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안리에 살으리랏다
최 화 웅
아침 해 솟구친다. 마주한 한바다 윤슬기둥 세운다. 여명 걷은 광안리의 해돋이 눈부시고 우아하다. 아침바다 온몸으로 하늘 우러러 기쁨을 토한다. 산기슭 하얀 성당의 새벽 6시 삼종소리 금련산 탄 바람결에 맥놀이 진다. 리아야, 유나야, 무엇에도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하루를 맞으렴. 너의 삶을 충분히 살고 또 살아라. 푸른 하늘과 바다가 만나는 곳. 그 수평선 위로 전해오는 해돋이와 신비한 해무(海霧)의 이야기를 듣는다. 갯마을의 크고 작은 얼굴들이 어딘지 모를 해원을 향해 시선을 모은다. 그 옛날 맨 처음 펼친 빛은 우주로부터 나왔으리라. 용호만의 작은 포구, 분개(盆浦)의 전설 그리움으로 서성이고 이기대(二妓臺) 바다기슭에 부서지는 하얀 포말 뒤로 펼쳐진 대양과 장군봉이 한 폭 아침 스캐치로 프레임을 짠다.
창밖으로 광안대교 오가는 자동차 장난감 되어 아침을 실어 나른다. 오~ 찬란하여라, 광안리의 새아침이여! 기억의 창고 열면 지난날 시베리아 횡단열차 차창으로 내다보던 시베리아대륙의 설경과 자작나무숲의 침묵을, 알라스카 위를 나는 비행기 창으로 내려다보던 해돋이와 해넘이가 눈부시다. 눈 덮인 시베리아 대륙의 등피가 쩍쩍 갈라진 줄기의 자작나무 첫사랑에게 편지를 띄운다. 알라스카, 끝없이 펼쳐진 지평선 따라 아르헨티나 팜파스대평원과 남미대륙의 끄트머리 우수아이아로부터 남빙양에 이르는 비글해협에 떠도는 유빙(遊氷). 그 위에 내려앉은 햇살이 붉게 탄다. 평생에 한번 볼 수 있을까 말까하다는 오로라의 서막이었을까? 그 수평선에는 오메가를 물고 날아오르는 해돋이와 대지를 물들인 지평선의 붉은 조감도가 해넘이 앞에 숨죽인다.
광안리에서 바라보는 한줄 수평선은 하루를 시작하는 출발선. 영혼의 시원(始原)으로 춤춘다. 포구에는 부지런히 날아오르는 갈매기가 하루를 서둘러 보채며 뱃길 따라 희미한 기억의 어선을 이끈다. 간밤 길게 드리운 불그림자 멀리까지 나갔던 마음이 고단한 몸으로 돌아와 만선의 피로를 푼다. 목마른 아낙의 눈길 뱃전에 가 닿고 어창이 열리면 아침햇살 뿜어져 나오듯 갯가의 전설 피어난다. 눈에 익은 광안리의 새아침은 남태평양의 어느 해변에 비해 작고 소박해 다소곳하다. 오늘도 그 꿈은 창공을 솟구치는 자코메티의 힘을 느낀다. 지금 있는 것과 가진 모든 것은 머지않아 모두 사라진다. 그러나 광안리 아침바다는 그렇게 우리의 가난한 마음에 머물며 한 송이 사랑의 꽃을 피우리라.
밑도 끝도 없는 나그네의 생각에 깃드는 비창과 열정이 온몸을 짓누른다. 아, 늙음과 낡음이 절망과 상실을 관통하고 거짓이 위선의 탈을 벗고 이아침에 눈부신 태양을 맞는다. 내면에서 울리는 목마른 진실의 울림이여! 마음 깊은 곳에서 솟아나는 영혼의 소리를 듣는가? 무엇이 참이고 진실이더냐? 사람들은 다 자기식의 사랑과 삶의 테마에 빠진다. 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은 없다. 변화의 가치는 눈으로 듣는 것이 아니라 귀로 본다고 했던가? 광안리 앞바다에 솟아오르는 새아침을 뜬 눈으로 듣고 귀로 보며 입으로 사랑하는 손녀 리아와 유나에게 바다의 맑은 아침 인사를 전한다.
하루의 시작
수평선 끊고 솟는 아침 해
세상의 거짓과 가면 벗기고
마침내 우주의 개벽이 너와 나를 향한다.
아침이면 고희를 넘긴 아내와 함께
물푸레나무 식탁 위에
소박한 생명의 양식을 차린다.
쌀식빵 한 조각 프라이팬에 올리고
나주의 종균으로 배양한 순백 요거트와 빨간 토마토케찹,
물에 우려낸 양상치와 깻잎 두 장에 오이 몇 조각,
그리고 사과와 파프리카, 양파의 동심원이 생명을 그린다.
신새벽 개봉한 한 잔의 생수와 아침 약,
브라질넛으로 애타는 마음이
거룩한 생명을 잇는다.
갈매기떼 창 너머 바다에서 물어온
눈부신 여명을 퍼 나르며
자유로운 영혼이 아침을 펼친다.
콜롬비아산 커피를 장착한 모카포트 불에 올리며
타이머를 5분 20초에 맞춘다.
아내의 외마디 ‘댕큐’와 맞춘 눈빛이
바흐의 선율 따라 나의 오디세이아 먼 길을 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