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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대에게 지리산이 묻는다 이원규 시인 (지리산생명연대 운영위원장) 지리산의 품에 안겨 생의 한철 한 마리 산짐승처럼 산다는 것은 실로 자랑스러운 일이었다 세상사 다 버리고 내가 나에게 준 일생일대 최고의 선물이었다 그러나 다시 봄이 오는 길목에서 반달가슴곰의 퀭한 눈으로 휘휘 둘러보니 지리산에 산다는 것은 한없이 부끄러운 일이었다 자랑도 선물도 아닌 치욕과 굴욕이 되었다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 두 무릎을 꿇고 마고선녀의 낮지만 준엄한 목소리를 듣는다 내 뒷골에 철탑이, 너는 어디에 있느냐? 내 입속에 쇠밧줄이, 너는 무얼 하고 있느냐? 마고선녀께서 그대에게 묻는다 구례군민들에게 단도직입으로 묻는다 지리산 노고단이 여의도의 63빌딩 전망대냐? 천왕봉 성모께서 그대에게 묻는다 산청군민들에게 묻는다 천왕봉 제석봉이 서울의 남산타워냐, 그뿐이냐? 반야봉 반달가슴곰이 그대에게 묻는다 남원시민들에게 묻는다 중봉이 타워팰리스냐, 그것뿐이냐? 천년주목 고사목이 그대에게 묻는다 아직 어린 구상나무가 함양군민들에게 묻는다 장터목이 쌍둥이빌딩이냐, 겨우 그것뿐이냐? 일제의 쇠말뚝을 다 뽑아내기도 전에 내가 겨우 정복의 대상일 뿐이라면 내가 겨우 돈벌이 대상일 뿐이라면 너희들은 정녕 대대손손 행복하겠느냐? 그렇다면 이제부터 나를 아비라 부르지 마라 어미라 할미라 선녀라 성녀라 부르지도 마라 감히 지리산의 아들과 딸이라 떠벌리지도 마라 나는 너희들이 오기 전에도 여기에 있었고 당대의 후레자식들이 떠난 뒤에도 나는 여기에 있을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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