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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석 고영일(利石 高瀛) 선생이 보았던 제주의 속살들...
힘들게 가족을 부양해야 했던 제주의 좀녀(潛女)들, 우리의 어머니들... 태왁과 망사리를 들쳐매고, 그들의 戰線인 거친 바다로 향한다.
한라산과 들판에 내린 비는 곧바로 화산암으로 덮힌 대지로 모두 사라져버린다. 지하암반을 흐른 물은 바다에 이르러 바닷물 수압으로 갯가에서 溶出한다. 물이 귀했던 제주는 주로 이 샘물과 가까운 곳에서 부터 사람이 살기시작했다. 포구 옆에 솟아나는 샘물에서 빨래, 먹는물, 목욕... 사람들은 온갖 것을 해결했었다.
리석 고영일(利石 高瀛一, 1926~2009)
리석 고영일(利石 高瀛一 / 1926~2009)은 광복 후 어려운 시기에 서울에서 문학과 신문을 공부하여 1948년 고향 제주로 내려와 제주신문사 기자로 사회에 뛰어 들어 편집국장, 주필을 거쳐 제주남양방송(현 제주 MBC) 개국에 참여했다.
제주신성여자고등학교 교사로도 재직했다. 1955년에 제주에서 최초로 부종휴와 더불어 사진 개인전을 열었고, 1965년 제주에서 처음이고 전국적으로도 드물게 순수 사진예술을 지향하는 단체인 제주카메라클럽을 창립하며 본격적인 사진 활동을 시작했다.
사진을 좋아하는 사람들과 후배들을 육성하면서 제주도 사진예술 의 발판을 만들었다. 사진예술 불모지에 씨앗을 뿌린 시기였다.
1977년 사진작가협회 회원으로 등록 되면서 한국사진작가협회 학술평론분과위원과 간사, 제주미술대전 초대작가, 경기도 미술대전 초대작가 등을 거치며 전국의 사진작가들과 어울려 사진 활동을 활발히 전개했다.
1985년부터 1998년 사이에 무려 8권의 사진기술에 관한 저서를 발간하였고 6회의 개인전을 열기도 했다. 1990년에는 제주도문화상(사진부문)을 수상하고 서울시 등 6개 시도의 미술대전 심사위원도 역임했다.
고영일은 사진 인생 50년 동안 개인의 작품 활동과 더불어 대한민국 사단 발전과 사진인을 양성했다.
— 신상범의 「利石 高瀛一 사진평론집 『대한민국의 사진을 말하다』을 내며」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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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멋있는 선배님들 본받아야하는데 가랭이가 짧아서 고민일쎄
정사장 만큼만 가랭이가 길었으면
얼매나 좋을꼬...ㅎㅎ
사진을 기회가되면 공부하여 감상문 올려야지 !!!!
감상문이야 안 배워도 쓸 수 있는 거 아닐까? ㅎㅎ
위에서 두 번째 사진은 바닷가에 솟아오르는 산물을 가두어 목욕하는 토강인것 닮다. 하나는 남탕, 또 하나는 여탕...어떻든 정겨운 풍경이로고! 추억이 새록 새록...
토강이라~~~!
샘물 이름인가...???ㅎㅎㅎ
산에서 흘러온 샘물(산물)이 바닷가 주변에 자연스럽게 둘러쌓인 바위 등에 갇혀 한 곳으로 흐르고 움푹파인 곳에 모아져 제법 깊이있게 된 곳을 말함. 밭일을 마친 마을 사람들이 그 곳에 모여서 함께 목욕을 하면서 세상돌아가는 정보도 교환하곤 하는데, 한마디로 바닷가 천연 산물공동목욕탕을 "토강'이라 불렀쥬...
토강...
확실히 알았네!
감사합니다.^^
지금 보난 추억에 젖엉 조아 보염찌만 그 옛날에는~~~힘 들었쮸이?!
힘들어도 다 고찌덜 경 해시난...
배덜은 아프지 않았던 시절이 아니었을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