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사람의 오솔길展을 개최하며
무더웠던 여름도 지나가고 푸른 가을하늘이 반갑기만 합니다. 산성마을은 도시보다 가을이 서둘러 오는 곳입니다. 더 높은 하늘, 새롭게 옷을 갈아입고 있는 나무, 아침저녁으로 불어오는 싱그러운 바람은 가을의 존재를 느끼게 해줍니다.
킴스아트필드에서는 감민경․심준섭작가가 참여하는 <두 사람의 오솔길展>을 개최하게 되었습니다. 이 전시 제목은 존재의 의미를 평생 추구했던 하이데거의 논문집<Holzwege 오솔길>에서 차용되었습니다. ‘오솔길’은 이미 만들어진 길을 벗어나 숲속으로 난 조그만 길을 걸었던 하이데거의 철학적 여정을 상징하는 단어이기도 합니다. 이번 전시에 초대된 감민경과 심준섭은 모두 독자적인 작가적 여정을 펼치고 있어 ‘오솔길’이라는 단어의 의미와 가장 잘 부합하는 작가들입니다.
시류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사유를 쫒아가는 작가적 삶이란 항상 우거진 숲속에서 길을 찾는 것과 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작가는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을 떠나는 나그네처럼 정처없는 삶을 살 수밖엔 없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예술가들을 통해서 우리는 삶의 형태를 발견 할 수 있게 되는데, 삶의 굴레에서 벗어나 있지 않으면 결코 우리들의 삶은 확인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예술적 실천에 기꺼이 박수를 보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감민경, 심준섭이 보여주는 향기를 따라 좀 돌아서 가더라도 ‘예술의 오솔길’을 거닐어 보길 바랍니다. 산성의 가을바람과 함께 여러분을 초대합니다. 많은 관람과 아낌없는 격려 부탁드립니다.
2010년 9월 가을빛 물드는 산성에서
킴스아트미술관 관장 정영재
두 사람의 오솔길展
감민경․심준섭
이영준
큐레이터. 김해문화의전당 전시교육팀장
감민경과 심준섭. 이들은 작품의 주제나 내용이 그렇게 직접적으로 다가오지 않는다. 사조나 흐름으로 정리되지 않는 독특한 스타일을 고집하는 작가들이다. 기본적으로 난해하다. 이들이 가려는 길은 예측 가능한 대로(大路)가 아니라 그 끝을 알 수 없는 오솔길이다. 이들은 어쩌면 모더니즘이 잉태했던 그리드의 합리적인 길을 벗어나 이젠 사람들이 잘 가려하지 않아 길의 흔적조차 사라져버린 조그만 숲길을 걷고 있다.
감민경-부재하는 것의 존재
감민경의 작품은 쉽게 언어화하기 힘든 어떤 징후나 느낌으로 가득 차 있다. 물론 어떠한 예술작품이든 이를 언어화 한다는 것이 한계가 있기 마련이지만 감민경의 작품은 특히 이를 완강하게 거부하고 있는 듯하다. 어스름한 숲이나 바다 그리고 도시의 이면을 그렸던 과거의 작품에서도 일관되게 느낄 수 있는 것은 비언어적인 그 무엇이었다.
하지만 이 비언어적인 무엇은 분명 우리들의 감각적 영역 속에 분명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감민경의 작품은 숭고와 고요, 침묵과 무한, 징후와 혼란으로 가득 차 있다. 현실에서는 쉽게 그 존재가 들어나지 않는 것들이다. 그녀는 애써 이들의 흔적을 찾아 나선다.
이번전시에서 작가는 ‘동요성動搖性’이라는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마치 초점이 맞지 않은 카메라의 앵글처럼 인물의 존재감이 혼란스럽게 화면에서 부유하고 있다. 이 인물들은 미술의 역사에서 이미 신화화 되어있는 작품의 일부이거나 현대인의 얼굴에서 차용한 것들이다. 해체되어있는 인물들은 존재와 부재 사이의 어떤 지점을 드러낸다. 그 느낌과 징후만으로...
감민경의 작품은 부재하는 것의 존재를 확인하려는 역설이다. 그녀의 작품이 쉽게 해석되거나 이해되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지만 어쩌면 눈으로 보이는 가시적인 것들이 결코 존재의 본모습은 아닐 것이다. 감민경은 현실에서는 존재하지 않지만 사물의 주변에 엄연히 내포되어있는 어떤 뉘앙스들의 형태를 드러내 보인다.
심준섭-소음의 순환
심준섭은 소리조각이라는 독특한 영역을 탐구하는 작가이다. 작가가 소리에 대해 이렇게 집착하게 된 이유는 유학생활 시작된 ‘이명현상’ 때문이다. 귀에서 무엇인가 계속해서 들리는 이 현상은 의학계에서는 원인을 알 수 없는 불치병으로 분류되어 있기도 하다.
심준섭은 자신의 병력을 통해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듣는 소리라는 것이 객관적인 무엇이아니라 감각과 몸 그리고 신경이 만들어내는 하나의 현상임을 자각하게 된 것이다. 자신의 이명은 ‘물소리’와 깊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치료를 하며 알게 된다. 작가는 이때부터 물과 소리를 활용한 작업을 시도한다.
사실 존재라는 것은 ‘결핍’에 의해 확인되는 경우가 많다. 내 몸을 가장 절실하게 느끼는 경우는 증상을 통해서이지 않은가? 심장이 아프기 전까지 심장의 존재를 느끼기는 힘들다. 뿐 만 아니라 정신분석학에서 ‘말실수’에 주목하는 이유도 이를 하나의 증상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어쩌면 심준섭이 소리에 집중하는 이유는 바로 자신의 ‘증상’을 통해 자신을 드러내 보이기 위한 과정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이상한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소음을 통해 작가는 자신을 이야기 한다. 작가에게 들리는 소리는 우리에게 들리지 않는다. 이 소리를 재현함으로써 작가와 관객은 경험을 공유하게 된다.
보통 사람들은 자신이 듣고 싶은 소리만 듣는다. 또한 현실에서는 존재하지만 높은 영역대의 음향을 인간은 들을 수 없다. 너무 큰 소리 뿐 아니라 너무 작은 소리도 인간에게는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여전히 존재하는 것들이다. 무수한 소리들이 우리를 감싸고 있지만 우리는 우리가 듣고 싶은 소리에만 주목하고 있다. 작가는 순환되는 소음을 통해 소리를 새롭게 보여준다. 이 소리를 통해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게 만들 뿐 아니라 소리에 대한 우리의 관념을 되묻고 있으며, 세상의 상처를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감민경과 심준섭은 시대나 사조의 흐름에 몸을 맡기기보다는 자신과 결부된 사유를 통해 오솔길을 걷는 작가들이다. 그들이 이 거대한 풀숲을 헤치고 어떠한 대지를 새롭게 만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자신과 세계에 대한 진지한 성찰을 통해 새로운 길을 가고 있는 작가들임에는 틀림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