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도시 한복판에 나타난 악마 일당이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건들
소비에트 정권 하의 모스크바. 자칭 흑마술 전문가라는 외국인 교수 볼란드과 그 일당이 나타나면서 시내에는 일대 소동이 벌어진다. 문학 협회 마솔리트의 회장인 베를리오즈는 볼란드의 예언대로 목이 잘려 나가고, 이 일을 목격한 젊은 시인 이반 베즈돔니는 일당을 추격하다가 난동을 부려 정신 병원에 들어가는 신세가 된다. 정신 병원, 베즈돔니의 옆방에는 자신을 ‘거장’이라고 소개하는 사내가 지내고 있다. 그는 일전에는 작가였고 내연녀 마르가리타의 사랑과 격려를 받으며 예수와 본디오 빌라도에 관한 작품을 써 냈다. 그러나 시대에 맞지 않게 예수를 다룬 그의 소설은 문단의 혹평을 받고, ‘거장’은 문학적으로 매장당해 폐인처럼 지내다 마르가리타를 떠나 제 발로 정신 병원에 들어온 것이다.
한편 볼란드 일당이 벌이는 기행은 모스크바 전체를 들쑤신다. 바리에테 극장 간부들이 줄줄이 사라지고 베를리오즈가 살았던 사도바야 거리의 아파트 관계자나 문학 관련 관료들도 일당에게 봉변을 당한다. 게다가 볼란드 일당이 극장에서 흑마술을 공연하면서 가짜 돈과 옷, 구두를 뿌리는 바람에 모스크바 시민들은 대혼란에 빠진다. 그 와중에 ‘거장’의 연인 마르가리타는 ‘거장’과 재회할 수 있다는 희망 하나로 사탄의 무도회에서 여주인 역할을 해 달라는 볼란드 일당의 제안을 수락한다. 그녀는 알몸으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며 연인을 비난한 평론가의 집을 쑥대밭으로 만들기도 하고, 무도회 입구에 서서 몇 시간 동안이나 죽은 자들에게 인사를 건네는 수고를 견디기도 한다. 볼란드 일당은 약속대로 ‘거장’을 빼내 마르가리타와 재회시킨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예수를 처형한 일로 괴로워하는 빌라도에게 구원을 내리고 영원한 안식을 맞이한다.
■ 소비에트 체제라는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한 편의 희극(喜劇)
미하일 불가코프는 ‘거장’만큼이나 순탄치 않은 인생을 살았다. 심혈을 기울여 쓴 작품이 공정하지 못한 평단의 독설에 매도되는 ‘거장’의 상황은 소비에트 정권 하에서 정치적 이유로 출판과 상연을 금지당하곤 했던 불가코프의 상황과 꽤 닮아 있다. 불가코프는 ‘거장’ 외에도 작가나 평론가, 극장 간부, 문학 관련 관료 들을 내세워 권력에 아첨하고 부정이 판을 치던 당시의 시대상을 신랄하면서도 재치 있게 풍자한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처음부터 끝까지 소비에트 러시아의 현실을 충실하게 묘사하고 있다. 1장 제목인 ‘절대로 낯선 사람과 이야기하지 마시오’는 공산당에서 시민들에게 주입하던 선전 문구이며 당대의 사회 분위기를 단적으로 반영하는 문장이기도 하다. 폐쇄적이고 고도로 통제된 소비에트 러시아 사회에서 신원이 불분명한 외국인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스파이로 여겨졌고, 조금이라도 수상쩍다는 밀고가 들어오면 자국민들도 흔적 없이 사라지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주택난과 물자 부족도 큰 골칫거리여서, 아파트 하나를 여러 개로 나눈 쪽방에서 사생활이랄 것도 없이 살아가는 서민들이 적지 않았다. 이러한 시대상은 외국인 등록 제도나 이유 없이 자꾸 사라지는 아파트 주민들, 외화를 소지했다는 이유로 체포되는 등장인물 등 작품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저널리스트로 일하기도 했던 불가코프의 풍자 정신은 볼란드 일당이 벌이는 흑마술 공연에서 가장 돋보인다. 공짜라는 말에 홀려 무대 위로 뛰어 들어 옷과 구두를 낚아채고 가짜 돈을 잡기 위해 이리 부딪히고 저리 부딪히는 관객들의 모습에는 인간의 욕심이라는 보편적인 요소 외에도 이처럼 우울한 사회적, 역사적 배경이 반영된 것이다. 이 밖에도 공산당 노선에 아첨하는 형편없는 글을 쓰면서 작가 조합 회원이라는 자격을 벼슬처럼 휘두르며 특권을 만끽하는 마솔리트의 거만한 문인과 비평가들, 조카가 죽었는데도 애도의 마음은 단 한 점도 없고 오로지 그의 아파트를 차지하기 위해 잔꾀를 쓰는 포플랍스키 등 볼란드 일당의 소동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나약함과 비겁함, 위선, 잔꾀, 모순, 약점을 여실히 드러낸다. 『거장과 마르가리타』는 소비에트 러시아를 무대로 속물적인 인간들이 출연해 당대 사회의 문제점을 꼬집는 풍자극인 것이다.
미하일 불가코프
그로테스크한 수법을 사용한 풍자적인 작품으로 사랑받은 작가. 1891년 5월 15일 키예프 출생. 25살에 키예프 대학 의학부를 졸업하고 러시아 벽지를 다니며 의사로 일하기도 했으며, 2년 후 고향 키예프로 돌아왔으나 반 볼셰비키 백위군 장교들에 의한 내전의 회오리에 휘말리게 되었다. 1919년 가을, 백위군 군위관이었던 그는 퇴각하는 백위군을 따라 러시아 남부 블라지카프카스로 갔다. 다음 해 백위군은 다시 퇴각했으나 티푸스에 걸린 불가코프는 블라지카프카스에 남겨졌다.
소비에트 하의 블라지카프카스에서 그는 의사직을 버리고 친구의 도움으로 블라지카프카스로 문학지국을 맡아 일하기 시작. 이 시기에 「투르빈 형제들」을 비롯한 다섯편의 희곡을 써서 무대에 올렸다. 그러나 곧 창작 활동에 회의를 느껴 모든 원고들을 태워버리고 망명길에 올랐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1920년대 초 「치치코프의 모험」 「디아볼리아다」 「파멸의 알」 등 혁명 직후 모스크바 세태를 풍자한 중단편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했다.
1925년부터 잡지 《러시아》에 키예프에서의 내전 체험을 그린 소설 「백위군」을 연재하기 시작하면서 호평을 받았고, 희곡으로 각색해달라는 제안을 받았다. 그 후 모스크바를 배경으로 한 코미디를 써 달라는 제안을 받고 희곡 「조야의 아파트」를 집필했고, 모스크바 예술극장과 「개의심장」의 공연계약을 맺엇으나 국가보안국에서 원고와 일기를 압수 하고 상연을 금지했다. 반혁명적ㆍ반소비에트적 작가라는 비평가들의 비난에도 불구하고 희곡 「투르빈네의 날들」과 「조야의 아파트」가 관객들에게 호응을 얻으면서 극작가로서 큰 인기를 누렸다.
1920년대 말 스탈린 체제의 강화와 함께 시작된 대대적인 반(反)불가코프 캠페인 이후, 1929년 봄에는 볼가코프의 모든 작품에 상연금지 명령이 내려지고, 스탈린에게 망명을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1940년 3월 10일 사망할 때까지 소비에트에서 단 한 편의 작품도 출판하지 못했다. 『거장과 마르가리타』 외의 주요 작품으로 『백위군』 「개의 심장」 『드 몰리에르씨의 생애』 「극장」 등의 소설과 「질주」 「적자색 섬」 「위선자들의 밀교」 「아담과 이브」 「알렉산드르 푸시킨」 「이반 바실리예비치」 등의 희곡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