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인문학연구소 2009년 가을 초청강연회
“나는 상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강연 : 진형준(홍익대 불문과, 전 한국문학번역원장)
△일시 : 2009년 11월 20일(금) 오후 7시
△장소 : 한국방송대 디지털미디어센터(방송대학 TV) 4층 스튜디오
통합인문학연구소(http://ihc.kno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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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실증주의 시대의 힘, 상상력』 <진형준 저, 2009> 서평
“이성은 상상력의 일부일 뿐이야”
인간과 동물의 차이는 무엇인가. 흔히 알고 있는 답은 이성의 존재다. 이성의 발달에 힘입어 야만을 극복하고 문화를 발전시켰다는 것이다. 서구에서 오랫동안 주류를 이뤄온 합리주의 사상가들의 생각이다.
그러나 프랑스 인류학자 질베르 뒤랑은 인간의 정체성을 상상력에서 찾았다. 인간의 상상계는 다원적이다. 이성 활동도 상상력의 한 부분이다. 이성을 진리로 놓고 감성, 자연 등을 배척하며 합리성이 구현되지 않은 문화를 미개하다고 여겼던 합리주의를 거부한 셈이다. 로고스 중심주의도 이미지 중심주의로 대체된다.
2007년 뒤랑의 대표작인 <상상계의 인류학적 구조들>을 11년간의 작업 끝에 번역한 진형준 홍익대 교수(불문학과)가 다시 ‘상상력’에 대한 책을 펴냈다. 뒤랑의 사상을 이해하기 쉽게 소개하면서, 그의 스승인 가스통 바슐라르의 사유 등을 차근차근 풀어낸다. 지은이는 서구 문화를 모델로 한 조국 근대화를 이루자는 슬로건을 귀에 못이 박히게 듣던 시절, 뒤랑의 책을 보면서 신이 났다고 고백한다. “그 책 속에서 인간의 역사는 단 하나의 보편적이고 객관적인 길을 걸어온 것이 아니라 나름대로 각기 다른 길을 걸어온 것이었다.”(25쪽)
지은이는 상상력의 시대를 살고 있다는 의미는 합리주의 인식에 입각한 세계관·인간관·윤리 등에서 변화가 일어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도 많은 이들이 상상력을 부르짖지만 이런 변화와는 거리가 있다. “경제적 효율성이 위력을 발휘하면서 상상력에 대한 왜곡은 심해진다. 상상력은 21세기를 살아내기 위한 수단이 되어버린다.”(89쪽)
2009.3.13, 한겨레, 박현정 기자
■ 『상상력의 과학과 철학』 <질베르 뒤랑 저, 진형준 역, 2002> 서평
“오래된 신화의 현대적 귀환”
<상상력의 과학과 철학>은 비 사회과학도에게 만만한 책은 아니다. 서구성상파괴의 역사를 압축한 분석이나 상상계를 과학적 인식의 틀로 바라보는 시각을 일기에 벅찬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사회과학서도 때로는 사람들에게 눈물을 흘리게 한다.
질베르 뒤랑이 한국판 서문에서 한국인들에게 간곡히 부탁한 말들은 ‘사람이 사람에게’ 할 수 있는 진정어린 권고이자, 우리가 잊고 살아온 가치들을 귀환시킨다. 그는 서문에서 2천년대는 다양한 인류학적 가치들이 회복될 시기가 될 것이라고 말하면서, 단 하나의 문화, 즉 합리적이고 실증주의적인 것에 기반해온 서구문화가 여러 다양한 문화들을 짓누르고, 자행했던 범죄와 실패로부터 벗어나길 기원한다. 그리고 한국인들에게 묻는다.
“한국 불교의 ‘상징사전’을 언제나 가질 수 있을까요.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 신화백과사전은 언제쯤 볼 수 있을까요..한국의 젊은 연구가들을 기다리고 있는 이런 작업은 얼마나 거대한 것이며 흥미로운 것인가요!”라고. 그는 이어서 역사적으로 고통스럽게, 그러나 당당하게 그 삶과 전통을 이어온 한국도 인간의 상(像)을 회복하려는 이 움직임에 합류할 것을 권유하고 있다.
사람들은 사실상 상상계를 떠나 살수 없었던 시절, 신화를 ‘현실세계’의 일상성으로 공존시켜왔다. 그러나 이를 격리시키고, 파괴해오다 결과적으로 대체한 것은 ‘이미지’의 범람과 폭력이다. 더욱이 정보기술, 극소기술, 생명공학의 출몰은 익명의 이미지 홍수과 함께 우리들에게 ‘죽은 눈’을 강요하고 있다.
이제는 인간과 인간성 자체의 존립을 위태롭게 하고 있는 이 시대에 이 책은 신화의 귀환이라는 오래된 의미의 물줄기를 다시 한 번 생각케 한다. 단순한 흥밋거리로써가 아니라 인식론의 전환으로써 말이다.
2002.12.26, 한겨레21, 정기용(기용건축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