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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5.21 봉축법문.
오늘은 2554년여전 우리의 교주가 되시며 인천의 스승이신 석가세존께서 이 세상에 몸을 나투신 날로 경북 봉축을 하는 기쁜 날입니다.
무엇 때문에 평지풍파를 일으켜 이땅에 오셨을까요?
일체중생이 그 근본이 부처라 이 불성을 깨쳐서 스스로 본래 부처임을 깨우쳐 영원한 대자유인이 되게 하시고자 하신 것입니다.
오직 그 하나를 위하여 일생 설하신 법문이 12부경 팔만대장경인 것입니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법을 위해 몸을 잊어 버려야 하고, 마디 마디를 토막내는 그런 욕을 참아가면서 공부를 해야 되며, 도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 것일까요? 그것은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 도는 우리들이 생사윤회의 세계를 억천만겁토록 사생육도를 이리 돌고 저리 돌아서 미래겁이 다하도록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기 때문입니다. 나고 죽는 것이 큰일로 두려운 것이며, 무수억겁의 생사를 해탈하려면 반딧불 같은 조그마한 노력으로는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때는 인욕선인이 되어 가리왕의 괴로운 고통도 받았고, 어떤 때는 연등불에게 하듯이 하심 공양도 하고, 어떤 때는 혜가스님처럼 눈 속에 서서 팔뚝을 자르기도 하며, 또 어떤 때는 운문스님처럼 다리도 부러뜨리는 식으로 법을 위해 몸을 바치는 그러한 노력과 공부가 있어야만 참으로 억천만겁의 생사의 길에서 벗어날 수 있는 것입니다.
옛날 오대산에 구정조사라는 큰스님이 계셨는데 그 스님의 부도가 지금도 월정사 옆에 있습니다.
어째서 구정조사냐 하면, 북대에 무념이라는 큰 스님이 계셨는데 구정조사는 무념스님이 큰스님이라는 말을 듣고 도를 배우러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공부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일러주지 않고,
"밥 해 먹는 솥이 잘못 걸렸는데 이 솥을 한번 잘 걸어보아라.”
라고 하였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구정조사가 보니 솥은 반듯하게 잘 걸려 있는데 어째서 잘못 걸렸다고 하는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저러나 큰스님이 솥이 잘못 걸렸다고 다시 잘 걸라고 하시니 할 수 없이 전부 뜯어 가지고 다시 정성껏 솥을 잘 걸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솥을 다 걸었습니다.”라고 여쭈었더니, 큰스님이 보시고 화를 벌컥 내시면서
“이리 걸면 안돼! 다시 걸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또 새로 솥을 걸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또, “틀렸어. 다시 걸어라!”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리도 걸어보고 저리도 걸어 봐도 다 퇴짜를 맞았습니다. 이러기를 아홉 번을 되풀이하였습니다.
그래서 솥을 아홉 번 옮겨 걸었다고 하여 ‘구정스님’이라 하였습니다.
큰스님의 뜻은 솥을 잘 거는 데 있는 것이 아리라, 저놈이 나를 찾아와서 믿고 공부를 배우겠다 고 하니 얼마나 신심으로 내 말을 복종하고 듣느냐는 것을 시험하기위해서 일부러 트집을 잡아서 솥을 아홉 번이나 다시 걸게 해보았던 것입니다.
보통 사람 같으면 한두 번 걸고 나서 다시 걸라고 하면
“저 스님 정신 나간 모양이야. 이렇게 반듯한 솥을 자꾸 다시 걸라고 하니 누가 믿겠어!”
하고 얼굴에 침이라도 뱉고 달아나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구정선사는 “오직 내가 저 스님을 믿고 왔으니 어찌 됐든지 스님 시키는 대로 무조건 복종해서 도를 배우는 것이 목적이지, 이까짓 솥을 천번걸고 만번걸라 한들 무슨 상관있겠는가!”
하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도를 배움에 있어서 나라는 생각은 모조리 버리고 오직 법을 위해 내 몸을 돌보지 않는 발심이 필요한 것입니다. 그렇게 발심한 사람에게는 어떤 욕을 하고 어떤 고통을 주어도 감내해 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정선사는 그 큰스님 밑에서 공부를 성취하여 유명한 ‘구정조사’가 되었고, 이것이 천추만대로 도를 위해 공부하는 사람들의 귀감이 되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구정조사와 같은 그런 발심과 신심으로 참선하러 다녀야지 다만 조금이라도 아상을 가지고 다닌다면, 이런 사람들은 실제로 공부하러 다니는 사람이 아니고 산에나 놀러 다니고 물 구경이나 다니고 절구경 하는 유람꾼이지 ‘스승을 찾고 도인을 방문 하여 참선하는 수행인은 아닙니다. 우리가 불자라면 참으로 공부인이 되어야지 유람꾼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한 예를 더 들면 운문종의 개조인 운문스님의 일입니다.
그 당시 황벽스님의 제자 되는 목주스님이 유명한 큰스님이라는 말을 듣고 찾아 갔습니다. 목주스님은 대중을 거느리지도 않고 짚신이나 삼으면서 조그마한 허물어져 가는 토굴에 살았는데, 토굴 주위를 높게 담을 쌓고 대문을 만들어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문을 걸어 잠그고 그 안에서 혼자 살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운문스님이 그 토굴로 찾아가서 문을 두드리니 목주스님이 방문을 열고 나오면서, “누구냐?”하니, 엉겁결에 “운문입니다.”라고 대답했습니다.
“너 뭣 하러 여기 왔느냐?” “제가 스님을 찾아 뵈옴은 도를 배우기 위해서입니다.”하자 목주스님이 대문을 열자 운문스님이 토굴 안으로 들어가려고 발을 밀어 넣으니 목주스님이 운문스님의 멱살을 콱 움켜잡고는, “한 마디 말해보라, 한 마디 말해 보라.”
고 다그쳤습니다. 그렇게 다그침에도 운문스님이 아무 말도 못하자 목주스님이 뒷 등덜미를 콱 밀어붙이면서 “산송장 놈이 왔구나! 문은 왜 두드려・・・.”하고 투덜대면서 문을 잠그고 들어가 버렸습니다. 그 날은 그렇게 쫓겨나고 그 이튿날 또 목주스님을 찾아갔으나 어제와 같이 한 마디 대답도 못하고 쫓겨나기만 했습니다. 사흘째 가서는 “오늘은 어떻게 해서라도 문전에서 쫓겨나지 않고 기어이 토굴에 들어가고 말리라.” 결심하고 다시 목주스님을 찾아갔습니다. 전날과 마찬가지로 목주스님이 문을 열자 “한 마디 말해 보라”는 운도 떼기 전에 운문스님이 문 안으로 발을 들이밀고 들어가려고 하자 목주스님은 있는 힘을 다하여 문을 닫아버리니, 그 사이에 운문스님의 다리가 문틈에 끼어 부러지고 말았습니다. 어찌나 아프던지 “악!”하고 소리치는 그 순간에 확철히 깨쳤습니다. 그리하여 다음에 운문종의 개조가 되었습니다.
이처럼 법을 위하여서는 몸을 돌보지 아니하고 오직 도를 성취할 생각만을 할 뿐이지 다리 부러지고 머리 터지는 것을 생각할 겨를이 없는 것입니다. 그렇게 공부하여서 운문스님은 대조사가 되었는데, 그렇지만 평생 내내 절름발이로 다리를 절룩이며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고 합니다. 그래서 종문에서는 운문스님의 절름발이와 이조 혜가스님의 팔을 베어 도를 구한 일은 법을 위해 몸을 잊어버리는 좋은 일화로 전해지고 있습니다.
구마라즙스님의 제자에 승조법사라는 분이 있었는데, 구마라즙스님의 뛰어난 제자가 열명 가운데서 사철로 유명한 분이었습니다.
승조법사의 자격과 재질이 특이하고 뛰어났으므로 그 당시 요진국 임금이 “승조법사를 환속시켜 재상으로 삼으면 천하가 요순세계로 돌아가 태평시절이 될 것이다.”라고 생각하고 구마라습스님에게도 청하고 승조법사에게도 간청하였습니다.
“스님이 머리를 기르고 재상이 되어 정치를 한다면 천하에 명재상이 되어 백성들이 편안할 것이니 환속해서 부디 재상직을 맡아주시오.”하였으나, 승조법사가 끝내 허락하지 않고서
“재상이 다 무엇이냐! 일국의 재상이란 꿈속의 꿈이고 어린애 잠꼬대 같은 소리다. 나는 무상대도를 얻어 영원토록 자유자재하여 일체 중생을 위해 살 뿐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임금이 아무리 권해도 듣지 않으므로 마침내 옥에 가두어 버리고
“끝까지 내말을 듣지 않으면 죽여 버린다.”라고 위협하여도 막무가내였습니다. 나중에 정말 왕이 죽이려고 하니 승조법사께서
“나를 꼭 죽일려면 일주일만 시간을 달라.”
하고는 그 동안에 「보장론」한 권을 지었습니다. 「조론」이라고도 하는데, 그 문장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불법의 진리가 없는 것이 없을 정도로 유명한 책입니다. 우리 팔만대장경에도 들어 있는 책입니다. 일주일 뒤에 형틀에 올려놓고 죽이려 하니 게송을 읊었습니다.
“사대는 원래 주인이 음이요
오음은 본래 비었음이라
머리를 휜 칼날 아래 내미니
마치 봄바람을 베는 것 같도다.
자기로서는 사대가 주인이 없고 오음은 본래 비어 일체가 다 공함을 깨쳐서 불생불멸한 대도를 성취하였기 때문에, 허공은 열 번 쪼개고 부술 수 있어도 자기는 죽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몽뚱이는 죽는것 같지만 실제로 자기를 죽일 수 없다는 것이며, 자성을 확철히 깨쳐서 자유자재하기 때문에 칼로 천번 만번 내리쳐도 자기한테는 상관없다는 말입니다.
‘창과 칼을 만날지라도 항상 탄탄하다’는 것은 승조법사의 이러한 경계를 말한 것입니다. 조금도 겁내지 않는다는 뜻만이 아니라, 자성을 깨치면 영원토록 손익이 없고 생멸이 없는 경계를 ‘항상 탄탄하다’고 표현한 것입니다.
내 목에 칼을 맞는 것이 봄바람을 베는 것과 같다고 한다면 독약을 먹는 것은 어찌 되느냐?
달마스님의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달마스님 당시에 보리 유지삼장과 광통율사는 승단 가운데 뛰어난 스님들로 추앙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달마대사와 토론을 벌여 시비를 일으켰습니다. 그들은 달마대사가 고준하게 법을 설하여 중생들에게 크게 덕화를 끼침을 보고 다투어 해치려는 마음을 내어 음식에 자주 독약을 넣었습니다. 어떨 때는 독약을 먹고 나서 토하니 바위가 가라지더라는 기록도 있습니다.
그렇게 여섯 번이나 약을 드셨는데, 그 여섯 번째에 이르러서는 세상에 교화할 인연도 다하였고 법을 전할 혜가스님도 만난 뒤였으므로 독약을 드시고 조용히 앉아서 입적 하셨습니다.
웅이산의 오판에서 장사지내고 정림사에 탑을 세웠습니다.
그 뒤 3년만에 위나라의 송운이라는 이가 서역에 사신으로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총령에서 달마대사를 만났는데 지팡이 끝에 짚신 한짝을 매달고 훌훌히 혼자 지나가시므로 송운이 물었습니다.
“스님 어디로 가십니까?”
“나는 서천으로 돌아가오. 그대의 나라 천자는 이미 세상을 떠나셨오.”
송운이 이 말을 듣고 돌아와 보니 과연 황제는 이미 떠난 뒤였습니다. 송운이 이 사실을 자세히 보고하므로 황제가 광을 열어 보게 하니 빈 관속에는 정말 짚신 한 짝만이 남아 있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달마스님이 모르고서 여섯 번이나 독약을 드셨느냐 하는 것인데 모르고서 드셨다고 하면 달마스님이 아닙니다.
알고도 드신 것입니다. 여섯 번째 가서는 세연이 다했음을 아시고 독이든 것을 아시면서 드시고 돌아기신 것입니다.
보통 볼 때는 독약에 돌아가신 것으로 보겠지만 세연이 다해서 자신이 독약을 드시고 돌아가셨던 것입니다. 그 뒤에 신짝 하나를 들고 총령을 넘어갔으니 그것을 죽었다고 해야 될 것입니까? 살았다고 해야 될 것입니까? 그런데 실제로 그러한 대자유한 경계를 체득한 사람, 바로 깨친 사람, 다녀도 선이요 앉아도 선이요 어묵동정에 본체가 편안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칼날도 소용없고 독약도 소용없는 것입니다. 그 모든 것이 소용없는데 무엇을 겁내고 무엇을 무서워하겠습니까? 그렇기 때문에 무서운 칼날에도 항상 태연하고 독약에도 한가로와 독약을 꿀같이 보고 칼날도 꽃같이 본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실제로 확철히 깨쳐서 자유자재한 사람의 행리처요 생활인 것입니다. (썼음)
영가스님은 일찍이 온주의 개원사(開元寺)에 있으면서 홀어머니를 모시고 지내며 효순하기로 소문이 났으나, 누나까지 함께 지내니 두 사람을 보살피고 있다 하여 온 사중(寺中)과 동구(洞口)에서 비방을 하였습니다. 어느 날 어머니가 별세하여 상복을 입고서도 누님을 떠나보내지 못하니 사람들의 비방이 더욱 심했으나 영가스님은 전혀 개의치 않았습니다.
영가스님이 천태종에 있으면서 선관을 닦고 선종과 비슷한 길을 밟았다고 기록되고 있는데, 그러면 왜 천태종에서 선종으로 왔느냐 하는 것입니다.
어느 날 개원사 복도로 현책이라는 선사가 지나가고 있었는데 나이는 육십 여세였습니다. 이때 그의 누님이 발 밖으로 그 노숙을 보고, “저 노스님을 방으로 청해서 대접했으면 좋겠다.”고 하여 영가스님이 얼른 나가서 노스님을 청하였더니, 들어오지 않으려 하다가 스님의 간절한 청에 못이겨 방에 들어왔습니다. 그 노숙과 법에 대해 여러 가지로 토론해 보니 자신의 견처나 노스님의 견처가 같은 점도 많이 있고 독특한 점도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현책선사가 영가스님에게 물었습니다.
“스님의 법사는 누구요?” 하니 “내가 방등경론을 배울 때는 각각 스승이 계셨으나, 뒤에 「유마경」에서 불심종을 깨치고는 아직 증명하실 분이 없소이다.”하였는데 세 사람이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현책스님은 영가스님의 기상이 다른 사람들과 다르고, 또 그 누님에게도 협기가 있음을 느끼고 “부모와 형제에게 효순하는 일도 한 가지 길이지만, 스님은 불법의 이치를 밝히기는 했으나 스승의 인가를 얻지 못하고 있소. 과거의 부처님들도 성인과 성인이 서로 전하시고 부처와 부처가 서로 인가하였소이다.
석가여래께서도 연등불의 수기를 받으셨소. 그렇게 하지 않으면 천연외도에 떨어지게 되기 때문이오. 남방에 큰 스승으로 혜능선사가 계시오. 그곳으로 가서 발아래 예배하고 스승으로 섬기시오.” 권하자 영가스님이 “다른 분을 증명법사로 모실 것이 아니라 스님께서 법이 수승하신듯하니 스님을 증명법사로 모시면 좋겠습니다. 나를 위해서 허락해 주십시오.” 하니 현책스님이 “내말은 가볍소. 지금 조계에는 육조대사가 계셔서 사방에서 학자가 운집하여 법을 받는 터이니 만약 그대가 가겠다면 함께 가리다.”했으나 영가스님은 누님 홀로 남겨두고 떠나지 못하고 머뭇거리는 것을 보고 누님이 하는 말이 “나는 다른데 의지해서 지낼 수 있으니 나를 걱정하지 말고 다녀오도록 하라”고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현책스님과 함께 떠났는데, 그때 영가스님의 나이는 31세였습니다. 그럭저럭 시흥현 조계산에 이르니 때마침 육조대사께서 상당하여 법문을 하고 계셨습니다. 이에 영가스님은 절도 하지 않고 선상을 세 번 돌고 나서 육환장을 짚고 앞에 우뚝 서 있자 육조대사께서 묻기를 “대저 사문은 삼천위의와 팔만세행을 갖추어서 행동이 어긋남이 없어야 하거늘, 대덕은 어디서 왔기에 도도하게 아만을 부리는가?”하였으니 육조대사의 이러한 말씀은 “건방지게 와서 인사도 하지 않고 선상만 세 번 돌고 턱 버티고 서 있기만 하니 그것은 아만심이 탱천하기 때문이 아니냐?” 하는 힐난이나 육조스님이 영가스님 하는 짓을 몰라서 그런 것이 아니라, 이렇게 한번 슬쩍 법을 걸어보는 것입니다.
그러자 영가스님이 “나고 죽는 일이 크고, 무상은 빠릅니다.”
라고 하니 이에 육조스님이 말씀하시기를
“어찌하여 남이 없음을 체험해 얻어 빠름이 없는 도리를 요달하지 못하는가?”하시니 이것은 ‘네가 지금 무상이 빠르다고 하니 그 무상의 근본을 바로 체험하여 깨치고, 남이 없음(無生法)을 요달하면 바르고 빠르지 않음이 떨어져버린 구경각을 성취하게 되는데, 왜 그것을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고 나고죽는일이 크고 무상이 빠르다고만 하는가?’ 하는 말씀입니다.
이에 영가스님이 답하였습니다.
“본체는 곧 남이 없고 본래 빠름이 없음을 요달 하였습니다.”
본체는 원래 남이 없으니 무상이 빠르고 더딤이 없는 것이거늘 다시 그러한 것을 체득할 필요가 있겠는가?“ 하는 것입니다.
이에 육조스님이 “네 말과 같다, 네 말과 같다.”고 인가하시니, 천여명의 대중들이 모두 깜짝 놀랐다고 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영가스님은 육환장을 걸어 놓고 위의를 갖추어 육조스님께 정중히 예배하였습니다. 위의를 갖춘다는 것은 큰 가사를 입고 향을 피우고 스님에게 예배를 드리는 것을 말합니다. 영가스님이 이렇게 예배를 드리고 나서 바로 하직 인사를 드리자 육조스님이 말씀하였습니다.
“왜 그리 빨리 돌아가려고 하느냐?”하니
“본래 스스로 움직이지 않거니 어찌 빠름이 있겠습니까?”하자
“누가 움직이지 않는 줄 아느냐?” 하니
“스님께서 스스로 분별을 내십니다.”하자
“네가 참으로 남이 없느 도리를 알았구나!”하니
다시 “남이 없음이 어찌 뜻이 있겠습니까?”하자
이는 남이 없음에 뜻이 있다면 남이 없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뜻이 없다면 누가 분별하느냐?” 하니
뜻이 있느니 없느니 하고 있는 그것부터가 분별하는 것이 아니냐는 육조스님의 질책입니다.
“분별하는 것도 뜻이 아닙니다.”하자
분별을 하여도 심・의・식의 사량으로 분별하는 것이 아니라, 진여대용의 나툼이라는 영가스님의 대답입니다.
그러자 육조선사께서 선상에서 내려오셔서, 영가스님의 등을 어루만지시며 말씀하시기를
“장하다. 옳은 말이다. 손에 방패와 창을 들었구나. 하룻밤만 쉬어 가거라.”
그리하여 그때 사람들이 영가스님이 조계산에서 하룻밤을 자고 갔다 하여 “일숙각” 이라 부르기도 하였습니다.
이튼날 육조스님께 하직을 고하니 몸소 대중을 거느리시고 영가스님을 전송하셨는데, 영가스님이 열 걸음쯤 걸어 가다가 석장을 세 번 내리치고 말하기를
“조계를 한 차례 만난 뒤로는 나고 죽음과 상관없음을 분명히 알았노라!”하였으니 조계에 있는 육조스님을 참문하고서 근본을 확철히 깨쳤다고 스스로 말하였다 합니다.
선사가 고향으로 돌아오자 그의 소문이 먼저 퍼져서 모두들 그를 ‘부사의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이로부터 그의 가・항・게・송은 모두가 그의 누나가 수집한 것입니다.
영가스님은 선천 2년 10월 17일에 입적하시니 세수 39세였으며, 시호는 무상대사 탑호는 정광이라 하였습니다. 그해에 육조스님께서도 열반에 드시니 세수 76세였습니다.
선과 교의관계가 「증도가」에서 더욱 더 완연히 드러나게 되는 것입니다.
선에서는 ‘한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바로 들어간다’고 하며,
교에서는 ‘점차로 닦아 성불하는 것’만을 근본으로 표방하므로 서로가 정반대의 입장에 서게 되는 것 같으나
실은 교가운데 선지가 있고 선 가운데 교학의 이치가 있는 것이라 영가스님의 「증도가」는 실제로 도 닦는 사람들에게 있어서는 만고의 표준이 되고 있습니다.
‘證’이란 구경을 바로 체득함을 말합니다.
깨달음에도 증오와 해오의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해오란 견해・지해를 말하는 것으로 알기는 분명히 알지만 실제 마음으로 체득하지는 못한 알음알이를 이르는 것으로 예를 들면 얼음이 본래 물인 줄은 알았지만 아직 녹지 않고 얼음 그대로 있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얼음을 녹여 물로 쓰고 있지는 못하듯이 중생이 본래 부처인 줄은 분명히 알았지만 번뇌 망상이 아직 그대로 남아 있어서 알아도 체득한 앎이 아니라 중생 그대로인 것을 해오라고 말합니다.
‘증오’란 얼음을 완전히 녹여서 물로 쓸 수 있을 분만 아니라 물 자체도 볼 수 없는 경계, 따라서 중생의 번뇌 망상이 다 끊어져서 제팔 아뢰야 근본 무명까지 끊어진 구경각을 말하는 것으로 곧 실재를 체인 한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교가에서든지 선가에서든지 증이라 하면 근본적으로 체달한구경각을 말하는 것이요. 경을 읽고 남의 말을 들어 외워 뭘 좀 아는 알음알이를 가지고 말하지 않는다는 것은 공통된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선가에서 깨쳤다고 하는 것, 마음으로써 마음에 전한다는 것은 ‘증오’이지 ‘해오’가 아닌 것입니다.
보조스님도 처음에는 선가에서 전한 법을 ‘해오’라고 잘못 보았다가 나중에 ‘간화결의론’이라든가 ‘원돈성불론’같은 데서는 선이란 ‘증오’이지 ‘해오’가 아니라는 것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그러므로 선종에서는 언제든지 깨친 것을 ‘돈오’라 하는데, ‘돈’이란 망념을 순식간에 없애는 것이요, ‘오’란 얻는 바 없음을 깨닫는 것이라‘고 대주선사는 설파하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째서 도라 하는가? ‘道’의 근본을 ‘보리’라, ‘각’이라 하는데 ‘증’을 근본으로 삼으므로, 이 ‘도’라 하는 것은 증한 도 즉 구경각을 성취한 그 구경처를 말하는 것입니다. 즉 ‘도’란 구경을 깨친 ‘증오’한 ‘도’이지 알음알이로 아는 ‘도’나 ‘해’가 아닌 것입니다.
그러면 구경각인 ‘도’란 무엇인가?
“무심이 도라고 일컬어 말하지 말라
무심도 오히려 한 겹 두터운 관문이 막혀 있노라. 하는 것입니다.
근본도는 무심입니다.
구경각을 성취하여 대원경지가 현발한 이것이 ‘도’인 것이며, 진여본성과의 합일된 체달을 이르는 것이므로 ‘증’이 곧 ‘도’이며 ‘도’가 곧 ‘증’인 것입니다. 달마스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밖으로 모든 반연을 쉬고
안으로 헐떡거림이 없어서
마음이 장벽과 같아야
가히 도에 들리라.
영가스님의 증도가는 육조스님을 찾아가 확철히 깨쳐 구경각을 성취하고 나서 그 경지를 체증한 근본을 노래(家 )로써 표현한 것입니다.
옛날 중국 은나라 마지막 임금에 걸왕이 있었는데 학정이 심해서 마침내 쫓겨난 일이 있습니다.
이렇게 나쁜 사람을 징계는 하지 아니하고 나쁜 짓들을 좋게만 받아들인다면 그 사람을 언제 고칠 수 있으며 점점 더 나쁘게만 만들지 않느냐 하는 면도 있습니다.
그래서 어떤 때는 자비로써 베풀며 어떤 때는 위엄으로써 다스려서 어떻게 하면 저 사람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느냐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한쪽으로 자비만을 집착해 나가다 보면 오히려 해독을 주게 되어 버리는 그것은 참된 자비가 아닙니다.
그러므로 ‘비방을 받아도 원수를 맺지 않는다’든가 ‘남이 없는 자비인욕의 힘’을 베푼다는 것도 무조건적인 자비만 말하는 것이 아니라 자비와 위엄을 겸한 것을 말합니다.
한쪽으로만 국집 하면 실지의 중도정견을 이룰 수 없는 것입니다.
대자대비를 성취한 불보살은 중생을 상대할 때 어떻게 하면 저들에게 이익을 줄 수 있겠나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래서 혹은 자비로써 대하기도 하고 혹은 위엄을 보이기도 하지만 결국은 중생을 위해서 하는 것이기 때문에 모두가 다 자비가 되는 것입니다.
만약 자비를 베푼다 하여 그 자비가 일방적인 것이라면 도리어 중생에게 해로움을 끼치게 되는 것이니 이것은 자비가 아니라 독인 것입니다.
자비와 위엄을 겸해야만 참다운 대자대비가 되어 중생에게 이익을 줄 수 있는 것이지 자비만 주장하면 도리어 해를 줄 수 있습니다. 자비와 위엄을 보이는 데 있어서도 자비의 위엄이 되어야지 추호라도 감정이 개재된 위엄이라면 자비가 아니라 중생에게 해독을 주는 것이므로, 자비로써 근본을 삼는 위엄이 되어야만 ‘남이 없는 자비인욕의 힘’이 되는 것입니다.
달마스님이 양무제를 만나니 무제가 물었습니다.
“짐이 만승천자가 되어 절도 많이 짓고 경전도 많이 펴고 탑도 많이 세우고 보시도 많이 하였는데 어떤 공덕이 있습니까?”하자
“공덕이 하나도 없습니다.”라고 달마스님이 대답하였습니다.
그것은 ‘모양에 머문(有爲)보시이기 때문이니 당신이 실제로 불법을 위하여 공덕을 쌓으려거든 자성을 깨쳐라’한는 말입니다.
곧 자성을 깨치는 이것이 참 공덕이기 때문입니다.
상에 머무는 보시는 삼생의 원수이니만큼 수행하는 사람은 자성을 바로 깨쳐 영원토록 자유자재한 행복을 성취 하여야 합입니다.
설봉스님이라면 천하에 유명한 분입니다.
도를 구하여 ‘세번 투자(선사)산에 가고 아홉 번 동산(선사)에 갔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투자산과 동산과의 거리는 오륙천리나 되는 거리인데 그런 먼 길임에도 세 번이나 투자선사를 찾아가고 아홉 번이나 동산선사를 찾아갔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아무리 멀고 먼 길, 아무리 험하고 높은 산일지라도 멀고 험하다고 생각지 아니하고 오직 도를 위해서 몸을 아끼지 않고 부지런히 공부했다는 뜻입니다.
덕산선사를 은사로 모신 설봉스님은 암두스님과 흠산스님과 더불어 세 분이서 항상 도반이 되어 함께 다녔습니다.
설봉스님은 어디를 가든지 공양주만 하여서 쌀을 이는 조리를 늘 가지고 다녔고, 암두스님은 어디를 가든지 항상 채소밭을 가꾸는 원두만을 보아서 괭이와 호미를 늘 가지고 다녔으며, 흠산스님은 어디를 가나 바느질만 해서 실 뭉치와 바늘을 늘 가지고 다녔습니다.
그래서 셋이서 어느 처소에 가든지 설봉스님은 공양주만 맡아서 대중의 공양을 지어 올리고, 암두스님은 채소밭을 가꾸어서 대중의 반찬을 해 올리고, 흠산스님은 온 대중의 바느질을 전부 도맡아 해주었습니다. 이렇게 셋이서 도반을 지어 천하를 다니면서 공부하여 마침내 세 분이 모두 성취하여 후세에 대도인 들이 되었습니다.
선종사에 있어서 최초로 대중을 많이 거느린 스님이 설봉스님인데 평생을 늘 1천 5백명 이상의 대중을 거느리고 살았습니다.
그때는 선종 초기로서 중간에 와서는 더러 이삼천 명의 많은 대중을 거느리는 총림도 있었지만 초기에는 선이 제대로 보급이 되지 않기도 했지만 참선을 전문으로 하는 처소도 많지 않아서 많은 대중이 모여 살기가 어려웠습니다.
설봉스님은 1천 5백명 대중을 보고 늘 하시는 말씀이, “너희 1천 5백명 대중이 모두 나의 이 조리 속에서 나왔다”고 하였습니다. 무슨 뜻이냐 하면 복혜쌍수를 해야 된다는 말씀입니다.
자기가 참으로 공부만 열심히 한 것이 아니라 공양주를 많이 했기 때문에 중들이 많이 모여서 수행하는데 먹여 살릴 복을 짓게 되었다고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공부하는 데 있어서 한편으론 ‘한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들어간다’는 최상승의 공부를 바로 지어가야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대중이나 중생들을 섭수하는 방편으로서 비록 생멸복이나 구복이 아닌 작복을 설봉스님이 스스로 공양주를 하며 닦아 지었듯이 하여야만 원만한 법을 성취할 수 있다고 예전 큰스님네들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무리 강과 바다를 건너고 산천을 밝고 다녀도 설봉스님과 같이 발심해서 법을 위해 몸을 돌보지 않는 굳은 뜻을 가지지 않는다면, 산이나 보고 물이나 구경하는 유람꾼이지 참으로 공부하는 사람은 아닙니다. 유람꾼이 되지 않고 진정한 구도자가 되려면 설봉스님처럼 법을 위해 몸을 잊어버리는 철두철미한 발심을 해야 합니다.
이 산승은 요사이 발심해서 공부하는 사람을 별로 보지 못했습니다.
이 산승이 보기에는 거의가 유람꾼들입니다.
공부하는 사람은 법을 위해서는 몸을 잊어야 하는 것이니 그와 같은 한가로운 유람꾼이 되어서는 어느 시절에 대도를 성취할 수 있겠습니까?
공부하는 근본 자세는 나라는 생각을 버리고 제방으로 선지식을 찾아가 참문하고 철저한 지도를 받을 수 있도록 하여야지,
“너나 내나 똑같은데 네 말 들을 것이 뭐 있나!”
하는 아만으로 가득찬 마음으로 공부할 것 같으면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부처님의 무상정법을 만나거든, 사람 몸 얻기 어렵고 불법 만나기 어려운 줄 분명히 알아서 참으로 환희심을 내어 공부를 부지런히 하고 자성을 바로 깨쳐 일체 중생을 위해서 영원히 살아보겠다는 확고한 각오를 가져야합니다.
이런 좋은 법문을 들었으니 정법을 비방하는 사견・악견을 버리고 바로 믿어 자성을 깨쳐서 영원토록 중생을 위하여 진정한 불사를 우리 다 함께 지어 봅시다.
“힘 센 사람이 구슬이 자기의 이마에 박혀 있는 것을 모르고 시방세계를 두루 다니면서 밖으로만 찾아다녀도 끝내 찾지 못하다가, 지혜로운 이가 가르쳐 주면 당장에 구슬이 이마에 본래대로 있음을 아는 것과 같다.”
는 말씀처럼, 구슬은 본래 이마에 있는데 자꾸만 상을 쫓아 외변으로만 돌아 다녀 보았자 구슬은 못 찾는다는 것입니다.
어떤 지혜로운 사람이 ‘구슬이 너의 이마에 있지 않느냐’고 바로 가르쳐 주면 스스로 더듬어 만져보아 알게 되니 이것이 바로 ‘한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드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모양에 머물러 보시하는 방법과 함이 없는 실상문의 방법과는 이렇게 근본적으로 틀리는 것입니다. 모양에 머물러 보시하는 방법으로 공부를 한다면 삼아승지겁이 아니라 미래겁이 다하도록 애써도 성불하지 못하는 것이니, 함이 없는 실상문에 들어가는 방편으로 공부할 것 같으면 ‘한번 뛰어 넘어 여래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육조스님께서도‘미혹하여 들으면 여러 겁이 걸리고 깨치면 찰나간’이라고 늘 말씀하셨습니다. 즉 자기의 마음을 깨치면 눈 깜짝할 사이에 구경각을 성취해 버리는 것이지 절대로 많은 시간이 필요하지 않으므로, 누구든지 이 법을 바로 믿고 부지런히 닦기만 하면 금생에 ‘한번 뛰어넘어 여래지’에 들어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가스님이 헛되게 하신 말씀이 아닙니다. 앞에서도 ‘만약 거짓말로써 중생을 속인다면 발설지옥에서 진사겁토록 지낼 화를 자초한다’고 맹세까지 하셨지 않았습니까?
이것은 중생의 업이 너무도 두터워 참으로 믿기가 어렵기 때문에 그런 말씀을 노파심절로 하신 것입니다.
"마음을 관찰하는 한 가지 법이 모든 행을 다 포섭한다.”
고 하셨습니다. 마음을 관찰하여 마음을 바로 깨칠 것 같으면 전체 불교가 그 가운데 다 포함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모든 것이 완전히 성취된다는 것입니다.
한번 뛰어넘어 여래지에 들어가서 자성을 깨치면 내심외경, 곧 안의 마음과 밖의 경계 전체가 원융무애하여 통연히 명백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것을 비유로
‘맑은 유리병 속에 보배 달을 넣어 둔 것과 같다’하는 것입니다.
육조스님이 보림사에 계실 때 절 앞 뜰에 큰 용소가 있어서 거기에 독룡이 살면서 수풀을 휘젓고 사람에게 나투는 것을 보시고 육조스님게서 꾸짖어 말씀하시기를
“네가 다만 큰 몸은 나툴 줄은 알되 작은 몸은 나투지 못하는 구나. 신룡 이라면 마땅히 클 수도 있고 작을 수도 있어야 할 것이다.”
라고 하시니 이에 그 큰 독룡이 홀연히 없어지더니 작은 몸을 나투어물 위에 다시 떠 올랐습니다. 그때 육조스님께서 발우를 내밀면서 “노승의 발우 속으로 들어와 보아라.”
고 하시니 그 독룡이 헤엄쳐서 다가오므로 육조스님께서 그 작아진 독룡을 발우에 담아 법당으로 가셔서 상당하여 설법 하시니, 그 독룡이 드디어 몸을 벗어 화거하여 제도를 받았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예를 들어 ‘용을 항복받은 발우’라 하는 것입니다.
법화경 제바달다품에 팔세의 용녀가 부처님 법문을 듣고 당장에 성불했다 고 되어있습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하느냐 하면, 축생이나 사람이나 남자나 여자나 할 것 없이 일체 중생이 불성을 가지고 있어서 누구든 성불 할 수 있다는 말입니다.
용녀를 선택한 것은 용녀란 뱀이며 뱀 중에서도 암뱀이니 그 암뱀과 같은 미천한 축생도 성불한다는 것을 보이기 위한 것입니다. 한편으로 보면 부처님 말씀 가운데도 여자는, “첫째 범천왕이 되지 못하고, 둘째 제석이 되지 못하고, 셋째 마왕이 되지 못하고, 넷째 전륜성왕이 되지 못하고, 다섯째 부처가 되지 못하는 다섯 가지 장애가 있어서 성불하지 못한다”고 하신 말씀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방편가설입니다. 영가스님이 그것을 입증하기 위해서 법화경을 설하시는 회상에서 축생인 용녀, 곧 암뱀이 부처님 법문을 듣고 성불한 것을 예로 들어 말씀한 것입니다. 곧 용녀 성불의 이 예는 일체 중생은 누구든지간에 짐승이든지 사람이든지 숫컷이든지 암컷이든지 부처님 법을 바로만 믿고 수행 할 것 같으면 눈 깜짝할 사이에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한 말입니다.
그름이란 어떤 것이냐 하면 선성비구 같은 부처님 제자가 잘못된 길에 들어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진 것을 말합니다.
즉 선성비구는 부처님께 시봉도 많이 하고 법문도 많이 듣고 부처님의 일대시교를 모두 외우며 공부를 제법 많이 했지만 격국은 나쁜 친구를 만나 길을 잘못 들어가서 부처님을 비방하고 해롭게 하여 부처님 교단에 굉장한 장애를 끼쳤습니다. 그리하여 부처님을 반대한 과보로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선성을 부처님 아들로 본다면 정법을 반대하면 부처님 아들이라 하여도 산 채로 지옥에 떨어지는 것이고 정법을 바로 믿을 것 같으면 암뱀도 성불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성불하느냐 도는 지옥으로 떨어지느냐 하는 것은 법을 바로 믿느냐 믿지 않느냐 하는 그 믿음에 있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많은 법문을 하시는 가운데 ‘내가 이렇게 말하는 것은 달을 보라고 가리키는 손가락이지 달 그 자체는 아니다. 내 법문에 의지해서 스스로 자성을 깨쳐야지 나의 말에만 집착해서는 자성을 깨치지 못한다’고 항상 말씀하셨습니다.
손가락이란 언어문자를 비유한 것이니 모든 언어문자는 자성을 깨치는 방편으로서 달 가리키는 손가락과 같다는 것입니다.
중생이 그것을 모르고 그 언어문자가 근본 도인 줄, 법인 줄 알고 평생 내내 문자에만 집착하여 결국 손가락만 보고 달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 되어서 평생 헛일만 하고 아무 소용이 없게 됩니다.
또한 자성 깨치는 것을 근본적으로 막는 것은 육근・육경・육진이 우리의 자성을 은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육근・육경・육진 속에서 쓸데없이 허둥댄다면 자성은 영원히 깨치지 못하고 마는 것입니다. 근경진이란 단지 육근・육경・육진만이 아니라 언어문자에 집착하여 쓸데없는 법상을 분별하는 모든 것을 총괄해서 하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설사 총명이 아난존자 이상으로 뛰어나서 부처님의 설법을 모두 기억하고 있다 하여도 깨치지 못하면 결국 결집에서 아난존자가 가섭존자에게 쫓겨나는 꼴이 되고 마는 것이니, 그것을 깊이 알아서 자성을 꼭 깨쳐야지 괜히 언어 문자에만 헤매이게 되면 평생을 그릇쳐 영원토록 헛일만 하고 마는 것이 됩니다. 우리가 이것을 분명히 알아서 단단한 각오를 하고 수행에 임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부처님께서 ‘정해진 업은 면하기 어렵다’고 하셨는데, 그러면 이 말씀과 영가스님의 말씀과 모순되는 것이 아니냐 하는 의문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이조 혜가 대사가 달마대사의 정법을 받아서 삼조 승찬대사에게 전한 뒤에, “나도 업도로 가서 묵은 빚을 갚으리라.”하고는
업도로 훌쩍 떠났습니다. 거기 가서 형편에 따라 설법을 하니, 한 마디를 법문함에 사부대중이 모두 귀의하였다고 합니다.
이와 같이 중생을 교화하기 삼사년을 지내고는 드디어 자취를 감추고 겉모양을 바꾸어 술집에도 드나들고 푸줏간에도 찾아가고 거리의 잡담도 익히고 품팔이도 하면서 처소를 가리지 아니하고 호호탕탕하게 자재한 생활을 했습니다.
사람들이 이상히 생각하여 묻기를 “스님은 도인이신데 왜 이런 일을 하십니까?”하니, 혜가스님이
“내 스스로 마음을 조복시키기 위함이요 다른 뜻은 없느니라.”
고 하였습니다.
그 당시 업도에서 가까운 안현의 광구사에 변화법사라는 이가 있어서 『열반경』을 강의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혜가스님이 그 절 삼문 밖에 와서 무상정법을 설하니, 대중이‘열반경’을 듣다가 혜가스님 법문하는 곳으로 모두 가버리고 변화법사의 강석에는 사람이 없다시피 되었습니다. 자기는 죽자 하고 애써서‘열반경’을 설해 왔는데 대중들이 이제 자기의 법문을 듣지 않고 혜가스님이 법문하는 곳으로 가버리니 속으로 어찌나 화가 났든지 분함을 참지 못하고 현령인 적중간에게 가서 무고를 했습니다.
“저 중은 미친놈이고 삿된 견해를 가진 외도입니다. 앞으로 그냥 놓아두면 불법에만 해독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세속에도 큰 해를 끼칠테니 저런 놈은 살려 두어서는 안됩니다. 저 놈은 나의 강석도 무너뜨렸습니다.”고 하니, 이에 적중간은 사실을 자세히 살피지도 아니하고 거짓말에 속아서 혜가대사를 목을 베어 죽여버렸습니다. 그것이 서기 593년이고 혜가스님의 당시 세수는 107세라고 합니다.
이상에서 살펴본바와 같이 혜가스님은 비명에 죽었으니 그 이유는 무엇인가? 빚을 갚는다고 했으니 빚을 갚았다고 해야 될 것인가, 아니면 어떻게 말해야 될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해서는 이전부터 많은 논란이 있었습니다.
흔히 전생 빚이 있어서 빚을 갚은 것이라고 말하기도 하지만 그렇게 말하면 뜻이 정반대가 되어 버립니다. 누구든지 구경각을 성취해서 자유자재한 해탈경계에 들어갈 것 같으면 업장이 본래 공해서 업보를 받을래야 받을 수 없으며 거기서는 업장을 찾아볼래야 찾아볼 수 없는 것인데 만약 빚을 갚았다고 하면 혜가스님이 공부를 다 마쳐서 대법을 성취하지 못한 사람이 되어버리고, 빚을 갚지 않았다고 하면 분명히 죽임을 당했으니 그것은 또 어떻게 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모순이 이루어집니다.
그러나 이것은 모르는 사람들이 하는 말입니다. 혜가스님을 중생들이 볼 때는 분명히 죽임을 당했으나 혜가스님이 구경각을 성취해서 업장이 본래 공하다고 하는 데 대해서는 추호도 모순이 없습니다. 만약 모순이 있다고 본다면 원융무애한 중도 정견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변견으로써 자기의 사량 복탁으로 오해하는 것이지 실제로 알고 보면 혜가스님에게는 부족함이나 흠이 없는 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해서 장사 잠스님에게 호월공봉 이라는 분이 물었습니다. “이조 혜가스님이 빚을 갚았다 하니 혜가스님은 업장이 본래 공한 것을 모른 것이 아닙니까?”
“당신이야말로 업장이 본래 공함을 모르는구료.”
“어떤 것이 본래 공함입니까?” “업장이 본래 공함이니라.”
“어떤 것이 업장입니까?” “본래 공함이 업장이니라.”
이 문답은 완전히 모순입니다. 업장이 본래 공함이고 본래 공한 것이 업장이라는 것이니, 이 말은 변견에서 하는 말이 아니라 업장과 본래 공함이 융퉁자재한 곳에서 하는 말입니다.
중생이 볼 때는 업장과 본래 공함이 둘입니다. 그래서 ‘이조 혜가대사가 빚을 갚았다 하면본래 공함이 아닌 것이고 본래 공했다면 빚을 갚을 것이 없다’는 것이니, 이렇게 보게 되면 업장도 모르고 본래 공함도 모르는 순전히 양변에 떨어진 견해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자기가 확철히 깨쳐서 중도를 정등각하게 되면 업장과 본래 공함이 완전히 부정되어서 업장도 놓아 버리고 본래 공함도 놓아 버려서 업장과 본래 공함이 융퉁자재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거기서는 업장이 본래 공함이고 본래 공함이 업장이어서 무애자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보통 사람이 볼 때는 빚을 갚은 것 같아도 갚은 것이 하나도 없으니 본래 공함이라 하든지 업장이라 하든지 간에 거기에는 추후도 모순이 없습니다.
중생의 변견으로써는 거기에 분명히 모순이 있지만 이것은 중생의 업식망정으로 추측하는 착오된 견해이며 깨친 분상에서는 업장과 본래 공함이 둘이 아닌 것입니다. 중생이 볼 때는 아무리 빚을 갚는 것 같고 정해진 업을 면하지 못하는 것 같아도 이것은 중생을 위한 방편일 뿐, 실제로는 본래공함 그대로이며 무애자재함 그대로라 중생이 업을 받는것 하고는 근본적으로 틀린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중생은 구경각을 성취하지 못하였으므로 정해진 업을 그대로 갚아야 할 때는 업 그대로여서 실제로 자유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구경각을 성취한 사람에게 있어서는 아무리 빚을 갚는다 해도 거기에는 대자유가 있고 갚지 않는다 해도 대자유가 있어서 자유로운 데는 조금도 모순이 없습니다.
이것을 확실히 알아야 하는데 이것을 선가에서는 ‘생사 없음을 쓴다’로 합니다. 아무리 생사를 받고 업을 그대로 받고 빚을 갚는다 하더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도 업을 그대로 받고 빚을 갚는다 하더라도 실제에 있어서는 하나도 없을 받을 것이 없고 빚을 갚을 것이 없으며 생사를 받을 것이 없다는 말입니다.
말로만 없는 것이 아니라 참으로 구경각을 성취해서 색즉시공 공즉시색이 실천된 데서 하는 말입니다. 그렇게 실천되면 혜가대사나 부처님이나 빚을 갚았느니 정해진 업을 면하지 못하느니 하는 것도 본래 공함과 절대로 모순이 없는 것입니다.
장사스님이 게송으로 말하였습니다.
“거짓 있음이 원래로 있음이 아니요
거짓 없어짐도 또한 없어짐이 아니니
열반과 빚 갚음의 뜻이
한 성품으로 다시 다름이 없도다.
있다 하지만 있는 것이 아니므로 있다는 이대로가 공이며, 없다 하지만 없어지는 것이 아니므로 있는 것이며, 있다 하여도 있는 것이 아니요 없다 해도 없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있는 것이 곧 없는 것이며 없는 것이 곧 있는 것이니 결국 있음과 없음을 떠나서 있음과 없음이 서로 통한다는 것입니다.
과거 먼 옛날 중향세계의 무구정광여래라는 부처님이 계시던 때에 용시라는 비구가 있었다고 합니다.
그는 매우 인물이 잘 났으므로 그를 사모한 젊은 여자가 마침내 병석에 눕게 되었습니다. 유모가 그 사유를 알고 여자의 어머니와 함께 여러 가지로 부당함을 설명했으나 병만 점점 깊어져 갔습니다. 마침 용시비구가 탁발을 왔으므로 그 여자를 위해 설법을 청하였습니다. 그리하여 용시비구가 그집에 자주 드나들게 되니 여자의 병은 차츰차츰 나아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다 마침내 용시비구는 그 여자와 가깝게 되어 음행을 저지르고 말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용시비구는 유모와 공모하여 그 여자의 남편을 죽여버렸습니다. 수행하던 비구가 자칫 잘못하여 음행을 저지르고 살인까지 하고 보니 갑자기 죄책감에 사로잡혀 번민 속에 살다가 할 수 없이 비국다라보살에게 찾아가서 일심으로 참회를 구했습니다. 보살이 말하되 “걱정하지 말라. 내가 지금 너를 위해 두려움 없음을 베풀리라.”하고는 법인삼매에 들게 하고 한량없는 부처님을 나타내 보였습니다. 그리하여 용시비구는 “모든 법은 거울에 비친 모양과 같고 물 속에 비친 달과 같거늘, 범부는 어리석게도 마음에 매혹되어 어리석음과 성냄과 사랑함을 분별하다”는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비로서 무생법인을 깨쳤다고 합니다.
이 고사는 ‘불설정업장경’에 실려있습니다.
부처님 교단에 있어서는, 첫째 사음하지마라, 둘째 도적질하지 말라, 셋째 살생하지 말라, 넷째 거짓말하지 말라는 이 네가지를 사바라이라하여 이 계 가운데 어느 한가지라도 범하면 승단에서 쫓겨나는 것으로서 사형선고나 같은 것이기 때문에 다시는 살아날 수 없는 것이고 영원토록 아비지옥에 떨어진다는 무거운 계목입니다.
용시비구는 그 사바라이 죄 가운데서도 음행과 살생이라는 두 가지 죄를 거듭 지었으니 그 죄가 얼마나 무거우냐 하는 것입니다. 그런 무거운 죄를 지은 용시비구도 부처님의 법문을 듣고서 무생을 증득했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과거 오래 전에 성불했는데, 그 이름을 보월여래라 하였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누구든지 사람을 잡아 먹어가며 공부해도 되지 않겠는가?”라고 혹 이렇게도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는지 모르겠지만, 이러한 극악한 사람을 예로 드는 것은 우리불법이란 광대무변해서 아무리 극중 죄인이라도 불법을 바로 믿고 그대로 공부를 하면 성불할 수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무상대도라하는 것이지, 죄를 크게 지은 놈은 영원히 죽어 버리라고 하면 이것은 참으로 무상, 위없는 법이라고 할 수 없으며 넓고도 큰 길이라고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참으로 넓은 길이란 죽은 사람도 살리고 죽지 않는 사람도 살려서 누구든지 다 살릴 수 있는 능살 능활한 법이어야 합니다. 그렇다고 우리가 악한 일을 골라 하라는 것이 아니라 극악한 사람도 정법을 바로 믿고 공부하면 대도를 성취할 수 있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니 착한 사람이야 더 말해 무엇 하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