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한국 이스라엘 연구소 원문보기 글쓴이: 양치기
가자지구 전쟁을 보며 팔레스타인에 대한 이해를 가질 필요가 있어 팔레스타인 소개에 이어 가자 지구의 가자를 소개하려 합니다.
구글의 이미지를 편집했습니다. 블레셋 평야가 팔레스타인의 생활터전이었습니다 빨강글은 블레셋의 5대 도시입니다
▶ 팔레스타인에 대한 오해 예루살렘에서 1번 국도로 내려오면 해안이 보이면서 블레셋평야가 나온다. 블레셋은 영어로 팔레스타인이라고 읽는다. 그런데 현대 이스라엘을 팔레스타인 지역이라고 부른다. 유대가 주후 70년 예루살렘이 멸망하면서 힘이 극도로 쇠한 뒤 로마의 하드리안 황제가 다스리던 135년 바르 코크바라는 인물을 중심으로 유대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로마는 이 바르코크바 반란을 진압한 뒤 유대인에게 치욕을 주기 위하여 그 땅의 국제명칭을 바꾼다. 그것이 블레셋(즉 팔레스타인)이다.
왜냐하면 이스라엘과 가장 오랫동안 싸우며 괴롭혔던 민족이 블레셋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현대 팔레스타인은 지역이름이지 블레셋 민족과는 전혀 관계가 없다. 현대 팔레스타인들은 수천년가 이주 해 온 사람들과 그곳의 원주민 (기독교인과 유대인까지 포함)이 혼합여 만들어진 민족이다. 사실 블레셋 민족은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공 이후 그 이름이 사라져 버렸다. 영원히 ▶ 블레셋의 유래 지중해(성경에는 대해라 불림)를 따라 펼쳐진 해안평야에 과거 블레셋 사람들이 살았다고 해서 학자들은 그곳을 블레셋 평야라고 부른다. 블레셋은 지금의 가자지구로 불리는 가사(가자), 아스글론, 아스돗, 가드, 에그론 등의 5개 도시 연맹체 국가이다. 구 블레셋은 아브라함 때부터 살았지만 12세기에 크레타(그렛)에서 몰려온 해양민족 블레셋은 북서쪽에서는 히타이트(헷)왕국을 무너트리고 남쪽으로는 애굽을 위협하였다. 그러나 때마침 애굽은 람세스 3세라는 강한 왕이 통치하고 있던 시기라 블레셋의 침공은 실패하였으나 일부가 애굽의 묵인하에 가나안 남부 지중해 변으로 이동하여 정착하였다. 고고학 발굴 결과 이 지역에 있던 가나안 구 블레셋이라 할 수 있는 가나안 족이 완전히무너진 뒤에 새로운 건축과 문화로 정리되었음을 보여준다.
해양민족인 블레셋이 애굽과 싸우는 부조: 블레셋은 갑돌(그레테) 사람으로 살던 곳에 큰 이변이 나서 발전 된 문명을 가지고 집단 이주하던 중 애굽과 전쟁하다 밀려 현재의 블레셋 평야 쪽으로 밀려왔다. 테베(노아몬)의 메디낫트 하부에 위치한 람세스3세(주전 1184~1153년)의 장례신전 벽에 부조되어 있다. 닭벼슬같은 투구를 쓰고 잡혀가는 사람들이 블레셋인이다. 그들이 왜 이동하였는가는 아직 미스터리다. 다만 추정할 수 있는 것은 그레테 부근에 큰 화산이 터져 해일이 일어나 그들의 문명을 무너트렸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있다. 그 증거로 커피선전에 잘나오는 지중해의 산토리니 섬은 화산으로 만들어진 섬으로 화산폭발의 잔재인 현무암으로 이루어져있다. 또한 이 지역은 지진이 많은 지역으로 쓰나미 같은 해일이 밀려와 섬을 덮었는지 미노아문명을 만들었던 크노소스 궁전은 19세전까지 모래에 덮여 있다 최근에 발굴되었다. 미노아 문명은 유럽문명의 근원이고 또 호머의 글에 나오는 미케네 문명을 만들어낼 정도였다. 이 앞선 문명은 그들이 가지고 있던 철기문화를 앞세워 애굽을 침공했으나 그 견고함에 밀려 일부만이 북쪽으로 오게 되었다.
그 때에 이스라엘 온 땅에 철공이 없었으니 이는 블레셋 사람들이 말하기를 히브리 사람이 칼이나 창을 만들까 두렵다 하였음이라 (삼상 13:19) 이 사람들이 신 블레셋 민족이다. 이 민족은 성경에 의하면 함족속의 후예이다(창 10:14). 이스라엘에서 발견된 블레셋 족속의 유물들을 보면 크레타(그레테, 그렛)문명과 비슷한 점이 상당히 많다.
가장 윗쪽의 도기는 미케네의 군인들이 그련진 항아리다. 아래 3개는 블레셋 평야의 텔 카실레에서 발견된 도기로 미케네 쪽의 도기와 같은 유형이다. ▶ 역사 블레셋의 5대도시는 해변길을 따라 북쪽 아벡에서 남서쪽으로 뻗어 아스돗, 아스글론, 가사 쪽으로 뻗어 애굽으로 향하고 한쪽 길은 아벡에서 남동쪽으로 내려가며 에그론, 가사를 지나 애굽으로 향한다. 이 사실로 보건대 블레셋은 중요 교통로에 위치하며 특히 해변길을 지배하기 원하였다.
이스라엘이 산지에 정착하고 골짜기에는 철병거 때문에 점령을 늦춘 것에 비해 블레셋은 가나안의 철병거 군대를 평정하고 평지를 차지할 정도로 전투력이 막강하였다. 거기다 북쪽해안에 위치한 두로와 시돈도 블레셋에게 점령을 당하고 속국이 되었다. 발달된 철기문명을 가지고 이익이 되는 지역을 천천히 점령해 가는 블레셋은 이스라엘의 최대 위협이 되는 민족이었다. 다른 민족들은 자신들의 본거지가 있고 탈취하여 가는 정도였는데 블레셋은 이주하여 그 정착지역을 넓혀가고 있는 중이어서 그들의 확장은 이스라엘의 손실을 의미하였다. 사사시대부터 계속 밀리던 이스라엘은 삼손에 의하여 잠시 대항하였다. 삼손의 이야기 중에 가사의 기생에게 갔다 일어난 사건, 그리고 블레셋에게 잡혀 노예로 일하다가 신전을 무너뜨리는 장면이 언급된다. 삼손의 사명은 블레셋에서 이스라엘 구원하는 시작이 되는 것이었다(삿 13:5) 그의 죽음과 함께 블레셋의 지도자들이 3천명이 죽었으니 어마어마한 피해였으리라.
텔아비브 북쪽 야르콘 공원 근처에 위치한 텔 카실레에 블레셋 사람들의 신전이 발견되었다. 하얀색 기둥터는 삼손이 무너뜨린 두 기둥을 연상케 한다. 거리는 2.1m지만 가사는 더 가까운 거리에 기둥을 두었을 것이다. 기둥의 지름은 30.5cm로 만든 백향목 기둥이었다. 발견된 신전의 넓이는 7.8mx14.6m였다.
그 구원의 시작은 사울 때 시작하여 다윗 때 완성된다. 다윗은 블레셋에게 피신하였지만 이 기회를 틈타 철기문명을 배우고 그들의 해변기를 통한 확장정채, 전략 등을 배웠을 것이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라고 다윗은 블레셋 세력을 완전 역전시켜 놓았다. 그러나 남은 불씨는 계속 되어 500년 이상을 이스라엘의 적으로 남게 되다 앗수르와 바벨론의 침공에 의하여 블레셋 민족은 완전히 그 종적을 감춘다.
그러므로 현대 팔레스타인은 이름만 그렇지 블레셋과 혈연관계는 거의 없다고 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신약시대 베드로와 빌립이 블레셋 평야에 활동할 때는 블레셋 민족자체가 없던 시기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