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엘 시크레토'는 시간과 기억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하여 사랑의 진정성 또는 비밀(엘 시크레토)을 전하려 하는 것
같구요. 요즘 내가 생각하고 있는 꺼리와도 어슷비슷하여 흥미를 가지고
볼 수 있었는데요. (아르헨티나 영화로 지난해 아카데미 외국어영화상을
받았으니 재미는 검증되었다고 봐야겠지요)
보고 나서 드는 생각이 뭔가 당했다는 느낌이군요. 혹 아르헨티나 사람들도
이를 보면서 비슷한 느낌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들구요.
대개 영화를 보면서 참을 수 없는 장면설정이 있는데요. 그 대표적인 것이
카메라 앵글의 폭력입니다. 예를 들어 목숨을 위협하는 극도의 공포스런
분위기 속에 장면 속 인물은 최대한 조심스럽게 사위를 둘러보며 보신을
꾀합니다. 그런데 느닷없이 뒤에서 또는 옆에서 흉기를 찔러 댑니다. 아무리
귀신같은 솜씨를 지녔기로 그러기는 힘들지요. 단지 카메라 앵글에 잡히지
않는다는 이유만으로 가장 손쉽게 시청자들을 공포분위기로 몰아가려는
이런 눈속임에 의한 횡포, 밥맛입니다. (아니면 잔뜩 공포분위기 속에 턱도
없는 인물이-또는 동물이나 사물이거나- 튀어나와 헛심을 쓰게 하기도 하지요)
'엘 시크레토'는 두 개의 플롯으로 이루어집니다.
젊은 부녀자의 강간살해사건을 중심으로 한 25년전과 주인공이 이를 소설로
써보려 다시 접근하는 현재, 그런데 그 범죄사건 속에 두 개의 구성을 또
갖습니다. 살해범의 검거와 검거 이 후.
처음 영화는 살해범을 잡으려는 노력과 무산될 위기, 나름 흥미를 더해가며
끝내 범인을 잡는 과정을 보여줍니다. 그런데 실제 여기까지의 과정은
주인공들에게 (그들의 사랑에 대한 감정의 여백까지 포함하여) 이미 드러난
다시 말해 극중의 누구에게도 궁금하지 않은 엄연한 사실입니다. (대개 이런
전개를 위해서는 할아버지가 손자를 무릎에 올려놓고 옛이야기식으로
들려주든지 하는 구성이 되지요)
다음 검거 이 후 살해범이 오히려 이들에게 위협적인 존재가 되고 끝내 친구가
희생되고 마는데요. 당시 군부독재의 아르헨티나 상황에서 이런 개연성이
충분히 존재하며 특히나 극중 무대가 법원 안이라면 이러한 부조리나 갈등은
좀 더 현실적으로 무게감 있게 부각되어야 함에도 약간의 암시(폭압적이고
무능하다는 정도)에 그친 채 실제 범인이 풀려나기까지 전혀 예기치 못한 일로
끌고 나갑니다. (황당하기까지 합니다)
이는 앞에서 말한 카메라 앵글의 횡포에 못지않은 관객들을 기만하거나 우롱한
전개과정으로 보여지는 거지요. 물론 여기까지도 극중 인물들은 환히 알고 있는
상황이구요.
그렇다면 극중 인물들에 전혀 새로운 사실은 살해피해자의 남편이 보여준 극적
반전 정도겠는데요. 현실성을 떠나 관객이 수긍하고 납득할 수 있는 엔딩으로
보여지는데 영화는 여기서 그치지 않고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다시 만난 노년의
남녀를 결합시키는 극적 장치로까지 써먹고 있습니다.
지난 시기 이 사건을 통하여 이미 서로의 마음을 확인하고 다가갔음에도
현실적인 신변의 위협으로 헤어지고, 주어진 생활에 적응하며 세월이 흐른
남녀입니다. 물론 그 사건에 대한 마음의 빚이 없지 않겠지만 두 사람의
사랑의 감정이 현실적으로 맺어지는데 장애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요.
(이 장면에서 피해자의 남편이 사건 담당자에게 빚을 졌다고 얘기하는 것은
많이 어색해 보입니다)
그럼에도 끝내 피해자 남편의 극적인 반전을 계기로 사랑에 대한 확신을 가진
남자가 여자를 찾아가 서로의 내일을 기약한다는 이야기 전개는 영락없는
신파에 다름 아니지요.
그리고 남자주인공은 아르헨티나의 국민배우라 불리는 이라고 하는데 25년을
뛰어넘는 연기를 하기에는 나이든 티가 역력합니다. 겨우 머리카락 염색여부로
구분하여야 할 정도로 시간의 차이를 제대로 보여주지 못하였네요.
어쩌면 영화 '일 시크레토'는 기억과 시간이 가지는 사랑의 비밀을 제대로
전해주지 못한 채 이 남자주인공처럼 시간이 배제된 또는 시간이 뒤죽박죽된
엉성한 그림이 되어버린 느낌이 강하네요.
혹 오래된 남녀의 사랑이란 후일을 기약하지 않는(또는 못하는, 그것이 시간의
힘이지요) 그래서 절박한, 그렇지만 세월의 연륜으로 이를 가리게 되는 비밀스런
어떤 몸짓이나 눈동자, 영화 속에 여자주인공이 때때로 보여주는 그윽하면서도
애절한 눈동자, 오래도록 여운을 남기는, 그것 아닐까요.
극중 대사처럼 빠숑[passion]이라고 이름해도 좋을...
첫댓글 감상문인가요 저는 안봐서 모른는데 글을 보니 이해가 좀 되는것 같아요 고마워요
별 쓸데 있는 글은 못되는데요.
읽어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