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고, 아이고 나 죽어.”
87세 할머니가 문지방을 넘다가 미끄러져 허리를 다쳤다.
정형외과로 들어와 입원하고 아프다는 곳을 엑스레이
찍어 봐도 아무 이상은 없었다.
밤새도록 울며 신음소리에 한 방에 환자들이 한잠도 못 잤다.
아침에 선생님이 회진을 돌면서 몸은 좀 어떠시냐는 물음에 외면을 하고,
입을 꼭 다문 할머니는 무엇이 불만인지 대답이 없다.
인대가 늘어나 근육이 놀랬으니, 며칠만 치료 받으면 괜찮다는 말을 남기고,
정형외과 의사는 병실 문을 나갔다.
할머니는 나를 치료해 줄 의사는 저 선생이 아니라며 떼를 쓰기 시작하였다.
간호사는 뼈는 정형외과, 눈은 안과, 위는 내과, 수없이 설명을 해도
고개를 저으며 들으려 하지 않으니 감당이 안 되었다.
“우리 선생님, 데려다 줘, 우리 선생님 말야.”
내과 원장이 회진을 돌다 정형외과 병실에 들어왔다.
지쳤는지 이불을 뒤집어쓰고 꼼짝 않던 할머니,
눈을 빼끔히 뜨고 낯 익은 목소리에,
아프다고 주사도 못놓게 하시던 분이 순식간에 벌떡 일어났다.
“아이고 선생님, 어디 갔다 이제 오셨어, 보고 싶었어요.”
이산가족이 만나기라도 한 듯
할머니는 내과 원장님을 붙잡고 눈물을 뚝뚝 흘리며,
내 병은 선생님이 꼭 보셔야 고칠 수 있다고,
구구절절 수다를 늘어놓으니 조용했던 병실이 갑자기 요란스러워졌다.
내과원장은 할머니를 하루에 두 번씩 회진을 하게 되었다.
치료는 정형외과에서 하고 내과 선생님은 특별한 치료도 없이,
할머니의 말을 응해줬을 뿐인데 기분이 좋아지셨다.
며칠 후,
몸도 홀가분하고 다 나아 밥도 잘먹으니 퇴원을 해야겠다며 서두르신다.
“선생님, 김장도 해야 하고 가을걷이 해놓고, 선생님 보고 싶으면 또 올게요.”
선생님은 껄껄 웃으며 충청도 구수한 사투리로
“그려, 알았어 김장하고 아프면 또 와.”
나이가 들면 어린애가 된다더니...
가루개에서 택시를 불러 타고 고스톱 치며,
노는 것이 취미라는 타자할머니,
정형외과 선생님은 본채도 안하고, 병실을 나서는 새털처럼 가벼운 할머니 발걸음은
졌다가 다시 피는 꼬부라진 할미꽃 같았다.
2022. 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