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를 위해 로마군과 함께 싸웠던 누미디아의 기병, 오리엔트의 궁수, 발레아레스 제도의 투석병.
누미디아 귀족기병은 아주 우수했다. 그들은 한때 한니발을 쫓아 왔지만 높은 귀족계급으로 구성됐던 용사들이다. 낮은 신분의 일반 누미디아 기병보다 더 무거운 갑옷과 장비를 착용했지만 이들과 비슷하게 치고 빠지는 전술을 구사했다. 고관 호위나 돌격도 가능했지만 重기병은 아니었고 장기는 속도와 기동, 정확한 투창이었다.
누미디아에는 왕이나 족장 밑에 귀족계급이 있었다. 주된 지배층은 마실리아인들과 마실리아-누미디아인들이었다. 이들은 유구르타 같은 왕의 호위병으로 전투에 참가했다. 유구르타 전쟁시 오직 왕실호위기병만이 흩어지지 않고 왕의 곁에 있었다는 기록이있다. 리비아어로 GLDGMTK는 50명의 지도자라는 뜻이다. 후에 누미디아왕은 이베리아나 갈리아용병을 호위병으로 고용했다.
궁병으로는 시리아의 하마(Hama)라는 도시 출신의 궁병대는 알아주었다. 폼페이우스도 이들을 활용했고 카이사르도 마찬가지였다. 기병이나 궁수는 기술력을 높이사 인정을 순순히 할만하지만 돌멩이 던지는 투석병은 누구나 손쉽게 하기때문 병사로서 우습게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고대~중세 전쟁에서 원거리 무기라고 하면 활이나 투창 등이 일반적이지만 실제로 투석병은 전세계에 걸쳐 광범위하게 쓰였고 그 휴대성과 단순함 때문에 상상 이상의 파괴력을 자랑했다. 성서에 나오는 꼬마 다윗이 골리앗 성님을 죽인것도 주먹도끼가 아니라, 투석으로 관자놀이에 구멍을 뚫어버린 것이 아닌가. 일반적으로 투석이라고 하면, 단순히 짱돌을 들고 포심 패스트볼 던지듯 던지는 거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전쟁터에서 쓰인 투석의 개념은 조금 다르다.가죽 주머니에 끈을 달아 회전시켜서 날리는 방식이 일반적이다.투석병의 최대 장점은 휴대성이다. 자신의 주무기를 돌돌 구겨서 주머니에 넣고 다니면 그만이니까 더 말할 필요가 없다. 또 탄환의 보급이 99% 현지조달이 가능하다는 점이 엄청난 메리트다. 걍 길가다 떨어진 돌멩이로 적병을 손쉽게 박살낼 수 있었으니까.
고대 아시리아 투석병의 모습.
주로 공성전에서 재미를 봤는데, 적들이 성곽이나 성채 뒤에 짱박혀 있을때에도 곡사가 어려운 화살과는 달리 고각 사격으로 적들에게 무차별 돌비를 쏟아버리는 방법으로 효과가 높았다. 방패가 없는 경보병들에겐 그야말로 끔찍한 투석이었다. 화살이 종특이었던 우리나라에도 투석병들이 존재했는데 석전(石戰)이라는 기록이 고구려에 남아 있고 고려시대에도 석전꾼이라는 전문 투석병이 편제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우리가 잘 아는 유명한 행주대첩에서도 화살이랑 화약이 떨어졌을 떄 조선군들이 사용한 방법이 바로 이 투석이 아니었던가.아줌마, 아이들이 나른 돌멩이를 병사들이 각각 가죽 주머니에 담아 빠르게 돌려서 핑-핑 던져대자 당시 일본군 주력 방패였던 사각 나무방패가 문풍지 뚫리듯 뚫렸버렸다. 이러한 투석병들이 긴급시에 가용 될 수 있었던 건 조선의 연례행사로 <석전>이 있었기 때문이다.
우리 어릴 적 연탄재 던지던 솜씨는 그냥 나온 게 아니다. 매년 각 고을에서 대표 선수들을 모아 경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미친듯이 투석을 날리면서 축제를 즐겼다는 것이 단지 축제만은 아니었던 게 분명하다.마을 사이의 감정싸움으로 번지면서 자비심없이 돌멩이를 난사했던 때가 얼마 전이다. <조선왕조실록>에 석전이라는 기록이 자주 등장하는데 하나같이 임금이 이를 말렸다는 기록 일색이다. 이유인 즉슨 사상자가 너무 많이 발생해서였다. 실제로 북한에서 고구려의 정신을 계승한다고 석전놀이를 복원해서 실행했는데 양 측에서 수십명의 사망, 중상자가 발생해서 취소했다는 이야기도 들려온다.
현재까지 중동에서도 사용되고 있는 투석병사의 모습
투석의 도구인 투석구는 그 종류가 다양한데 가장 일반적인 크기는 투석구를 반으로 접었을 때, 자기 팔 길이 정도가 개인에게 가장 젖절한 투석구라고 한다. 물론 투석구가 길면 길수록 비거리가 늘어나고 짧으면 짧을수록 정확도가 늘어나니 파괴력이랑 정확도 둘 중 하나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총알인 <투석탄환>탄환은 아무거나 날려도 가속도 붙어서 사람 하나 죽이기 별 문제는 없지만 가장 이상적인 모양은 아몬드 모양의 달걀크기라고 한다.단순한 돌멩이라도 시속 140으로 날아갈 경우, 왠만한 돌벽이나 강철도 파괴할 정도로 그 위력이 상당하다.
투석병들이 활에 비해 사거리가 떨어지는 건 사실이지만 로도스 투석병, 발레아레스 투석병들의 전장에서의 '유효사거리'는 200m 이상이었으며. 최대 400m 이상이었다고 전해진다. 한마디로 백병전 직전 적에게 선제타격을 가하기엔 부족함이 없다고 할 수 있다.
투석의 개량버전으로 <표석>이란 게 있는데 (스태프 슬링 이라고도 함) 긴 작대기에 사람 머리통만한 돌을 얹어 던져버리는 무기
사거리는 떨어지지만 수성전에서 방어군이 사용하면 공격군에겐 그야말로 속수무책이었다고 한다. 정약용 선생은 조선군의 표석 탄환이 메주만하다 라는 기록을 남겼고 중세 유럽뿐 아니라 지구촌 어디에서든 불붙은 기름항아리, 대포알, 사석탄 등을 던져 싸웠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다 알고 있다.
200m 이상 떨어진 사람 크기 표적을 자유자재로 맞추는 것은 물론, 철투구를 쓴 사람의 두개골을 으깨고, 청동 정강이받이를 한 장정의 정강이 뼈를 분지른 경우도 다반사였는데 우리나라의 전문 투석병들은 안동과 김해의 투석병들이 그 명성을 떨쳤다고 한다.
임진왜란, 삼포왜란에서 왜놈들에게 무차별 돌팔매를 퍼부은 이 병사들은 국가에서 저술한 병서인 <제승방략>에서 '싸움이 일어날 경우 반드시 챙겨가야 할 병력이다' 라며 극찬할 정도 였으니 투석이라고 단순히 우습게 여길 것은 아니다.
수세기 통털어 알아주는 투석병은 단연 발레아레스 제도의 투석병이다. 발레아레스 제도는 지중해 서부에 있는 스페인령 제도. (영). Balearic Islands. | 행정구역상 스페인의 한 주이자 1983년의 자치법에 따라 설립된 지방이기도 하다. 이 제도는 스페인 본토에서 동쪽으로 80~300㎞ 지점에 걸쳐 있다. 그들은 주로 로마가 용병으로 고용했는데 페르시아, 카르타고 흑형, 갈리아 게르만 야만족들을 상대로 눈부신 활약을 펼쳤다. 오는대로 족족 적 머리통을 겨냥해 부숴 버리는 격이니. 대표적으로 로마군의 갈리아 원정 당시, 발레아레스 투석병들이 동원되었는데 게르만 애들이 방패로 스크럼 치고 언덕에서 내려오질 않아서 투석병 500명이 반나절동안 돌을 난사했다. 그리고는 언덕에서 소식이 감감하여 다음날 언덕으로 올라가보니 수백명의 게르만 전사들이 전부 온몸에 피멍에 골절상으로 신음하는 모습이 발견되었다고 한다.
이들은 매우 이른 나이부터 다양한 종류의 투석기와 발사체를 활용해 훈련하여 장거리 투척전에 능수능란한 경지에 이르렀다. 가벼운 무구 덕분에 빠르고 다른 투석병보다 훨씬 더 정확하고 강력한 이들은 복역할 수 있는 어느 군대에서든 최적의 용병이었다. 여타의 경무장 척후병들과 비교했을 때 경험이 풍부하여 난전에서 지리멸렬한 적들을 효과적으로 사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다른 경무장 보병대와 마찬가지로 기병대에 취약했다.
역사적으로 발레아레스 투석병들은 놀라운 전투 기술로 지중해 전역에서 유명했다. 이 기술로 인하여 카르타고 인들과 로마인들은 가능하다면 언제나 이들을 고용했다. 명성을 가져온 이 기술을 보여주는 좋은 전거는 디오도루스 시쿨루스의 에크노모스 전기(BC 311)이다.
"하지만 하밀카르가 자신의 부대가 밀리고 헬라스 군이 진지로부터 끊임없이 오는 병사들로 보강되고 있는 것을 보고서, 발레아레스에서 온 최소 1천명을 헤아리는 투석병들을 투입했다. 다량의 돌이 억수로 퍼부으니 공격하던 자들 많은 수가 부상했고, 적지 않은 수가 사살되기도 했다. 적 대부분의 방호구가 파괴되었다. 1미나 짜리 돌을 투척하는 데 익숙한 이 군사들이 전투에서 지대한 공을 세우는 동안 이들은 마치 어린 시절 이래로 끊임 없이 해 온 연습을 하는 것 같았다. 이렇게 이들은 헬라스 군을 진지에서 쫓아내어 격파했다.
이들의 무구는 세 개의 투석기로 구성되는데, 하나는 머리에, 다른 하나는 복부에 둘렀고, 마지막 하나는 손에 쥐었다. 이들은 전장에서 어느 투석병보다 더 큰 돌을, 이를테면 노포로 쏜 듯한 위력으로 던졌다. 그리하여 공성전에서는 흉벽의 수비병들을 강타하여 무력화시켰고, 투척전에서는 적의 방패와 투구, 그리고 모든 종류의 방호구를 파괴했다. 그리고 대개의 경우 목표를 결코 빗맞히지 않을 정도로 투척이 정확했는데 이러한 기량을 갖출 수 있었던 원인은 이들이 어린 시절 동안 투석기를 되풀이해서 쓰도록 어머니의 강요로 행해온, 끊임 없는 훈련이다. 풋내기들은 말뚝에 매달린 빵조각을 표적으로 삼아 빵을 맞힐 때까지 먹는 것이 허락되지 않고, 맞히게 되면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 먹을 수 있었다!!"
로도스 투석병(Sphendonetai Rhodioi)도 알아준다.
이들은 역사적으로 가장 유명하고, 헬라스 세계의 상업 최강국 중 하나인 로도스 출신으로 로도스는 고전시대와 헬레니즘 시대 내내 뛰어난 투석병들을 배출하기로 유명했다. 이들과 유사한 병사들이 크세노폰과 함께 원정했고, 필립포스와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서 싸웠으며 로마 패권기에서도 대부분의 주요 강국들에서 용병으로 복무했다. 이들은 대마 및 아마끈과 가죽으로 만든 투석기와 리넨으로 덧댄 흉갑으로 무장한다. 이 갑옷 덕택에 백병전에서도 어느 정도 오래 버텼지만, 이들은 본격적으로 백병전이 시작되기 전에 뒤로 물리는 것이 좋다. 이들의 투석 세례는 적들에게 죽음을 퍼부었고, 사거리는 대부분의 적을 압도했다.
역사적으로 로도스와 여타의 출신 투석병들은 고유의 방식으로 훈련 받아 헬라스와 후계자 군대에서 크게 공을 세웠다. 로도스의 투석병들이 궁사들과 싸워 이길 수 있고, 아마도 기마궁수들이 다가오지 못하게 저지했을 것이라는 사실의 명백한 전거가 크세노폰의 아나바시스이다. 이들은 알렉산드로스의 군대에서도 기계식 활과의 협공으로 후자의 역할을 수행했다. 이후의 헬레니즘 시대, 모든 군세가 이들을 활용했다는 사실은 이들의 효율성의 종말을 가져왔다. 로도스 투석병은 훗날 로마군대에서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후기 시대부터 이들의 자취는 희미해져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