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자언해 (孟子諺解)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는 맹자 언해
이 책의 제목은 '아성'이라는 칭호를 얻었던 맹자의 이름에서 유래되었다. 12세기까지는 고전으로 널리 인정받지 못했지만, BC 2세기에 이미 〈맹자〉를 가르치기 위한 박사 직위가 설치되어 있었다.
성리학자인 주희(朱熹)는 3권의 유교경전 〈대학 大學〉·〈중용 中庸〉·〈논어 論語〉와 함께 〈맹자〉를 간행하여(1190), '4서'라고 불리는 고전을 창출해냈다. 〈맹자〉는 정치에 대해 기술하고 있는데 일반 백성의 행복이 무엇보다 우선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통치자가 더이상 인(仁)과 의(義)로 다스리지 않을 때 천명이 그에게서 물러난 것이므로 그런 통치자는 마땅히 제거되어야 한다고 서술했다. 맹자는 또한 효(孝)가 중국사회의 초석이 되어야 한다고 밝히고 있다. 가장 큰 효도는 부모를 공경하는 것이고 가장 큰 불효는 자식을 낳지 않아 조상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맹자〉의 명성은 그때까지 중국 사상에서 볼 수 없었던 새로운 학설인 성선설에 바탕을 두고 있다. 성선설에 따르면, 인간은 하늘이 내려준 본성을 타고 나기 때문에 그 본성이 착한 것은 마치 물이 높은 곳에서 낮은 곳으로 흐르는 것처럼 당연하다는 것이다. 맹자는 부모에 대한 아이들의 자연스러운 애정과 옳고 그름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인 인식, 그리고 어린아이가 위험에 빠져 있는 것을 보았을 때 저절로 놀라고 걱정되는 것 등을 성선설의 증거로 인용했다.
성선설은 BC 3세기의 철학자 순자(荀子)에게서 맹렬한 공격을 받았다. 그는 〈순자〉라는 책에서 인간이 타고난 본성은 본래 이기적이고 악하기 때문에 적절한 교육을 통해 '선'을 배워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러나 맹자의 견해는 오랫동안 유교의 정통적인 해석으로 인정받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