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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리공예 (琉璃工藝)
유리를 소재로 하는 공예. 유리는 단단하고 광택이 나며 투명하게도 불투명하게도 될 수 있는 독특하고 뛰어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착색도 비교적 용이하고, 가열하면 액상(液狀)이 되므로,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하여 자유로이 성형(成形)할 수 있다. 반면에 충격에 대해서는 저항력이 약하여 수복(修復)이 매우 어려우며, 질이 좋은 제품을 얻기 위해서는 고도의 숙련과 설비를 필요로 한다.
유리를 소재로 하는 공예. 유리는 단단하고 광택이 나며 투명하게도 불투명하게도 될 수 있는 독특하고 뛰어난 성질을 가지고 있다. 착색도 비교적 용이하고, 가열하면 액상(液狀)이 되므로, 여러 가지 기법을 사용하여 자유로이 성형(成形)할 수 있다. 반면에 충격에 대해서는 저항력이 약하여 수복(修復)이 매우 어려우며, 질이 좋은 제품을 얻기 위해서는 고도의 숙련과 설비를 필요로 한다. 작품의 표면이 단조로워지기 쉬우며, 깊이나 변화를 미묘하게 조절하기 어렵다는 결점이 있다. 이와 같은 특질 때문에 작품은 잔·접시·병·단지[壺] 등의 그릇종류, 등기(燈器) 및 꾸미개나 부적(符籍), 상감용품(象嵌用品) 등 소형인 것이 많다. 또한 특수한 분야로 거울·스테인드글라스 등이 있다.
서양
유리의 기원에 관해서는 불분명한 점이 많으나 오늘날 알려진 바로는 대략 BC 3000년 중엽에 오리엔트지역에서 유리가 생겨났다고 한다. 로마의 학자 플리니우스는 《박물지(博物誌)》에서, 해안에 표착한 페니키아인이 배에 실은 하물이었던 나트륨(천연탄산소다)으로 모래톱에 화덕을 만들고 붙을 땠는데, 거기서 투명한 유리가 생겨났다고 전하고 있으나,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이전에 탄생하였다. 제조 연대를 확인할 수 있는 최고(最古)의 예는 이집트 제18대 왕조의 아멘호테프 2세, 토트메스 3세의 왕명이 있는 각배(脚杯) 등이다. 이러한 유리그릇은 막대 끝에 진흙이나 형겊을 감아서 녹은 유리 속에 담갔다가 끌어 올려 모양을 다듬고, 냉각한 뒤에 속에 든 심(心)을 빼어버리는 이른바 코어글라스수법으로 만들어졌다. 꾸미개에는 기체(器體)에 빛깔이 선명한 엿처럼 생긴 유리끈을 감아붙이고 가마속에 넣어서 융착(融着)시킴과 동시에 위아래로 늘어뜨려서 깃털모양, 또는 비늘모양의 무늬를 얻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코어글라스는 메소포타미아에서도 볼 수 있으며, 이라크의 누지(지금의 요르간테페)·우르, 북부의 우마르에서는 유약의 재료와 제조법을 기록한 점토판이 발견되었다. 녹은 유리를 주형(鑄型)에 부어서 만드는 방법도 널리 쓰었다. 투탕카멘왕무덤의 출토품, 예를 들면, 마스크·널[棺]·꾸미개[裝身具]·베개 등에서 볼 수 있는 많은 유리꾸미개 부품은 그 좋은 예이다. 또한 아시리아제국의 유리그릇에 컷(절단)기술이 사용된 점이 주목을 끈다. 그리스에서 유리공예는 일반적으로 부진했으나 헬레니즘기에 들어와 지중해 동부에 있는 여러 시에서 급속히 발전하였다. 특히 시돈과 알렉산드리아는 다종다양한 유리제품의 생산으로 유명하다. 이 지역에서 새로 개발된 밀레피오리(千의 꽃이라는 뜻)·모자이크글라스·카메오글라스 등은 이후 유리공예의 기본적인 장식기법이 되었다. 로마시대에 들어와서 녹은 유리를 파이프 끝에 묻혀서 입으로 불어 팽창시켜 원하는 모양을 만드는 <취구식(吹口式) 제조법>이 발명되었다. 이것을 통하여 유리그릇을 값이 싸고 효율적으로 생산하게 되었으며, 일용품으로서 널리 보급되었다. 이 시기의 유리를 로마글라스라고 부른다. 3∼4세기경이 융성기였고, 4세기 말 로마제국이 분열된 이후 급속하게 쇠퇴하였다. 중세 유럽의 유리공예는 부진했으나, 동방 이슬람문화권에서는 식기·등(燈) 등의 분야에서 활발한 생산이 계속되었다. 이집트나 시리아에서 만들어진 모스크용램프는 에나멜유(釉)를 활용한 화려한 제품으로서 특히 유명하다. 이러한 이슬람글라스의 양식과 기법은 십자군을 통해 유럽에도 전해졌으며, 특히 베네치아를 유리공예의 중심지로 만들었다. 베네치아는 다시 로마 이래 유리기법을 부활시켜서 신종(新種) 투명유리를 개발하는 등 유리공예의 생산을 국가의 기간산업으로 육성했으며, 15∼16세기 경에는 유럽의 고급 유리제품시장을 거의 독점하게 되었다. 이러한 태세는 기능인들의 유출이나 제조법에 대한 비밀누설 등으로 인하여 16세기 경에는 무너졌으나, 화려한 베네치아글라스의 전통양식은 오늘날까지 계승되고 있다. 한편, 알프스북방 삼림지대에서는 소규모의 공장들이 계속 생산하고 있었다. 술잔 등 일용잡기(日用雜器)가 주품목이며, 나뭇재를 알칼리로서 많이 사용한 점에 특색이 있다. <프랑크글라스> <클로우글라스> <발트글라스> 등이 이러한 종류의 북방유리를 대표한다. 그 중에서도 15세기경부터 나타난 <레마잔(盞)>은 당시의 음식풍속과 결부된 제품이다. 보다 나은 고품질의 유리그릇이 북방에서 제작되게 된 것은 16세기 무렵부터이다. 특히 보헤미아에서는 프라하의 궁정을 중심으로 하여 베네치아에 대항할 수 있는 양질의 유리공예를 육성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는데, 투명도가 높은 칼리글라스를 소재로 해서 인그레이빙이나 커팅을 살린 제품이 만들어지게 되었다. 또한 다채로운 에나멜로 그린 그림을 붙인 <흄펜>이라고 하는 큰 잔 등 새로운 형식도 생겨났다. 영국도 16세기 후반, 엘리자베스 1세 시대가 시작되면서 성숙된 궁정문화를 꾸미는 것으로서 고급 유리그릇, 특히 술잔의 생산이 신장되었다. 17세기에 들어와서 조지 레이번즈크로프트가 납[鉛]크리스털글라스를 발명하여, 다종다양한 술잔이 만들어지게 됨으로써 근세 유리공예사에 한 분야를 확립하였다. 이른바 <트위스트글라스>가 그 대표적인 예이다. 1780년 무렵에는 아일랜드에서 납크리스털에 의한 커트글라스의 생산도 활발하였다. 산업혁명은 유리의 생산방식에 큰 영향을 주었다. 연료로서는 석탄을 많이 사용하게 되었으며, 증기기관이 강력한 프레스나 회전숫돌의 출현을 유도하였다. 한편, 유리는 성형이나 꾸미는 단계에서 수공의 비중이 크기 때문에, 근대의 유리공예는 크게 규격화한 대량생산품과 종래의 방식에 따른 수공제품 2가지로 나뉘게 되었다. 19세기 후반부터 지금까지의 유리공예의 양상은 이러한 상황을 잘 말해 주고 있다. 미국에서 발달한 프레스글라스는 전자의 예이고, 갈레와 돔으로 대표되는 아르누보의 작품이나 이른바 <스튜디오글라스>의 제품은 후자의 좋은 예이다. 앞으로도 이러한 경향은 지속될 것으로 보인다.
중국
중국에서 유리의 기원에 관해서는 분명하지 않으나, 서방에서부터 전래되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전국(戰國)시대 말의 뤄양성[洛陽省] 진춘[金村]에 있는 무덤에서 잠자리구슬·이당(귀고리에 달린 구슬의 일종)·벽(璧;구슬) 등이 출토되었다. 한(漢)나라 이후, 로마글라스가 교역품으로서 조직적으로 전래되면서 그 기법도 도입된 것으로 보인다. 위진남북조(魏晉南北朝)시대에는 무색의 유리그릇도 만들었다. 중국의 유리는 당(唐)나라 때에는 계속 번성했던 것으로 추측되지만 그 후의 상황은 유례(遺例)가 적어 확실한 것은 알 수 없다. 명(明)나라 때에 이르러 근세 유럽과의 교류가 활발해짐에 따라 유리생산은 급속히 신장되었으며, 또한 청(淸)나라 때가 되자, 궁정이 유리산업을 육성하게 되어 강희제(康熙帝) 치하인 1680년에는 국영공장을 설립하였다. 당시의 제품은 주로 유색 불투명한 유리로 만든 그릇·접시·단지 등이었고, 특수한 것으로는 비연호(鼻煙壺;스냅보틀)가 있다. 건륭제(乾隆帝) 치하에서 가장 훌륭한 작품이 생산되었으며 오늘날에도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한국
한국의 유리공예는 5∼6세기경의 고분출토품에서 볼 수 있는 것처럼 그 구성성분이나 조형에서 서방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삼국시대에 만들어진 대다수의 유리제품은 소다유리계통의 로마글라스로서, 바륨을 다량 포함한 납유리[鉛琉璃]양식의 중국계통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다. 뿐만 아니라 그릇의 형태도 이란에서 유행하였던 오이노코에병(일명 鳳首形甁)과 유사하여 중국보다는 서방과의 관련설이 더욱 강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국시대 유리에 나타난 몇 가지 특징은 한국에서도 독자적으로 유리를 생산했을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예를 들면, 유리에 기포(氣泡)가 많고 성형이 매끄럽지 못하다든가, 한국을 비롯한 동북아시아 일원에서만 발굴되는 곱은옥[曲玉]과 같은 장식물에 유리제품이 섞여 있다는 사실 등을 종합해 볼 때 그 제품이 한국의 생산품임을 암시하는 자료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고려시대로 들어서면서 자기(瓷器)의 발달로 유리제품은 귀중공예품의 자리를 청자에게 물려주고 있음을 <수월관음도(水月觀音圖)>와 같은 불화를 통해서 알 수 있다. 한국의 전통적인 유리공예는 고려 이후로 맥을 잇지 못했는데, 이것은 중국의 유리공예가 몽골 침입 이후 결정적인 타격을 입은 것처럼 한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라 하겠다. 이 전통의 단절은 대량생산의 근대적 유리공업으로 이어질 때까지 계속되었다.
유리의 역사
유리는 재질자체가 지니는 독특한 특성 때문에 인류초기부터 인간에게 매우 친밀한 생활도구로 활용되어왔다.
인류가 20여만년전에 불을 발견하였지만 장구한 석기시대가 계속되었다. 유리이용의 시초는 화산의 용암이 갑자기 냉각되어 미처 결정화되지 못하고 생성된 유리 즉 흑요석(obsidian)이 석기시대의 활촉, 칼, 장식품으로 사용된 최초의 유리이며, 인류가 불을 이용하여 토기를 만든 것이 공업기술의 시발이라 할 수 있는데, 이렇게 볼 때 요업은 인류최초의 공업이다.
유리제조는 5000년의 역사를 지니고 있으며, 고대 이집트 유리는 화학분석에 의해 70% Sio (소량 A O 포함), 10% Cao(소량 MgO포함), 20% Na O(소량의 K O포함)의 소다석회 유리로 알려졌고, 이집트인이 독점 생산해 왔으나 그후 로마인들에 의해 베니스로 전파되었다.
유리생산의 첫번째 획기적인 전환은 대략 기원전 1세기경 blowing pipe법의 발명으로 이루어졌다. 개선된 가마의 재료는 유리를 고온에서 용융하요 성형할 수 있는 기술을 발전시켰고 이것은 거의 2000년이상 유지되었다.
유리 역사속에서 두번째의 획기적인 전환은 금세기초 유리생산의 기계화에 의한 발전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Batch 조성이 극비였으나 19세기말 과학과 유시생산기술의 급속한 발전으로 널리 알려졌으며, Batch 조성에 따른 유리의 물리적 성질과 유리의 구조에 관한 연구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한국유리의 역사
우리나라의 고대 유리 제품들은 대부분이 로마시대 형태의 유리이며 동양적인 유리가 출현한 것은 통일신라이후 불교문화가 도입되면서 부터이다. 우리나라만의 독특한 유리 기구는 신라시대 경주고분에서 처음로 출토되었는데 금관총에서 나온 유리잔, 금령촌에서 나온 유리주발, 천마총에서 나온 유리그릇 등은 지금까지 동양에서 발견된 일분의 유리 기물들에서는 볼 수 없었던 독특한 형태를 지니고 있다. 아울러 경주군 대남면에 유리용 가마가 있었음이 확인되기도 했는데, 이같은 사실로 볼 때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인 유리문화가 시작된 것은 신라시대였던 것으로 추정된다.
신라인 특유의 조형 의지에 의해 독자적인 기수로 발전되어 갔으며 조선조 말기 서구문화가 들어올 때까지 고려시대 이후 유리제작 기술은 단절된 시대가 계속되었다. 신라시대에 융성했던 유리문화는 이후 고려조선시대의 도자기에 밀려 오히려 퇴보의 길을 걸었다. 청자나 백자같은 훌륭한 도자기문화가 꽃을 피운 반면 유리 제조기술은 아예 답보상태에도 미치지를 못했던 것인데, 아무래도 우리 민족의 정서는 순수한 흙 문화에 더 잘 어울렸던 모양이다.
근세 우리나라 유리제조공장의 효시는 1902년에 완성된 이용익의 "국립제조서"이다. 이용익은 1903년에 러시아 기술자의 협조를 받아 병유리 생산시설을 갖추었으나 1904년 러일전쟁으로 효과없이 폐쇄되었다.
한일합방 이후 1909년 황족인 이재온이 서대문에 유리공장을 착공하였고 1913년에는 역시 황족인 이재현이 경성초자 제조소를 설립하여 병유리, 램프를 만들었으나 점차 쇠퇴하고 이후 작은 규모의 유리공장들이 병유리 수요를 충족시키기 위해 서울, 평양, 부산 등에 건설되었지만 근대적 시설을 갖추고 병유리를 생산한 것은 1939년에 아사히 맥주회사의 자본으로 설립된 제2일본초자 주식회사(해방 후 동양유리공업 주식회사)로 주로 맥주병, 사이다병을 생산하였다.
그 후 1940년에서 1945년 사이에 자동식과 수동식 제조시설을 겸비한 동양초자회사가 영등포에 설립되었으며 반자동식 제조시설을 갖춘 일광초자가 부산에 설립되었다. 해방과 더불어 남한에 약 47개의 소규모 유리공장이 생겼다가 6.25동란으로 시설이 크게 파손되어 중단사태에 들어갔으나 전쟁이 끝난후 복구하기 시작하여 1955년에는 소규모공장을 합하여 약 41개 정도가 되었다. 이후 이러한 상황하에서 맥주의 생산이 본격화되고 수요가 늘어 부산에 있던 해남초자가 1957년 5월에 영등포에 자동시설을 갖춘 병유리 공장을 준공하고 (후에 대한유리로 개정) 활발한 병유리생산을 시작하였다.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유리제품의 주원료가 되는 규석, 규사, 석회석, 백운석과 같은 천연 원료가 대량 산출되고 있으며 그 질도 우수하고 제조기술도 나날이 향상되고 있으므로 유리 산업은 더욱 발전할 것이며 이러한 산업화 과정에 의해 유리 조형의 대중화 시대를 맞이할 것이다.
유리의 종류
1.성분에 의한 분류
2. 제품의 의한 분류
판유리
병유리
병유리, 유리용기
전구,진공관유리
이화학용의료용유리
공예장식용 유리
조명기구 히터용 유리
건축용유리
광학유리, 필터유리
유리섬유 기포유리
기타
3. NEW GLASS 제품
유리의 원료
1.소 다 회
영문 : Soda Ash
화학식 : Na2Co3
제조방법 : 암모니아 소다법 (sovay법).석고의 냉용액을 암모니아로 불화후, 가압하에 CO2중 탄산소다를 침장시켜, 이것을 여과시켜 냉수로 선별하여 얻음
사용용도 : 유리공업용 소다회의 가장 큰 용도이며 (전체사용량 중 40%) 다른 혼합물들과 용융되어 유리를 형성한다. 이 때 소다회는 유리의 염기성성분의 공급원료인 동시에 융점강화제의 역활을 하게 된다.
2.규 사
영문 : Silica Sand
화학식 : SiO2
제조방법 :규사는 천연광물로써 주로해안에 널리분포되어 있으나 유리제품에 사용할수 있는 고순도의 것은 특정지역에 매장되어 있는데 주로 호주,인도네시아, 말레이지아, 베트남 등에 양질의 규사가 매장되어 있다.
사용용도 : 유리공업용(주원료로서60-70%)반투명성,고경도(모아경도7)
3.석 회 석
영문 : Limestone
화학식 : CaCo3
제조방법 : 천연원자재
사용용도 : 유리공업용
4. 수산화 알루미늄
영문 : Aluminium Hydroxide
화학식 : Al(OH)3
제조방법 : 보오크사이트를 가성소다 용액으로 녹인다. 알루민산 소오다 수용액에 탄산가스를 통함
사용용도 : 알루미늄감, 유기레이크기제, 의약, 고무의 보강재료
5. 탄 산 카 리
영문 : Potassium Carbonate
화학식 : K2CO3
제조방법 :가성카리액에 (45-50%) 정제, 탄산가스를 반응시킴 반응후 액을 노화증발통속에 결정을 석출시킴, 원심분해 소성로로 탈수하여 분쇄함
사용용도 : 의약품유리 (광학유리, 진공관유리, tv브라운관유리, 크리스탈)
6. 중 정 석
영문 : Barite
화학식 : BaSO4
제조방법 : 천연광물이며 유리원료용으로는 BaSO4 96-98% FeO3 0.1-0.2 나머지 SiO2인 정도의 품질을 갖는것이 사용된다.
사용용도 : 중정석은 망초에 비해 용융과정에서 유리기포제거작용을 하며 청정작용도 동시에 하며 낮은온도에서도 융제작업을 할수있다
7. 장 석
영문 : Felsrar
화학식 : 페그마타이트, 우화질화강암, 반화강암상태로 사출 조장석(Na2O ,Al2O3,SiO2) 정장석 (K2O, Al2O3, Sio2) R2O 6% - 12%로 SK6 정도
사용용도 : 도자기, 유약, 용접봉용, 유리, 타일
8. 붕 산
영문 : Boric Acid
화학식 : B2O3
제조방법 : 북미 산원광을 반응조에 넣어 황산을 가열하면 붕산이 유리되어 붕산과 망초의 혼합액이 얻어짐
사용용도 : 파이렉스유리, 의약용앰플유리, 유리섬유
9. 붕 사
영문 : Penta Borax
화학식 : Na2B4O7·5H20
제조방법 : 원광라소라이트를 물에 가열용해하여 활성암을 가해 탈색한뒤 부용분을 여과 결정조에 넣어서 반타영법하면 결정이 석출됨. 탈수건조하여 제품화함
사용용도 : 유리, 도자기, 범랑칠기, 금속용접 등
10. 탄산바륨
영문 : Barium carbonate
화학식 : BaCO3, 백색분말, 비중 4.4, 물과 알콜에 부응. 약 섭씨1,300도에서 BaO와 탄산가스로 분해 산에 의해 분해함
제조방법 : 건조한 무연회 또는 코크스와 중정석을 분리배합 원심분해해서 배합물을 침출하여 얻은 유화바륨용액과 반응시키면 탄산바륨의 침전을 얻음. 이것을 투여하여 충분히 섞은뒤 건조분쇄함 소다회 대신 연도개스중 CO3를 정제해서 유화바륨용액에 투입, 탄산바륨을 침전시킴
사용용도 : 광학유리,망전지,살충제,금속초리제,바륨감유
11. 파유리
파유리는 유리용융시 융제역활을 하며 모래의 용융을 도모하여 연료와 원료를 절감시키고 로의 내화물 침식을 방지하기도 한다 연료비가 점차 비싸지고 공해방지규정이 엄격해짐에 따라 파유리의 재생(Recycling)은 점차 그 역할이 중요해지며 통상적으로 병유리 생산지 25%를 첨가시키면 연료비가 5% 절감된다
12. 부원료
융제 - 질산알칼리 (NaNO3), 플루오르화칼슘(CaF2) 등
산화제 및 환원제 - 과산화바륨 (NaNo3, KNOs, BaO2)등
청칭체 - 망초, 황산암모늄 등
착삭제 및 소색제 - 이산화망간, 산화코발트 등
13. 특수원료
산화베릴늄 (BeO)
산화란탄 (La2O3)
산화코론본(Lb2O5) ,산화탄탈(Ta2o5)
산화세륨 (Ce2O3)
산화지르코니아 (ZrO2)
산화카드뮴 (CdO)
산화리튬 (Li2O)
유리제조과정
배합
우선 유리제품에 맞는 원료조합비에 따라 모래와 소다회, 석회석, 파유리등을 배합합니다.
용해
배합된 원료를 섭씨1450도가 넘는 용해로에서 용해시킵니다
성형
유리의 소지품질을 좋게 하기 위한 청징과정을 거쳐 성형에 적당한 온도까지 내려가게 되면 성형작업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서냉
성형이 끝난 유리제품은 응력을 제거하는 서냉과정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서냉로에 투입후 적정온도로 서서히 냉각시켜 주게 되는데 대략 1시간 정도의 서냉과정이 끝나면 제품은 내구성을 지니게 됩니다
검사
서냉후 곧바로 옮겨진 제품은 철저한 검사로 품질보증에 완벽을 기하고 있습니다.
포장
포장공정을 거쳐 완벽한 유리제품으로서 소비자들에게 공급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