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칼빈과 율법
한국인들은 역사적으로 한 발언들을 정반대로 전하는 놀라운 재능들을 갖고 있습니다. 이미 성경도 비틀어서 번역한 것들을 보여드렸습니다.
그루터기님의 글에서 따온 글
칼빈의 말이라도 다 옳은 것은 아니지만 참고로 그도 율법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 율법은 이제 우리를 정죄하지 않는다는 의미에서 폐기되었다" - 칼빈, 기독교강요 2부 7장 15절
실제 칼빈의 기독교 강요 2권 7장 15절의 결론은 다음과 같습니다.
Meanwhile, it must ever remain an indubitable truth, that the Law has lost none of its authority, but must always receive from us the same respect and obedience.
"" 그러면서도 율법이 그것의 어떠한 권위도 잃지 않았으며 항상 우리로부터 존경과 순종을 받아야 한다는 것은 의심할바 없는 진리로 남아있어야 한다."" (칼빈 기독교 강요 2권 7장 15절 마지막 부분)
차이를 보십니까?
이제 다음의 칼빈의 글을 보십시오.
다음을 번역하지는 않겠습니다. 여기 있는 수많은 선생님들은 능히 이해할 줄 압니다. 칼빈의 아포리즘 100 (금언 100 개)에는 율법을 요약하여
의식법은 이미 성취되어 폐해졌으나 그것의 효력은 영원하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십자가 희생의 효력이 영원하기 때문에).
형행정법은 이스라엘에 독특하였으므로 현재는 제쳐져 있다 (아마 천년왕국을 염두에 둔듯)
도덕법은 보편적 정의이며 그것은 영원하고 모든 사람에게 적용된다.
칼빈 또한 제사법과 도덕법을 구분하고 있는 것을 보십니까? 도덕법은 폐해지지 않았다고 말하지 않습니까?
"We must not imagine that the coming of Christ has freed us from the authority of the law: for it is the eternal rule of a devout" "a"nd
"우리는 그리스도의 오심이 우리를 율법의 권위로부터 해방시켰다고 상상해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그것은 경건한 자의 영원한 법이기 때문이다." ( 칼빈 아포리즘)
아직도 칼빈이 율법 폐기를 가르쳤다고 믿으시겠습니까?
John Calvin
John Calvin wrote Institutes of Christian Religion
Book 2, Chapter 7
6. That the whole matter may be made clearer, let us take a succinct view of the office and use of the Moral Law. Now this office and use seems to me to consist of three parts.
7. Thus the Law is a kind of mirror. As in a mirror we discover any stains upon our face, so in the Law we behold, first, our impotence; then, in consequence of it, our iniquity; and, finally, the curse, as the consequence of both. He who has no power of following righteousness is necessarily plunged in the mire of iniquity, and this iniquity is immediately followed by the curse. Accordingly, the greater the transgression of which the Law convicts us, the severer the judgment to which we are exposed. To this effect is the Apostle’s declaration, that “by the law is the knowledge of sin,” (Rom. 3:20). By these words, he only points out the first office of the Law as experienced by sinners not yet regenerated.... that divesting themselves of an absurd opinion of their own virtue, they may perceive how they are wholly dependent on the hand of God; that feeling how naked and destitute they are, they may take refuge in his mercy, rely upon it, and cover themselves up entirely with it; renouncing all righteousness and merit, and clinging to mercy alone, as offered in Christ to all who long and look for it in true faith.
10. The second office of the Law is, by means of its fearful denunciations and the consequent dread of punishment, to curb those who, unless forced, have no regard for rectitude and justice.
12. The third use of the Law (being also the principal use, and more closely connected with its proper end) has respect to believers in whose hearts the Spirit of God already flourishes and reigns. For although the Law is written and engraven on their hearts by the finger of God, that is, although they are so influenced and actuated by the Spirit, that they desire to obey God, there are two ways in which they still profit in the Law. For it is the best instrument for enabling them daily to learn with greater truth and certainty what that will of the Lord is which they aspire to follow, and to confirm them in this knowledge; just as a servant who desires with all his soul to approve himself to his master, must still observe, and be careful to ascertain his master’s dispositions, that he may comport himself in accommodation to them. Let none of us deem ourselves exempt from this necessity, for none have as yet attained to such a degree of wisdom, as that they may not, by the daily instruction of the Law, advance to a purer knowledge of the Divine will.
13. Some unskilful persons, from not attending to this, boldly discard the whole law of Moses, and do away with both its Tables, imagining it unchristian to adhere to a doctrine which contains the ministration of death. Far from our thoughts be this profane notion.
14. let us distinguish accurately between what has been abrogated in the Law, and what still remains in force. When the Lord declares, that he came not to destroy the Law, but to fulfil (Mt. 5:17); that until heaven and earth pass away, not one jot or little shall remain unfulfilled; he shows that his advent was not to derogate, in any degree, from the observance of the Law. And justly, since the very end of his coming was to remedy the transgression of the Law. Therefore, the doctrine of the Law has not been infringed by Christ, but remains, that, by teaching, admonishing, rebuking, and correcting, it may fit and prepare us
for every good work.
15. What Paul says, as to the abrogation of the Law, evidently applies not to the Law itself, but merely to its power of constraining the conscience. For the Law not only teaches, but also imperiously demands. If obedience is not yielded, nay, if it is omitted in any degree, it thunders forth its curse. For this reason, the Apostle says, that “as many as are of the works of the law are under the curse: for it is written, Cursed is every one that continueth not in all things which are written in the book of the law to do them,” (Gal. 3:10; Deut. 27:26). Those he describes as under the works of the Law, who do not place righteousness in that forgiveness of sins by which we are freed from the rigour of the Law. He therefore shows, that we must be freed from the fetters of the Law, if we would not perish miserably under them. But what fetters? Those of rigid and austere exaction, which remits not one iota of the demand, and leaves no transgression unpunished. To redeem us from this curse, Christ was made a curse for us: for it is written, Cursed is every one that hangeth on a tree (Deut. 21:23, compared with Gal. 3:13, 4:4). In the following chapter, indeed, he says, that “Christ was made under the law, in order that he might redeem those who are under the law;” but the meaning is the same. For he immediately adds, “That we might receive the adoption of sons.” What does this mean? That we might not be, all our lifetime, subject to bondage, having our consciences oppressed with the fear of death. Meanwhile, it must ever remain an indubitable truth, that the Law has lost none of its authority, but must always receive from us the same respect and obedience.
From ONE HUNDRED APHORISMS, book two: #22. Christ is exhibited to men by the Law and by the Gospel.
#23. The Law is threefold:
Ceremonial,
Judicial,
Moral.
The use of the Ceremonial Law is repealed, its effect is perpetual.
The Judicial or Political Law was peculiar to the Jews, and has been set aside,
while that universal justice which is described in the Moral Law remains. The latter, or Moral Law, the object of which is to cherish and maintain godliness and righteousness, is perpetual, and is incumbent on all.
24. The use of the Moral Law is threefold. The first use shows our weakness, unrighteousness, and condemnation; not that we may despair, but that we may flee to Christ. The second is, that those who are not moved by promises, may be urged by the terror of threatenings. The third is, that we may know what is the will of God;
"We must not imagine that the coming of Christ has freed us from the authority of the law: for it is the eternal rule of a devout and holy life, and must, therefore, be as unchangeable, as the justice of God, which it embraced, is constant and uniform."
첫댓글 누군가 율법은 없어졌다고 말을 한다
우리는 율법은 없어진것이 아니다 라고 말을 한다
누군가님은 우리를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려고 하는 사람이라고 말을 한다
우리는 율법을 지켜서 구원을 받을려고 하는 사람??
“주께서 약속하신 대로 율법을 완전히 준수하면 그 보상으로서 영원한 구원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우리는 부인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는 마땅히 다음의 문제 곧 우리가 완전히 복종할 수 있는지와
그 공로로 확실히 보상을 받을 수 있는지를 검토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이 점에서 율법의 무력함이 나타난다.
아무도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우리는 약속된 생명을 받을 수 없고 다시 순전한 저주로 떨어진다.” - 칼빈 -
율 법의 의미를 확대한 것은 제2 스위스 신앙고배서 1장에 제시된 것과 같은 이해 라 할 수 있겠다.
즉 하나님께서 율법을 통해서 자신의 백성에게 지속적으로 말씀하시고 함께하시기 때문에
이러한 권위에 의해서 율법은 신자의 삶에 더욱 더 삶의 규범으로 충분함을 제시하고자 했던 것이다.
칼빈의 말.
19장 '하나님의 율법'에서 이 의미를 어떻게 정리하고 있는지 살 펴보고자 한다.
19장에서는 1-7항까지 구체적으로 율법의 의미를 설명하고 있 다. 여기에는 율법의 1,2사용도 제시되고 있지만 보다 더욱 중요한 이해로서 제 3사용을 제시하고 있다. 특별히 '도덕법'으로서의 율법의 의미를 강조하고 있다.
즉 의식법과 시민법이 성경 안에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도덕법으로서의 성경을 밝히고 있는 것이다.
이와 같은 법의 구조는 칼빈의 기독교 강요와 또한 십 계명을 중심으로 도덕법의 구조를 제시하고 있는 주석의 신학적 입장에서 영향 을 받아 그대로 드러내주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먼저는 하나님께서 아담에게 율법을 주셨는데 그것은 '모든 후손들로 하여금 개인적으로 온전하고, 정확하게, 그리고 영구적으로 순종할 의무가 있게 하셨 다'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에게 있어서 율법의 성격은 영원한 성격을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칼빈이 말하는 율법
그리스도인은 성경에서 율법과 복음을 공부합니다. 성령의 감동으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에서 해답을 찾아야 합니다. ^^
위와 같은 고백은 '성경'과 '율법'과 '십계명' 19장에서 말하는 의미들이 어떻게 서로 깊이 있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밝혀 주는 중요한 고백인 것이다. 이러한 고백의 성격은 율법의 요구가 모든 사람에게 어느 장소, 어느 시간을 막론하고 역사상 유효하지 않은 적이 결코 없다는 고백인 것이다.
즉 본 고백서에서는 신약뿐만 아니라 구약의 백성들도 의식법과 시민법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그 들도 율법의 총체적인 이해는 도덕법으로서 이해하고 있었음을 드러내 주는 중요한 고백인 것이다.
칼빈의 율법에 관한 고백
율법 무시주의자들은, 성령을 좇아 살때 율법을 성취한다고 말하면, 율법을 지키지 못하므로 복음을 깨달아야 한다고 말합니다. 문제는 성령을 좇아 율법의 요구를 이루어간다는 사람들은 이미 복음을 훤히 알고 거듭나서 성령님의 인도하심에 익숙한 사람들로서 자기들보다 복음에 관하여 더 많이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율법무시자들은 마치 저들이 구원도 못얻고 복음도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착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들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는 그분께서 욥의 친구들에게 내리셨던 벌들보다 클 것입니다. 욥의 친구들은 마치 욥이 복음을 모르는 사람인양 비판하였습니다. 실상은 그보다 높은 단계의 훈련을 받고 잇던 욥이었지만.
11 불의를 하는 자는 그대로 불의를 하고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 의로운 자는 그대로 의를 행하고 거룩한 자는 그대로 거룩되게 하라
12 보라 내가 속히 오리니 내가 줄 1)상이 내게 있어 각 사람에게 그의 일한대로 갚아 주리라 헬, 내 삯
13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요 시작과 끝이라
14 그 두루마기를 빠는 자들은 복이 있으니 이는 저희가 생명 나무에 나아가며 문들을 통하여 성에 들어갈 권세를 얻으려 함이로다
15 개들과 술객들과 행음자들과 살인자들과 우상 숭배자들과 및 거짓말을 좋아하며 지어내는 자마다 성밖에 있으리라
III. 율법의 성취
예수님은 먼저 율법에서 자신에 대해 기록된 것들을 이루셨다. 예수님의 태어나심과 애굽으로 피난 가심과 십자가에서 죽으심 등이 다 “주께서 선지자들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었다(마 1:22, 2:15, 4:14, 8:17, 12:17-21, 13:35, 21:4 등). 이처럼 예수님은 성경에 자기에 대해 기록된 대로 다 이루셨다. 또한 예수님은 율법의 계명들을 다 지켜 행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들을 다 이루셨다. 즉, 율법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사심으로 하나님의 의를 충족시켜 드렸다.
뿐만 아니라 그는 죄 없으신 하나님의 아들로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십자가에서 정죄를 당하셨다.
그 이유는 율법의 요구가 우리 안에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함이었다(롬 8:3). 곧 우리 인간이 육신의 연약함으로 인하여 율법의 요구를 다 이루지 못하고 늘 정죄 아래 있으며 고통과 자주 가운데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자기 아들을 이 땅에 보내셔서 율법의 정죄를 대신 당하게 하심으로 율법의 요구를 대신 이루어 주신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고 말씀하신 것이다(요 19:30).
이것은 곧 우리가 더 이상 율법을 통하여 구원받으려고 할 필요가 없으며,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는 길이 열린 것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셨다(롬 10:4). 여기서 율법의 ‘마침’(telos)이란 율법의 폐지를 뜻하는 것이 아니라, 유대인들처럼 자기 의를 세우려고 율법의 계명들을 지킴으로 의롭다 함을 받으려는 모든 노력에 종지부를 찍었다는 뜻이다.
----?교회와 교육? 146호(98년 11월), pp.22-26, "예수 그리스도로 완성된 율법" (변종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