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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년 12월 25일 살아나서 살리는 교회 성탄주일 설교
제목 : 의로운 사람이라 불리게 되는 성탄절
본문 : 마태복음 1장 19절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서 약혼자에게 부끄러움을 주지 않으려고, 가만히 파혼하려 하였다. <새번역>
사자성어 중 '청천벽력'이란 말이 있습니다. '맑게 갠 하늘에 갑자기 날벼락이 떨어지는 것'을 말합니다. 갈릴리 작은 나사렛이란 시골에 살고 있던 요셉이란 사람의 마음이 오늘 바로 이 단어와 똑같을 것입니다. 그에게는 약혼한 여인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언제나 그녀와의 행복한 미래를 꿈꾸며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고 있었던 목수였습니다. 그런데 약혼(정혼)한 마리아와 행복한 결혼생활을 꿈꾸고 있던 요셉에게 자신과 상관없는 약혼녀 마리아의 잉태 소식은 도저히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며, 또한 참을 수 없는 '분노'였을 것입니다. 구약시대였다면 당장 성문 밖으로 마리아와 마리아를 잉태시킨 남자를 끌어낸 후 돌로 쳐서 죽일 수 있는 그런 일이 일어난 것입니다.
한 남자와 약혼한 처녀를 다른 남자가 성 안에서 만나서 정을 통하였을 경우에, 두 사람을 다 성문 밖으로 끌어다 놓고, 돌로 쳐서 죽여야 합니다. 그 처녀는 성 안에 있으면서도 소리를 지르지 않았기 때문이요, 그 남자는 이웃의 아내를 범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하여 당신들은 당신들 가운데서 이런 악의 뿌리를 뽑아야 합니다. <신명기 22장 23~24절, 새번역>
저는 오늘 우리에게 주신 마태복음 1장을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왜 하나님은 먼저 꿈에 나타나 앞으로의 상황을 미리 요셉에게 이야기해 주시지 않았을까요? 이 모든 상황을 미리미리 설명해 주었다면 오해의 소지가 없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왜 마리아가 잉태한 사실을 알게 되어 파혼하려고 마음까지 먹은 후에야 주님의 천사가 찾아왔을까요? 왜 이렇게 천사가 일부러 한 발 늦게 도착했다는 느낌이 들까요? 처녀가 잉태하는 사건, 그것도 약혼자의 입장에서 한 쪽의 임신 사실을 알게 되는 이 충격적인 사건의 강도가 조금이라도 줄어들기 위해서라도 하나님은 충분히 미리 말씀해 주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충분히 이 모든 설명을 통해 요셉을 준비시키실 수 있는 하나님이심에 불구하고 말입니다.
혹시 하나님은 요셉을 테스트해 보신 것일까요? 요셉이 끝까지 마리아를 지켜서, 예수님이 이 땅에 태어나도록 할 수 있는 인물인지 확인해 보신 것일까요? 정확한 하나님의 뜻은 어디에도 기록되어 있지 않기에 알 수 없지만,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요셉이 이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 상황에서도 의연하게 대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일까요? 이렇게 의연하게 가만히 파혼하려 하는 요셉을 보며 성경은 ‘의로운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요셉을 선택하셨다면 바로 이 ‘의로움’ 때문이라고밖에 생각할 수가 없습니다. 그 시대에 이 일을 감당할만한 유일한 의로운 사람이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니 결론적으로 요셉을 선택하신 하나님의 선택은 너무도 좋은 선택이었던 것입니다. 역시 하나님이십니다.
요셉은 자신과 상관없이 임신한 마리아를 공공연하게 드러내 부끄러움을 줄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고 가만히 끊고 그저 파혼하려고 하였습니다. 어떻게 이 상황에 이렇게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는지 정말 놀라울 따름입니다. 이건 정말 대단한 일입니다. 여러분은 이 일이 얼마나 대단한 일인지 알고 계십니까? 실제로 요셉은 너무도 힘들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마음이 무너져 내리는 그 순간에도 상대방이었던 마리아를 생각해 줄 수 있는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역시 의로움은 넓이와 깊이를 알 수 없는 마음의 표현이 맞습니다.
하지만 요셉 그도 사람인지라, 복잡한 생각에 잠겨 있다가 겨우겨우 자신의 감정을 조절한 후 억지로 잠을 청했는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저라면 잠도 잘 수 없을 거 같습니다. 분하고, 원통하고, 어떻게 나에게 이렇게 대할 수 있는지 마리아가 한도 끝도 없이 미워서 밤이 새도록 눈물 흘리며 화를 냈을 것입니다. 하지만 놀랍게도 요셉은 잠이 들었습니다. 아무리 피곤했다고 해도 쉽게 잠들지 못할 그런 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잠을 청했고, 잠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바로 그 꿈에 주님의 천사가 찾아와 말씀하셨습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주님께서 예언자를 시켜서 이르시기를, "보아라, 동정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니,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이다" 하신 말씀을 이루려고 하신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0B~23절, 새번역>
의연한 척 하고 있었지만 사실은 두려워하던 요셉의 마음을 하나님만은 알고 계셨습니다. 요셉은 너무도 복잡한 마음이었고 그래서 두려웠던 것입니다. 이 구절 때문에 다시금 '의로운 사람'이라는 단어에 더 눈길이 가기 시작했습니다. ‘두려워하고 있는 의로운 사람 요셉!’ 뭔가 앞뒤가 맞지 않는 것처럼 보이지 않으십니까? 그래서 이 구절을 좀 더 연구해 보고자 했는데 특별히 공동번역에서는 ‘의로운 사람’이 아닌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고 기록하고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마리아의 남편 요셉은 법대로 사는 사람이었고 또 마리아의 일을 세상에 드러낼 생각도 없었으므로 남모르게 파혼하기로 마음먹었다. <마태복음 1장 19절, 공동번역>
요셉이 법대로 사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마리아를 충분히 법대로 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아마 평소 알고 지내던 마리아라면 그럴 리가 없을 것이라 굳게 믿었을 수도 있습니다. 법대로 할 수 있지만 하지 않으려 하다 보니 여러 가지 복잡한 심정이 찾아왔고, 요셉은 앞으로 해결하고 감당해야 할 일들 때문에 눈앞이 캄캄하고 두려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이런 요셉의 감정을 하나님은 너무도 잘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마리아를 예정한 그대로 아내로 맞아들이라고 이야기하십니다.
요셉이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주님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서 말하였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두려워하지 말고, 마리아를 네 아내로 맞아 들여라. 그 태중에 있는 아기는 성령으로 말미암은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0절, 새번역>
요셉은 정말 법대로 사는 사람이 맞습니다. 그런데 세상의 법칙대로 사는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의 법칙대로, 하나님 나라의 법대로,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진짜 의로움은 인간이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드러내는 것임을 알고 있는 사람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법대로 사는 것은 정말 어렵고 두려운 일입니다. 세상의 법대로 살지 않을 때 찾아오는 그 무언의 압박과 뭔가 잘못하고 있는 듯한 착각 그리고 이단아 취급을 받으며 손가락질 당하는 것도 다 참아내야 가능한 일입니다. 요셉 역시 그 사이에서 고민했던 것이고 하나님 나라의 법을 선택했지만 그 마음 속에 현실적인 두려움이 존재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천사는 요셉에게 태중의 아기가 어떤 남자와의 관계로 생긴 것이 아니라 '성령의 임재와 기름 부으심'으로 잉태했다는 것도 알려주시며 안심시키십니다. 하지만 정말 믿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더욱 안심시키고자 하는 마음으로 천사가 아기의 이름도 친히 지어주게 됩니다.
마리아가 아들을 낳을 것이니, 너는 그 이름을 예수라고 하여라.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실 것이다." <마태복음 1장 21절, 새번역>
태어날 아기의 이름은 예수입니다!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 입니다. 이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요셉의 마음은 조금씩 뜨거워지기 시작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요셉에게 이 모든 일이 일어난 것은 이사야서 7장 14절의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는 것도 알려 주십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친히 다윗 왕실에 한 징조를 주실 것입니다. 보십시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며, 그가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고 할 것입니다 <이사야 7장 14절, 새번역>
여기에서 우리는 요셉이 최소한 '이사야서' 말씀을 알고 있었던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마태복음 1장의 족보대로 다윗의 후손이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의 후손이기도 했습니다. 그의 가문을 통해서 계속해서 '메시아'에 대한 예언은 '대물림' 되었을 것입니다. 너무 긴 시간 동안 현실에서 일어나지 않았고, 도저히 일어날 수도 없는 일이었기에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는다는 것',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다는 메시아'에 대한 이야기는 그저 '전설'처럼 내려오던 흥미로운 이야기일 뿐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하고 확실한 것은 요셉은 이 예언에 대해서 알고 있었고, 드디어 그저 전해 내려오던 '전설'이 아닌 눈 앞에 펼쳐지는 '현실'이 되어 자신의 가정에 이 말씀이 이루어진 것을 알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메시아’에 대한 약속이 성취되는 순간, 그 말씀을 이루는 가정이 바로 자신과 마리아가 된 것입니다. 다윗의 후손으로서, 아브라함의 후손으로서 성경의 말씀을 아는 이로서 얼마나 감격스러웠을지 저는 도무지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이때부터 누구도 쉽게 하지 못할 아니 결코 상상도 못할 위대한 행보를 걷기 시작합니다.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라' 이 뚱딴지같아 보이는 말씀을 즉시 믿기 시작합니다. 예언의 성취를, 약속하신 말씀을 지키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는 순간입니다. 그래서 마리아를 계획대로 아내로 맞아들이게 됩니다.
의로운 요셉과 겸손히 순종한 마리아, 이 부부는 분명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들이었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부부가 되었습니다. 그들의 나이는 당시의 문화로 보았을 때 요셉은 이제 겨우 18~20살, 마리아 역시 겨우 14~16살로 추청해 볼 수 있습니다. 이 어린 부부는 그렇게 아기 예수를 맞을 준비를 시작하게 됩니다. 서로 주님의 천사가 들려준 이야기를 나누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임마누엘, 메시아 등 구약에서 예언되었던 말씀들을 찾아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는 점점 더 확신에 찼을 것입니다.
그리고 요셉은 이 때 정말 놀라운 또 하나의 결단을 내리게 됩니다. 믿음으로, 정말 대단하게도, 예수님이 태어나기까지, 이제는 약혼녀에서 아내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마리아와 잠자리를 갖지 않기로 결심한 것입니다.
그러나 아들을 낳을 때까지는 아내와 잠자리를 같이하지 않았다. <마태복음 1장 25절A, 새번역>
NIV2011버전은 이 본문에서 요셉의 이러한 행동을 이런 단어를 사용하여 표현하고 있습니다. 'he did not consummate' 이 Consummate는 결혼식 후 부부로서 첫날밤을 치르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런데 요셉과 마리아는 예수님이 태어나기 전까지 철저히 '동정'을 유지했다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요셉은 믿음으로, 1년 가까운 시간동안 결코 자제력을 잃지 않았습니다.
우리가 볼 때는 그저 어려 보이기만 한 이 부부의 이런 노력하는 모습이 대단함을 넘어 거룩하게 보이는 것은 왜일까요? 실로 요셉과 마리아 이 두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진지'한 이들이었습니다. 눈앞에 현실보다 '하나님의 계획'을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게 의로운 요셉과 순종의 여인 마리아의 시간이 흘러 어느덧 10달이 지났고 드디어 예수님이 태어났습니다. 요셉은 출산한 마리아를 비록 방은 아니었지만 건초더미를 모아 편안하게 쉬게 하고는 아기 예수를 포대기에 감싸 구유에 누였습니다. 구유에 누워 잠들어 있는 아기 예수를 보는 요셉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정말 말씀이 이루어졌습니다. 말씀대로 지금 눈앞에 이루어져 있습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메시아가 하나님의 말씀대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아기 예수를 바라보며 요셉은 더욱 마음을 굳게 먹었을 것입니다. 믿음으로 기도하며 하나님께 예배했을 것입니다. 그리고 변함없이 그 마음을 유지했기에 아기 예수를 공생애가 시작되기 전 성인까지 잘 키워낸 아버지가 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너무도 신기한 것은 오늘 본문을 끝으로 이제 더 이상 요셉에 대한 이야기가 성경에 등장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정말 놀라운 사실입니다. 충분히 중요한 위치(예수의 아버지)에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더 이상 요셉의 이야기를 기록하지 않습니다. 도대체 왜 일까요? 그런데 계속해서 '요셉'에 대해서 묵상하다보니 그냥 이렇게 자연스럽게 생각이 이어졌습니다. 제 생각에는 요셉이 더 이상의 등장을 원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자신의 역할은 딱 거기까지였음을 알았다고 생각합니다. 육신이 아버지인 자신이 아니라 진짜 하늘 아버지이신 하나님이 드러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일 것입니다. 계속해서 성경에 등장하는 인물은 '어머니 마리아'면 충분하니 자신은 그저 조연으로 남기를 원했다고 생각이 되었습니다. 그런 마음을 하나님이 주셨으리라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런 생각은 저뿐만이 아니었습니다. 요셉에 대해서 저와 비슷하게 생각하여 노래로 만든 '꿈이 있는 자유'라는 팀의 찬양이 그래서 더 많이 마음에 와 닿습니다. 바로 꿈이 있는 자유 4집 앨범 중 ‘아버지 요셉’ 이라는 곡입니다. 가사를 읽어 드리겠습니다.
갈릴리의 나사렛 마을 요셉이란 성실한 목수
굵고 깊은 손마디처럼 친절했던 그 웃음처럼
하나님의 독생자 예수 믿음으로 품었던 사랑
그 온기로 하나님 아들 지켜준 사랑
그의 사랑 그의 행복 주님 위해 내어 주던
그의 모습 또 그의 이름 소리 없이 잊혀 졌지만
그를 통해 하나님 사랑 나에게 온 것 감사해
2022년 성탄주일을 맞이하여 우린 요셉에 대해서 재조명해보아야 합니다.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성취될 것을 믿었던 요셉, 그리고 그 말씀의 성취를 직접 체험한 요셉 그 요셉의 모습이 바로 오늘 우리의 모습이 되어야 합니다. 벌써 3년 가까이 ‘코로나’라는 환경 속에서, 교회를 향해 들려오는 더욱 심해진 각종 비판적 소문으로 인해 분노하고, 원망하며, 짜증낼 수밖에 없는 환경인 듯 보이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요셉처럼 그런 모든 환경에 대해 가만히 끊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행동해야 합니다.
누군가는 코로나와 경제 문제, 각종 문제로 인해 역대 최악의 대림절과 성탄 주일이라고 이야기하는 이도 있습니다. 성탄절이 더 이상 성탄절로서의 역할을 잃어버린 듯 보입니다. 더 이상 아기 예수의 탄생이 희망의 씨앗처럼 느껴지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기에 더욱 더 우리 모두는 오늘 요셉을 만나 그의 모습을 닮아야 합니다. 가만히 끊고 하나님의 음성을 기다려야 합니다. 무엇보다 이 시대를 위한 의로운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상황 가운데에서 예수님이 곳곳에서 다시 드러나도록 인내하고 기다려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성탄 주일에 요셉을 만나야 하는 것입니다.
잉태한 마리아를 자신의 아내로 맞이한 요셉처럼, 도저히 이해가지 않는 상황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이라면 이 땅을, 지금의 상황을 잘 품어내야 합니다. 그리고 기다려야 합니다. 길고 긴 기다림 끝에 반드시 주님이 오실 것입니다. 어쩌면 우리는 예수님이 출산하기 전 10달을 보내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반드시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것입니다. 그 때 오셨던 것처럼 다시 분명히 오실 것입니다. 우리 교회를 통하여, 여러분들을 통하여, 나를 통하여, 이 황폐한 땅에, 어두운 구석구석마다, 정리되지 않고 혼잡하고 복잡한 곳곳에 예수 그리스도가 태어나고, 피어나게 될 것입니다. 우리 주님이 찾아와 모든 것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사랑하고 존경하고 축복하는 예배자 여러분! 마리아가 아기 예수를 출산할 때까지 최선을 다해 도왔던 요셉처럼, 이제 다시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가 드러나도록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최선을 다해야 할 때입니다. 그 최선은 바로 ‘믿음을 품은 인내’입니다. 그 최선은 바로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는 ‘소망의 시선’입니다. 그 최선은 하나님의 계획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기대를 품은 선포’입니다. 그리고 그 최선은 하나님을 향한 ‘변하지 않는 사랑’입니다.
믿음을 품은 인내! 소망의 시선! 기대를 품은 선포! 변하지 않는 사랑! 이 모든 것을 소유한 당신이 바로 2022년 요셉과 같이 하나님 앞에서 의로운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바로 그런 의로운 사람인 당신을 통하여 하나님의 꿈을 꾸고 계신 것입니다.
요셉이란 의로운 사람과 마리아라는 순종의 사람을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 다시 한 번 당신이란 그리스도인의 의로움과 순종으로 이 땅에 임하시길 간절히 소망하며 기도해 봅니다. 오늘 성탄 주일 이후로 의로운 요셉과도 같은 당신을 통하여, 순종의 여인 마리아와도 같은 당신을 통하여, 바로 우리를 통하여 곳곳에서 예수님이 새롭게 태어나고, 예수님과의 새로운 만남이 넘쳐나는 여정이 되기를 마음 다해 꿈꿔 봅니다.
결단 찬양 -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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