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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촛불
강준영
안영희 선생님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할 때에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놨죠…….
때때로, 사람들은 아주 어렸을 때의 기억을 더듬을 수 있습니다. 세 살 적에, 색동옷을 입고 이웃 어른들에게 세배를 갔던 일이며, 바람 부는 날 대추나무에 걸린 연을 내리려고 안간힘을 쓰던 일이며, 동네 아이들과 소꿉질을 하던 일까지 생각이 나기도 합니다. 전쟁이 나던 해에 나는 서울에서 학교를 다녔습니다.
안영희 선생님―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던 것은 어머니 덕택이었지만―이분이 나의 담임 선생님이었습니다. 선생님은 아주 마음이 좋은 분이었습니다.
전쟁이 일어나기까지 겨우 한 달 남짓을 배웠지만 그 때의 일이 지금도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운동장이었는지, 강당이었는지는 잘 생각이 나지 않지만, ‘서산 너머 해님’이라는 노래를 배웠던 것은 아직도 눈에 선합니다.
“서산 너머 해님이…….” 하고 선생님이 먼저 두 팔로 동그란 해님을 만들면서 노래를 부르면, 우리들은 소리 맞춰 따라 불렀습니다. 그러다가, “촛불 하나 켜 놨죠.” 할 때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고, 오른손 끝으로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것이 여간 재미있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집안 식구들 앞에서 응석처럼 이 노래를 부르곤 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님은 나를 무척 귀여워해 주셨습니다.
―인국아! ―네? ―인국인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좋으니?
―엄마하고 아빠, 또 선생님……. 그런데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즐겁던 학교가 문을 닫았습니다. 어린 마음에도 학교에 갈 수 없다는 일이며, 선생님과 헤어져야 한다는 일이, 선생님의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노래를 부를 수 없다는 일이, 얼마나 서럽고 가슴 아픈 일이었는지 모릅니다. 게다가, 아버지를 잃는 슬픔까지도 겪어야 했습니다. 피란을 떠났습니다. 먼 친척이 살고 있는 시골로 떠났습니다. 그 곳에서, 나느 새로 학교에 입학했습니다. ‘인국아―.’
가만히 눈을 감고 있으면, 어디선가 선생님의 따뜻한 목소리가 들리곤 했습니다. ‘선생님―.’
마음이 추웠던 버스 대합실
안 선생님을 다시 만난 것은 전쟁이 끝나고도 십 년쯤 세월이 지난 후였습니다. 그렇게 선생님을 다시 만나리라고는 상상도 할 수 없었습니다.
그때, 나는 사범학교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졸업을 몇 달 남겨 두지 않은 겨울입니다.
버스 대합실―. 찬바람이 유리창을 때리는 추운 대합실입니다. 나는 집으로 가는 막차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시간이 몹시 지루했습니다. 벽에 걸린 시계조차 꼬박꼬박 졸고 있는지, 몇 번을 보아도 그대로였습니다. ‘무료한 밤이야!’
‘재미있는 사건이라도 일어났으면 좋겠구먼.’ 사람들은 저마다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너무 스산한 밤이지.’ 그 때, 이 여인이 대합실 문을 열고 들어왔습니다.
첫눈에도 성한 사람이 아닌 것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대합실을 씨익 훑어보더니 콧노래를 흥얼댑니다. ‘옳지, 무료한 시간의 너울을 벗기는군.’
사람들이 여인의 콧노래에 관심을 두기 시작했습니다. 나도 이 여인을 보았습니다. 만약 이 여인이 ‘서산 너머 해님’을 부르지 않았더라면, 나는 그분이 안영희 선생님이라는 것을 알아보지 못했을 것입니다.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할 때에…….”
여인은, 벌써 흥에 겨운지 동그랗게 해님을 그려 보이기도 하고, 아이들처럼 가볍게 뛰기도 했습니다. 사람들이 싱글싱글 웃어 댔습니다. 나에게는 문득 잊었던 생각들이 떠오릅니다.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놨죠.” 나는 알고 있습니다.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치고, 오른손 끝으로 촛불처럼 간들간들 흔드는 것을……. 이 여인도 그렇게 했습니다.
사람들이 손뼉을 치며 웃어 댑니다. 그러나 나는 웃을 수 없습니다. 풀어헤쳐진 머리 속에 숨겨진 여인의 얼굴이 낯설지가 않았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나도 모르게 소리쳤습니다. 사람들이 순간 웃음을 그치고, 나를 보았습니다.
“선생님, 안영희 선생님이시죠?” 그 여인이 나를 봅니다. 초점을 잃은 초라한 눈으로 나를 봅니다. 서른 살은 넘어 뵈는, 어쩌면 더 나이가 들어 보이는 이 여인― 틀림없는 안영희 선생님입니다. ‘어쩌다가 선생님이…….’
“선생님? 네가 누군데 나를 선생님이래?” “제가 인국이에요. 서울에서…….”
“서울?” “네, 서울에서 일 학년 때 배웠죠.”
“…….” “생각나세요?”
여인의 손을 잡았습니다. 애처롭고, 안타깝고, 반갑고…… 그런 눈으로 여인을 보았습니다. 여인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봅니다. 자꾸 가슴이 아려 왔습니다.
“생각해 보세요, 선생님.” “…… 난 몰라.” “전쟁이 나던 일은 생각나세요?”
나는 여인이 잃었던 생각들을 떠올리기를 애타게 기다립니다. “전쟁? 전쟁…….”
갑자기 여인의 얼굴이 경련을 일으킵니다. 가슴 언저리가 에는 표정입니다.
여인은 슬프게 웃었습니다. “후후후…….”
여인이 웃음을 그치지 않았습니다. 기억의 실마리가 풀려 나오는 듯, 그렇게 웃었습니다. “생각나시죠?” ‘생각나실 거예요, 선생님.’ 여인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고개를 저었습니다. 그러다가 대합실 문을 열고 쫓기는 사람처럼 뛰어나갑니다.
“선생님!” 나는 여인의 뒤를 따랐습니다. 선생님을 부르면서 자꾸 따라갑니다.
“후후후…….” 여인은 뛰어가면서도, 바람 소리 같은 슬픈 웃음을 흩날렸습니다.
그 해. 우연히 선생님을 만났던 겨울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몹시도 마음이 추웠습니다. ‘선생님―.’
은희의 집에 촛불이
또 십 년쯤 세월이 흘렀습니다. “김인국 선생님.”
이것이 나의 이름입니다. 학생들은 나를 이렇게 부릅니다. 이 세상에는 놀라운 일―오히려 기적이라고 부르는 편이 더 옳은―들이 종종 일어납니다. 내가 안영희 선생님을 다시 만나게 된 것도, 좀처럼 설명할 수 없는 기적과 같은 일입니다. 그러나 기적은 오히려 안 선생님이 살아온 생애 속에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 그 해, 나는 새로 학교를 옮겼습니다. 조그만 시골 학교입니다. 여기서 일 학년을 맡게 되었습니다. 학생들이 하루가 다르게 성장해 가는 모습을 보며, 뿌듯한 보람에 젖어보곤 했습니다. 한 달쯤 지나자, 학생들은 조금씩 글자를 알게 되고, 노래도 제법 부를 수 있게 되었습니다. 문득, 나는 오랜 기억 속에 남아 있는 노래를 학생들에게도 가르쳐 주고 싶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 ……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놨죠
이 노래는 뜻밖에 학생들에게 인기가 있었습니다.
간드러지게 팔 동작을 하는 유희와 함께 노래가 산골을 울렸습니다.
노래 속에 담긴 환상적인 이야기―예를 들면 숲 속의 이름 모를 새집, 밤마다 켜 놓은 촛불이며, 새집 속 산새 가족의 도란도란 피는 얘기 꽃―가 무척 마음에 들었나 봅니다. 노래가 널리 불려지자, 나는 불현듯 어린 시절이 그리워졌습니다.
‘안 선생님―.’ 선생님의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며칠이 지난 후. 학부형 한 분이 교실로 찾아왔습니다. 시골 사람답지 않게 말쑥한 중년 여인입니다. “어서 오세요.” “제가 은희 어머니예요.”
여인이 고개를 숙이고 인사를 했습니다. “반갑습니다.”
마주 인사를 하며, 여인의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는 순간, 나는 흠칫 놀랐습니다.
“선생님!” 한동안 나는 멍하니 그분의 얼굴을 바라보았습니다.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서은희. 아직도 햇병아리처럼 솜털이 보송보송한 은희는 귀여운 아이입니다. ‘은희의 어머니가 안영희 선생님이라니…….’ 선생님이 먼저 입을 열었습니다. “김 선생님, 은희가 학교에서 돌아와, 부르는 노래를 들었어요. 벌써 김 선생님이 학교로 와 계시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찾아올 용기가 나지 않았어요.”
‘뵙고 싶었습니다. 선생님.’ “은희가 부르는 노래를 듣고는 결심했어요. 무엇인가 김 선생님한테 털어놓아야겠다고…….” ‘잘 오셨어요.’ “그냥 인국이라고 불러도 괜찮을까? 옛날처럼 말야…….” “괜찮고말고요.” 안 선생님과 나는 학생들이 모두 돌아간 텅 빈 교실에서 마주앉았습니다. 선생님은 한참 동안 가만히 눈을 감았습니다. “전쟁이 일어나자, 남편이 전쟁터로 나갔지…….”
선생님은 가슴속에 묻어 두었던 상처의 실마리를 풀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일 년 만에 전사 통지서를 받았어.” “저도 아버지를 잃었어요, 선생님!”
“그 때, 나는 두 살짜리 아이가 있었네. 남편을 잃은 슬픔이 채 가시기도 전에 폭격을 맞아 아기가 죽었어……. 아기의 비참한 시체 앞에서 나는 미쳐 버렸다네.”
“그러셨군요.” “십 년 동안이나 길거리를 헤매고 다니다가, 병원 신세를 지다가, 도망치기도 하다가…… 이렇게 살았지. 그런데 뜻밖에 죽었다던 남편을 만났네.”
“살아 계셨군요.” “기적과 같은 일이었지. 남편의 정성으로 성한 사람이 되었다네. 그러나 끝나 버렸어. 남편이 정말 세상을 떠났지, 내 앞에서…….”
선생님은 잠시 말을 끊었습니다. 무거운 침묵이 흐릅니다. 그 때 만나 뵙던 선생님의 슬픈 모습으로 나는 가슴이 멥니다. “선생님, 은희가 있잖아요.”
“그래, 은희가 있지. 은희는 나의 생명이야. 나의 촛불이지. 은희 아버지는 처음부터 죽어 있었는지도 몰라. 나를 위해서 잠시 이 세상에 다시 내려와, 꺼져 가는 나의 생명에 불씨를 주시고 떠나신 거야.” 뺨 위에 눈물이 흐릅니다. 안 선생님은 손등으로 눈물을 닦았습니다. 아픔을 닦았습니다. 나의 가슴이 찡하게 아파 옵니다. 창 밖으로 눈을 돌립니다. 어둠이 깃든 창 밖에 별들이 반짝 빛납니다.
옷깃을 여미고, 안 선생님이 일어섭니다.
“가시겠어요?” “응.” “염려 마세요.” “그래, 은희를 잘 부탁해.” “잘 키워 드릴게요.” 안 선생님과 헤어집니다. 선생님의 뒷모습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갑니다.
먼 빛으로 보이는 시골 마을에 집집마다 환한 불이 켜집니다. 은희의 집에도 불이 켜집니다. 어머니를 기다리는 은희가 켜 논 촛불입니다.
‘선생님, 당신의 촛불은 꺼지지 않습니다.’ (끝)
여든을 바라보는 큰이모가 딸아이 태어나고 친정집에 놀러오실 때마다 불러주신던 노래가 있습니다. 친정엄마가 어렸을 때도 이모가 등에 업고 많이 불러주던 노래라는군요. 가사가 이뻐 그 후론 아이에게 가장 많이 불러주던 노래가 되어버렸죠. 예쁜 노랫말인데 제가 자랄 때에는 이 노래를 배운적도 들어본 기억도 없고 요즘 동요CD에도 수록되지 않아 아쉬운 마음 없지않아 있었는데 어느날 친정엄마에게 물어보니 그 노래를 알고 계시더라구요. 혹 엄마 등에 업혀있을 적엔 들어 기억에 없던 것인지도 모르지만요.
얼마전 우연히 예림당에서 펴낸'100년 후에도 읽고싶은 한국명작동화'를 들추다가 작가 강준영의 '전쟁과 촛불'에 소개된 것을 보니 언제부터인지 모르지만 전쟁 전후에 많이 불리던 동요였나 봅니다
아기별/윤태웅 작사 / 김성도 작곡
서산 너머 해님이 숨바꼭질 할 때에
수풀 속에 새집에는 촛불 하나 켜 놨죠.
아니 아니 아니죠 켜논 촛불 아니죠
저녁먹고 놀러나온 아기별에 빛이죠
이 동화는, 촛불하나 켜놨죠. ( 서림문화사 ) - 강준영의 유고동화집 에 있던 것을 효리원에서 다시 펴낸 것이다. 유고 동화집에는 , 여러 동화들이 있다. 그중에서 - 전쟁과 촛불 - 이 있었다.
줄거리
전쟁이 나던 해에 초등학교 1학년이었던 소년은 여선생님이 ˝서산 너머 해님이…˝하고 먼저 두 팔로 동그란 해님을 만들면 아이들과 함께 소리 맞춰 춤동작을 따라서 했다. 그리곤 뒤에 가서 ˝촛불 하나 켜 놨죠˝할 때는 왼손으로 오른쪽 팔꿈치를 받치고, 오른손 끝을 흔들어 간들거리는 촛불 흉내를 내는 것이 여간 재미있지 않았다.
그러나 전쟁이 일어나 학교는 문을 닫았고, 꿈만 같던 아름다운 그 시절은 까무룩 사라지고 말았다. 소년은 시골로 피난을 가서 거기서 다른 학교에 들어갔다.
10년 후 소년은 청년이 되어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여선생님을 버스대합실에서 우연히 만난다.
놀랍게도 선생님은 머리가 헝클어지고 옷매무새가 풀어헤쳐진 모습으로 버스대합실의 사람들이 보는 앞에서 ˝서산 너머 해님이…˝를 부르며 춤을 추는 것이었다. 선생님이 두 팔로 커다란 해님을 그려 보이며 강종강종 발구름하는 것을 보고 어떤 사람은 웃고, 어떤 사람은 이마를 찡그리기도 했다.
청년은 다가가 여선생님의 이름을 부르며 자기가 서울에서 초등학교 1학년 때 ˝서산 너머 해님이...˝를 배웠던 아무개라고 말을 한다. 그러나 선생님은 그를 알아보지 못한다. 지난날의 기억을 몽땅 잃어버린 선생님은 초점 없는 눈동자로 허공을 바라보며 후후 웃을 뿐이다.
청년은 전쟁이 선생님의 가정을 풍비박산으로 만들어버렸음을 알게 되고, 선생님이 미쳐버리지 않고는 견딜 수 없었던 전쟁의 비극 앞에 몸서리를 친다.
1970년대의 대표적인 동화작가 강준영의 <전쟁과 촛불>은 이처럼 단순명료한 구성으로 전쟁의 잔혹상을 고발하면서 목이 메이도록 아름다운 서술로 동심(童心)에 접근하고 있다.
작가의 체험을 바탕으로 한 작품으로 알려져 있는 이 <전쟁과 촛불>은 한국의 동화문학을 한단계 높인 명작으로 꼽힌다.
을 가르치던 안영희 선생님.
그걸 배운 인국이 ( 김인국 선생) 은 나중 안영희 선생님의 딸 은희의 선생님이 된다.
그런 시간을 갖기위해 전쟁의 소용돌이를 지나와야 했다. 그런 이야기를 담은 [ 전쟁과 촛불 ] 39년이라는 짧은 생애를 살며 간 대구사람 ( 함경도 사람이지만 , 아니 서울 사람이기도 아니 외가인 충청도 사람이기도 ) 참 많은 사람이었다.
효리원 의 삽입 그림도 참 좋다. 이 책은 [ 소년병과 들국화] 와 같은 그런 느낌을 주는 책이다.
아래사진에 강준영 작가와 대구 아동문학을 얘기한다.
첫댓글 좋은 글, 감사합니다.
자료,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다시 읽어도 뭉클합니다.
먼저 가셔서 아쉬운 강준영선생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