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 물 원
난 프로페셔널 킬러이다.
킬러......
클리너......
살인 청부업자......
혹은 해결사......
이 일을 시작한지도 벌써 꽤 됐지만 이렇게 불리울 때 난 무언지 모를 이상
야릇한 기분에 휩싸인다.
주직업은 아니고 그냥 부업인데... 때론 주업보다 나을때도 있다.
주업은 조그맣고 맛있는 샌드위치가 나오는 바(BAR)의 주인이다.
동. 물. 원.
어딘가 부업과는 일치감 없이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난 어느샌가 나도
모르게 동물원을 다니고 있었다.
나는 이따금씩 시간이 나면 동물원을 가는데 어떤 생각에서 동물원을 찾는가
하면 종교적인 차원에서 그곳을 종종 찾아간다. 어떻게 해서 종교적이 되느냐
하면 (이야기가 쓸데없는 방향으로 흐르는 기분이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마
음의 평온을 찾기위해 종교를 갖는 것과 마찬가지인 기분으로 동물원을 찾기 때
문이 아닌가 싶다.
"당신의 종교는 무엇입니까?" 라는 질문을 받았을 때
"동물원입니다. 저는 동물원을 믿고 있습니다." 하고 대답을 할 수 있는
형편도 아니지만 말이다.
하지만 뭐! 즉 나의 가장 평온한 장소는 동. 물. 원.이다.
뭐 특별한 유아기적 체험이 있었던것도 아니고 특별한 일이나 충격이 있던것
도 아니지만 난 순수하게 (그곳에가면 순수해질 수밖에 없다.) 동물원이 좋다.
동물원마다 그럴수는 없고 그렇지도 않지만 적어도 내가 다니는 동물원에는
입구쪽에 넓다란 호수가 있다.
그호수는 정말 넓어서 넓게 펼처진 호수를 보고 있자면 입구부터 날 이렇게
경건하게 만드는 힘이 있음을 실감한다. 그 호수는 나의 의식 저 밑바닥의 세
계와 교묘하게 연결이 되어있어, 나에게 호수를 빼놓고 동물원을 상상한다는건
이젠 이미 불가능한 일이 되어 버렸다... 나에게 있어 그것은 정말 새로운 세계
인 것이다.
이렇게 보다보면 나란 인간은 꽤 감수성이 뛰어난 클리너일지도 모르지만 청
부업자라고 해서 언제나 숨어지내고 어둡게 살아야하는 법도 없으니 이상하다거
나 특이하다고 치부할 이유는 없는 듯 하다...
개인적으로는 각자의 색깔이 있는편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리고 맡은 일은 확실히 처리하니 말이다.
호수로부터 동물원 입구까지 도착할수 있는 길은 두가지가 있다. 한가지는
호수를 옆으로하고 빙 도는 길과(너무멀다, 그리고 호수가 너무 넓어서 이기도
하다.) 호수위로 가로지나가는 리프트가 있다. 주로 난 리프트를 이용하는데 그
이유는 길이 멀기도 멀어서 이지만, 어쩐지 이 리프트는 내가 호수위를 날고있
는 오리가 된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기 때문이다. (사실 재미도 있다.)
매나 독수리도 그럴듯 할 것 같고 멋져보일 듯 싶지만 사실 리프트는 독수리
라 불리울 만큼 그렇게 빠르지않다. 사실말이지 리프트가 때로는 공중 한곳에
두둥실 머물러 있다거나, 순간속력이 시속 200KM 까지 나온다면 그건 아마 공
포일 것이다.
그래서 우린 오리밖에는 될 수가 없다.
리프트위에서 아래 호수를 내려보고 있자면 다른 무리의 동족같이 느껴지는
오리무리들이 여유롭게 쉬고있는 모습이 보인다. 좀더 자세히 보면 발졌는게
보이는데 정말 물밑과 물위의 모습은 천지차이가 날만큼 현저한 차이를 보인다.
오리도 오리그들 나름대로 무척 바쁜 것이다.
어느날이었다.
그날도 여느때와 다름없이 약간은 순수하고 어느정도는 경건한 마음으로 동
물원을 찾아 갔다. 언제나 그랬듯 리프트를 타고선 오리된 기분을 한껏 만끽하
며 난 호수위에서 평화롭게 놀고있는 오리들을 내려다 보았다. 그순간 난 오
리들 밑으로 검은 그림자가 얼듯 비치는 것을 볼수 있었다. 뭔가가 이상하고
불길해 자세히 보려는 순간 (정말 눈깜짝할 순간이었다.) 집체만한 상어가 창문
만한 눈을 부릅뜨고 대문만한 입을 쭈악 벌려서 아무것도 모른채 놀고있는 오리
를 한 입에 덥썩 삼켜버렸다.
한두번 그 커다란 몸과 턱을 뒤흔들어 파도와 거센 물살을 만든후, 그 모습
을 마지막으로 7미터는 족히 되보이는 그 거대한 상어는 다시 그 넓고 깊은 호
수속으로 물위에 거품만을 남긴채 저 밑 바닥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그리곤 잠시후
다시 호수위에는 평화스러운 고요함이 찾아왔다.
금방 호수 수면위에는 조금전의 참상과는 다른 아름다운 동그라미 물결파문
만 점점 커져갈 뿐이었다. 몇마리의 물새들이 조금전의 잔인한 사건은 보지 못
한 듯 알지 못하고 다시 날아와 물위에 앉는다.
단지 오리의 꽥꽥거림이 사라졌을뿐 시간은 잠시 멈추었다가 다시흐르는 듯
했다. 어쩐지 알 수 없는 긴장감이 도는 호수이다. 불공평하다는 생각이 들었
다. 불안했고 식은땀이 흘렀다. 리프트가 고장나거나. 여기서 떨어지면 진짜오
리가 될버릴지도 모른다는 공포감이 나를 엄습했다.
상어 입속으로 빨려들어가는 오리의 놀라고도 공포의 휩싸인 두눈을 본건 그
순간 아무 도움도 주지 못했던 나의 나약함을 더욱더 강하게 느끼게 했다. 그
때 나에겐 금장으로 장식된 계량형 베레타101 두자루가 바지 뒷춤 홀스터(권총
을 넣는 가죽케이스)에, 그리고 22구경 스미스 리볼버 한자루가 양복 안쪽 홀
스터 안에 있었다. 하지만 난 그 물결이 사라질때까지 권총손잡이엔 손가락 하
나 갖다대지 못했다. 그점이 오리에게 너무나 미안했다. 상어의 입이 벌어짐
과 동시에 생긴장면들이 자꾸만 머리속에서 슬로우모션으로 오버랩되어 나타났
다.
-상어의 입속으로 호수물과 함께 몸이 빨려들어가는 동시에 오리는 놀라서
날게를 퍼득인다. 목은 위에 하늘을 향해 있는힘껐 쭉 뻤고 부리도 반쯤벌리고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겁에질린 두눈을 동그랗게 뜨고 바로위에 있는 날 바라봤
다.-
그의 눈엔 하늘위에 있는 내가 얼마나 부러웠을까... 아마 부러웠을 것이다.
내가 오리라도 그랬을태니깐...
삶을 향한 마지막 몸부림...
난 그가 본 마지막 세상...
때때로 어떤 종류의 상어가 호수같은데에서 살수 있을까 생각한다. 동물도
감 상어편에서 여러 가지 종류의 상어를 살펴보고 어떤 놈일까 곰곰히 생각한뒤
에 위와같은 거짓말을 생각해 냈다. 미안한 일이지만 지금까지의 상어이야긴
전부 거짓말이다. 미안하다. 호수따위에 상어같은 것이 살리없다. 그냥 하도
호수가 넓고 그럴듯싶게 짖푸르러서 이런 이야기를 지어보게 되었다.. 덕분에
오리는 모두 무사하다. 심각하게 읽은 분께는 정말 미안하다...
난 평소에는 조용하고 조그만 BAR의 주인으로 돌아가 있다. 표정은 언제나
웃음을 띄고 있고, 붙임성은 있지만 귀찮지는 않다... 딱히 먼저 말을 걸어올
정도는 아니란 말이다... 그리고 맛있는 샌드위치를 만드는 주방장이기도 하다.
"괜찮은 bar는 맛있는 샌드위치를 내놓는 법이라구!" 라는 말을 어디선가 들은
후로 난 샌드위치만드는 방법을 부던히도 노력 했었드랬다. "bar와 샌드위치가
무슨 관계가 있느냐!" 라고 할법도 하지만 어찌됐든 덕분에 지금은 쿨한 샌드위
치를 순식간에 7가지는 만들어 낼수가 있다. 한입만 먹어도 쿨이라는 말이 절
로 나올정도의 맛이다. 이 경지까지 다다를때까지 2년 반이나 걸렸다. 매일 아
침마다 재료를 선택 구입하고 열심히도 만들었던 것이다. 그덕에 (그덕이라고
는 하기는 뭣하지만 어찌됐든이라는 뜻쯤으로 봐줬으면 좋겠다.) 성실하고 일
잘하는 바탠더 제이와 서빙하는 여자아이, 그 두명을 구해 동업자와 넷이서 함
깨 이 일을 하고 있다.(이젠 동업자는 없지만...)
워낙 알려지지 않고 크지 않아서 벌이가 그다지 놀랄만한 것은 아니지만 단
골도 있고 다른 커다란 BAR보다는 훨씬 괜찮은 술과 안주를 대접하고 있다.
직원급료도 다른곳 보다 30% 더 많이 주고 있고, 여름과 겨울엔 열흘씩 휴가
도 있다. 일주일에 하루를 쉬고 6일을 일했다. 그만큼 일잘하는 실력자들이기
도 하고 믿음이 가는 사람들이다. 그점에 있어서 우리모두는 서로에게 만족하
고 있었다...
킬러로 있을땐 전혀 다른사람이된다. 무표정에 조용하고 빠르고 냉혹하다.
하지만 일의 종류와 때에 따라서 양면성의 선은 분명하기 때문에 아무도 의심하
는 사람은 없고 아직까지 들키지 않고 있다. 그리고 동업자가 있었다. 있었다
가 맞다. 그는 이미 죽었으니까. 그는 친한 친구이고 BAR의 동업자 이기도
했다. BAR에 있을땐 난 주로 주방이고 그는 카운터였는데 그것이 우리 각자의
포지션이었다. 주방이라고 해봤자 마른안주나 이미 익숙해져 버린 샌드위치가
고작이지만... 아무리 생각을 해도 그가 일을 나보다 많이 하는건 사실이었다.
이미 많이 지나 오래되 버린듯한 일이지만 그는 무언가 계획을 짜거나 돈만지는
일에 뛰어났다. 일 처리가 너무나도 깨끗해서 다른사람 모두가 만족해하고 있
는중 이었고, 나역시도 그가 계획을 짜거나 돈을 계산하는게 좋고 편했다. 아
무래도 난 그쪽일엔 소질이 없었으니깐 말이다. 그 점에서라면 클리너 쪽에서
도 마찬가지였다.
매우 밝은 친구였는데... 어느 한 거대 조직을 클린할 때 그는 나대신 총알
받이가 되었다. 위험정도는 이미 알고있었다. 너무나 거대한 조직의 오랜 보스
였다. 물론 액수야 많았지만 역시 기분나쁜 일이었다. 하지만 피할래야 피할수
도 없는 일이었고, 그러한 상황이 우리로 하여금 이일을 떠맡게 하였다. 그 당
시에도 이미 후회할걸 예감했지만 말이다. 난 마지막으로 그 친구 몸에 여러
게의 핏줄기가 솟구치는걸 보고 정신을 잃었다...
그것이 그와 나와의 이승에서의 마지막 모습이었다...
사람은 그렇게 가는게 아니다...
적어도 우린 그래선 않되는 거였다...
그렇게 난 그 친구를 준비없이 보냈다.
"미안해... 할말이 없어..."
"괜찮아. 네 탓이 아니야~"
때때로 그 친구가 한없이 보고싶어진다. 그러면 나는 홀로 BAR에 앉아
LONG ISLAND ICE TEA (ICE TEA색깔을 띤 진 베이스에 럼, 보드카, 트리
플섹, 콜라, 레몬즙이 들어간 칵테일)를 콜라없이 더블로 세잔을 마신다. 이 칵
테일은 매우 (더블일 경우에) 효과적이어서 세잔이면 충분히 죽은 내 친구와 만
나 예기할 수 있다.
"오랬만이야? 이게 얼마만이지?"
"한 이주정도? 잘있었나? 가게는 잘 되고?"
"그럼! 나야 뭐 언제나 그렇지- 뭐 다를게 있나? 있어야할 자리에 자
내만 없을 뿐이야. 그러고 보니 내가 한동안 술을 않마신게로군..."
"음~ 건강에 않좋으니까! 그럴바에야 우유가 훨씬 났지..."
"그래 맞아! 우유가 났지... 우유라..."
"프로니까."
"그래... 우린 프로니깐."
". . . . . "
우린 잠시동안 서로를 그렇게 말없이 바라 보며 다른 생각을 했다...
"음악이라도 틀을까?"
"좋지..."
"재즈?"
"응. 그건 내가 할게. 조용한 경음악이 좋겠어."
그가 주크 박스 앞으로 가서 동전을 몇갠가 넣고는 선곡을 했다. 괜찮은 재
즈음악이 어둠침침한 BAR안의 공기를 따뜻하게 했다. 볼링즈의 '텐드래'와 마
일스 데이비스의 '잇 네버 엔터드 마이 마인드', 빌 리의 '모 베터 블루스'가 차
례대로 흘렀다. 부드럽고 서정적인 곡이다. 난 재즈를 들으며 잠시동안 맥주
를 생각했다. 난 재즈를 들으면 버릇처럼 이내 맥주를 떠올리곤 한다.
"난말인데 사실 언제나 그렇지만 그날을 잊을수가 없어. 가끔은 잠도자
지 못한다구... 왜 그랬을까... 그 날도 후회할걸 알면서도 피할 수가 없었어..."
내가 말했다.
"잊어! 잊어버려... 이미 지난일이야. 나도 하자고 했잖어! 그리고 더
이상 나한테도 미안해할 것 없어! 잊는게 너나 나나 모두에게 좋아."
"하지만......"
"너무많은걸 젊은나이에 보고, 얻은 대가야! 그렇게 생각해 난. 그래서
후회따윈 나에겐 조금도 없다구. 정말이야."
"뭐~ 죽은 너가 그렇다면 난 할말없지만..."
"아! 그건 그렇고 그때다친 머리는 괜찮아? 몇 달치 기억이 날아가 버
렸다며!"
"괜찮아! 어차피 기억일 뿐이데 뭐~ 기억이란건 언젠가는 지워지기 마
련이니까. 신경쓸만한 것이 못되... 그래도 걱정해 주니 고마워!"
"고맙긴 친구사이에..."
친구는 새 담배를 뜯어 피웠다. 나는 칵테일 잔을 샷잔으로 바꾸어 위스키
를 스트레이트로 한잔을 마셨다. 괜찮은 스카치 위스키다. 15년된 스코트랜드
산인데 향도 괜찮고 알콜농도가 43%이다. 아까 잠깐 맥주를 떠올렸지만 다시
낮은 도수로 갈수는 없는 일이다. 그리고 위스키도 나쁘지 않다. 마신 위스키
는 목구멍을 넘어서 미끄럼을 타듯 식도를 지나 위속으로 부드럽게 넘어갔다.
친구가 연기를 길게 내 뿜을 때쯤 나의 식도와 위속은 점점 따뜻해지기 시작했
다. 세상이 조금 즐거워 보인다.
"박하담배는 흑인들이 좋아하지. 선전도 그친구들이 한다구. 특히 재즈
리스트들이 하는 광고는 그럴싸 하거든!" 친구는 박하담배를 피운다.
"그래?"
"응... 그런데 나역시 그렇단 말이야."
"그렇군... 난 담배를 안피우니깐 잘 몰라."
"좋은거야. 사실 몸에 도움이 될일이 없거든 담배는." 친구는 다시 길게
담배연기를 내뿜었다.
"나 이제 클리너생활은 그만 둘 생각이야. 너무 둔해진 느낌도 있고 더
이상 잃을것도 없지만 이제 더 이상 그일에서 얻을 것 역시 없는 것 같아서.
무엇보다도 너도 없고...."
". . . . ."
"가게일에 전념할 생각이야... 돈이야 네 몫까지 열심히 벌면 모자라지는
않을 것 같아. 특별히 많이 필요하지도 않고. 제이도 그렇고 그 여자아이도
열심히 해주고 있으니까."
"다들 잘 있겠지?"
"그럼! 모두 보고 싶어해."
". . . . ."
"사실 아직은 아무도 몰라! 그냥 훌쩍 혼자 멀리 여행 비슷한걸 떠났다
고 해두었거든. 그편이 좋을 듯 싶어서..." 내가 말했다.
"그리고 네 몸은 화장을 했어... 아직 어디다 뿌리진 못했지만... 특별히
가보고 싶은 장소라두 있어?"
"동물원."
"동물원?"
"응. 있잖아. 우리 함께 자주가던 동물원말야. 거기가 좋겠어!" 라고 그
가 말했다.
"평화로운 동물원..."
"피스."
"피스."하고서 난 다시 위스키 한잔을 더 비웠다. 과연 15년의 세월을 삼
킨 것 같은 맛이 났다.
"나중에 가족이 생기면 놀러와!"
"그럼 널 보러 갈때마다 소풍가는 기분이겠는걸!"
"그렇겠군... 훗!"
"그밖에 부탁할 일은?" 내가 물었다.
"없어. 아! 그리고 나중에 언젠가 도움이 필요하면 나를 찾아와줘. 널
위해서 살아있을 때 뭔가 힘이 될만한걸 조금 남겨 놓았으니까."하고 그가 말했
다.
"알았어. 그렇게 까지 신경써주니 고마워."
"젠장 이젠 그말 밖에 할줄 모르는거야? 훗!"
친구는 피던 박하담배를 재떨이에 비벼 끄고 물 한컵을 마시고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럼 다음에 또 보지. 아! 제이에게 안부 전해줘!"
"알았어. 잘가."
그친구가 돌아가고 나서 얼마 않있어 서서히 날이 밝아왔다. 그럴즈음 나도
술이 조금씩 깨고 있었고 우리의 바에는 부드럽고 따뜻한 그리고 옅은 빛의 아
침이 조금씩 가게 구석구석으로 스며들고 있었다. 마치 화선지에 먹물이 스며
들 듯 그렇게 햇살은 서서히 비중을 차지해갔다. 그가 피우고 간 담배 꽁초위
에도 역시 그 비중이 조금씩 들어섰다. 언제나 그렇듯 그가 내게 남기는건 한
숨과도 같은 그런 자취뿐이다.
음악은 벌써 끝나있다. 시계를 봤더니 아직은 제이와 여자아이가 올려면 여
러 시간이 남은 새벽이다. 그때 문득 또다시 친구가 죽은 그 날이 생각났다.
모든 만반의 준비를 마치고 꽤나 어려운 경보망을 뚫고 침입에 성공한 우리
는 고객의 의사와 대답을 전하고선 깨끗이 클린을 했었다...... 꽤나 어려운 일
이었었기 때문에 깨름직한 일을 마쳤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그곳 경호원들이
뒤 늦게 들이 닥쳤다. 그땐 정말이지 아차 하는 기분이 들었었드랬다.
경. 호. 원. 경호원이라하면 대부분 검은색 양복에 한쪽뿐인 수신용 이어폰,
검은색 선글래스, 왼쪽옆구리 홀스터에 은색 매그넘 리볼버나 개량형 콜트정도
가 떠오르게 전부지만... 그들은 확실히 여느 놈들과는 달랐다. 정말 달랐다.
기분이 나빴다. 마치 우리가 클린을 끝내길 기다렸다는 듯이 처음에는 아
주 조용히 있다가 우리가 일을 끝마친 후에 모두가 튀어 나온 것이다. 우린 속
은 것 이었다... 의뢰인의 함정이었던 것이다. 이미 도주로는 봉쇠되어 있었고
여느 놈들과는 다르게 그놈들은 완전 무장을 하고 있었는데 경호원 이라기보단
테러리스트쪽에 가까웠다. 침착성만을 봐도 프로라는 걸 한눈에 알아볼수가 있
었다. 적들을 칭찬하는건 기분좋은 일이 아니지만... 지금와서 그들의 움직임
을 생각하면 역시 하는 생각뿐이다.
"과연 놈들은..."
그때 난 허벅지에 총상을 입었는데 친구는 재빨리 부상당한 나를 끌고 우선
적당한 골목으로 피신했다. 그리고는 맨홀뚜껑을 열어 나를 집어 던져넣고는
아래를 향해 bar에서 보자고 소리쳤다.
"4시간 후에 bar에서 봐!"
그순간 어지러운 발자국소리가 멀리 사방에서 들리며 내 친구는 골목 앞뒤로
포위를 당했다. 그는 더 이상 생각할 것도 없이 맨홀뚜껑 닫았다. 그순간 한발
의 총성이 울렸고 친구 어깨에 그 총알은 적중했다. 몇방울의 핏방울이 맨홀
위를 바라보던 내 이마에 방울져 떨어졌다. 친구는 고통을 참으며 맨홀뚜껑을
마져 닫았다. 맨홀이 다 닫힌후 수백발의 자동소총소리가 맨홀밑 지하통로를
울렸다. 친구는 여러줄기의 피를 뿜으며 맨홀뚜껑위로 쓰러졌다. 맨홀뚜껑의
여러 구멍에서 친구의 피가 줄줄흘러내렸다. 그 뜨겁고 끈적끈적한 액체는 내
몸을 적셨고 난 그곳을 벗어나 얼마후 정신을 잃었다.
그래서 겨우 나만 살아남았다. 어쩜 나보다 훨씬 정상적인 그가 살아 남았
어야 옳았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친구는 그길을 내가 걷기도 전에 그 자리에
서 날 밀쳐내고 자신이 대신했다.
아무리 다시 생각을 해봐도 난 세상을 정상적으로 살기엔 너무 술을 많이 마
시고 있다... 그리고 그건 내친구의 마지막 실수로 내 기억속에 자리 잡았다.
좀처럼 실수를 하지 않는 친구 였는데 말이다...
친구가 실수를 할 때면 웃으면서 이렇게 말했다.
"누구나 실수 같은건 다들 하면서 산다구~"
그역시도 자신에겐 실수는 어색했던 모양이다. 그런식으로 변명을 할 필요
는 없는데...
리프트에서 내려 티켓을 사고 동물원에 들어갔다. 가을이라 아침에 bar에서
나올 때 회색롱코트에 머리엔 모자를 썼다. 구름도 없는데다 햇빛이 너무 강
해 거기에다 선글래스를 썼고 한 손에는 그녀석의 뼈가루를 들었다. 무게를
가늠할수 없는 미묘한 죽은자의 무게였다. 이따금씩 난 내 자신이 바다속 밑
바닥에 가라앉은 납덩어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내 앞으로 이따금씩 심해어나
거대한 고래가 지나간다.
역시 개인적인 견해지만 동물원은 뭐니뭐니해도 평일날 아침이나 비내린 바
로 그 다음날 아침이 가장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모두들 점심때쯤에 몰릴 손
님들을 생각하며 청소를 하거나 물을 바닥에 뿌리고 부산하게 매점을 오픈하는
게 보기좋다. 물을 뿌릴땐 흙냄새가 났다. 오픈준비란 언제나 그렇듯 부산해야
재맛이다. 아침같은 실제로 상쾌한 분위기. 너무나 한가롭고 조용하다. 하품
하는 동물들도 많아서 여유로와 보인다. 만약 점심때나 오후 뒤늦은 시간에 그
놈들이 하품을 한다면 인간들 보는 것이 피곤하다는 표현밖에는 않될테니까...
미묘한 차이지만 엄연히 다른 것이다.
사실 처음 동물원엘 가자고 한건 죽은 그 친구였다. 그이후에 나역시 여기
가 적당한 안식처 처럼 느껴진다. 그래서 그는 결국 이곳을 선택한지도 모른
다. 그도 그렇고 나도 그렇고.
사람들이 몰리지 않는 아침을 틈타 녀석의 뼈를 뿌렸다. 여기 저기 그가 즐
겨찾던 우리부터 시작해서 호수에 이르기까지 동물원 전체에서 그가 느껴지도록
친구를 흩어놓고 다녔다...
"이제 이걸로 끝이야... 더 이상 아플 필요도 외로울 필요도 없어..."하고
혼잣말을 했다. 그도 살며시 웃는 듯 했다.
난 동물원의 일을 마치고 다시 천천히 걸어 bar로 돌아갔다... 제이는 bar
앞에 서서 컵을 닦고 있었고 여자아이는 양동이 하나로 감자껍질을 벗기고 있는
중이었다. 나는 미묘하게 여름냄새가 남아있는 손님이 없는 bar에 혼자 걸터앉
아 나의 손을 꼼꼼히 앞뒤로 점검했다... 손톱부터 손금 하나하나에 이르기까지
천천히 훌터본 뒤 얼음같이 차가운 맥주를 다시 천천히 마셨다. 손을 꼼꼼히
훌터보는건 그친구의 버릇이었다. 그것을 이제는 내가 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
이 거기에 미치자 다시 세상이 조금 우울해 보였다.
아까부터 유리컵을 닦고있던 제이가 한참동안 날 보고 있다가 걱정하는 표정
으로 와서 물었다.
"왜그래? 안색도 별로 좋아보이지 않고... 어디 아픈거 아냐?"
"동물원에 다녀왔어..."
"그렇군... 그것뿐이야?"
"그냥 피곤할 뿐이야." 난 성의없이 대꾸했다.
"집에가서 좀 쉬는게 어때? 여긴 내가 다 알아서 할게!"
"그렇게 해 주겠어?"
"그럼! 걱정말구 집에가서 푹 쉬어."
"그럼 부탁해. 젖은 솜이 된 기분이야."
"알어."
제이의 말대로 나는 퇴근을 하면서 서빙보는 여자아이에게 손님에 대해 이것
저것을 일러두었다. 그리고 머리모양이 예쁘다고 칭찬을 해주고선 퇴근했다...
여자아인 쑥스럽다는듯한 미소를 살짝보이고선 이내 고개를 돌렸다. 귀여운
아이다. 하늘을 보니 벌써 해가 져가고 있어 하늘 전체가 붉은 빛을 띠었다...
집으로 걸어가면서 문득 요즘들어 술이 늘고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곤
다시 과연 난 몇살까지 아무탈 없이 마실수 있는걸까? 하고 생각했다. 그리고
나중에 늙어 술을 할 때마다 속을 생각해야할 때가 온다면 꽤나 슬프겠지? 하
고 생각했다.
맥주를 처음 마시기 시작한건 17살때부터다. 그때 만난 사람이 제이다. 그
때 제이가 일을 하던 bar의 인상이 강하게 남아 이제 결국은 내가 이일을 하기
시작했다. 고등학교시절에 시험이 끝나거나 찹찹한 기분이 들때면 난 언제나
제이스바를 찾곤했다. 그땐 바도 한가할 시절이어서 제이와 난 바를 사이에 두
고 서로 여러 가지 이야길 했었다. 어린애와 중년층의 사내가 무슨 할 예기가
그렇게 많았었는지 기억할수 없지만 그 나름대로 좋았던 시절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전공을 살려 건설회사에 들어갔지만 언제나 가슴 한구석엔
bar 구석 자리에서 마시던 맥주맛을 잊을수가 없었다. 아련히 밀려오는 재즈
음악을 들을때면 내가 결국 돌아가야할 자리는 여름 냄새가 물씬나는 에어컨디
셔너 옆자리, bar의 구석자리라고 머리속은 되내이고 있었다. 난 거기에서 이
유를 알수 없는 향수를 일으켰다. 나는 거기서 나트륨 등의 간접조명을 받으며
책을 읽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미 난 그 냄새에 익숙해져 있었다. 여름밤의
후덕지근함과 습한 공기, 담배연기, 젖은 솜같은 에어컨디셔너, 셰이커 흔드
는 소리, 그리고 웅성거리는 사람들과 그속에 섞인 웃음소리.
그런 것이다.
그런건 결국 어딜가도 변하지 않는다.
결국은 말이다.
마침내 우린 다니던 회사를 그만 두었다. 아마 이런 한가로움을 느끼며 살
기엔 우리가 다니던 회사일은 너무 과중했던 건지도 모른다. 너무나 피곤해서
시간만 나면 잠을 자야할 정도 였으니 말이다... 그런 생활로는 어디도 갈수없
다. 남는건 의미없는 돈 뿐이다. 그리곤 받은 퇴직금과 그간 모아둔 돈을 여기
우리의 보금자리에 투자 하였다.
나름대로 다부진 결의도 하였다. 한 반년에 걸쳐 여기저길 돌아다니며 적당
한 자리를 물색하고 가게를 사고 새로 인테리어를 했다. 인테이리어는 너무 새
련되거나 깔끔하지 않는 것을 방향으로 설계를 했다. 내부 장식의 재질은 나무
로 해서 부드러움을 느끼게 하고, 조명은 부드럽고 대체적으로 테이블이나 바
를 제외한곳은 어두운 조명을 사용했다. 그리곤 일주일에 3일을 연주할 실력있
는 재즈리스트를 몇 명 스카웃 하고 4일동안 레코드를 돌릴 중고 주크박스를 샀
다. 다 완성되고 나니 제법 돈을 들인 냄새가 났다. 자리도 썩 이라고 말하긴
뭐 하지만 나쁘지 않았고, 분위기도 약간은 편한마음으로 칵테일을 마실수 있
게끔 되었다. 너무 깔끔하면 오히려 손님이 경직되기 마련이니까, 제대로 편하
게 술을 즐길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아늑한 분위기의 장소가 마련되고 나선 멋진 칵테일을 만드는 바텐더
를 찾아 다녔다. 그러다가 다시 찾은 것이 제이였다. 예전의 우리가 다시 만
나 팀을 이룬 것이다. 그리곤 우린 '작가와 감독'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우리의
전설을 만들기 시작했다.
바텐더란 말이 나와서 말인데, 제이는 바텐더로서 확실한 재능을 소유한 사
람이다. 바텐더라는 직업, ~ 그 가게의 어떤 칵테일을 마셔도 다른 BAR의 그
것보다 맛이 있으려면 그건 그 나름의 노력을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세상에
노력없이 성사되는 일이란 그리 흔치 않다. 그런데 제이에게는 맛있는 칵테일
을 만들 수 있는 재능이 있었다. 세상사람들은 잘 모르는 모양이지만, 재능없
이는 맛있는 칵테일이란 만들 수 없는 것이다. 물론 누구라도 노력을 하면, 제
법 상당한 수준까지는 가능하다. 몇 개월쯤 견습생으로서 훈련하면, 손님에게
내 주어도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칵테일은 제대로 만들 수 있게 된다. 대부분
의 가게에서 손님에게 대접하는 칵테일은 그 정도 수준인 것이다. 그것으로 물
론 통용은 되지만 그 다음 수준으로 넘어가기에는 특별한 재능이 필요한 것이
다. 그것은 그림을 그리거나 백미터 경주를 하는것과 마찬가지 일이다. 나 자
신도 제법 상당한 칵테일을 만들 수 있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난 당해낼수가 없
었다. 꽤나 연구도 많이 했고 연습도 했다. 같은 술을 넣고, 같은 식으로 같은
시간만큼 셰이커를 흔들어도, 어찌된 일인지 완성된 칵테일의 맛이 다른 것이
다. 어째서인지 알수는 없지만 나로선 그걸 재능이라고 밖에 부를 수 없다.
그건 예술과 마찬가지인 것이다.. 거기에는 한줄기 선이 있어, 그것을 넘을수
있는 인간과, 넘을 수 없는 인간이 있는 것이다. 그리고 제이는 그 선을 아주
원숙하게 넘어버리는데 성공을 했다.
그 후 우린 bar로 본다면 성공을 한 셈이였다... 규모가 크진 않지만 단골들
이 꽤 있는 셈이다... 가끔씩 자릿세를 받겠다고 오는 건달들도 있긴했지만 그
것들도 얼마후엔 잠잠해지기 시작했다. (우린 그것들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클
린했다.) 여러 종류의 잡지에도 소개 되었었고 무엇보다도 우리 자신들이 만족
하고 있었다. 하지만 클리너입장에서 본다면 그건 누가 보나 실패였다. 세상
에서 가장 소중한 부분을 잃었으니 말이다.
클리너는 우리가 대학에 들어가고 2년 2개월이 지나고 부터 시작했었다. 처
음엔 별 생각이 없었으나 한 번 하고 나니 적성에 맞는 듯 했다. 그리고 우린
남들이 보기에 장난이나 농담처럼 보일듯한 글을 학교 개시판에 써 붙였다.
"누군가를 죽이고 싶다는 생각이 든적은 없습니까? 혹시 그러고 싶은데
그사람이 당신보다 강하지는 않습니까? 겁이나는군요? 그렇죠? 용기가 없는
거죠? 여기 당신을 대신할 적당한 사람이 있는데 소개해 드리죠. 돈은 선불입
니다..."
글을 써 붙여 놓고도 글이 너무 솔직담백해서 사람들이 진실이라고 믿어줄
것 같지가 않았다. 우리가 봐도 우스운 글이었으니까... 하지만 역시 요즘세상
은 나약한 인간들로 들끓는다는 것이 사실입을 입증이라도 하듯 수없이 많은 사
람들이 비밀리에 연락을 해왔다. 그제서야 우린 대단한 금맥을 찾아냈다는걸
알았다. 혹은 장난으로 하는 사람들도 몇있었지만 우린 꽤나 심각했던 이유로
그런 사람들에겐 그 장난에 상응하는 징벌을 했다... 예를들어 그런 인간들은
팔이나 다리를 부러뜨렸다. 세상에는 때론 심각해져야 할 필요가 있다.
고객의 의뢰에 따라 대부분의 타겟은 정해지지만 학생의 신분으로써 순수했
던 우리는 쓰레기가 아니면 처리하기를 거부 했고(여기엔 철저한 사전조사가 필
요하다) 되려 조사후 의뢰인이 쓰레기면 역습을 하기도 했다. 우리까지 쓰레기
가 될 필요는 없던 것이다.
우리가 처음 처리했던 사람은 우리가 알고있던 사람이었다. 그일은 남의일
이 아니라 우리의 개인적인 일이었는데, 같은과 여후배들을 성희롱하는 낙에
학교를 다니고 있는 졸업반이었다. 한마디로 쓰레기 였는데 오래전부터 별러왔
지만 선배였던 이유로 내버려 두고 있었다... 하지만 나와 친했던 중학교, 고등
학교 여후배(신입생)를 건드렸을땐 더 이상 참을 필요를 느낄수 없었다. 우린
계획을 짜고 즉시 실행에 옮겼다.
처음 사람을 죽이고 느낀 기분은 "너무 쉽다!"라는 것이 었다. 어쩜 정상적
인 반응은 아닐 지라도 우린 통쾌함마져 느끼고 있었다.
준비물로는 날이 예리한 사냥용 나이프(반대면에는 톱날이 달려있는 것이었
다)와 황산 1.5리터통으로 4통이 전부였다. 황산을 구하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
였지만 (약국에선 황산따윈 팔지 않는다.) 그런건 생각해보면 너무 쉬운 일이다.
우린 그걸 화학과 실험실에서 쉽게 구했다.
오래전부터 여러 가지 운동을 했던 나에게 칼을 쓰는일은 그다지 어려운 일
이 아니었다. 선배집에 찾아가서 선배가 문을 열어주고 다시닫고 그가 돌아섬
과 동시에 재빠르고 능숙한 솜씨로 목에 사냥용 나이프를 찔러넣어 구멍을 냈
다. 너무나도 갑작스러운 일이라 그 쓰레기는 단 한 번의 반항도 하지 못했다.
단 한 번에 성공을 해야했다. 난리를 치면 집안에 흔적이 남을테니까... 그리
고는 숨이끊어지기 전에 우린 무표정한 얼굴로 후배사진을 보여 줬다. 그러자
선배는 피가 분수처럼 쿨럭쿨럭 흐르는 목을 양손으로 부여잡고 괴로운 표정을
짖다가 이내 단념하듯 손을 풀고 몸에 힘을 뺐다. 그는 언젠가 당할일을 당했
을뿐이라는 체념하는 표정을 하고선 죽어갔다. 우린 그후 재빨리 선배의 몸을
욕조로 옳겼다. 그리고는 준비해온 황산을 선배의 몸둥이에 서서히 부어 몸을
녹이듯 태워 시신을 없앴다. 그후 바닥에 흘린 피도 닦고 칼에 묻은 피도 닦았
다. 그리고 욕조에 물을 받아 욕조에 남은 황산기를 없앴다. 장갑을 끼고 문
을 잡그고 열쇠는 학교 쓰레기 통에 버렸다.
5일 뒤 그 쓰레기의 가족들이 실종 신고를 했다. 학교에선 몇몇의 경찰들이
왔다 갔다. 경찰들이 듣고간 단서는 그가 굉장한 인간 말종이었다는 것이 전부
였고 우린 그때 학교 식당에서 밥을 맛있게 먹고 있었다. 삼치구이였는대 꽤
나 단백한 맛이 났다. 우린 시간을 들여 하얀 삼치뼈에서 살을 발라내는 일을
반복하고 있었다.
그렇게해서 우린 이일을 시작했다. 학생때였지만 우린 우리자신에게 프로의
식을 심어 열심히도 해왔던 것이다. 역시 마음가짐이란 중요한것인데 졸업할때
까지 2년간 적개는 작은 은원관계부터 크게는 소규모 폭력조직까지 (왜 학생들
이 그런 조직놈들과 원한 관계가 있는지 모르겠다) 총 101명의 쓰레기를 처리했
다. 그후로부터 나에겐 클리너-101이란 별명이 붙었다. 그것또한 나쁘지 않은
기분이었다. 솔직히 cool하고 어느정도는 의미가 있는 닉네임이란 기분이 좋다..
졸업후에 우리는 같은일을 하는 사람들에게서 꽤나 유명해 졌는데 신분상 노
출을 꺼려 부업으로 조금씩 조심스럽게 일을 처리해 왔다. 이때쯤에 우리는 총
을 쓰기도 했는데 내가 처음 구입한 것이 개량탄환 2500발과 금장형 베레타 두
자루 였다. 소음기도 구입했지만 애용하느 편은 아니었다. 오히려 조용히 끝
내려 할땐 칼을 더 자주 쓰는 편이었다. 사냥용 나이프나 끝이 세갈래로 갈라
진 찌르기용 칼을 사용했다. 사냥용은 베기에 적합하고 찌르기용은 상처는 작
게 나지만 출혈이 꽤 심하다. 그래서 출혈 과다로 목숨을 뺐는 것이다. 이건
주로 중국 특수공안에서 자주 사용하는 무기이다.
그때당시의 주업은 건설회사 시공업을 했는데 두가지를 함께 병행하기엔 어
려움이 없지않아 있었다. 나중에 그들에게 들어 안 사실이지만 우리는 처음부
터 상당한 수준의 클린을 하고 있었단다. 주로 비기너들은 망원렌즈가 달린 라
이플을 쓰는 반면 우린 처음부터 가장 고난도의 나이프를 쓰고 있던것이다. 원
래 프로가 될 수록 가까이 접근하는 무기를 사용한다. 그래서 나이프가 가장
마지막단계인 것이다. 무림에도 이런 말이 있는데 길수록 강하고 짧을수록 위
험하다란 말이 있다. 이는 병기를 씀에 있는 차이점이나 장단점을 나타낸 것인
데 들으면 들을수록 참 공감이 가는 부분이다.
하지만 이렇게 보니 결과적으론 역시 좋지 않은 부업이었던게 확실한 것 같
다. 난 내 친구를 잃었다. 그이상 나에겐 더 잃을것이 없다.
또 한 번 내가 좋아하는 그 무언가가 날 떠났다......
그런데 이번건 좀 의미가 크다.
그래서 가끔은 복수를 생각한다... 가능한 일이다. 아직 무기도 처분하지 않
은 채로 그대로고 아직은 반년은 더 쓸수 있을 만큼의 총알도 있다... 조금은
피곤하고 이젠 파트너도 없지만 아직 실력은 녹슬지 않았다. 그리고 유리한점
은 그들은 내가 죽은줄로 알고 있다는 점이다. 게다가 최근 장비를 사드린적이
없어서 일주일간 뉴스를 떠들썩하게 할만큼 대량 학살이 일어나도 이 바닥에선
의심받지 않는다. 결국 내가 무슨짓을 해도 나는 아무데도 드러나지 않는 것이
다. 난 이미 존재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상황이 어떻게 바뀌어도 나에게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각이 거기에 미치자 모든 것이 하기 싫어졌다... 생각을 하지 말아
야 한다... 뭐가 달라진단 말인가... 난 원래 쉽게 흥분하지 않는 사람이다...
사람은 한결 같아야 한다는게 나의 생각이다... 우린 모두 비뚤어져 가고 있
다...
피곤하다.
자야겠다.
그 때 납덩이 같은 잠이 날 찾아 왔다.
이젠 이런 생활을 청산해야 될 때가 왔다고 생각한다. 나쁜놈들은 누가 시
키지 않아도 어디선가 생겨나기 나름이고 난 여기에서 얻을 것이라곤 조금도 없
다. 그런 쓰레기들을 치울 바에는 차라리 내것을 지키는게 더 급한 일이었을지
도 모른다. 하지만 난 지금껏 무얼 지켜 왔는가? 나도 사랑을 할수 있을까?
이런 청부업에는 내일을 기대할 수가 없다. 그래서 누군가를 만난다는 것 자체
가 내겐 의미없는 일이다. 하지만 이젠 다르다.
무엇인가를 생각해야지 하면서도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좋을지 알수 없었
다. 게다가 솔직하게 말해 아무것도 생각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는 사이에 무
엇인가를 생각해야 될 때가 오겠지, 그때가서 천천히 생각하자고 나는 생각했
다. 적어도 지금은 아무것도 생가가고 싶지 않은것이다.
시간이 가면 갈수록 난 내자신이 조금씩 소모되어가고 있는 기분이다. 별
다른 이유없이 그냥 조금씩 조금씩, 마치 강물속에 돌이 물의 마찰에 의해 조금
씩 침식되듯 그렇게 말이다... 얻는 것 없이 잃어가기만 하는... 그 결과로 인
하여 이 끝도 얼마 남지 않았다고 생각하면 굉장히 내 자신이 슬퍼진다. 누구
나 그럴것이라 생각을 하면 조금은 위안이 되기도 하지만 그것도 얼마가지 못하
는 것 같다. 무엇이 옳으며 무엇이 더 나은 길이고 과연 내가 좋아하는건 어
떤것이고 사랑하는건 무엇일까? 난 어떤 종류의 사람이고 어디서 왔으며 이러
한 성격을 소유하기까지 어떤 성장배경을 지녔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