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다.
더위를 덜어주기 위해 계곡이나 수영장, 에어컨, 얼음과자 등등 선택 방법도 많지만 시골소년이 어린 시절에는 밭 가장자리에서 자라고 있는 오이 한 개를 무심하게 툭 따다가 우물에서 길어 올린 시원한 물에 냉국으로 만들어 먹으면 더위를 날려 버릴 듯 상쾌함이 몸을 감싸는 느낌이었다.
논과 밭에서 여름일에 지친 어른들의 떨어진 입맛뿐만 아니라 뙤약볕에 놀다 지쳐 달아 오른 아이들의 몸까지도 식혀주는 매력 있는 채소가 오이였다.
조선시대 정선은「자위부과(刺蝟負瓜)」라는 그림을 그려 주로 벌레를 잡아먹는 고슴도치도 여름철 수분이 많은 오이의 식감과 물맛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서리까지 해서 자식에게 먹이고자 하는 모성을 표현하였다.
고슴도치까지도 어린새끼들을 위해 가시를 이용하여 등에 업어 훔쳐갔으니 사람이나 동물이나 느끼는 그 청량감은 아마도 같은 것이었나 보다.
한자의 사자성어에 ‘과질면면(瓜瓞綿綿)’ 이라는 말은 큰 오이와 작은 오이가 끊어지지 않고 죽 이어져 있다는 말로 자손번창을 의미한다.
고대 서양에서는 남자들의 건강식품과 여성의 성숙을 촉진하는 식품으로 인식되어 1세기 로마의 역사가 플리니우스는《박물지》에서 오이 즙이 여성의 생리를 도와준다고 기록하였고 고대 그리스 역사학자 헤르도토스는 《역사》에서 오이, 수박, 부추, 양파, 마늘을 피라미드 건설 노동자들에게 특식으로 지급했다고 하였다.
오이는 언제부터 재배되었는지 모를 정도로 오래된 작물이며 약 3000년 전부터 재배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인도와 네팔의 원산지에서 15C에 유럽에 퍼졌고 아메리카에는 17C에 알려졌다. 유럽, 아시아, 아메리카로 전파되어 지역의 기후와 풍토에 적응하면서 다양한 형태로 분화되었다.
우리나라는《고려사》에 재배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약 1500년 전쯤 삼국시대에 중국에서 도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오이가 유럽에 전해졌을 무렵에는 떫은맛이 강했는지 삶거나 수프에 넣기도 하고 식초와 꿀, 기름 등으로 조리하여 떫은맛을 없애려고 애를 썼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잘 익어 떫은맛이 사라진 노각도 많이 이용하였지만 유럽과 일본에서는 어린 오이를 생으로 즐겨 먹었다.
오래전부터 누구나 즐겨 먹는 채소로 자리 잡은 오이는 ‘외’ ‘물외’라는 다른 이름처럼 수분이 대부분이지만 칼륨 성분이 많아 몸 안의 염분과 노폐물을 배출하고 상쾌하고 가벼운 느낌이 들게 해준다.
비타민C도 풍부하여 피로회복과 피부미용에도 그만이다.
또한 알코올 분해효소인 아스파라긴산이 들어 있어 숙취해소에도 그만이다. 소주에 오이를 썰어 넣으면 오이의 차가운 성질이 알코올의 더운 기운을 이겨버린 것처럼 강한 술맛이 사라진다.
오이 특유의 향은 알코올의 일종인 노나디엔올 성분으로 시원한 향을 내뿜는다. 등산할 때 배낭에 오이 한 개 쯤 넣었던 경험은 누구에나 있을 것이고 얼굴 팩하면 오이가 생각난다.
오이의 특징 중 하나는 껍질에 쓴맛이 나는 쿠쿠르비타신 성분이 있다. 수박, 참외, 멜론 등 대부분 오이과 식물은 이 성분을 가지고 있는데 해충으로부터 스스로 보호하기 위한 물질이다.
혹시 쓴맛이 사람에게 해로울까 의심도 하지만 걱정할 필요는 없다.
재배하는 오이에는 몸에 해가 될 정도의 독성이 없고 쓴 맛으로 인해 먹기가 조금 불편할 뿐이다. 햇빛이 강하고 날이 가물면 이 성분을 많이 만들어 내지만 수용성이라서 물에 쉽게 녹고 삼투압 현상으로 오이 속의 물이 빠져 나오면 함께 녹아 나온다.
우리가 밭에서 또는 시장에서 쉽게 보고 구할 수 있지만 은근히 까다로운 채소가 오이다.
과채류 중에서 생육기간이 비교적 짧은 작물이지만 생육속도는 빠른 특징이 있고 생육환경에 예민하고 적응력이 약해 세심한 재배기술이 필요하기도 하다. 결코 만만하게 볼 작물이 아닌 것이다.
텃밭이나 옥상정원에서 키우다가 보면 크기도 다르고 생김새도 다른 형제들이 나오고 병해충에도 감염되어 마음 졸였던 경험을 떠올려 보면 이해가 될 것이다.
오이가 우리에게 친숙한 만큼 여러 가지 의미도 있다.
구약성서에도 등장하고 로마시대에는 아기를 간절히 바라는 여인들은 오이를 허리에 차고 다녔다고 하며 동양에서는 자손번창의 기원이 깃들어 있다. ‘과년(瓜年)한 딸이 있다.’는 말은 결혼 적령기 딸이 있다는 의미이다. 영어 표현에 ‘오이처럼 차갑다’라는 말은 경망하게 행동하지 않는 사람을 일컫는다.
공자는《시경》에서 ‘밭두둑에 오이가 열렸다. 껍질을 벗기고 절여 조상님께 바치자’고 하여 제례음식으로 기록했다. 오이를 절인 것으로 보아 오이지를 가리키는 것으로 보인다. 《세종실록》에는 제사를 올릴 때 예물과 처리방법에 대한 절차에 오이 절임이 등장한다.
또한 《세종실록 지리지》나주목 영암군의 기록에 신라 말기 풍수설의 대가로 알려진 「도선국사」의 탄생에 대하여 기록하고 있다.
‘최씨 성을 가진 사람의 밭에 한 자가 넘는 오이가 달렸는데 그의 딸이 몰래 따먹고 아들을 낳았는데 아비 없는 자식이라 하여 대나무 밭에 버렸으나 비둘기들이 날개로 이불같이 덮어 주자 이상하게 여겨 다시 데려와 길렀는데 어른이 되어 스님이 되었는데 「도선」이라 하였다.’는 것이다.
과거 농촌에서는 음력 7월 보름께 각 농가에서 제각기 음식을 내어서 시냇가나 또는 산기슭의 나무 그늘 밑에 모여 앉아 술과 음식을 같이하면서 하루를 즐겼는데 이를 ‘호미씻이’라고 하였다. 이때는 논밭의 김을 다 매어 호미를 씻어두고 놀기 때문인데 이 놀이를 본 조선 중기의 문신 장유는 그의 시문집《계곡집》에서 ‘삶은 박에 오이 썰어 새우도 듬뿍 올려놓고 낡은 뚝배기엔 기장 빚은 막걸리가 가득’이라 표현했다. 추사 김정희는 가장 좋은 반찬이란 ‘두부나 오이와 생강과 나물이고 훌륭한 모임은 부부와 아들딸 손자’라는 서예 작품을 남겼다.
오이를 반찬 등으로 먹은 지 무려 3천 년이 넘었지만 냉국과 오이지, 오이김치 등으로 여름철 입맛 없을 때 좋은 먹을거리다.
오이가 가지고 있는 진정한 의미는 정결이다. 즉 맑고 깨끗함이다.
세상살이가 복잡해지고 스트레스가 많은 사회생활이지만 오이 한입으로 그 맑고 깨끗함을 느끼며 여름을 보내고 싶다.
오이는 모양이나 색이 달라도 맛은 거의 비슷하다.
오이 먹기 딱 좋은 계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