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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바리와 대폿집
백화 문상희 (단편소설)
(1부) 세상사 알 수 없는 인연
공수특전여단 윤강호 상병은 일요일 허가받은
외출을 나왔다.
외출은 부대가 있는 포천을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었다.
강호에게는 면회를 오는 사람도 없었고 외출을
나와도 딱히 갈 곳도 없었다.
강호는 비가 오는 바람에 과부 유인순이 운영하는
대폿집으로 향했다.
그 대폿집은 강호가 외출을 나오면 갈 곳이 없어
자주 들리는 대폿집이었다.
아침부터 구성지게 내리는 비 때문에 강호는
우수에 젖어 막걸리를 세병이나 마셨다.
"저~, 누님
비가 와서 술을 마시다 보니 세병이나 마셨더니
술이 취해버렸네요!"
" 그래?
강철 같은 우리 윤상병도 술이 취할 때가 있구먼?
저 골방에서 좀 자다가 술이 깨면 부대로
들어가도록 해!"
"넵, 알겠습니다 누님!
그럼 잠시만 자도록 하겠습니다."
부대 하사관들은 인순이가 혼자 사는 것을 알고
수시로 선물을 사들고와서 치근덕거렸었다.
인순이는 그중에서 남편처럼 고아로 자랐다는 윤강호를 제일로 이뻐했다.
대폿집 주인 인순이와 윤상병은 오누이처럼
친근하게 지냈다.
강호는 인순이 누나에게 골방에서 술 깰 때까지
잠시만 자겠다고 말하고 골방에서 잠이 들었다.
그 골방은 외출 나온 군바리들이 가끔씩 술에
취하면 잠시 자다가 가는 곳이었다.
인순이는 마침 서울에서 내려온 친구와
수다스럽게 얘기하며 술을 마시다 보니 잠든
강호를 깨워준다는 것을 까마득히 잊어버렸다.
강호는 인순이 누나 대폿집에서 술에 취해
골방에서 잠드는 바람에 5시 귀대를 못했다.
외출은 당일 5시 귀대가 원칙이었다.
이튿날 새벽 강호는 눈을 뜨자마자 부리나케
부대로 달려갔다.
강호는 부대에 들어가자마자 인사계로 불려 갔다.
"야 인마, 윤상병!
너 사단에 보고하면 바로 영창이야 인마!
네가 착실하게 군 복무를 해서 보고를 미룬 거야!"
"네, 잘못했습니다. 인사계님!"
"윤상병 너 영창갈래 아니면 말뚝 박을래!
야 인마, 어차피 넌 고아원에서 자랐다면서
제대해도 갈 곳도 없잖아?
말뚝 박으면 하사계급장 달고 월급도 많이 나오지
또 공휴일은 근무에서 열외야 열외 알았어?"
"예, 생각해 보겠습니다."
"딱, 한 시간 여유를 줄 테니까 PX 가서 생각해 보고
결정을 해 알겠나?"
"예, 알겠습니다 인사계님!"
"한 시간 넘으면 사단에 보고할 테니 그렇게 알아!"
인사계는 밖으로 나가는 윤강호 뒤통수에 대고
말했다.
강호는 PX에서 음료수를 사서 마시며 고심 끝에
결심을 했다.
"그래, 어차피 나는 제대를 해도 재재소밖에
갈 곳이 없잖아!"
강호는 영창 대신 제대를 포기하고 하사관으로
말뚝을 박기로 결심을 하고 인사계를 찾아갔다.
강호는 병무청에서 한 것처럼 서류에 서명을 하고
지장을 찍었다.
얼마 후 윤강호 상병은 영창 대신에 하사관
훈련소에 입소했다.
힘든 하사관 6개월 과정을 거친 윤강호는
검은색 베레모에 하사 계급장을 달고 부대로
가는 휴가를 받았다.
강호는 일단 하사관 진급 소식을 전하기 위해
인순이 누나 대폿집으로 향했다.
"어서 와 윤상병!
조금 전에 임진수 하사가 스카프 선물을 사들고 와서
치근덕거리며 반주를 마시고 가서 치우는 중이야!"
"넵, 필승!
하사 윤강호는 하사 진급을 하고 이에 유인순 누님에게
신고합니다."
"오~, 한동안 안 보여서 난 제대를 했나 보다 했지!
그러고 보니 하사관 훈련소에 입소했구먼?"
"넵, 그렇습니다 누님!"
"아이고 잘됐어!
그만하고 이리 와서 축하주나 마시자고!"
"넵, 알겠습니다 누님!
"부대는 언제까지 들어가면 되는 거야?"
"네~, 하사관 훈련소 퇴소하면 3일 휴가를
준답니다.
저는 딱히 갈 곳도 없고 누님이 보고 싶어서
바로 포천으로 왔답니다."
"응, 그래?
처녀가 좋지 나 같은 과부를 뭐가 좋다고! 호호호"
"난 이 세상에서 누님이 제일 좋아요! 하하하하"
두 사람은 주거니 받거니 술을 마셨다.
"오늘은 주말이 아니고 평일이라서 가게에 오는
군바리 손님도 거의 없네? 호호호"
"아~, 평일이라서 손님이 없군요!"
강호는 6월 후덥지근한 날씨에 술이 들어가자
더워서 웃통을 벗어제꼈다.
"어머, 윤상병!
아니, 이제는 윤하사 라고 불러야지!
그런데 몸이 어쩜 이리도 탄탄해?"
"누님 제가 이래 봬도 저제소에서 보낸 세월이
얼만데요?"
"아~, 그래서 몸이 이렇게 근육질 이구먼 그래!
윤하사를 보면 꼭 예전 남편을 보는 것 같아!"
두 사람은 술을 마시다 보니 막걸리 다섯 병을
마시고 둘 다 취기가 올랐다.
"윤하사,
오늘은 우리 강호의 하사관 진급 축하주로
마셨으니 술값은 공짜야 공짜 알았어?"
"넵, 그럼 술값 대신에 선물을 드리겠습니다."
"엥?
무슨 선물인지 궁금한데?"
"하사관 교육 끝나고 시내에서 산 18금 목걸이와
귀걸이 세트입니다.
"아이고 너무 이쁘다.
이런 선물을 받으면 난 뭘 해줘야 하나? 호호호
여하튼 고마워 동생!"
인순이는 강호가 믿음직해서 언제나 동생이라고 불렀다.
"오늘은 손님도 없고 하니 일찍 문을 닫아야겠네!
강호 동생은 씻고 골방에 들어가서 자
나는 우리 보람이 저녁 챙겨주고 잘거야!"
"넵, 고맙습니다 누님!"
강호는 술에 취해서 대충 씻고 골방으로 들어가
잠이 들었다.
인순이도 얼큰하게 취기가 올랐지만 보람이
저녁을 챙겨줘야 했다.
보람이 저녁을 챙겨주고 씻고 나오다가
열린 방문 틈으로 강호를 쳐다보았다.
강호는 무슨 야한 꿈을 꾸었는지 몰라도 트렁크 팬티에
운학산 닮은 텐트를 치고 있었다.
인순이는 술기운에 30대 과부로 야릇한 느낌을
받아 무심결에 골방으로 들어갔다.
인순이는 갑자기 강호에게 안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때 선잠에 들었던 강호는 평소에 좋아했던
인순이 누님이 강호의 그것을 쳐다보고 있는 것을
느끼고 인순이 누님을 와락 껴안아버렸다.
"저 사실은 말은 못 했지만 누님을 짝사랑했어요!"
"그래, 나도 사실은 강호가 믿음직한 동생 같아서 좋아!"
피가 펄펄 끓는 이십 대 후반의 강호와 삼십 대
청춘과부인 인순이는 순간적으로 불이 붙었다.
강호의 근육질 몸이 인순이를 짓누르고
단단한 물건이 몸속에 들어오자 인순이는
너무 좋아 연거푸 교성을 질렀다.
격정의 사랑을 나눈 두 사람은 꼭 껴안고 잠들었다.
이튿날 새벽 화장실을 다녀온 강호는 어젯밤
일이 상기되어 다시 한번 인순이 누나를 껴안았다.
인순이는 비몽사몽에 단단한 강호의 물건이
몸을 헤집고 다니자 하늘을 나는 것처럼 좋았다.
이십 대의 윤강호와 삼십 대 청춘과부 인순이의 사랑은
그렇게 불이 붙었다.
(2부) 윤강호의 특전사 자원입대
윤강호가 군 입대를 하기 전의 일이었다.
1958년생 강호는 성품이 착하고 올곧은
청년으로 제일 재재소에서 5년을 근무했다.
제재소 일은 원목을 차에서 공장으로 이동시키는
일로 엄청난 육체노동이었다.
원래가 근육질인 강호는 제재소 일을 하면서
더욱 단단한 강철 같은 몸이 되었다.
고아원에서 자란지라 정확하지는 않지만
강호의 나이도 만 21세가 되었다.
제재소에 근무하는 또래의 친구들은 하나 둘
입영 통지서를 받았다.
그러나 강호에게는 입영 통지서나 날아오지
않았다.
재재소 사장과 직원들은 영철이와 순재의 입영
환송 파티를 열어주었다.
재재소 사장은 거래하는 식당에서 마음껏
먹어도 좋다는 허락을 했다.
"야~, 영철아 너 군대 간다고?"
"응,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지 싸나이 소리를
듣지 안 그래?"
"그럼 순재 너도 논산훈련소로 가는 거냐?"
"응, 영철이하고 같은 날짜에 입영인데 소속은
틀려!"
"야~, 부럽다 인마들아!
나는 왜 영장이 안 나오는지 모르겠다."
"야, 헛소리들 치우고 얼른 한잔씩 마시고
완월동으로 가자!
훈련소 가면 육 개월은 여자 구경 못할 테니
입대 전에 완월동 단골 누나에게 가서 찐하게 몸을
풀어야지 안 그래?"
영철이가 술기운이 오르자 완월동 창녀촌에
가자고 부추겼다
"그래 맞아,
나도 완월동에 미선이 누나라는 단골이 있지 하하하하
그 누나는 꽉 차버린 그것을 입으로 빼주고
진국을 싸달라고 조른다고 니들이 알기나 알아?"
영식이도 입대 전에 객고를 풀고 가야 된다면서
목소리를 높였다.
"야, 윤강호!
너는 체격도 좋은 놈이 우째 연애는 숙맥이냐?
야는 자위하는 것도 모르나 봐!
오늘 우리 따라서 완월동에 가서 숫총각 딱지를
떼줘야지!"
"그래, 인마 우리 따라 완월동으로 가자!
우리 군대생활 잘 마치고 다시 제일 재재소로
오라고 사장님이 보너스 두둑이 주셨으니
강호 너 화대는 우리가 내줄게!"
강호는 대답을 안 하고 술만 마시고 있었다.
영철이가 먼저 일어나서 주인에게 인사를 했다.
"아지매 잘 먹었습니다.
계산은 사장님이 하신다고 그랬어요!"
"그려 그려, 영철이하고 순재 총각!
군대 갔다가 제대하면 제일 재재소로 다시 오라고!
사장님이 월급도 잘 주시고 호인이잖아?"
"예~, 알겠습니다 아지매요!"
영철이는 머뭇거리는 강호의 팔을 붙들고
택시를 잡아탔다.
"아저씨, 완월동으로 가주세요!"
"그래, 완월동 좋지!
자네들 머리를 깎은 걸 보니 군대를 가는구먼!
젊고 힘 좋을 때 연애도 하는겨 안 그래?
나도 총각 때는 완월동에 많이 들락거렸지! 하하하하"
세 사람은 택시에서 내려 완월동 창녀촌으로
들어갔다.
순재는 단골인 미선이 누나에게로 갔고
영철이는 강호를 데리고 단골집으로 들어갔다.
"아지매요!
오늘은 숫총각 딱지도 안 뗀 친구를 데리고 왔으니
이쁜 아가씨 붙여서 총각 딱지를 좀 떼주세요!"
"오케바리!
우리 단골 영철 씨가 새로운 고객을 데리고 왔구먼?
걱정하지 말아요 우리 집 미인 정숙이가 총각을
홍콩으로 보내줄 테니까! 호호호호"
강호는 얼떨결에 완월동 창녀촌에서 총각 딱지를
뗐다.
강호는 친구들이 군대를 가는 것이 왠지 부러웠다.
재재소로 돌아온 강호는 궁금증에 사장님께 문의를 했다.
"안녕하세요 사장님!
다른 친구들은 입영 영장이 나오는데 저는
왜 안 올까요?"
"그래, 우리 제재소에서 가장 부지런한 강호가
왔구나!
네가 고아원에서 여기로 올 때 주소지 호적을
여기로 옮기고 보호자는 내 이름으로 했단다.
입영 통지서가 왜 안 나오는지는 나도 모르겠다.
내일 오전에 시간을 줄 테니까 동사무소 병무계에 가서
한번 알아보거라!"
"예, 알겠습니다 사장님!"
강호는 이튿날 아침을 먹고 동사무소로 갔다.
"안녕하세요!
저는 22살 윤강호입니다.
제 나이가 되면 군대를 가는데 저에게는 입영
통지서가 안 나와서 와봤답니다."
" 예~, 그래요?
주민등록증 좀 줘봐요!"
동사무소 서기는 두꺼운 장부를 꺼내서 한참 동안
뒤져보다가 말했다.
"아~, 강호 군은 고아라서 입영 통지서가 없어!
정 군대를 가고 싶으면 병무청에 가서 지원을 해야 하네!"
"예?
군대를 가려면 그렇게 해야 되나요?"
"그래, 그렇다네 강호군!"
강호는 동사무소 서기에게 병무청 주소를 물어
곧장 병무청으로 갔다.
병무청 입구에는 여러 가지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 자원입대 환영"
" 대한민국 특전사 자원입대 환영"
강호는 현수막을 유심히 살펴보고 병무청으로
들어갔다.
강호는 병무청 종합민원실에 들어가서 입대에
대한 문의를 했다.
"그래요?
저쪽에 자원입대라는 간판이 붙은 곳에 가서
지원을 하도록 해요!"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호는 담당자와 여러 가지 문답이 오가고
해병대보다는 공수특전사 입대를 결정했다.
빨간색 해병대 모자보다는 검은색 베레모가
훨씬 멋있게 보여서 강호는 특전사를 선택했다.
강호는 여러 가지 자원입대 서류에 인적사항을
적고 여러 번의 지장을 찍었다.
"윤강호 군!
자원입대 서류는 다 됐어요!
석 달 이내에 살고 있는 주소지로 신체검사 통보가
갈 거요!
통지서가 도착하면 그 통지서를 가지고 신체검사를
받도록 해요!"
"예, 알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강호는 자원입대 접수 서류를 들고 재재소로
돌아가서 사장님께 자초지종을 얘기하고
입대 준비를 했다.
입대 접수를 하고 두 달이 지나서 신체검사
통보가 날아왔다.
강호는 사장님께 특전사 지원 사실에 대해 말씀을 드렸다.
"그래, 특전사 자원입대를 했구나!
사실은 나도 해병대 출신이라네!
뭐니 뭐니 해도 남자는 군대를 갔다 와야지
남자다운 남자가 되는 거야!"
"네~, 사장님 응원에 감사드립니다.
군복무 마치고 다시 돌아오겠습니다.
"그래, 자네는 본분에 충실한 사람이니까
잘 해낼 거야 훈련이 힘들어도 그때를 넘기면
나중에 보람이 찾아온다네!
그럼 내일 중으로 내가 퇴직금과 용돈을 좀 더
넣어서 줄 테니까 그리 알게나!"
"예~, 사장님 고맙습니다.
제가 전역할 때까지 늘 건강하시고 평안하세요!"
"그래, 자네같이 충실한 사람이 우리 공장에
없으면 허전하겠구먼!
여하튼 군복무 잘하고 제대하면 내가 참한
색시감도 주선해 주겠네!"
"네~, 사장님 저를 좋게 봐주셔서 고맙습니다."
강호는 일주일 뒤 공장 사람들의 환송을 받으며
특전사 훈련소로 향했다.
(3부) 순직한 중사와 미망인 가족
윤강호가 입대하기 3년 전 경기도 포천에 있는
공수특전여단 사격장에서 오발사고가 났다.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군부대에서는
심심찮게 일어나는 사고다.
이번 사고는 총기반납 과정에서 실탄이 제거되지 않은
총기에서 오발사고가 났다.
이 사고로 교관 이충열 선임하사가 순직했다.
이충열 하사도 윤강호와 비슷한 환경에서 자랐다.
부모님은 육이오 동란 때 모두 돌아가시고
친척집을 떠돌다 결국 고아원에 맡겨졌다.
만 16세가 되어 고아원을 떠나 봉제공장에
취직을 했고 충실하고 듬직하게 일을 해서
사장님이 중매를 서서 이십 대 초반에 결혼까지
했다.
그때 결혼한 사람이 바로 유인순이었다.
유인순은 근처 공장에 재봉사로 일하고 있었다.
이충열은 우연한 기회에 군대 하사관에 대한
얘기를 들었다.
하사관으로 입대하면 가족이 살 수 있는 관사도
제공한다는 말을 들었다.
이충열 역시 공수특전단 하사관 모집 플래카드를
보고 입대를 했다.
이충열은 포천에 자대배치를 받았고 규칙에
따라 기혼자 관사를 배정받았다.
이충열은 관사에서 부인 유인순과 살면서
딸 보람이를 낳았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유인순이 33세 딸 보람이가
세 살 되던 해 오발사고로 유명을 달리했다.
유족으로는 유인순 미망인과 세살배기 딸
보람이가 있었다.
이충열 하사는 사후 중사로 일계급 특진을
했다지만 유족돌은 크나큰 슬픔에 빠졌다.
미망인 유인순에게는 청천벼락같은 일이었다.
미망인 유인순은 부대 근처에서 친정 부모에게 물려받은
조그만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유인순은 남편이 죽기 전 딸의 장래를 위해
서울로 이사를 하기로 의논을 했었다.
유인순은 미래를 위해 남편의 월급은 전액 저축을 하고
식당에서 번 돈으로 생활을 했었다.
가장의 죽음으로 한 가족의 미래에 대한 꿈은
산산조각이 나버렸다.
오늘은 공수특전여단 이충열 중사의 장례식
발인날이다.
장례는 공수특전여단 장으로 치러졌다.
유인순은 눈이 퉁퉁부은 채 딸 보람이와 검은색
리본을 달고 부대로 갔다.
장례식 의례절차가 끝나고 부대장이 추도사를
시작했다.
"먼저 이충열 중사의 순직을 애도하는 바이며
유족 분들에게 심심한 사죄의 말씀을 올립니다.
이번 사고 역시 다시는 일어나지 말았어야 할
총기 사고입니다."
부대장의 추도사가 이어지는 동안 미망인
유인순은 눈물을 흘리며 흐느끼고 있었다.
영문을 모르는 세살배기 딸 보람이는 엄마가
울자 엉엉 소리 내며 울었다.
보람이의 우는소리가 근처에 있는 마이크를
타고 흐르자 부대 연병장은 울음바다가 되었다.
장례식이 끝나고 삼 개월이 지난 어느 날
부대에서 유인순에게 연락이 왔다.
부대로 가서 이충열의 훈장과 국가에서 준
위로금 봉투를 받아 든 유인순은 또 한 번 오열을 했다.
인순이는 딸 보람이를 의지하며 슬픔을
이겨내며 살았다.
이충열이 순직하고 어느새 3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
유인순의 나이 33세 보람이도 6살이 되었다.
윤강호와 유인순과 제2의 인연이 된 사연도
이때부터 시작되었다.
유인순은 그래도 남편의 3년상은 치러야 한다며
매년 설, 추석때와 기일에 제사를 지냈다.
남편의 삼년상을 치르고 난 어느 날 이 세상에 하나밖에 없는 혈육인 이모가 찾아왔다.
"아이고 막내이모 어쩐 일로 여기까지 오셨데요?"
"그래, 인순아!
너의 남편에 대한 안타까운 소식은 들었다.
내가 너하고 다섯 살 밖에 차이가 안나는 이모지만
내가 너를 동생같이 업어서 키웠잖아!"
"맞아요 이모!
지금에 와서 생각해 봐도 이모는 제게는 정말 언니
같았어요!"
"그래, 남편 삼년상 치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느냐?
네가 부모도 없이 고생을 했는데 남편까지
비명횡사했으니 얼마나 고생이 많았겠니!
그래서 말인데 인순아!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고 산 사람은 살아야지!
너의 나이 이제 서른셋인데 재가를 해야지 안 그래?
네가 혼자 사는 게 이모가 보니까 너무도 안타까워!
이모가 참한 사람 소개를 해줄 테니 이제는 재혼을
생각해 보거라!"
"이모 말씀은 고맙지만 우리에게 남편은 하늘을 떠받치는
기둥이었어요!
그래서 재혼은 생각도 안 하고 있답니다."
"그래, 그럼 나중에라도 생각이 바뀌면 연락해라
인순아 알겠지?"
"예~, 알았어요 이모!"
인순이는 이모에게 극진한 대접을 해드리고
이튿날 서울로 보내드렸다.
인순이는 죽은 남편이지만 늘 가슴에 지니고 살았다.
혼자서 사는 부대 하사관들이 수없이 인순이에게
접근을 했지만 지금까지 뿌리치고 보람이 하나만
믿고 살았다.
그러다가 동생 같은 믿음직한 윤강호를 만나고부터
인생관이 바뀐 것이다.
인순이는 식당이 재료값만 많이 들고 잔반이 많이
남아 쓰레기통에 버려지는 게 너무나 아까웠다.
그래서 식당을 접고 대폿집으로 바꿨다.
또한 군바리들이 식당에 오면 안주와 술만 찾았다.
안주 종류는 주로 군바리들이 좋아하는 닭 볶음탕과
두부김치와 파전, 김치전이었다.
식당을 할 때보다는 수입이 좋아서 인순이는
대폿집으로 바꾸기를 잘했다고 생각했다.
윤강호 하사가 부대 복귀를 하고 첫 외출을 나왔다.
"누님, 하사 윤강호 첫 외박 나왔습니다."
"필승, 어서 와 반가워 강호 동생!
그래 하사관 간부생활은 할만하던가?"
"예~, 누님,
그런데 드릴 말씀이 있는데요?"
"그래 , 오랜만에 한대포 하면서 얘기하자고!"
"넵, 좋아요 좋습니다."
두 사람은 막걸리를 잔에 가득 따르고 건배를 했다.
"우리 윤강호 하사관 생활을 축하하면서 건배!"
"우리 누님과 함께하는 사랑을 위하여 건배!"
두 사람의 건배사는 다소 차이가 났다.
두 사람은 막걸리 한 병을 비우고 다시 술잔을 따렀다.
"그래, 강호 동생 할 말은 뭐야?"
한참을 망설이던 강호가 심각한 표정으로
말문을 열었다.
"저~, 누님과 결혼하고 싶어요!
누님 남은 인생을 행복하게 해드리고 싶어요!"
"그래, 나도 강호 동생이 좋아!
하지만 나이차이도 있고 나는 딸이 있잖아!"
"아닙니다.
나이차이도 극복하면서 보람이도 제가 낳은 딸처럼
키울 자신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폿집 장사를 접어도 관사에서 같이 살 수가
있잖아요!
저는 이 사람 저 사람이 누님에게 집적거리는 게
싫답니다."
"아이고 이 사람아!
안 그래도 남편이 사고로 순직한 과부인데
관사에서 같이 산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얘기야
안 그래?"
"그러면 제가 다른 곳으로 전출을 가서라도
꼭 누님과 결혼을 할 겁니다."
강호의 대답은 아주 단호했다.
"그래그래 강호 동생, 알았어 알았다고
오늘은 기분 좋게 술이나 마시자고!"
"네~, 알겠습니다 누님!"
"잠깐만, 한잔하고 있어 봐!
누가 보면 또 이상한 소문이 돌거니까
가게 문 닫고 보람이 저녁 챙겨주고 올게."
"넵, 알겠습니다."
인순이는 보람이 저녁을 챙겨주고 가게 문을
닫았다.
"강호 동생!
나는 남편이 순직하고부터 늘은 것은 술뿐이야!"
"그래도 지금부턴 건강도 챙기셔야지요!"
두 사람은 이번에도 막걸리 다섯 병을 마셨다.
건장한 강호도 취기가 올랐고 인순이는 연거푸
하품을 했다.
"누님, 먼저 씻으시고 들어가세요!
저도 따라서 씻고 들어갈게요!"
"그래, 그렇게 할까?"
두 사람은 좁은 골방에서 다시 한번 뜨거운
격정의 밤을 보냈다.
이튿날 인순이는 맛있는 콩나물 북엇국을 끓여
강호의 속을 풀어주었다.
"저~, 누님!
오늘은 가게 접으세요!
택시를 불러 보람이하고 셋이서 운학산 공원에
꽃구경하면서 맛있는 거 먹으러 가요!
오늘은 뭐든지 제가 사드릴게요!"
"그래, 강호 동생 덕분에 콧바람이나 한번 쐬볼까?"
강호는 보람이와 좀 더 친해지기 위해서
노력을 했다.
이튿날 부대로 복귀한 강호는 인사계를 통해서
타 부대 전출 소원서를 냈다.
강호는 일단 인순이 누님에겐 비밀로 했다.
약 두 달이 지나서 육군하사 윤강호의 전출
명령서가 날아왔다.
강호의 하사관 훈련소와 평시 근무 성적이
좋아서 강호가 선택한 강화도로 가게 되었다.
강호는 주말에 기쁜 마음으로 인순이 누나에게
달려갔다.
"누님, 저 전출 명령서 나왔어요!"
"응?
뜬금없이 웬 전출 명령서야?"
"누님이 그랬잖아요!
여기서는 저하고 결혼을 할 수가 없다고 그래서
전출 소원서를 냈답니다."
"허참, 그래 어디로 전출을 가는 거야?"
"네~, 바다도 보고 서울과 가까운 강화도로
간답니다."
"그래?
그럼 언제 떠나는 거야?"
"예, 한 달 후 떠나니까 누님도 강화도로 갈
준비를 해주세요!"
"아니, 갑자기 어떻게 떠날 수가 있냐고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안 그래?"
"여하튼 저는 누님과 보람이를 데리고 강화도로
갈 거니까 그렇게 아세요 누님!"
"그래그래 어쨌거나 알아는 볼게!"
인순이는 강호를 달래기 위해 그렇게 얼버무렸다.
인순이 역시 믿음직한 강호가 좋았지만 함께
이사를 간다는 것은 무리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이튿날 강호의 우격다짐으로 함께 복덕방
여기저기 대폿집을 매물로 내놓았다.
그러나 무슨 운명의 장난인지는 몰라도
그다음 날 가게를 인수하겠다는 사람이 왔다.
대폿집 인수를 원하는 사람은 포천 시내에서
식당을 하는데 벌이가 시원치 않아 복덕방 사장의
말에 솔깃해서 온 것이다.
복덕방 사장의 적극적인 중개로 대폿집 현장에서
거래가 이루어졌다.
조건은 한 달 후 잔금을 받는 즉시 인수인계를
하기로 하고 계약서에 도장을 찍었다.
다음 주 토요일도 어김없이 강호는 인순이
누나에게로 달려갔다.
"안녕하세요 누님.
복덕방에서 연락이 왔나요?"
인순이는 어이가 없는 듯 계약서를 강호에게
내밀며 말했다.
"아니,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복덕방에 내놓고 하룻만에 계약이 됐어!
나보고 강호 동생을 따라가라는 하늘의 계시인가?"
"그 봐요 누님!
이건 분명히 저와 누님이 결혼을 하라는 하늘의 계시입니다."
"그래, 그렇게 생각해 주면 다행이야! 호호호"
인순이도 강호가 싫지는 않았기에 어쩔 수 없이
그렇게 너스레를 떨었다.
강호는 월요일 오후 급 휴가를 내고 인순이에게
달려갔다.
"누님, 주민등록증과 도장 챙겨서 나오세요!"
"아니, 뜬금없이 주민등록증과 도장은 또 왜?"
"제가 강화도 전출지에 관사를 신청했더니
혼인신고 증빙 서류를 보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오늘 당장 혼인신고를 하고 서류를
떼서 보내야 된답니다."
"허허 참,
번갯불에 콩 구워 먹듯이 이게 무슨 말이야?"
강호는 인순이 누나를 데리고 곧장 면사무소로
가서 우격다짐으로 혼인신고를 했다.
강호는 혼인신고 서류를 떼서 우체국으로 가서
강화도 부대에 등기우편을 보냈다.
인순이는 강호가 워낙이 강하게 나오는 바람에
강호의 뜻에 따라줬다.
"자, 인순아 누님,
이제 행정상 모든 것은 끝났으니 이제부턴
이사 갈 준비를 하세요 아시겠지요?"
"아이고 난 몰라!
도대체 뭐가 뭔지도 모르겠어!"
강호는 전출 날짜에 맞춰 이삿짐 차를 예약했다.
강호는 1톤 이삿짐 차에 인순이의 살림살이를
실고 셋이서 강화도로 떠났다.
인순이는 운전기사 옆자리에 앉고 강호는
보람이를 안고 조수석에 탔다.
인순이는 포천의 가슴 아픈 추억을 뒤로하고
강화도로 떠났다.
부대 출입구에서 장기 하사관으로 등록된
가족과 서류를 확인하고 서명을 한 뒤 관사로
들어갔다.
"새로 전입한 부대의 인사계는 두 사람의 나이
차이에 의문을 가졌지만 시대적인 변화라
생각을 하고 결재를 했다.
"예전에도 난 관사가 싫어서 안 들어간다고 했는데
내 팔자가 어떻게 된 것인지 기어이 부대로
들어왔네?"
"인순이 누님, 이제는 현실에 적응하셔야
됩니다,
아시겠지요?"
"아이고 이제부터 제발 호칭부터 좀 고쳐요!
남들이 들으면 뭐라고 하겠어요 안 그래요?"
인순이는 본인부터 강호의 호칭을 여보라고
바꾸고 존칭을 붙였다.
이듬해 보람이도 근처에 초등학교에 입학을 했다.
강호의 극진한 사랑과 헌신적인 노력으로
두 사람은 웬만한 부부생활을 이어갔다.
인순이는 부대 사람들의 눈총을 의식해 집을 마련해서
관사를 떠나기로 마음을 먹었다.
인순이는 그동안 모아둔 돈으로 가정집이 딸린
조그만 삼층짜리 건물을 구입했다.
인순이는 점포 한 개는 세를 주고 한 개는 본인이
하고 싶었던 뜨개질 공방 가게를 열었다.
그것은 인순이가 뜨개질에 소질이 있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나이 차이를 극복하면서 오손도손
정이 들어가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인순이에게 또다시 악몽의 소식이 전해졌다.
공수특전여단 교관이 된 윤강호 중사가 대원들과 함께
점프를 하다가 낙하산이 펴지지 않는 사고로
죽은 것이다.
"아이고 내 팔자야!
어쩌다가 두 번씩이나 이리도 허무하게 사랑하는
사람을 보내야 합니까!
제가 전생에 무슨 죄를 졌는지 몰라도
하늘이시여 해도 해도 너무하십니다."
인순이는 비보를 전해 듣고 오열을 했다.
남편을 허무하게 보내고 보람이를 의지하며
살다가 또다시 만난 사람도 죽었다.
두 사람 다 유서 한 장 남기지 못하고 사고로 인해
비명횡사를 한 것이다.
인순이는 남편 복이 없는 참으로 기구한 팔자였다.
그로부터 20년이란 세월이 흘러갔다.
오늘은 인순이의 딸 이보람의 결혼식 날이다.
신랑은 말끔한 공수특전단 제복에 중사 계급장을
단 군인이었다.
인순이가 그랬던 것처럼 딸 보람이도 눈에
콩깍지가 끼어 군인과 결혼을 한 것이다.
인순이는 그렇게 결사반대를 했지만 보람이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다.
인순이는 딸 보람이가 자신과 같은 불행을
격지 않도록 간절한 마음으로 기도했다.ㅁ
*백화가 군대생활 할 때 부대 근처에 대폿집이
있었는데 그 술집 이름이 "군바리 대폿집,,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따 써본 소설입니다*
첫댓글
백화가 군대생활 할 때
부대 근처에 대폿집이 있었는데
그 술집 이름이 "군바리 대폿집,,
이었습니다. 그래서 이름을 따
써본 소설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