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이름을 위하여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1:5).
사도는 첫 절에서 자신의 신분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고, “종과, 사도”라고 소개를 했습니다. 본문에서는 자신이 “사도”로 부름을 받은 경로와 부여된 사명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경로는 “은혜”를 먼저 받고 그 후에 “사도의 직분”을 받았노라고 말씀하면서, 자신의 사명을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우리에게 너무나 절실하고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①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5상) 합니다.
㉠ “그로 말미암아”, 즉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은 세 가지 요점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 첫째는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 둘째는 “그 이름을 위하여”,
㉰ 셋째는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는” 일을 하기 위해서 라고 말씀합니다.
② 먼저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는 점을 상고해 보겠습니다.
㉠ 우선 생각해야할 것은 “은혜”(恩惠)입니다. 은혜란 받을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없음에도 값없이 주는 선물을 의미합니다. 받을만한 자격이나 공로가 없는 것만이 아니라, 반대로 진노를 받아 마땅한 우리들이었습니다.
㉡ 사도 바울은 남달리 “은혜”라는 감격에 젖어 있었던 듯싶습니다. 은혜라는 말만 들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지고, 가슴이 뭉클해지는 것이 바울이었습니다. 고린도전서 15:9절을 보면 “나는 사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라 내가 하나님의 교회를 핍박하였음으로 사도라 칭함을 받기에 감당치 못할 자로다 그러나 나의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하고 고백합니다.
㉢ 에베소서 2:5절에서도,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한 바울은, 계속하지를 못하고 괄호를 치고, (너희가 은혜로 구원을 얻은 것이라) 하고 말씀하고서야 계속합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바울이 누군가? “내가 전에는 훼방자요 핍박자요 포행자”(딤전 1:13)였다고 말합니다. 그런 자신의 지난날의 과오를 생각할 때에 바울은 은혜에 대한 남다른 감격이 있었을 것입니다.
③ 이점에서 말씀하는 순서(順序)를 주목해야만 합니다. “은혜”를 받는 것이 먼저이고, 직분은 나중입니다.
㉠ 1절에서도,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합니다. 종 됨이 먼저이고, 그 후에 사도입니다. 은혜는 구원과 관련이 있고, 사도라는 직분은 사명과 결부가 됩니다. 교회 안에는 여러 가지 직분이 있습니다.
㉡ 그러나 직분을 받는 것보다 은혜를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직분이란 은혜를 받은 자가 감사함으로 수행하는 헌신입니다. 그러므로 직분보다 은혜를 받는 것이 먼저입니다. 직분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은혜와 직분을 받았다”는 은총(恩寵)의식과 사명감(使命感)이 투철해야만 합니다.
④ 둘째로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주신 목적(目的)이 무엇인가 하는 점입니다. 최우선적으로 “그 이름을 위하여”라고 말씀합니다.
㉠ 그분의 거룩하신 이름을 위하여, 오직 그 분의 영광을 위하여, 이것이 그리스도인 된 우리의 궁극적인 목적(目的)인 것입니다. 전도의 목적도, 교회부흥의 목적도, 우리의 삶의 목적도, “그 이름을 위하여”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고백한 사람들은, “그 이름을 위하여” 죽도록 충성을 다짐한 사람들입니다.
⑤ 사도는 선교의 목적을 어디에 두고 있는가? 물론 멸망 받을 영혼들을 예수 믿고 구원 받게 하는데 있습니다. 그 대답은 틀리지가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도는, “그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케 하나니” 하고 말씀합니다.
㉠ 먼저는 “그 이름”을 위해서이고, “믿어 순종케”는 다음인 것입니다. 전도란 일차적으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빌 2:10) 하는데 있습니다. 예수 믿기를 거부하는 것은 그 이름 앞에 무릎 꿇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그 이름을 위하여”가 먼저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가 최우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죽기까지 복종하심도 인간의 구원이 먼저가 아닙니다.
⑥ 주님은 십자가를 앞에 놓고,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요 12:28) 하고 기도하셨습니다.
㉠ 로마서 3:26절을 보십시오. “곧 이 때(자기 아들을 화목제물로 세우신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합니다.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만족시켜 드림이 먼저요,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라”는 다음입니다. “내가 이렇게 행함은 너희를 위함이 아니요 너희가 들어간 그 열국에서 더럽힌 나의 거룩한 이름을 위함이라 열국 가운데서 더럽힘을 받은 이름 곧 너희가 그들 중에서 더럽힌 나의 큰 이름을 내가 거룩하게 할지라”(겔 36:22-26) 하고 말씀하십니다.
⑦ 셋째로 전도의 목적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사람들을 양산(量産)하는 것이 아닙니다. 다시 말하면 머릿수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믿어 순종케 하나니”까지 나아가야만 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도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라 하라”(마 28:20) 하셨습니다.
㉠ “믿어 순종케 하나니”의 뜻은, 어떤 그리스도인은 “믿고 순종”하는가 하면, 어떤 이는 믿으면서도 순종하지 않는다는 그런 뜻이 아닙니다. “믿어 순종케 한다”는 뜻은, 믿는다는 것은 순종(順從)을 의미한다는 말씀입니다. 반대로 순종하지 않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순종”은 둘이 아니요, 하나입니다. 순종이 뒤따르지 않는 믿음은 이미 “죽은 믿음”인 것입니다. 한마디로 “믿고 순종”치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인이 아니라는 말씀입니다.
㉡ 누가복음 6:46절에서 주님은, “너희는 나를 불러 주여, 주여 하면서도 어찌하여 나의 말하는 것을 행치 아니하느냐” 하십니다. “주인님” 하고 부르는 종(노예)은 주인의 명령대로 복종해야함은 너무나도 당연하지 않느냐는 말씀입니다. 결국 불순종의 믿음이란 모래위에 지은 집과 같아서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니라 하십니다.
㉢ 사도바울이 이방인의 사도로 세움을 입은 것은 입으로만, “주여, 주여” 하는 교인들을 불러 모으기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믿어 순종”케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믿어 순종”하는 자들이야말로 “그 이름을 위하는” 자들이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마 6:33) 그리스도인들인 것입니다.
㉣ 그렇다면 오늘의 그리스도인들인 나 자신은 어떠한가를 돌아보게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죽으시고, 우리를 위하여 다시 사셨으며, 머지않아 우리를 영접하러 다시 오실 그 분을 위하여, “그 이름을 위하여 믿어 순종”의 삶을 살아야만 하지 않겠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