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지치란?>
■ 이 무지치(I Musici) 는 'The Musicians(음악가들)'를 의미하는 이탈리아어
■ 연혁 : 1952년 이탈리아의 명문 산타 세칠리아 음악원을 졸업한 12명의 유망한 음악인들이 창단.
■ 악기 구성 : 바이올린 6명, 비올라 2명, 첼로 2명, 콘트라베이스 1명, 쳄발로 1명, 총 12명
안토니오 살바토레 (Antonio Salvatore)
바이올린 [과다니니 / 1751 밀라노産]
나폴리 출생. 산타 체칠리아 국립아카데미 오케스트라,
이탈리아 방송교향악단의 수석 바이올린 주자를 역임하고,
솔리스트, 실내악 주자로서 세계 각국에서 활동하고 있다.
3중주에서 8중주, 고전음악에서 현대음악까지 레퍼토리가 폭 넓고 레코딩과
TV, 라디오 방송에서도 활약하고 있다.
1990년까지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교편을 잡았고, 바이올린 교본도 출판했다.
2003년 시즌부터 이 무지치 리더로 활약하고 있다.
안토니오 페레즈 (Antonio Perez)
바이올린 [기단투스 / 1736 볼로냐 産]
1936년 스페인 말라가 출생. 1953년에 마드리드 음악원을 수석 졸업하였다.
같은 해에 사라사테 콩쿠르에서 우승한 이후 실내악 주자로서 보케리니 5중주단,
슈투트가르트 실내관현악단, 취리히 실내관현악단 등에서 활약 중이다.
안토니오 안셀미(Antonio Anselmi)
바이올린 [가글리아노 / 1730 나폴리 産]
1969년 팔레르모 출생. 음악하는 부모님 덕분에 자연스럽게 음악에 입문하게 되었으며
로마, 피렌체, 베니스 등지의 다양한 음악 교육기관에서 교육받을 수 있었다.
국내외 굴지의 여러 콩쿠르에서 입상했으며,
1990년 최고의 이탈리안 바이올리니스트로 뽑히기도 했다.
솔로이스트로도 두각을 나타내고 있으며,
현재 이탈리아 테라모의 주립음악원에서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2003년부터 이 무지치 멤버로 활동하고 있다.
클라우디오 부카렐라(Claudio Buccarella)
바이올린 [과다니니 / 1796 크레모나 産]
1941년 나폴리 출생. 아홉 살에 바이올린을 처음 연주하기 시작했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하고 1978년 이 무지치에 입단했다.
수족관에서 물고기를 기르며 조개 수집가이기도하다.
외국요리 만들기가 취미이며 최근에는 동양의 자기에도 흥미를 보이고 있다.
파스콸레 펠레그리노(Pasquale Pellegrino)
바이올린 [테스토레 / 1720 밀라노 産]
토리노의 베르디음악원을 최우수 성적으로 졸업.
시에나의 키지아나 음악원의 마스터 코스에서 살바토레 아카르도와 리카르도 브렌골라를,
제네바 음악원에서 골라도 로마노를 사사했다.
1972년부터 1977년까지 RAI 로마교향악단의 수석 바이올린 주자를 역임했고,
1981년 이 무지치에 입단했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의 바이올린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축구, 탁구 등 스포츠가 취미이다.
지안 루카 아포스톨리(Gian Luca Apostoli)
바이올린 [죠반니 프레쎈다 / 1821 튜린 産]
1968년 로마 출생.
지금은 은퇴한 이 무지치의 고참 멤버인 아버지 아르날도 아포스톨리의 지도로
아주 어린 나이에 바이올린을 시작했다.
어릴 때부터 아버지의 연주여행과 레코딩 작업을 늘 함께하면서 많은 음악적인 영감을 받았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수학했으며
1996년 이후 여러 실내악단에서 연주하고 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2003년부터 이 무지치에서 활동하고 있다.
마씨모 파리스(Massimo Paris)
비올라 주자로서 뿐만 아니라
비올라 다모레의 솔리스트, 작곡가, 오케스트라 지휘자로도 활약하고
있다.
특히 비올라 주자로서는 디아파종 R.C.T.와 뉴욕 타임즈로부터도 절찬을 받았다.
1994년 스트라디바리 4중주단을 결성했으며
현재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과 독일의 쾰른, 아헨의 주립 음악학교에서
비올라와 실내악 교수로 활약하고 있다.
세계적 규모의 마스터 클래스를 개최하는 등 후진 양성에도 힘을 쏟고 있다.
실비오 디 로코(Silvio Di Rocco)
비올라 [로렌조와 카르카씨 / 1748 플로렌스 産]
라크이라 음악원에서 비올라를 배우고 마씨모 파리스와
이 무지치 멤버였던 브루노 쥬란나를 사사
했으며 현재는 파리 음악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나폴리 산 카를로 오케스트라, 로마 가극장 오케스트라, 베니스 페티체 가극장 오케스트라 등의
수석 비올라 주자를 역임하였다.
2001년부터 이 무지치에 합류했으며
취미는 독서와 매킨토시 오디오로 음악 감상, 영상물, 웹사이트 제작 등 다양하다.
프란체스코 스트라노(Francesco Strano)
첼로 [토토니 / 1730 베니스 産]
카타냐 출생으로 로마대학에서 철학을 공부했다.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아메리노 비르드비노를 사사하고
1968년부터 이 무지치의 멤버가 되었다.
루돌프 제르킨, 살바토레 아카르도 등의 저명 연주가와 함께
세계각지에서 연주 및 녹음 활동을 하면서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후진을 양성하고 있다.
골동품(특히 아시아産) 수집과 함께 세계 각국의 요리 만들기를 즐긴다.
비토 파테르노스테르 (Vito Paternoster)
첼로 [카르카씨 / 1780 플로렌스 産]
1957년 출생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아메리노 바르드비노에게 사사하고
우수한 성적으로 학위를 취득하였다.
19세에 RAI 로마 교향악단의 수석 첼로 주자가 되었고
1978년 20세에 이 무지치에 입단 하였다.
독주자로서도 세계 각지에서 연주 및 녹음 활동을 하고 있으며
그가 감수한 리코르디판은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
작곡도 해서 미국의 몇몇 콩쿠르에서 우승한 바 있다.
루치오 부카렐라(Lucio Buccarella)
콘트라베이스 [마리아니 / 1678 페사로 産]
1932년 나폴리 출생.
고향의 산 피에트로 아마이엘라 음악원에서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했으며
졸업전부터 나폴리의 오케스트라와 실내악 연주활동을 하였고
21세부터 이 무지치의 멤버가 되었다.
이후의 활동은 이 무지치에 집중하였고,
이탈리아의 국내 음악원에서 교수로 활동하였고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 교수이기도 하다.
프란체스코 부카렐라(Francesco Buccarella)
쳄발로 및 건반악기
1967년 로마 출생.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에서 건반악기를 전공하였으며
최근 은퇴한 모친의 뒤를이어 쳄발로 주자로 활약하고 있다.
단장인 루치오 부카렐라의 장남이기도 한 그는 이 무지치 활동 외에도
독주 및 후배 양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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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는 마이스터들...
배석호/ 음악평론가
(공연 팜플렛에서 발췌)
과다니니 1751년 밀라노 산, 기단투스 1736년 볼로냐 산, 가글리아노 1739년 산, 과다니니 1796년
크리모나 산, 테스토리 1720년 밀라노 산, 조반니 프레쎈다 1821년 튜린 산... 이들이 들고 있는 모든
악기들은 '영혼의 질감'을 가진 보물들이다. 이 축복의 유산을 가지고 이들은 아직도 전설을 만드는
중이다. '도대체 얼마나 오래 더?' 라고 해야 할까.
이 무지치가 연주하는 비발디의 '사계'는 모든 음악가들에게 더이상 새로운 '사계'가 아니면 도전할
맛이 나지 않게 만들었다. 그것은 베토벤 이후 더 이상 그의 후배 작곡가들에게 교향곡을 쓰게 만들
엄두를 내지 못하게 했던 것과 같은 증세다. 어떻게 더 이상 베토벤의 교향곡을 능가할 만한 교향곡
을 작곡하란 말인가. 후세대 작곡가들에게 그것은 하나의 공포였다.
비발디의 사계도 그랬다. 이 무지치 이후 어떤 합주단이 그들을 능가하는 '사계'를 만들어낼 수 있단
말인가. 그러기에 오늘날 많은 음악가들은 비발디의 '사계'를 그냥 연주하는 법이 없다. 일종의 쌩쇼
(?)를 하지 않으면 안되었다. 나이젤 케네디의 충격요법적 '사계' 연주가 그랬고, 기돈 크레머의 탱고
기법을 사용한 '사계'는 '팔계'가 되었고 에우로파 갈란테의 '사계'와 카미요넬라의 '사계'는 코믹에
가깝다. 두 대의 첼로만으로 연주하는 사계는 차라리 플럭서스라고 말하고 싶고, 기타 쿼르텟과
리코더 합주단의 사계 그리고 비디오나 무용(어설픈 발레)을 첨가한 사계는 또 다른 해프닝의 하나
가 아닌가.
어쩌면 아직도 '사계'냐고 항변하는 사람이 있을 법하다. '이 무지치'식 사계는 고스란히 옛 전통을
간직한 채 여전히 묵묵히 그들의 자리에서 무표정한 사계를 들려준다. 하지만 그 무표정이야말로
'사계'의 순수요, 담백함이며, 물리지 않는 교본인 셈이다.
1952년 이제 막, 바로크 음악의 리바이벌로 인해 유럽대륙은 음악적으로 새로운 흥분에 들뜨고 있던
시기였다. 로마의 산타 체칠리아 음악원을 갓 졸업한 12명의 젊은 음악가들은 단지 '음악가들'
(I MUSICI) 이란 이름을 가지고 새로운 악단을 결성했다. 1명의 쳄발로를 전공한 여학생과 11명의
현악기를 전공한 남학생들은 바로크 식 바로크 음악을 표방했다. 지금까지 고전과 낭만의 영향으로
인해 숨을 죽이고 있던 바로크 음악에 새 호흡을 불어넣은 것이다.
이들의 고유 레퍼토리라면 뭐니 뭐니 해도 비발디의 '사계'다. 현대인들에게 '사계'는 이 무지치
때문에 유명해졌고, 이 무지치는 '사계'때문에 유명해졌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20세기 중반 유럽을
강타했던 바로크 음악의 유행은 20세기 말에 다시 원전악기 연주에 의한 고음악의 부활로 인해 다시
세인들의 관심을 끌었다. 비발디의 '사계'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클래식 음악 1위
이기도 하지만, 일본에서도 1위이고 전세계 사람들에게도 가장 인기있는 클래식 레퍼토리의 하나다.
그 증거로서 이 무지치가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 음반은 전세계에서 1천만장이 팔린 플래티넘 음반
이었으며, 그중 일본에서 3백만장 한국에서 1백만장이 팔렸다고 하니 경이적인 기록이 안리 수 없다.
1983년 필립스 레이블은 본거지인 네덜란드에서 이 무지치가 연주한 비발디의 사계가 2만 5천장
팔렸고 전세계에서 1천만장이 팔린 것을 기념해 단원들 모두에게 그들이 연주한 '사계'를
다이아몬드가 박힌 백금음반으로 만들어 수여했다.
듣기 쉽다고 연주하기 쉬운 것은 아니다. 흔하디 흔한 음악이 '사계' 같지만 막상 이 곡을 실연(實演)
으로 만나기란 쉽지 않다. 연주할만한 스트링 합주단도 찾기 힘든데다 솔리스트 구하기도 만만치
않으니, 우리가 콘서트홀에서 듣기란 매우 힘들다. 솔직히 말해 수없이 많은 솔리스트들이 있지만
'사계'를 잘 연주할 수 있는 연주가는 열 손가락으로 꼽기 어렵다. 단박에 비발디의 '사계'를 완벽
하게 연주하기도 쉬운 일도 아니어서 녹음한 음반이나 비디오를 내놓은 악단은 많아도 청중을 앉혀
놓고 무대에서 연주하는 아티스트를 찾기도 만만찮다.
50여년이 지난 오늘날에도 이 무지치는 여전히 비발디의 '사계'를 연주하고 있다. 이중에서 창단
당시부터 지금까지 활동하고 있는 이는 더블베이스를 맡고 있는 루치오 부카렐라(Lucio Buccarella)
가 유일하다. 창단 멤버중의 유일한 여성, 쳄발리스트였던 부인이 얼마 전 은퇴하고 아들인
프란체스코 부카렐라(Francesco)가 어머니의 쳄발로를 물려받았다. 이 무지치의 단원이 되는 전통
은 두 가지다. 그들의 2세가 대를 물려서 악기를 이어받는 경우와 신출한 재능이 있는 젊은 연주가를
발탁하는 경우다. 피와 끼가 이들의 연주에 어떤 아우라(Aura)처럼 번져있는지는 청중들이 답변할
것이다.
창단 멤버인 루치오에게 지금까지 '사계'를 몇 번이나 연주했냐고 물어보았다. 74살의 노음악가는
비발디의 '사계'만 약 3천번 정도 연주했다고 말한다. 이만하면 '사계'의 장인(匠人)이 아니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