔다고 반가워한다. 아마 나를 가이드쯤으로 여기는가보다. 일행들은 명품 짝퉁 여행가방, 어린이 치파오, 핸드백 종류를 사고, 나는 차잎 언니가 부탁한 못난이 진주를 60위안어치 샀다. 우리말을 배우는 진주를 파는 중국아가씨가 “이거 싸다” “쩌거 이쁘다” 제법 발음이 그럴싸하다. 중간중간 “가나다라~ 아야어여~” 한국어를 연습을 하는 꼴이 곧 한국통이 될 것 같다.
잣이나 참깨 등을 사기위해 농산물시장(農貿市場)에 택시를 타고 갔는데 재래시장소리만 듣고 기사들이 <九星재래시장>에 내려놓고 가버렸다. 우리가 원하는 곳이 아니다. 중국은 아파트나 집을 지을 때 시멘트 까지만 바르고 분양을 한다고 한다. 집을 산 사람이 벽지 바닥 욕조 등등을 모두 따로 사서 인테리어를 한다는데, 그 건축자재시장에다 내려주었으니, 지칠대로 지쳐 다리는 아프고 택시도 들어오지 않는 거리라 우린 인력거를 잡아타고 달렸다. 길을 잘못 찾은 덕분에 신바람이 바람을 불러 룰룰랄랄♪♬ 노래까지 나온다. 여행이 주는 여유다.
산다화님의 따님내외가 저녁을 초대해줬다. (鄕村土城 옛골토성) 다른 나라에서 우리나라 사람을 만나니 친정여동생 만난 듯 반갑다. 더구나 한상 가득 음식까지 있으니, 염치불구하고 사위에게서 만땅이 되도록 대접을 받았다.
택시를 타고 <김씨 마트 虹中路>로 가서 참깨 참기름 잣 호두 삼베 모시를 샀다. 난 사지도 않았는데, 두 번 씩이나 방문한 나를 내일 뭔가를 챙겨 줄 테니 다시 오라한다. 싸다싸다를 되 뇌이며 샀는데도 뭔가 많이 남는 장사를 했나보다. 꾸베이 한인들 사이에서는 유명한 상점이라고 한다.
8월27일 월요일
혼자 돌아오다.
시집의 증조할아버지 제사가 내일이라, 아쉬움을 남기고 혼자 귀국했다. 남편은 계속 조처를 다 취해 놓았으니, 안심하고 일행들과 같이 들어오라는 문자를 보내왔지만, 다음의 더 큰 일들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오늘에 충실해야 한다.
돌아가신 시어머님이 그립다. 만약 어머님이 살아 계시다면 10년 전 북경에 갈 때처럼, 고추장볶음과 여비를 보태주시면서 응원을 해주셨을 텐데…, 어머님이 보고 싶다.
일행은 일일관광으로 쑤저우(蘇州)로 가는 기차를 타러가고, 나는 혼자 택시를 타고 롱양루(龍陽路)역으로 향했다. 큰 가방을 들고 난징루에 서있는 나를 보고 택시기사가 신바람 나 달려와 내 짐 가방을 뒷 트렁크에 싣는다. 지하철 롱양역에 가자고 했더니, 당신은 가방이 크기 때문에 공항까지 가야한다고 자꾸 말한다. 나는 상냥한 웃음을 거두고 표정을 근엄하게 바꾸었다.
“메이꽌시! 비에단신! 메이요우치엔! 부쓰지창 워쓰롱양루 니카이처바!” 문제없다. 걱정하지마라. 난 돈이 없으니 공항까지 안가고 룡양역으로 간다. 넌 운전이나 잘 해라. 를 몇 번이나 큰소리로 외쳤다.(사실 겁나고 떨려서 죽는 줄 알았다) 롱양루까지 43위안이 나왔다. 그곳에서 자기부상열차 (차비는 50위안인데 비행기 표를 보여주면 10위안 깎아준다) 를 타고 공항까지 쌩하니 7~8분 정도 소요. 빠르고 편리했다.
계획했던 일정이 바뀐 바람에 동방항공으로 대한항공으로 손짓 발짓 영어 중국어 한국어 총동원을 하여, 29일 표를 27일 표로 바꿔 수속을 마치고 비행기를 탔다. 중국 배낭실습여행을 해냈다는 안도감과 함께 일시에 피로가 밀려온다.
아무도 우리들의 역할을 분담하지는 않았다. 그런데도 서로의 각자의 역할에 충실했다. 산다화 언니는 우리 일행의 어른이 되어 중심을 잡아주셨고, 진티엔 언니는 예쁜 웃음을 담은 사진을 찍어주셨으며, 남파님의 듬직한 보호자 역할은 그 목소리부터 무게가 있었다. 단지 남자가 혼자라 심하게 외로움을 탔다고나 할까. 다 우리 여학생들의 잘못이다.
가장 수고가 많았던 리지앙언니. 계획을 짜고 차질이 없도록 일정대로 진행했던 리지앙이 그렇게 똑똑한지 나는 처음 알았다. 왜냐하면 수업시간에 교수들이 원어로 수업을 하면, 말귀를 못 알아듣고 곧바로 나에게 되묻곤 했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총명한 언니인줄도 모르고, 언니 앞에서 매 번 잘난 척을 참 많이 했었다. 이 자리를 빌어서 사과한다. 막내인 예쥐의 활약은 <상하이 위스키 건>에서 입증되었다. 여행에 예쥐는 동행순위 1위이다. 예쥐! 멋있었다.
방향감각과 숫자에 어두운 나는 택시비는 배로 내고 다녔지만, 덥고 다리 아플 때, 가장 좋은 매장에 들어가 중국인들의 혼을 다 빼 놓은 다음 우리일행을 황제가 앉았었다는 푹신한 의자에 편안히 앉아서 쉬게 하는 잔재주, 음식을 시키기 위해 남의 식탁에 가서 조금씩 얻어 오는 지혜. 물건을 흥정하다 실랑이가 벌어졌을 때 화기애애 서로 웃게 만드는 ‘원화의 쟈오류’ 文化的 交流. (강의실 안에서 교수들이 붙여준 내 별명은 ‘知識分子’였다) 나는 오나가나 ‘기쁨조역할’을 했다.
모두모두 감사하다. 중국어반과 다시 배낭여행을 하고 싶다. 같은 관심 같은 언어를 쓰며 같이 할 수 있다는 것. 나이와 성별을 떠나 우리는 영원한 한 강의실 안의 통쉐먼同學들이다.
《中國!》
중국은 지저분하다. 중국은 엄마만 빼고 다 가짜다. 중국은 날아다니는 것은 비행기만 빼고 다 먹고, 다리 있는 것은 책상만 빼고 다 먹는다고 비하한다.
그러나 나는 중국이 좋다. 중국어를 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만만디한 느림도 좋고, 철학도 좋고, 문학도 좋고, 특히 중국 사람들이 좋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나의 사유가 깊지 못함이 안타까울 뿐이다. 어디 다시 누군가가 여행지를 택하라고 권한다면, 서슴없이 나는 또 중국을 택할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덤 같은 시간이 주어져 얼마간의 휴가를 얻는다면, 중국으로 숨어들고 싶다.
그곳에서 가끔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을 초대하고 싶다. 살다가 그럭저럭 무료해지면, 나는 다시 ‘胡蝶夢’호접몽을 꾸러 중국으로 날아갈 것이다. 가서 뭘 하느냐고?
그냥 중국의 공기를 마시며 숨을 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