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나라,조선 이전에 고대,중세시대의 유교적 사회제도,결혼풍속을 역사자료를 근거해서 설명하려면 소학(한자학,언어학)과 삼례(주례,의례,예기)를 필수인데, 아직까지 쯔즈는 갑골문,금석문과 삼례에 문외한이라 "유교는 이렇다" 단정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냥 내 경험,지식,생각으로 이렇지 않았을까 추측할 뿐입니다.
빵장사님이 언급한 2중혼과 모계제와 부계제의 결합은 내가 봐도 타당한 의견입니다.
한옥 구조를 보면 집중앙에 안방과 대청이 있고, 안방 아래에는 부엌이 있고 옆에는 쪽방이 있고, 대청 넘어에는 건너방이 있고. 안방 대청 뒤뜰에는 별채가 있습니다. 이상의 안방,쪽방,건너방,별채는 안방마님(부인,어머니) 을 중심으로 여자과 아이,노인들이 거주하는 곳입니다. 그러면 장성한 어른 남자들이 거주하는 곳은 어디냐? 중문과 대문 사이에는 있는 사랑채와 대문 양편에 행랑채로 아버지(남편)를 중심으로 삼촌,아들,하인들이 기거하던 곳입니다. 이상의 구조로 볼 때 한옥은 모계제사회의 주거생활구조입니다.
요순시대에 순이 요임금의 두딸과 결혼하는 식의 이중혼은 주역(귀매)에도 나오고 기독교성경 창세기(야곱,다말,오난)에도 나오고, 이승만과 박정희의 전기에도 나옵니다. 현재 이중혼의 의미를 가장 잘 보여주는 예는 천주교의 대부,대모 제도라고 봅니다.
이승만과 박정희는 젊었을 때 고국,고향의 전통관습으로 결혼한 본부인과 자식이 있었는데, 외지(서울과 미국)에서 독신생활하면서 결혼,동거하는 여자를 둡니다. 이것은 봉건제와 관료제가 짬봉된 사회에서 외지생활을 하는 남자들의 십팔번 결혼,동거 방식으로, 현대인들이 볼 때는 남자들만 오팔팔 홍콩가는 남성위주의 방식이라고 볼 수 있으나, 남녀부부관계를 넘어 부자,조부모,손자로 확대하여 보며는 결코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이승만과 박정희가 외지에서 외딴여자와 연애 결혼,동거할 때에 고향마을 본부인과 아이들의 남편,아버지 역활을 한 것은 누구냐? 삼촌(친,외 삼촌)과 아저씨들입니다. 물론 어머니와 삼촌이 부부관계를 가졌다는 것은 아닙니다. 부부관계 외에 남편,아버지 역활을 삼촌 아저씨들이 했다는 것입니다.
모계제와 부계제를 남녀부부 사이로만 한정해 보면 고대,중세시대는 물론이고 근대,현대의 사회제도 관습도 이해,설명하기 어렵습니다. 남녀부부관계를 넘어 친정마을과 시댁마을,고향과 외지,농촌과 도시,서울과 지방,중앙정부와 지방자치로 확대해 보아야만 국가사회 제도와 풍습을 이해,설명할 수 있습니다.
종교교리가 아닌 사회경제적으로 볼 때 천주교의 대모,대부는 양어머니,양아버지입니다. 친 어머니,아버지가 혈연부모라면 대모,대부는 사회부모 선생님입니다. 삼촌,이모,고모는 물론이고 보모,가정교사,훈장선생님 그리고 아줌마 아저씨 일반 모두가 대모,대부 사회부모 선생님들이라고 봅니다.
여기서 모계사회라면 대모,대부가 이모,외삼촌 아줌마,아저씨가 되는 것이고, 부계사회라면 대부,대모는 친삼촌,고모 아저씨,아줌마가 되는 것으로, 고조선부터 지금까지 "한국의 현실 가족제도는 모계제와 부계제가 결합,공존해 왔다"고 빵장사님과 동감으로 저도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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빵장사
면소재지 피시방까지 온 보람이 있습니다. ^^
쯔즈님 글 잘읽고, 갈무리 해서 차근 차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이래서 공부하는 즐거움이 있지 않습니까!!!
한국에 중국고대의 원시유학의 전통이 가장 많이 남아있습니다. 사회제도도 그러하고, 토지소유제도도 그러합니다. 학문적으로도, 우리나라 유학의 전통이 공자를 넘어서서, 요순우시절의 원시유학에 대한 수준이 높고, 현대 들어서 중국, 동양 고대사상의 해석에 있어서도 한국학자들이 두각을 나타냅니다.
단지 저는, 토지公有제도 라는 근본적이며 새로운 사회경제적 관점을 도입하고 있을 뿐입니다. 저 스스로도 역사, 사회경제사에 대한 새로운 해석을 하루 하루 해나가고 있는 과정입니다.
쯔즈님의 결혼제도, 가족제도, 사회제도에 대한 언급이 참 반갑습니다. 부계제와 모계제의 결합형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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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ame 빵장사 (2003-09-15 13:39:51, Hit : 10, Vote :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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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ubject 쯔즈님/모계제+부계제의 성립 모델인 우임금시절에 대해서
조선시대 사회제도의 구체적인 쯔즈님의 글, 갈무리해서 차근 차근 다시 읽어보겠습니다.
모계제를 바탕으로 부계제가 결합된 형태가 조선 또는 한국 전통의 사회제도이다. 제가 최근에 아래소개하는 [금문의 비밀]이란 책을 읽고 깜딱 놀랐습니다.
요, 순을 거쳐, 우임금때 모계제 사회와 부계제 사회가 , 가족제도가 결합하였다는 사실을 첨 알게 되었습니다. 저는 단지, 우임금때 부터 부계제사회가 성립하고 그 이후 발전했다고만 단순하게 알고 있었는데, 모계제사회를 바탕으로 부계제 사회가 결합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정치경제학 기초이론 강좌를 진행중이라, 더 알아보는 걸 일시 중지하고 있는 문제, 쯔즈님의 의견을 듣고 싶은 내용은, 부계제가 결합하는 바탕이 된
모계제 사회에 대한 이해입니다. [금문의 비밀]이란 책에 나오는 2중혼, 남자 두사람+ 여자 두사람의 결혼 형태, 물론 지배계급입니다. 그래서 문자로 기록이 남아 있지요. 이것이 원형으로 보입니다. 그런데, 너무 어렵고 실감이 나질 않습니다.
예를 들면, 현재 중국에는 토지사유재산권제도가 없거든요, 중국청년에게 토지사유재산권제도를 설명하거나, 우리나라 청년에게 중국의 토지공유제도를 설명하는 것이 전혀 실제 생활의 경험이 없어서, 극히 적어서 매우 어려운것과 같습니다. 안경안쓴 사람이 안경쓴 사람의 시야를 이해하기 어렵다, 이런것 보다 훨 어렵습니다.
앞으로 저도 공부를 더하게 되겠지만, [금문의 비밀]이란 책에 자세하게 나오는 2중혼에 대해서, 쯔즘님의 해설을 기대합니다. 일부 해석에서 과도함이 보여지지만, 사료적 가치도 있고, 낙빈기 라는 중국학자의 수십년의 연구 성과물을 한국에 소개하는 의의가 있습니다.
.. 동양고대의 모계제사회와 부계제사회의 교체기에 대한, [금문의 비밀]이란 책의 일부를 소개합니다. 금문이란 갑골문 훨씬 이전의 약 4500년전 삼황오제시대의 청동기에 쓰여진 글자를 말합니다. 이를 중국의 낙빈기란 분이 연구했고, 이를 토대로, 삼황오제가 바로 고조선의 임금들이 었다는 풀이를 김대성이란 분이했고, 이를 책으로 만든 것이 [금문의 비밀]컬처라인, 입니다.
흥미로운 내용은, 삼황오제, 고조선 말기의 모계제사회가, 양급제라고, 2사람의 남편과 2사람의 부인이 하나의 단위를 이루는 가족제도입니다. 모계제의 발전된, 또는 최종 형태로 보여집니다. 책에 소개된 족보, 친족관계, 즉 삼황오제의 계보도가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얽히고 설힌 혈통 때문이 아니라, 양급제 속에서, 왕권이 모계중심으로 이전되어 왔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봐도 모르겠군요.
저는 묵자를 통해서, 서경을 알게되고, 서경의 요, 순, 다음의 우임금을 지대공유제의 완전한 형태를 실천했던 분으로 알고 있습니다. [금문의 비밀]이란 책에 따르면, 우임금은 바로 마지막 모계제 사회의 임금입니다. 순임금이 부계제사회로 사회개혁을 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우임금이 모계 쿠테타 세력이 옹립한 임금이라고 하는 군요. 그 이후 백익에게 왕권이 잠시 갔다가, 우임금의 아들 계에 의해 다시 쿠테타가 발생, 계 이후 우리가 아는 부계제, 세습왕권이 출발합니다.
서경을 통해 제가 아는바, 우임금하고, 아들 계에 이르는 과정이 단절되어 있고, 우임금의 통치와 계의 통치가 전혀 다릅니다. 어떤 연속보다는 단절의 의미가 큽니다. 또한 서경에서는 요에서 순으로, 순에서 우임금으로 왕위이동이 능력에 따른 이동이었고, 공자일파들이 선양이라는 찬양을 한바 있습니다. [금문의 비밀]이란 책의 서술이 제가 아는바, 상당부분이 일치하는 해석이고, 반대되는 부분이 없습니다. 물론 고고학적 발견과 해석에 의해, 앞으로 확정되어 나가야 할줄 압니다.
개인적으로, 존경하는 우임금이, 모계사회의 마지막 힘의 분출위에 서있던 분으로 새롭게 추정합니다.[금문의 비밀]에서는 모계세력의 꼭두각시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만 저의 입장에서는 모계제사회와 부계제사회의 교체기의 임금이었다라고만 해석하고 싶습니다. 그리고 조지즘이 묵자와 서경의 우임금의 사상과 같다는 저의 평소 소신에 따를때, 조지즘의 가족중시 사상이 공자일파의 나쁜 사상 즉 부계제사회와 토지사유재산제도가 결합한,(나쁜, 변질된)가부장제 사상과 그 근본이 다르다는 증거도 되겠다 싶어, 이곳에 글을 남겨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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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문의 비밀] 김대성 엮음,컬처라인. 중국낙빈기의 [금문신고]를 바탕으로 해석한 책임,
제6부 격동하는 고조선
3. 유신에 실패한 혁명가, 순
고조선의 제7대 임금 순(舜 : 제위 9년, 기원전 2320~2312)은 모계제도를 부계제도로 혁신하려다 실패한 혁명 군주이다. 순임금의 이 같은 사회제도의 개혁을 유신(維新)이라 한다. '유신'이라는 말은 모계사회를 부계사회로 바꾸려고 한 역사 이래 최초의 혁명이자 대대적인 가족제도의 개혁에서 나온 말이며 글자이다.
남편 두 명, 부인 두 명의 양급제 가족제도가 아닌 한 명의 남편과 한 명의 부인으로 하나의 가정을 이룬다는 '부인은 오직 하나(維婦)'라는 뜻이 '유신'이다. 남자가 여자 집으로 장가를 드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남자 집으로 시집을 오게 하는, 당시로 봐서는 혁명적인 제도 개혁이었다. 더구나 사위에게 통치권(왕권0을 넘겨주는 제도에서 자기의 직계손에게 세습하도록 바꾸려고 한 제도 개혁은 기존 모계세력의 엄청난 반대에 부딪히게 된다.
-중략-
순임금이 유신에 실패한 데는 요의 어머니이자 순임금에게는 왕고모인 종규를 주축으로 한 곤의 딸 간적과 그녀의 아들 우, 또 우임금의 부인이자 곤의 딸 사모무, 또 순임금의 딸 사모신 등 모계세력들이 똘똘 뭉쳐 우임금을 내세워 쿠테타를 일으켰기 때문이다. 이들의 배신이 순을 죽음으로 몰아간 것이다.
-하략-
4. 큰 어머니에 의해 왕위에 오른 우
모계의 쿠테타로 임금이 된 우
고조선의 제8대 임금 우(禹 ; 제위 8년, 기원전 2311~2304)는 순전히 왕실 안주인들의 세력에 의해 왕의 자리에 추대된 인물이다. 큰 어머니 종규를 주축으로 모일급부인 사모무(곤의 딸)와 자일급부인인 사모신(순의 딸), 그리고 어머니 간적이 들도 일어나 순임금을 실각시킨다. 기존 모계제를 고수하려는 신농계 여자들의 힘으로 임금자리에 오른 셈이다. 그리고 큰어머니가 시키는 대로 꼭두각시 노릇만 하다 8년만에 신농계 백익에게 임금자리를 내어준다.
-하략-
5.219년 고조선의 종말
억울하게 주살당한 마지막 임금,백익
중국의 역사서에서 아예 빼버려, 없었던 것으로 만들었던 고조선의 마지막 임금 백익(伯益 : 제위 6년, 기원전 2303~2298)은 사방 책봉의 아들이자 우임금의 사위였다. 우임금이 어떻게 해서 실권을 잡은지 8년 만에 백익에게 제위를 넘기게 됐는지는 알 수 없지만 백익 또한 제위 6년만에 우임금의 아들 계(啓)에게 도륙당하고 만다.
-중략-
하나라를 세운 우의 아들, 계
우임금의 아들 계의 쿠테타로 고조선시대는 219년으로 막을 내린다. 제위를 차지한 계는 아이러니컬 하게도 순임금이 실패한 부계 중심의 세습제를 실현시키고 하나라를 태동시킨다. 하나라 이후 왕위는 부계 세습제로 굳어진다. 그래서 황제계인 하왕조는 시조를 우로 모시는 한편 우의 호위신으로 순을 우의 등 뒤에 모셔놓고 등 뒤쪽을 감시케하고 있는 것이다.
이때부터 여자는 '구'처럼 '그윽이 깊은 안방'으로 쫓겨 들어가 삼천 궁녀를 거느려도 투기해서는 안되는 고약한 남자들의 세상살이를 감내해야 되게 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