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황토로 지은 흙집 우리가 꿈꾸는 세상. 솔숲 우거진 산자락에 황토너와집은 전원생활의 여유로움이 있다. |
ⓒ 조찬현 |
| |
솔숲 우거진 산자락에 황토너와집. 박 넝쿨이 드리워진 담장과 푸른 잔디밭이 한 폭의 그림으로 다가온다. 참 예쁘다. “저 예쁜 집에는 누가 살까. 스머프, 일곱 난장이, 왕자님... 아니야, 어여쁜 백설공주님이 살 거야!” 언젠가 멀리서 그 집을 보고 문득 떠올랐던 생각들이다.
“언젠가 꼭 한번 가봐야지” 마음속에 담아두고 있었다. 그런데 지인의 소개로 그 예쁜 집을 지난 24일 찾아가게 된 것이다. 길가에 늘어선 상사화와 이름 모를 들꽃이 흐드러진 꽃길을 따라 가는 길은 가을 풀벌레소리로 가득하다.
솔밭에 황토로 지은 예쁜 흙집
|
▲ 한기진씨 한씨가 손수 지은 흙집 짓는 방법이며 짚공예 만드는 방법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
ⓒ 조찬현 |
| |
흙집은 한기진(54), 주성희(52) 부부가 전남 무안군 삼향면 과동마을 과동저수지 부근 솔밭에 손수 지었다. 흙집을 짓는 동호인들의 도움을 받아 2년여에 걸쳐 4명의 가족들이 함께 지은 것이다.
처마에 내걸린 전등갓 하나까지 세심함이 묻어 있다. 한씨가 흙집 짓는 방법이며 짚공예 만드는 방법까지 직접 배워서 손수 만들었다니 어련할까. 31년간의 군 생활을 마치고 2004년 육군 중령으로 만기 전역한 그는 자신이 살집을 짓기 위해 땅 찾아 전국을 돌아다녔다. 아내의 내조로 이곳에 땅을 마련하고 황토 집을 짓게 된 것이다.
집 주변에는 30종의 과일나무도 심었다. 밤과 감은 올해부터 수확을 한다. 유정란을 얻기 위해 10여 마리의 닭도 키운다. 텃밭에는 가지와 고추, 온갖 푸성귀가 넘쳐난다.
마당의 잔디밭 파라솔 아래에 앉아있으니 바람이 선선하다. 바로 아래에는 90여개의 항아리가 둥지를 튼 장독대다. 바닥에는 자갈을 깔아 항아리가 숨쉬기에 편하게 해줬다. 주변은 소나무 숲이 울창하다.
황토방은 비염이나 아토피 환자에게 효험이 있다고 한다. 한씨는 자신이 직접 체험한 이야기를 들려준다. 서울 사는 처제의 딸내미가 아토피가 심했다. 소나무 거죽처럼 심한 아토피 치료를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녔으나 백약이 무효였다. 그러던 중 한 한의사가 좋은 황토를 만나면 나을 수 있다고 했다.
황토 집을 짓던 해에 처제는 아이를 데리고 내려왔다. 아이는 황토밭에서 흙장난을 하며 뛰어놀았다. 황토 흙에서 미끄럼타기도 하고, 집짓기도 하고, 황토로 온 몸이 뒤범벅이 된 채 황토와 살았다. 2개월여가 지나자 아이는 거짓말처럼 말끔히 나았다고 한다.
갑작스레 세찬 소나기가 내린다. 누각 처마 너머로 바라보이는 흙집이 눈물겹게 아름답다. 흙집의 지붕은 너와로 이었다. 너와지붕과 장독대에 쏟아지는 빗줄기는 서정적인 풍경이 된다.
솔잎 향기 솔솔~ '솔잎황토방된장'
|
▲ 솔잎황토방된장 한기진, 주성희 부부가 솔잎황토방된장을 장독대에서 퍼내고 있다. |
ⓒ 조찬현 |
| |
솔밭에 집을 짓고 사는 그들 부부가 솔잎황토방된장과 인연을 맺은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직접 집에서 된장을 만들어 먹었던 아내는 솔밭에 살다보니 솔잎 향기에 매료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솔잎된장을 만들어보면 어떨까?”하는 생각을 하게 된 것이다. 부부는 몇 번의 실패를 거듭한 끝에 지금의 솔잎황토방된장을 만들어냈다.
첫해(2004년)에 콩 4가마(한가마 80kg)의 된장을 만들었다. 알음알음으로 판매를 시작했었는데 입소문이 나서 3개월여 만에 다 팔았다. 시골에서 부업치고는 제법 괜찮았다. 수입도 짭짤했다. 이듬해에는 콩을 15가마로 늘렸다. 해마다 그 양이 늘어나고 있다. 지난해에는 KBS <6시내고향>에 소개되기도 했다.
간장, 된장은 한국인의 기본음식이다. 집 주변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소나무의 송홧가루와 솔잎 분말을 된장에 넣으면 어떨까?”하는 생각에 이르자 한씨는 문헌을 뒤져가면서 연구를 거듭했다.
이렇게 만들어낸 된장을 시식해본 결과 사람들은 대부분 솔잎을 넣은 된장에 좋은 반응을 보였다. 그래서 솔잎을 주목하게 된 것이다. 메주는 황토방에서 띄운다. 솔잎황토방 된장에는 솔잎 분말과 송홧가루가 들어갔다.
황토방에 볏짚을 깔고 메주를 켜켜이 쌓아 장작불을 때 온도를 올려 띄움 작업을 한다. 일반적으로 메주띄우기는 15~30일이 소요된다. 하지만 황토방에서는 일주일이면 거뜬하다. 음식은 장맛이다. 그래서 솔잎황토방된장은 메주띄우기에서부터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인다.
정남향에 자리한 장독대에는 하루 종일 햇빛이 든다. 뜨는 해에서 지는 해까지 햇살이 이곳에 머문다. 한여름에는 장독 항아리가 뜨거울 정도다. 숨 쉬는 항아리에 담긴 된장은 천혜의 자연환경에서 익어간다. 된장은 오래 될수록 깊고 은근한 맛이 깃든다고 한다. 한씨 부부는 2~3년 숙성한 된장이 최고라고 말한다.
그들 부부는 장독대를 보물창고로 여긴다. 가족이 먹는 음식이며, 정성으로 만들어 장에 보물 같은 맛이 깃들어 있기 때문이라고. 솔잎황토방된장은 최고 품질의 국내산 햇콩에 신안에서 나오는 천일염과 지장수 3박자가 잘 어우러졌다. 만드는 것 또한 콩을 삶아 절구통에 찧어 전통재래 방식으로 소량생산을 한다.
내식구가 먹는다는 생각으로 정성을 다해 정직하게 만들었다. 소금은 간수가 빠진 3년 된 천일염이다. 3년 된 천일염은 소금국을 끓여먹어도 맛있다고 하니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랴. 좋은 소금은 만져보면 보송보송하고 바슬바슬 잘 부스러진다.
"괜히 시골에 내려 왔구나" 후회하기도
텃밭에는 갖가지 채소와 유실수를 심었다. 군 복무시절에 짬짬이 농사를 지어 수확의 기쁨을 맛보았던 그는 농업에 남다른 관심이 많았었다. 2005년 크기 105cm, 무게가 3.5kg이 되는 골리앗고구마를 생산해 매스컴에 소개돼 한때 고구마아저씨로 불리기도 했다.
햇빛과 양분이 풍부한 황토밭에서 한없이 자란 고구마 1개를 캐내는 데에만 무려 1시간여가 소요됐다고 하니 그 크기가 짐작이 가고도 남음이 있다.
전원생활 첫해에는 후회도 많았다. “괜히 시골에 내려 왔구나”하고. 집 짓고, 된장 만들고, 나무심고, 정원 가꾸는 게 너무 힘이 들었다. 농촌생활에 경험이 없는 가족들이 감당하기에 너무 버거웠던 것이다.
한씨는 “사람이 진실하면 알아준다”고 한다. 상대방은 그것을 훤히 꿰뚫고 있다며 사람은 정직하고 진실해야 진국이라고 말한다. 그것을 증명이라도 하려는 듯 가훈이 ‘정직한 사람은 위대하다’란다. 장 만들기도 정직하게 하면 남들이 알아준다며 최선을 다한다.
솔잎황토방된장은 100% 국산 햇콩에 신안산 천일염과 지장수를 사용한다. <본초강목>은 황토로 만든 엷은 담황색의 지장수에 대해 “음식에 체하여 구토와 설사를 하는 급성 위장병 및 일사병으로 갑작스럽게 죽은 사람을 되살릴 수도 있다고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다.
또한 지장수는 칼륨, 마그네슘, 나트륨 등의 성분이 많이 함유되어 있으며 체내에 독을 제거하여 신진 대사를 원활하게 해준다고 한다.
처음에는 텃새도 많았다. 2005년 어느 날 과동저수지 둑길을 지나던 경운기가 운전부주의로 저수지에 빠졌다. 그걸 목격한 한씨는 쏘렌토 차량을 몰고 한달음에 달려가 경운기를 꺼내줬다. 그 소문이 마을에 퍼져 마을사람들에게 인심을 얻었다.
내 수고로움으로 남에게 잘해주면 금방 친해진다고 한다. 지금도 그는 마을 어르신들의 심부름꾼과 해결사 역할을 곧잘 한다. 한씨는 “땅은 백 냥 주고 사지만 이웃은 천 냥 주고 산다”고 말한다. 이웃이 그만큼 소중하다는 이야기다.
부스스 잠이 깬 황토방, 몸도 마음도 가뿐해요
|
▲ 소박하고 아주 특별한 밥상 별다를 게 없는 소박한 밥상이지만 아주 특별함이 묻어난다. 무 잎을 넣어 끓여낸 시래기된장국은 은근하게 당기는 맛이 일품이다. |
ⓒ 조찬현 |
| |
|
▲ 소나무 액자? 황토방 대형 유리창에는 자연이 그대로 담겨있다. 아침에 보면 이속에 깃든 자연은 실제보다 더 선명하고 사실적이다. |
ⓒ 조찬현 |
| |
소박하다. 풋풋함이 머물고 있는 시골밥상에서 정이 느껴진다. 별다를 게 없는 소박한 밥상이지만 아주 특별함이 묻어난다. 무 잎을 넣어 끓여낸 시래기된장국은 은근하게 당기는 맛이 일품이다. 바쁠 일 없는 한가로운 시골의 저녁 밥상에서 숟가락은 유난히도 부지런을 떤다.
은근한 된장국의 구수한 맛에 매료되었다. 아니 푹 빠졌다. 고향 어머님의 손맛이 느껴지기도 하는 정성이 듬뿍 담긴 된장국을 어느새 두 그릇이나 비워냈다. 텃밭에서 갓 따온 풋고추를 된장에 푹 찍어먹으니 아린고추와 된장의 구수함이 너무 좋다. 이런 맛에 전원생활을 하는가 싶다.
흙집은 밤에 운치가 서린다. 귀뚜라미, 여치, 쓰르라미... 가을 풀벌레소리 들리는 잔디밭 마당에 나앉으니 별빛을 담은 과동저수지가 마음마저 앗아간다.
황토방 별채에 들었다. 아기자기한 황토방의 멋에 빠져든다. 동화나라에 온 듯한 느낌을 떨쳐낼 수가 없었다. 드러난 지붕의 서까래와 자연 그대로인 황토벽에 촘촘히 박힌 통나무가 마음마저 편안하게 한다.
12년간 잘 다니던 직장을 때려치우고 딸아이와 홀연히 시골로 내려와 흙집을 짓는 <어느 시인의 흙집일기> 책장을 뒤적이다 사르르 잠이 들었다. 몇 번을 뒤척이며 깨곤 하는데 오랜만에 숙면을 취했다. 몸도 마음도 가뿐하다. 새벽닭울음소리에 눈을 떴다. 꿈결인 듯 들려오는 풀벌레소리는 “내가 어느 풀 섶에 누워있나”라는 착각을 불러온다.
아침에 집을 돌아봤다. 소나무 아래 10여 마리의 시골 닭들이 모여 있다. 뒤란 산자락에 메어둔 하얀 개한마리가 앙칼지게 짖어댄다. 흙집의 지붕은 이채롭다. 나무 조각을 이어 붙였다. 지붕 꼭대기의 나무뿌리가 또다시 동화 속으로 이끌고 간다.
황토방 대형 유리창에는 자연이 그대로 담겨있다. 아침에 보면 이속에 깃든 자연은 실제보다 더 선명하고 사실적이다. 신라시대의 화가 솔거가 그린 황룡사의 <노송도>는 저리가라다. 투영된 소나무에 새들이 날아와 앉으려다 유리벽에 부딪혀 기절하는 일이 흔하다고 하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