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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예배와 신앙: 예배는 믿음의 외적인 표현
교회는 예배를 통하여 자신이 무엇인가를 고백한다. 즉 교회는 예배로 말미암아 그리고 예배 안에서 "우리가 누구인가?"하는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는 것이다. 한마디로 예배는 교회의 믿음을 외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루터는 말하기를 "하나님을 갖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To have a God is to worship God)이라고 하였다. 즉 예배를 통해서 우리는 우리의 믿음을 표현하게 되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신조, 내지는 신앙고백이 교회의 신앙을 가장 깊게 나타내주는 것이라고 말하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교회의 예배야말로 교회의 신앙을 가장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이다. 신조라는 것은 예배를 통해서 교회가 증거하고 믿는 바를 고백하고 형성한 것이다. 그러나 예배는 교회의 믿음의 살아있는 형식이다(the living form of faith). 게다가 우리는 교회의 고백하는 믿음의 내용과 증거를 예배안에서 볼 수 있게 된다. 그러므로 교회의 예배는 교회가 의미를 추구하는 모든 다른 형태의 행위들 가운데서 가장 중심적인 것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정장복은 우리가 기독교 예배를 올바르게 이해하려면 세 가지의 중요한 배경을 알아야 하는데, 첫째는 예배의 기본 성격과 그 의미를 신학적인 차원에서 이해하는 것이요, 둘 째는 기독교의 역사 속에서 예배가 어떻게 발전되었고, 변천되어 왔는가를 찾아보는 일이라고 하였다. 그리고 세 번째로 예배에 임하는 개인이 갖추어야 할 신앙의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는 말하기를,
"예배자들이 어떤 심성을 가지고 무엇 때문에 예배를 드리고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것은 시간 낭비일 뿐 아니라, 섬기는 신에 대한 불 경건을 초래하는 결과를 가져온다. 예전의 형태가 아무리 화려하고 장엄하더라도 그 의미를 수용할 수 있는 참여자의 깊은 신앙이 없이는 한갖 불당의 장식처럼 보이게 되며, 아무리 유창한 말씀의 선포가 있다 하더라도 그것 또한 일종의 종교강연에 지나지 않게 된다."고 하였다.
그래서 J. G. Williams는 "예배의 핵심은 신앙이다"라고 한 것이고, Robert Rayburn은 "예배란 언제나 신앙에 의해서 규정되어지는 것"이라고 한 것이다. 또 Cuthbert Hall은 말하기를 "예배는 믿음의 표현이요, 믿음의 행위이며, 또한 믿음은 예배의 뿌리이며 동기이기도 하다"(Worship is the expression and the action of faith, and faith is the root and the motive of worship)
그렇다면 여기서 말하는 신앙이란 무엇인가?
여기서 말하는 믿음이란, "죽음을 향하던 자신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불러주시고 새로운 생명의 세계로 이끌어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해주신 사건에 대한 정확한 이해와 확실한 믿음"을 가리킨다. 즉 하나님께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시고, 내가 져야 할 십자가의 죽음을 대신 감수토록 하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에 대한 믿음이요, 신앙을 말하는 것이다. "이 역사적인 사실을 인정하고 그분을 감격스러운 마음으로 맞아들임은 물론이요, 대속의 죽음의 당하신 예수님에게 고개 숙여 감사하는 자세가 바로 신앙"인 것이다.
그런데 예배와 우리의 믿음의 관계를 볼 때 한가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할 점이 있다. 그것은 많은 개신교회들의 예배가 그 구조에 있어서 믿음을 보여주는데 있어서 확실하지가 않으며(unstructured), 초점이 없고(pointless), 그리고 굴절된(disoriented) 모습이 많이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예배가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즉 예배가 우리의 신앙을 표현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한국교회에는 그 신앙의 내용은 순복음적인데, 그 신앙의 표현하는 예배의 형식은 거의 모두가 다 장로교적이라는 것)
그러나 우리가 이 시간 분명히 해야 할 것은 우리의 예배는 우리의 신앙의 표현이라고 하는 사실이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초대교회가 바로 이 면에서 다른 공동체와 달랐다. 우리가 앞시간에 본 ecclesia라는 단어의 뜻이 문자 그대로는 "사람들의 질서있는 모임"이다. 그러나 초대교회 교인들의 모임이 그 당신의 다른 모임과 다른 모임으로 만들게 된 것이 바로 초대교인들의 모임은 "예수의 이름으로 함께 모임"이었다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의 예배가, 우리의 믿음을 나타내 보일 수 있는 것이어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집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그래서 정장복은 이렇게 말하고 있는 것이다.
"예배와 신앙은 필연적인 상관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므로 예배 없는 신앙이란 자기 수양에 불과한 것이며, 신앙이 없는 예배는 아무 의미를 가져올 수가 없다. 즉 교회를 이룩한 그리스도인은 곧 거룩한 무리들로서 깊은 신앙의 소유자들이어야 하며, 그들은 그 신앙 때문에 예배하는 공동체로서 이 땅위에 존속되어야 할 것이다. 이러할 때만이 그 무리들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그를 영원토록 즐거워하는 선별된 무리들로서의 임무를 다하는 것이다"
2. 예배의 정신: 신령과 진정으로 하는 예배
그러면 우리는 하나님 앞에 어떠한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인가? 요한 4장 23절 말씀에 의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 가운데서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자를 찾으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참으로 기뻐 받으시는 예배를 드리려면 어떤 마음과 자세로 예배를 드려야 하는가? 그것은 바로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그렇다면 신령과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어떤 예배를 말하는 것인가?
우리는 요한 4장 1-26절에서 예배의 가장 중요한 기본정신을 배우게 되는데, 거기서 예수 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을 향하여 "너희는 알지 못하는 것을 예배한다"(22절)고 말씀하셨다. 이 말씀은 사마리아 사람들이 예배는 드리고 있었지만 예배의 참 대상을 알지 못한 체 예배드리고 있었다는 뜻이다. 사마리아 사람들은 모세 오경만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정을 하였다. 그러므로 그들의 지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그들은 하나님의 진리의 어떤 부분은 알고 있었지만, 구원에 대한 모든 계시를 충분히 알고 있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그들의 예배는 예배에서 요구되는 합당한 지식이 없이 열성적인 마음으로만 드리는 예배였다고 말할 수 있다. 그들의 예배는 적극적으로, 감동적으로 드려졌지만, 예배의 내용은 옳지가 않았던 것이다. 즉 그들은 신령(마음)으로 예배를 드렸지만, 진리로는 예배 드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예수 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시기를 "우리(유대인)는 아는 것을 예배하노니, 구원이 유대인에게서 남이니라"(요 4:22)고 말씀하셨다. 유대인들은 사마리아인 들과는 정반대였다는 것이다. 그들은 39권의 구약성서 전부를 받아 들였고, 구원에 대한 모든 계시를 소유하였다. 그들은 진리를 소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신령함(마음)이 부족했다. 마태 6:1-8에 의하면, 그들은 냉담하고 율법적이며, 의식적인 예배를 드리고 있었다. 즉 유대인들은 외양은 갖추고 있었지만 거기에 자신들의 마음은 드리고 있지 않았던 것이다. 그들은 진리는 소유했으나 마음은 비어있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 가지 극단의 예배 형태를 바라보게 되는데, 즉 하나는 그리심산에서 드리던 열광적인 사마리아인들의 예배와, 또 하나는 풀 한 포기 날 수 없는 껍데기만(형식) 남아 있어, 그 속에 생명력이 없는 메마른 이스라엘의 예배이다. 그러므로 예수 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바는 참된 예배가 되려면 이 두 가지가, 즉 신령(마음)과 진리(진정)를 겸비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열광적이고 열심히 있는 감격스러운 그리고 적극적인 예배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예배도 진리 위에 기초한 것이라야 하며, 또 진리를 따라 예배드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러한 예배 속에 뜨거운 마음으로 갈급해 하는, 감격스러운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열심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결국 참된 예배는 이 둘의 균형이 있어야 한다. 그렇다면 먼저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란 어떤 예배인가?
1)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
여기서 신령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것은 인간의 영혼, 곧 내적인 인격으로 예배를 드린다는 뜻이다. 바울은 롬 1:9에 보면 "내 심령으로(with my spirit)으로 '섬기는' (리트류오: 예배하다) 하나님이 나의 증인이 되시거니와" 라고 하여 자기의 심령으로 하나님을 예배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다윗은 시편 103:1에서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 성호를 송축하라"고 고백하면서 자기의 속에서부터 하나님을 찬양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 어떻게 우리는 신령으로, 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예배를 드릴 수 있는가?
(1) 성령님의 내주하심
우리가 신령으로 예배드리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우리의 영혼으로 예배를 드릴 수 있기 위하여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들어 오셔야 한다. 고전 2:11은 "이와 같이 하나님의 사정도 하나님의 영 이외에는 아무도 알지 못하느니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성령께서 우리 안에 들어오셔서, 우리의 마음을 자극해 주시고, 동기를 부여해 주시며,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의 놀라우신 사랑과 은혜를 깨닫고 감사하며, 감격에 넘칠 수 있도록 열어주시기 전에는 우리는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다. 다시 말하면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의 역사가 없이는 우리는 하나님께 진정한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가장 중요한 기본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보다도 먼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아야 참 예배를 드릴 수가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우리가 일단 구원을 받게 되면, 성령께서 우리 속에 내주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께로 나아가도록 인도해 주시며, 날마다 순간마다 교훈해 주시고, 가르쳐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해 주셔서 우리로 하여금 감사함으로 하나님 앞으로 나아와 감격의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해 주신다.
고전 12:3절에 "성령으로 아니하고는 누구든지 예수를 주시라 할 수 없다"고 말씀하셨다. 즉 성령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누구라도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깨달을 수 없고, 그렇다면 그는 진정한 의미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수가 없는 것이다. 따라서 예배는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하나님의 영, 성령님과 더불어 시작되는 것이다.
(2) 나누이지 않는 마음
두 번째로 우리가 신령한 예배를 드리려면, 우리의 사고의 중심이 항상 하나님을 향하여 나누이지 말아야 한다. 우리가 구약성경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마음으로부터는 하나님을 멀리 떠나 있으면서도 겉으로만 예배드리고 있음을 여러 번 책망하고 계신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다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사 29:13)
"그가 돌과 나무와 더불어 행음함을 가볍게 여기고, 행음하여 이 땅을 더럽혔거늘, 이 모든 일이 있어도 그의 반역한 자매 유다가 진심으로 내게 돌아오지 아니하고, 거짓으로 할 뿐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렘 3:9-10)
"백성이 모이는 것 같이 네게 나아오며, 내 백성처럼 네 앞에 앉아서 네 말을 들으니 그대로 행하지 아니하니, 이는 그 입으로는 사랑을 나타내어도 마음으로는 이익을 따름이라"( 33:31)
사실 예수님께서도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을 같은 이유로 책망하셨다. 마태 15:7-9에서 예수님께서는 "외식하는 자들아, 이사야가 너희에게 대하여 잘 예언하였도다. 일렀으되,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존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도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나뉘지 않은 마음으로 예배드리기를 원하신다.
우리 모두는 늘 우리의 마음이 나뉘어 지는 경험을 하고 살아가고 있다. 때로 우리는 교회에 나와 예배드리고 있는 가운데에도 여러 가지 세상의 일들과, 근심 걱정되는 일들로 인하여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만을 향하지 못하고 나뉘고 있는 것을 얼마나 여러 번 경험하고 있는지 모른다. 심지어는 예배 중 기도시간에 기도를 하면서도 우리의 머리는 온갖 잡념들로 가득 차게 되어 기도하지도 못하는 경우도 있다. 우리는 항상 우리의 필요와 여러 가지 계획들 때문에 예배 현장에서도 우리의 마음이 나뉘어지는 것을 체험하고 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올 때에, 우리 자신의 필요와 이익과 축복 등을 생각하며 그것을 받으려고 나올 때, 우리의 마음은 나누일 수밖에 없으며, 그러한 모습은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의 모습이 아닌 것이다.
(3) 회개하는 마음
그 다음에 회개하는 마음이다. 시편 139:23-24에서 다윗은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라고 고백하고 있다. 다윗은 여기서 자신의 생활과 자신이 품고 있는 마음속에 회개해야 할 것이 있으면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고 있다. 우리가 예배 드리러 나아갈 때,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마음을 점검하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에 "하나님 아버지, 우리 마음 구석구석에 있는 모든 더러운 것들과 어두운 것들을 물리치시며, 밝혀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하는 것이다. 그것이 곧 신령으로 예배드리는 자의 모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배 드리기 위해서 반드시 우리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고 나아가야 한다. 우리는 이사야 처럼 하나님 앞에서 우리의 죄를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활활 타오르는 숯불을 우리 입술에 대셔서 우리의 몸과 마음을 정결케 하시도록 해야 하는 것이다(사 6:6-7).
그래서 예수 님께서도 "그러므로 예물을 제단에 드리다가 거기서 네 형제에게원망을 들을 만한 일이 있는 줄 생각나거든, 예물을 제단 앞에 두고 먼저 가서 형제와 화목하고 그 후에 와서 예물을 드리라"(마태 5:24-25)고 말씀하시고 계시는 것이다. 다시 말하면 죄의 문제를 먼저 해결하고 하나님께 나아와 예배를 드리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 하나님께서 기뻐받으시는 예배는 이렇게 먼저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성령님께서 우리 속에 내주하셔서 우리를 가르치시고 인도하셔서 우리의 마음이 하나님만을 향할 수 있도록 도우시며, 우리와 하나님 사이를 가로막은 모든 방해물들을 밝히 드려내 주셔서 우리가 그 모든 것을 성령의 도우심을 힘입어 깨끗이 물리친 마음으로 예배할 때 그것이 바로 신령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이다.
2)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
이제 하나님께서 찾으시는 예배의 두 번째 특성은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이다. 예배는 하나님의 진리로 새롭게 된 마음의 분출이다. 그러므로 모든 예배는 진리에 대한 응답으로 드려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즉 예배란 진리 위에 기초된 응답인 것이다. 그러므로 여기서 "진정으로"라는 말은 번역된 말씀은 "진리로"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 진리란 무엇일까? 이 진리는 곧 "아버지의 말씀"을 뜻하는 것이다. 예수 님께서는 요한 17:17에서 이렇게 분명히 말씀하신다. "아버지의 말씀은 진리니이다" 또 시편기자는 119편 142, 160절에서 이렇게 고백한다. "주의 법은 진리로소이다." "주의 말씀의 강령은 진리이오니"
이렇게 우리가 진리로 예배 드려야 하고, 또한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이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 것을 기반으로 해서 예배를 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참되게 예배 드리려면 그 분이 누구신지를 알아야 하며, 그 분께서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놀라운 구속의 사역을 통한 한없는 은혜를 깨달아야 하는데, 이 놀라우신 하나님과 또 그의 사랑과 은혜를 완전히 나타내 보여 주는 것이 바로 그 분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분의 말씀을 통하여 예배드려야 하는 것이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와 응답하는 것은 바로 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응답인 것이다.
우리가 초대교회의 예배드리는 모습을 보면 그들은 예배드릴 때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를 부르면서 찬양과 감사를 드리는 시간(골 3:16-17)을 가졌음을 볼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그에 앞서 "그리스도의 말씀이 너희 속에 풍성히 거하여"라고 말씀하고 있는 것을 보게 된다. 즉 그리스도의 말씀이 저들 속에 풍성하게 거하여, 저들을 주장할 때 저들은 비로소 바른 찬양을 드릴 수 있게 되었고, 바른 기도도 드릴 수 있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예배는 항상 하나님의 말씀에 입각한 예배를 드려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이렇게 진정으로 예배드릴 수 있으려면, 우리는 늘 하나님의 말씀을 읽으며 깊이 생각하며, 묵상을 하여야 한다. 주중에는 단 한번도 하나님의 말씀을 읽지도 않고, 기도하지 않다가, 주일이 되서야 먼지 묻은 성경책을 털고 나아오는 것은 참된 예배의 자세가 아니다. 참된 예배는 하나님의 말씀을 매일 매일 기도하는 가운데 성령님의 도우심을 힘입어 그 말씀의 뜻을 깨닫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주일날 교회에 나와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것이다. 그러므로 진정으로 드리는 예배란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으로, 그 말씀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드리는 예배인 것이다.
우리가 이렇게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성령 안에서 기도하는 가운데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나타난 하나님의 그 놀라우신 사랑과 구속의 은혜 앞에 감사함으로 나아와 예배드린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예배를 기뻐 받으실 것이다.
출처 : 주승중 교수(장신대 예배와 설교학 교수)/http://cafe.daum.net/sel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