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신경림, 고채출, 마경덕
신경림은 자신이 특별히 애정을 가지고 있는 시집은 「농무」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뿔」이고, 작품으로는 「갈대」 「파장」 「농무」 「시골 큰집」 「목계장터」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 「아버지의 그늘」 「떠도는 자의 노래」 「특급열차를 타고가다」 「뿔」이라고 하였습니다.²⁵⁾ 시인이 유년의 자전적 기억을 형상화한 작품을 보겠습니다.
어려서 나는 램프불 밑에서 자랐다.
밤중에 눈을 뜨고 내가 보는 것은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뿐이었다.
나는 그것이 세상의 전부라고 믿었다.
조금 자라서는 칸델라 불 밑에서 놀았다,
밖은 칠흑 같은 어둠
지익지익 소리로 새파란 불꽃을 뿜는 불은
주정하는 험상궂은 금전꾼들과
셈이 늦는다고 몰려와 생떼를 쓰는 그
아내들의 모습만 돋움새겼다.
소년 시절은 전등불 밑에서 보냈다,
사설극장의 화려한 간판과
가겟방의 휘황한 불빛을 보면서
나는 세상이 넓다고 알았다, 그리고
나는 대처로 나왔다.
이곳저곳 떠도는 즐거움도 알았다.
바다를 건너 먼 세상으로 날아도 갔다.
많은 것을 보고 많은 것을 들었다.
하지만 멀리 다닐수록, 많이 보고 들을수록
이상하게도 내 시야는 차츰 좁아져
내 망막에는 마침내
재봉틀을 돌리는 젊은 어머니와
실을 감는 주름진 할머니의
실루엣만 남았다.
내게는 다시 이것이
세상의 전부가 되었다.
- 신경림, 「어머니와 할머니의 실루엣」전문
모두 3연 27행의 이 시는 현재의 일인칭 화자인 ‘나’가 자전적 유년의 공간으로 되돌아가서 회고하고 있습니다. 화자가 어린 시절부터 현재에 이르는 경험들을 성장순서에 따라 과거형 서술어미를 사용하여 순차적으로 진술하는 시간의 이동 구성을 보여주고 있는 것이죠. 1연을 살펴보면 유년 시절에서 램프불 밑에서 자라고, 조금 더 커서는 칸델라불 밑에서 놀았으며, 소년 시절에는 전등불 밑에서 보낸 것이 1연의 과거에 포괄된 시간적 공간의 이동상황입니다.
2연에서는 지리적 현재 공간인 대처로 나온 화자가 이곳저곳을 떠돌면서 보고 듣는 경험을 했지만 결국 시야가 좁아져 과거로 시점이 이동하는 상황입니다. 불빛의 매개 공간에 있는 인물들을 통해 현재의 삶을 비추어보는 것입니다. 시를 자세히 살펴보면, 과거 공간(유년, 소년)에서 현재 공간(대처)으로 진행되는 이동 축이 있고, 과거공간 안에서 어려서의 램프불 밑→ 조금 자라서의 칸델라불 밑→ 소년 시절의 전등불 밑으로 이동하는 한 축이 있습니다. 또 현재에서 과거로 시야가 다시 회귀하기도 하는 시간과 지리적 공간의 중층적 이동을 구성 원리로 하고 있는 시임을 알 수 있습니다.²⁶⁾
내 살던 집 툇마루에 앉으면
벽에는 아직도 쥐오줌 얼룩져 있으리
담 너머로 늙은 수유나뭇잎 날리거든
두레박으로 우물물 한 모금 떠 마시고
가위소리 요란한 엿장수 되어
고추잠자리 새빨간 노을길 서성이려네
감석 깔린 장길은 피하려
내 좋아하던 고무신집 딸아이가
수틀을 끼고 앉았던 가겟방도 피하려네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
두엄더미 수북한 쇠전마당을
금줄기 찾는 허망한 금전꾼 되어
초저녁 하얀달을 보며 거닐려네
장국밥으로 깊은 허기 채우고
읍내로 가는 버스에 오르려네
쫓기듯 도망치듯 살아온 이에게만
삶은 때로 애닯기도 하리
긴 능선 검은 하늘에 박힌 별을 보며
길 잘못든 나그네 되어 떠나려네
- 신경림, 「고향길」 전문
인용한 시는 단연 19행으로 창작자의 과거인 유년과 고향, 그리고 떠남을 창작 동기로 하고 있습니다. 시에서 화자가 고향인 “내 살던” 시간적 과거공간으로 돌아간 뒤 지리적 공간을 이동시키며 행위가 진술됩니다. 화자는 첫 해에서 “아무도 찾지 않으려네”하고 전제한 뒤에 과거에 “내 살던 집 툇마루”로 가고 있습니다. 지리적 공간을 순차적으로 이동시켜 가면서 서술하고 있습니다. 시를 자세히 보면 창작자가 서술하고 있는 지리적 장소가 현재 시점에서 과거의 툇마루→우물→노을길→장길→가겟방→쇠전마당→버스정류장으로 이동됨을 알 수 있습니다. 또 행위 장소인 툇마루에서는 벽과 담 너머로 시선을 이동시키고 있습니다. 쇠전마당에서는 달에게로 시선이 이동되며, 버스에 올라서는 별에게 시선이 이동됩니다.
이 시는 종결어미가 3행에서 추정이나 추측을 나타내는 “있으리”를 제외하고, 1행의 “않으려네”, 7행의 “서성이네”, 10행의 “피하려네”, 13행의 “거닐려네”, 15행의 “오르려네”, 19행의 “떠나려네” 등 미래형 의지로 되어 있습니다. 시를 보면 창작자가 고향에 가지 않은 상태인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거의 기억과 거기에 간다면 어떻게 하겠다는 의지를 시로 쓴 것입니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이나 과거지향은 현실에 대한 부적응, 현실의 고통을 잊어보려는 반어적 태도입니다.
한때 죽세공이었던 우리 아버지
시린 삼동에 시린 대통을 쪼개다가
그 벼린 대칼에 손가락을 찍히면
벌어진 틈으로 빨간 혀를 내밀면 속살!
삶은 그렇게 오금 떨리는 상처에
늘 날선 대날 스치는 아픔이었지만
할머니는 그때면 헝겊 쪽에 밥풀칠을 해서
그 진저리치는 손가락을 잘 감아주었다
이른바 배접이라는 것이었는데
나뭇가지거나 손가락이거나
그 상처를 아물리는 마음은 얼마나 미쁜가
- 고재종, 「배의 시ㅡ오솔길의 몽상 15」 부분
화자의 아버지가 과거에 죽세공이었음을 고백적으로 진술하고 있습니다. 화자의 아버지가 대통을 쪼개다가 대칼에 손가락이 찍혀 상처가 나면 할머니가 손가락에 헝겊을 감아주었다는 내용입니다. 그런데 실제로 시인이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버지의 상처가 아니고, 할머니가 헝겊에 밥풀칠을 해서 감아주는 배접행위인 것입니다. 화자의 아버지와 할머니가 벌였던 사건의 기억을 통해 배접이라는 주제를 형상화하고 있습니다.
개인의 경험은 문학작품에 그대로 표현되는 것이 아니라 작품성을 높이기 위하여 경험의 일부를 확대하거나 축소하기도 합니다. 또 일인칭을 사용하거나 삼인칭을 사용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쓰느냐는 창작자 마음입니다.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한 보따리 내다 버렸다
일기를 쓰다 문득, 내가 신발을 버린 것이 아니라 신발이 나를 버렸다는 생각을 한다. 학교와 병원으로 은행과 시장으로 화장실로, 신발은 맘먹은 대로 나를 끌고 다녔다. 어디 한 번이라도 막막한 세상을 맨발로 건넌 적이 있는가. 어쩌면 나를 싣고 파도를 넘어 온 한 척의 배. 과적(過積)으로 선체가 기울어버린, 선주(船主)인 나는 짐이었으므로,
일기장에 다시 쓴다
짐을 부려놓고 먼 바다로 배들이 떠나갔다
-마경덕, 「신발론」 전문
자전적 진술의 이 시는 2003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당선작입니다. 일인칭 화자인 ‘내’가 구체적 날짜인 “2002년 8월 10일” 묵은 신발을 내다버리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신발에 대한 집중적 관찰과 사유를 통해 시적 자아와 신발이 일체를 이루면서 신발이 화자를 버렸다는 주체 전환으로 낯설게 하기를 표현 전략으로 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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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 <경남작가> 2005 여름호.
26) 공광규, 『신경림 시의 창작방법 연구』, 푸른사상, 2005. 65~67쪽 참조. 이하 신경림 관련하여서는 본 연구서 논지를 참조.
공광규 『이야기가 있는 시 창작 수업』
2025. 1. 29
맹태영 옮겨 적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