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자하는 의욕"이라는 뜻을 지닌 욕지도 거센 바람이는 태풍도 고스란히 맞아야하는 고도 두미도. 노대도(上.下)우도. 연화도등 12개의 사람사는 섬과 27개의 무인도가 있는 욕지도는 행정구역상 통영시에 속한다. 한때는 인구가 1-2만을 넘은적도 있으나 썰물빠지듯 육지로 육지로 빠져나가 이제는 2,700여명이 거주하면서 염소와 고기양식 그리고 [욕지고매]라는 상표로 전국에 널리 배달되는 고구마가 수입원이다. 예전에는 제주처럼 도둑이 없어 집집마다 대문이 없었으나 지금은(?) 간간히 눈에띈다. 수목이 울창하고 가시덤불과 온갖 약초가 자생하는 골짜기에 사슴떼가 뛰어 놀았다하여 한때는 녹도라고도 불렸던 섬. 환상의 섬이라는 그 욕지도를 찾아갔다. 통영에서 뱃길로 30km에 떨어져있는 욕지도는 천혜의 경관과 싱싱한 해산물 그리고 개척 116년이라는 전통속에 살아가는 넉넉한 섬사람과 쪽빛바다가 어우려져 한폭의 그림이다. 필자는 욕지도와의 인연이 남다르다. 1977년 7월경 군생활을 함께한 욕지면 동항리 관청 하태호씨 (53세)의 권유로 책몇권을 싸들고 목선(당시는 지금처럼 카페리 여객선이 없었음)을 타고 오면서 처음으로 당한 배멀미 (지금 생각해도 등골이 오싹하다.)와 유배지같은 생활에 적응을 못하고 이틀후 충무(현 통영)로 책을 사러간다며 육지로 줄행랑을 쳐 절로 들어간게 아름다운 욕지와의 첫인연이다. 바다에 푸른바다에 떠 있는것은 배들뿐이 아니다. 갈메기 그리고 섬.섬.섬 모두가 둥둥 떠내려간다. 본 섬 욕지도를 가기전 연화도를 만난다. 외지에서 오는 낚시꾼을 기다린 선주는 익숙한 몸놀림으로 일행들을 태우고 죽항을 빠져나가고 살기 가 너무 바빠서 아니 경기가 너무 좋지않아 추석명절 찾아오지 못한 자식들인지 자동차에 선물꾸러미가 달려있다. 모진 바람은 해일을 만들어 저리도 높은 산위까지 짠물을 때려 해송이 시벌겋게 타죽었다. 실로 오랫만에 파도소리도 듣고 그리고 날 밤 새도록 동료들의 코고는 소리에 새벽을 맞아 필자는 동항리 산능선을 올라 너무도 붉게 솟아오르는 일출에 감탄하고 특유의 갯바람에 머리 수없이 조아리는 억새밭에서 바다를 보며 나는 긴 그리움을 토한다. 부회장과 총무(참사랑)내외가 새벽길 달려 8시20분경 욕지1호를 타고 도착했다. 아침식사를 끝낸 우리는 천황봉을 오르기 위해 출발 하였으나 해안 일주도로공사로 해군아파트쪽을 오르지 못해 되돌아 나와 미로같은 소로를 간신히 찾아 천황봉을 갔으나 해군레이더 기지가 산 정상에 있어 할수없이 옆봉우리인 약과봉을 간다. 아 ! 저것이 삼지구엽초인가? (필자는 모름)특이한 열매가 바알갛게 익어 육지의 길손들 시선을 멈추게한다. 먼 바다에서 달려오는 해풍은 약과봉 정상에 선 사람들 얼굴 간지르고 시야 멀리 희디흰 물살 내놓으며 만선의 부푼꿈 가득싣고 먼 바다로 가는 어선의 유영이 평화롭다. 정상주 한잔씩을 나눠마시고 해안일주 특히 삼여도를 보기위해 하산을 서두른다. 욕지는 쪽빛바다를 안고 있는 욕지는 새로운 태동을 위해 용트림하고 있다. 예산부족으로 혹은 태풍으로 멈추기는 하지만 언젠가 해안일주 도로가 완공되면 섬전체의 30%만 관광하던 여행객들에겐 새로운 볼거리가 업그레이드 될것이다. 사진 중앙끝 백색건물이 욕지수협.좌측 끝이 욕지항. 중앙의 섬이 수석으로 유명한 볼개섬.그리고 능선 바로밑 너른 공터가 있는 마을이 필자의 친구가 있는 동항리 관청마을이다. 늦가을 욕지 바다는 남빛이고 삼여마을 해안도로에서 보는 일출은 너무나 붉고 아름다워 탄성이 저절로 나온다 유동의 북쪽 덕동 해수욕장은 눈이 시릴만큼 물이 맑아 여름에는 피서객들과 낚시꾼들이 붐벼 민박집은 예약을 하지않으면 곤란할 정도 특히 3개의 바위로 이루어진 삼여도는 애잔한 전설을 간직한 욕지도의 볼거리로 파도와 벗하며 한쌍의 촛대바위와 좌사리도. 국도.갈도.홍도등과 푸른바다에 두둥실 떠 여행객들의 시야를 꽉채운다. (참고로 삼여도는 영화 화려한 외출의 촬영지임.)선착장이 있는 동항리 뒷산에는 천연기념물 제343호로 지정된 모밀잣밤나무숲은 일찌기 어부림과 방풍림 역할을 해왔다. 그외 경남도 지정 기념물 제27호인 욕지도 패총은 남해안지역 신석기문화의 내용을 밝히는데 귀중한 자료다. 일본의 강점기 이전 이미 욕지도는 왜인들이 어장을 점령하고 노략질을 했지만 욕지사람들은 하나가되어 우리의 영해를 지키는데 노력해왔다. 따라서 욕지도는 육지보다 더 슬픈 역사의 현장 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곳엔 해군전진기지가 있음) 삼여도. 친구 매형과 친구내외 수년만에 그는 웃었다. 그것도 활짝 일상으로 돌아오는 필자 뒤로 욕지도는 점점 멀어지기만 하고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