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한 열정>
책은 일찌감치 사놓고 한참 잊고 있다가 오늘에야 이 책을 읽었습니다.
초반부와 마지막 부분이 인상적이어서 올려 봅니다.
초반부
올여름 나는 처음으로 텔레비전에서 포르노 영화를 보았다. 카날 플뤼승네서 방영한 것이었다. 내 텔레비젼에는 디코더가 달려 있지 않아 화면은 흔들리고 대사는 지글거리고 찰랑대는 이상한 소음으로 들려서 마치 끊이지 않고 부드럽게 계속되는 미지의 언어 같았다. 스타킹을 신고 코르셋을 한 어떤 여자의 실루엣과 한 남자의 모습이 흐릿하게 보였다.
<너무 적나라해서 차마 못올리고 중략>
작년 9월 이후로 나는 한 남자를 기다리는 일, 그 사람이 전화를 걸어주거나 내 집에 와주기를 바라는 일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나는 슈퍼마켓에 가고, 영화를 보고, 세탁소에 옷을 맡기러 가고, 책을 읽고, 원고를 손보기도 하면서 전과 다름없이 생활했다. 그러나 오랫동안 몸에 밴 습관이 아니었다면, 그리고 끔찍스럽게 노력하지 않았다면, 이런 일상마저 내게는 불가능했을 것이다. 특히 사람들과 대화를 나눌 때면 내가 완전히 넋을 잃고 사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말이나 문장, 웃음조차도 내 생각이나 의지와는 무관하게 내 입 속에서 저절로 생겨나는 듯했다. 게다가 나는 내가 한 행동, 내가 본 영화, 내가 만난 사람들을 또렷이 기억해낼 수가 없었다. 내 의지나 욕망, 그리고 지적 능력이 개입되어 있는 행동(예측하고, 찬성하고, 반대하고, 결과를 짐작하는)은 오로지 그 남자와 관련된 것뿐이었다.
마지막 부분
어렸을 때 내게 사치라는 것은 모피 코트나 긴 드레스, 혹은 바닷가에 있는 저택 따위를 의미했다. 조금 자라서는 지성적인 삶을 사는 게 사치라고 믿었다. 지금은 생각이 다르다. 한 남자, 혹은 한 여자에게 사랑의 열정을 느끼며 사는 것이 바로 사치가 아닐까.
*****
첫댓글 성애에 관한 소설인가? ㅎ
작가는 202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라고 합니다. 본인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소설이라고 하네요.
담담하고도 섬세한 작가의 감정선을 따라가가다 보니 어느새 마지막장에 닿았던 기억이 떠오르네요.
덕분에 감상합니다~^^
저는 이 작품을 읽으면서 수필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알고 보니 에르노의 소설은 대개가 자신의 체험을 허구화한 작품이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솔직하고도 남김 없는 고백이 인간의 삶에 대한 꿈을 대변해 주었다는 생각으로 노벨상 수상작이 되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소설은 그 시대에는 전위적이라고 할 수 있는 인간의 꿈을 미리 그려보는 점이 문학적 공적이 될 수도 있으니까요.
저는 그리 생각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