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신(修身)
산길은 띠풀로 막히고 옛집은 황폐해졌으며
몇 년 동안 나그네 생활하다 함양(咸陽: 한양을 말함)을 작별하네
지금 비로소 집으로 돌아오는 것이 늦음을 후회하는데
곧잘 병주(幷州)를 가리켜 본향(本鄕)으로 삼으려 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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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原文]
修身1)
茅塞2)山蹊3)舊宅4)荒,幾年爲客5)別咸陽6)。
如今7)始悔還家晩,肯指幷州作本鄕8)。
騏峰集卷之一
[註解]
주1) 修身: 악(惡)을 물리치고 선(善)을 북돋아서 마음과 행실(行實)을 바르게 닦아 수양(收養)함. 수신(하다).
주2) 茅塞: (자신의) 우둔함. 어리석음. ‘길이 띠로 인(因)하여 막힌다.’는 뜻으로, 마음이 물욕(物慾)에 가리어 어리석고 무지(無知)함을 비
유적(比喩的)으로 이르는 말
주3) 山蹊: 산길. 맹자(孟子)가 고자(高子)에게 이르기를 “산중 오솔길의 사람 다니는 곳이 다니는 동안에는 언뜻 길을 이루었다가 잠시만 다
니지 않으면 띠풀이 꽉 차게 되나니, 지금 그대의 마음에 띠풀이 꽉 찼구나.[山徑之蹊間,介然用之而成路。 爲間不用,則茅
塞之矣。今茅塞子之心矣]”라 한 데서 온 말인데, 띠풀이 꽉 찼다는 것은 선심(善心)이 막혀서 발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주4) 舊宅: 옛집. 예전에 살던 집. 고택. 여러 대(代)를 이어서 살아온 집. 옛사람이 살던 집
주5) 爲客: 나그네 생활. 손님 노릇하다
주6) 咸陽: 원래는 진나라 서울인 함양(咸陽)을 말하지만, 여기서는 조선의 수도인 한양(漢陽)을 가리킨다.
주7) 如今: 지금. 또는 현재(現在). 이제. 오늘날
주8) 肯指幷州作本鄕: 기꺼이 병주(幷州)를 가리켜 본향(本鄕)으로 삼으려 한다는 말이다. 병주고향(幷州故鄕)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정든 타향을 고향에 비유하는 말이다. 당나라의 가도(賈島)가 병주(幷州)에 오래 살다가 떠나면서 지은 「상건을 건너며[度桑乾]」에
서 “돌아서 병주를 바라보니 이게 고향인가 하노라.[却望幷州是故鄕]”라는 구절에서 나온 것이다.
[註記]
위의 시는 기봉(騏峯) 이시성(李時省, 1598년-1668년) 선생이 지은 것이다. 저자의 자는 자삼(子三), 호는 기봉(騏峯)이며, 본관은 경주(慶州: 月城)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몽윤(李夢尹)이고, 할아버지는 이광복(李光福)이며, 작은 할아버지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이다. 아버지는 인제 현감 이태남(李泰男)이고, 어머니는 찰방 원영세(元永世)의 딸인 원주원씨(原州元氏)이다. 그는 백사(白沙) 이항복(李恒福)의 종손(從孫)이자 문인이다.
그는 1598년 포천현(抱川縣) 마산(馬山: 지금의 경기도 포천시 가산면 마산리)에서 태어났다. 저자는 백사 이항복의 종손(從孫)으로서 가학(家學)의 전통을 이었다고 하겠으며, 포천의 마산에 세거(世居)하였으므로 ‘기봉(騏峯)’이라 자호(自號)하였다. 어려서부터 성품이 담백하고 밝으며 글 읽기를 즐겨하였다. 일찍이 이항복에게 나아가 학문을 배웠다.
재주가 뛰어나 모든 글을 폭넓고 깊게 두려 섭렵하며 익혔고, 특히 글짓기에 탁월하여 웅장하고 기품이 있었다. 늦은 나이인 1650년(효종 1년) 증광 문과 병과 18위로 급제하였다. 이후 공조 정랑, 예조 정랑을 거쳐 회양부사를 역임하였다. 1667년(현종 8년) 가승지에 임명되었고 첨지중추부사에 이르렀다. 이듬해 졸(卒)하였다.
이상훈(李相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