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카고 종교대회 (1993년)
시카고 세계종교대회에 연설하는 달라이라마
박승환(시카고 주재기자)
1871년의 대 화재로 말미암아 폐허로 변해 버린 시카고를 재건한 것을 기념하기 위해 1893년에 시카고에서 만국박람회 (Chicago's World Fair, the Columbia Exposition of 1893-1894 *주1 )를 열었는데 이 박람회에서는 200개 분야에 걸친 세계회의를 개최하여 지구상의 국가간의 이해와 화합을 증진시키는데 실질적인 도움을 주었다는 평을 받고 있다. 이 박람회가 주최한 세계회의 중에서도 두고두고 높은 평가를 받고 있는 것이 1893년 9월에 열린 세계종교대회(the World's Parliament of Religions)로서 박람회가 인간의 발달된 물질과 기술문명을 대변했다면 이 종교대회는 인류의 정신적인 발전의 정수를 보여주었다고 하겠다.
1889년 9월에 찰즈 캐롤 보니(Charles Carroll Bonney)라는 시카고에서 활동하는 변호사 제의로 1893년 9월에 열린 세계종교대회는 각 종파의 독선을 초월하고 종교를 위해 인류가 해야 할 일을 추구하지 말고 인류를 위해 종교가 할 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선언과 함께 대단원의 막을 내렸었다. 특히 이 세계종교대회를 통해 불교가 불교 승려들에 의해 처음으로 미국에 공식적으로 소개되었다는 점이 미국에 살고 있는 불교인으로서는 뜻이 깊다 아니할 수 없고 이로 말미암아 올해가 불교의 공식적인 미주전법 100주년이 되는 것이다.
그 당시에 스리랑카에서는 아나가리카 담마팔라스님 (Ven. Anagarika Dharmapda)이 불교에 대한 일반적인 소개를 했고 일본승려로 임제종의 코센 이마카다스님의 법제자인 소엔사쿠(혹은 소엔 코가쿠)스님(1895-1919)이 제자인 다이세쪼 스즈키 박사가 번역해 준 원고로 강연을 해 서구에서 처음으로 선불교를 알리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 소엔 사큐스님의 공로로 올해 4월 15일부터 18일까지 뉴욕주 외 시라큐스(Syracuse)대학에서 미국에서의 선 100주년 기념식(100 Years of Zen America)이 있을 수 있었던 것이다.(*주2)
이 1893년의 세계종교대회의 뜻을 기려 1백주년이 되는 올해 1993년에 8월 28일부터 9월 5일(*주3) 까지 시카고에서 1백주년기념 세계종교대회가 열렸다. 올해의 종교대회가 있기까지에는 1988년에 결성된 준비위원회와 각 종파를 망라하는 125개의 공동후원그룹의 노고가 있었음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이번의 종교대회의 대부분의 행사는 시카고 다운타운의 팔머하우스 힐튼호텔(Palmer House Hilton Hotel)에서 열렸지만 시카고 미술관(Art Institute), 시카고대학( University of Chicago)등지에서도 다양한 행사가 베풀어졌다. 8월 28일에 힐튼호텔의 그랜드 볼룸(Grad Ballroom)에서 역사적인 종교대회의 화려한 개회식을 시작으로 9월 4일에 있었던 시카고의 도심지공원인 그랜트 공원( Grand Park)안에 위치한 페트릴로 음악당(Petrillo Music Shell)에서의 티벳의 승왕이며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달라이 라마의 폐회연설로 일주일에 걸친 대회의 막을 내렸다.
세계의 종교간의 이해와 협력을 증진시키고 상호존중과 포용성으로 다양한 종교를 조화시키는데 기여하고 세계에서 종교의 역할을 평가하고 다가오는 21세기에로 1893년의 세계종교대회의 정신을 끊이지 않고 이어나갈 수 있도록 종교간의 이해를 위한 그룹과 프로그램을 개발해 나가자는 취지를 가진 이번의 종교대회는 불교, 원불교, 기독교(개신교, 카톨릭), 유대교, 바하이교, 힌두교, 자이나교, 회교, 유교, 도교, 조로아스터교 등의 기존 전통종교 이외에도 미국원주민(38개 부족)의 토속신앙, 세계각국의 부족 종교, 네오 페이건(Neo-Pagan) 같은 신흥 종교 등도 선보여 그야말로 세계종교의 백화점을 연출하였다.
이번의 종교대회에는 전세계에서 약 6,000여명의 종교인들이 참가했으며 한국스님과 불교지도자로서는 서울 화계사 조실이며 관음선원(The Kwan Um School of Zen)의 숭산스님, 로스엔젤레스 관음사 주지이며 미국불교도의회(America1 Buddhist Congress)의 공동의장인 도안스님, 시카고 불타사 희주인 홍선스님, 시카고 불심사 주지 법춘스님, 선련사 국제불교운동본부 회주인 삼우스님, 경북 청도 운문사 주지겸 승가대학장인 명성스님, 불타사 주지 홍선스님(후에 승가대학교 교수) 월간 정토 발행인 법륜스님, 시카고 불교연구원 원장인 이장수법사 등이 참가했다. 원불교에서는 시카고 유수일, 뉴욕의 이정옥 교무님과 원광대학교 전팔근 부총장외에 다수의 교무 등이 참가해 아직 세계에 널리 소개되지 않은 원불교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었다.
한국인 기독교 지도자로서는 (National Council of Churches of Christ)의장인 이승만목사, 한국기독교계의 원로이며 크리스천 아카데미 원장인 강원룡 목사 등이 참가했다.
시카고 세계종교대회 행사장면
8월28일 오후 2시 30분에 열린 세계종교대회의 개막식에는 불교지도자의 좌석이 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제일 앞쪽에 배정되어 첫 번째로 입장하였고 입장 시 티벳 불교승려들이 염불하고 악기를 연주해 이주 인상적이었다.
세계 곳곳에서 온 종교지도자들이 입장을 완료했을 때 잠시동안의 입정을 했고 세계종교대회 준비위원회의 집행위원장인 대니엘 고메즈-이바네즈박사( Dr. Danial Gomez Ibanez)가 여러 나라의 언어로 전 세계에서 온 종교지도자들을 환영하는 인사를 했고 이어 세계종교대회의 후원자들의 축하인사가 있었다.
후원자로서 시카고의 태국계 사찰인 앗 달마람(Wat Dhammaram)의 주지이며 미국불교도의회의 부회장인 팡참스님 (Ven. Dr. Chuen Phangcham), 카톨릭의 시카고대교구의 조셉 버나드추기경(His Eminence Joseph Cardinal Bernadin), 바하이 신앙의 월마 엘리스 박사 (Dr. Wilma Ellis), 브라마 쿠마리스교 (Brahma Kumaris)의 시스터 프라티마(sister Pratima), 시크교의 브하이 모힌더 싱 (Bhai Mohinder Singh), 힌두교의 스와미 치타난나(Swami Chidanada), 연합감리교회의 웰든 두에커감독(Bishop R. Sheldon Duecker), 미국 이슬람대학의 에팬 칸박사 (Dr. Irfan Khan), 유대교의 하워드 설킨박사(Dr. Howard Sulkin) 등이 거의 한 목소리로 현재 지구상에는 종교의 이름으로 폭력이 자행되고 있다면서
이는 종교의 근본정신에 위배되리라고 강조하면서 축하의 인사에 대신했다 세계종교대회 준비위원회의 이사장인 데이빗 라메지박사(Dr. David Ramage)는 그 날이 마르틴 루터 킹 목사의 “나에게는 꿈이 있다.(I Have a Dream)”의 연설 30주년 임을 상기시키면서 오늘의 이 모임을 통해 우리의 꿈이 세계에서 살아있기를 기원했고 서로의 존중은 말로써가 아닌 행동으로 보여주어 경험하는 것이라고 역설하며 종교가 상호존중의 본보기를 보여줄 것을 촉구하면서 역사적인 시카고 세계종교대회의 개막을 선포했다.
개막이 선포되자 각기 다른 부족출신인 6명의 아메리카 인디언들이 무대상에서 연기를 피우며 동서남북중앙에 대한 예경의식을 했는데 마치 육방예경의식을 보는 듯 했다. 사실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참가는 뜻깊다 아니할 수 없는데 그 애는 1893년의 세계종교대회가 열리기 3년 전인 1890년에 사우스다코다주의 운디드 니 크헐(Wounded Knee Creek)에서 있었던 백인과 아메리카 인디언들의 마지막 주요 전투에서 150명 이상의 인디언 남자와 부녀자들이 희생되었고 미 정부가 인디언들을 인디언 보호구역으로 내몰고 있던 때라 그 당시의 종교대회당국이 아메리카 인디언들을 초청하지 않았던 뼈아픈 기억이 있기 때문이다.
축원은 8명의 종교지도자들이 나와 해 주었는데 불교계에서는 시카고의 일본계 원로스님인 교메이 구보세스님(Rev. Kyomay Kubose)이 미중서부 불교협의회(Buddhist Council of Midwest) 의 대표로 나왔다. 이 축원을 마침으로써 첫날의 화려했던 개막식은 위층에서 유럽계 미국인들이 유럽에서 전파된 악기로 연주한 바로크음악과 함께 끝이 났다.
세계종교대회는 700여 개의 학술발표, 심포지엄, 영화상연, 공연, 축제 등을 주관했고 각 종교그룹들마다 자기 나름의 프로그램을 가지고 자기들의 종교를 일반인들에게 선보였다. 특히 불교계에서 한국의 숭산스님산하의 관음선원은 9월 3일에 시카고 불타사에서 하루동안의 수련회를 가졌고 9월 4일 오후 4시 30분에서 오후 6시까지는 숭산스님 초청으로 세계의 불교지도자들을 위한 만찬을 시카고의 번화가에 위치한 콩그레스 호텔(Congress Hotel)의 그랜드 파크룸에서 베풀었다.
한국계 불교지도자로는 숭산스님이 “세계일화 (The Whole World is a Singe Flower)라는 제목으로 한국 선불교에 대한 강연을 9월4일에 했고 9월 2일에는 삼우스님이 “불교의 서구화(The Westernization of Buddhism)라는 주제 하에 다른 스님들과 함께 주제발표를 했고 뉴욕 원불교당에서 시무하는 이정옥교무님이 “원불교에서의 여성해방 (Women's Liberation in Won Buddhism)??에 대해 9월 1일 발표했다.
특히 눈길을 끈 것은 불교에 있어서의 여성의 지위와 역할에 관한 논문을 발표한 불교인들이 꽤 눈에 띄었다는 점인데 여성문제가 진지하게 불교계에서도 논의되어야 하겠다는 것을 실감했고 태국 방콕의 탐마샤트대학 (Tammasat University)의 여자교수인 카빌싱교수(Prof. Kabilsingh)가 장로불교(Theravadan Buddhism)의 전통 하에서 비구니 스님들이 그 지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있음에 대해 강력히 비판하는 것을 들었는데 아직 우리나라 불교계도 남방불교권과 오십보 백보의 수준에 있지나 않은지 살펴보아야 하겠고 여성지위 향상과 발맞추어 이 문제가 발전적인 방향으로 토의되어 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했다.
또한 대중불교운동(Socially Engaged Buddhism)이나 현대불교에 대한 논의가 이 대회에서 이루어 진 것도 전통의 아시아불교를 현대와 서구에 접목하려고 하는 이 시점에서 아주 시기 적절한 것이라고 평가되었다. 그리고 환경문제가 이번의 종교대회에서 중요한 이슈중의 하나로 활발하게 논의되었는데 특히 폐회식 때 달라이 라마가 인구조절과 환경보호를 강력히 호소한 것이 아주 인상 깊었다.
이번 종교 대희에는 중동지방을 제외한 아시아의 종교지도자들도 대거 참석했는데 이 현상은 이들이 이미 미국에 자기들의 교세를 확장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고 지금과 같은 많은 아시아계통의 종교를 미국에서 볼 수 있게 된 것도 사실은 알고 보면 1965년의 미이민개정법이 그때까지 억제해 오던 아시안의 이민을 개방했기 때문이라는 점도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이번의 종교대회가 추구하는 2가지 목표는 전세계의 종교지도자들이 모여 지구윤리선언 (The Declaration of a Global Ethic)을 채택하고 종교상의 상호이해기구(Interfaith Organization)를 시카고에 만들고 종교유엔 같은 국제적 조직망을 설립하는 것이었다.
시카고 번화가에 위치하고 있는 시카고 미술관 (Art Institute)에서 종교지도자들이 서명 채택한 지구윤리선언과 그랜트 공원에서의 달라이라마의 연설을 끝으로 막을 내린 이번의 세계종교대희는 종교간의 화합, 정의의 구현, 세계의 평화, 인류의 사랑, 환경의 보호 둥 좋은 미사려구를 늘어놓는 말 잔치에만 끝난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크다. 이번에 채택된 지구윤리선언에 하나님(God)이라는 단어가 화합을 해치는 것이라 하여 들어갈 수 없었기 때문에 유일신을 믿는 종교그룹의 반발이 대단했었다는 점을 볼 때 각 종교간에는 입으로는 사랑과 평화를 외치면서도 지구상에서 서로 자기 세력을 확보하기 위해 어떤 형태의 치열한 전쟁을 하고 있는 것은 아닌 가 하는 생각마저 든다.
과연 종교간의 마음과 마음의 갈등이 없는 진정한 화합은 가능한 것인가? 세계의 평화를 외치는 종교인의 수가 부족해서 폭력과 전쟁이 매일 그치지 않고 난무하고 있는 것인가? 각 종교가 주는 메세지가 과연 어때서 세계의 환경은 피폐해만 가는가? 폐회식의 연설에서 달라이 라마가 했던 말처럼 좋은 말은 쉽지만 실행은 어렵기만 한 것인가?
수 천명의 청중이 운집했던 그랜트 공원에서의 감동적으로 행해진 달라이라마의 연설에서 그는 자기가 불교도이므로 세계의 모든 사람이 불교를 믿었으면 하는 소망을 가지고 있지만 그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일이라고 인정하면서 전세계의 인류가 한 개의 종교로 통일될 수 없기 때문에 서로의 종교를 인정하고 존중하면서 환경문제, 인구의 폭발문제, 인종차별, 폭력, 마약, 전쟁, 기아 등의 세계적인 문제를 상호협력해서 해결해 나가자고 촉구했다. 사실 이점이 많은 한계를 안고 있는 세계의 모든 종교가 나아가야 할 방향이 아닌가 믿는다. 인류와 종교, 이는 참으로 거대한 화두가 아닌가 여겨진다.
*주1: 1880년대 중반서부터 크리스토퍼 컬럼버스가 신대륙을 발견한 4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계 컬럼비아 박람회를 개최하기 위해 뉴욕, 세인트루이스, 시카고의 3개 도시가 경합을 했지만 시카고가 대 화재 이후의 도시 재건을 세계에 알린다는 명분으로 개최권을 미정부로부터 획득했음. 이 박람회에는 우리 나라도 출품을 했었다.
*주2: 미국에서의 “선 100주년 기념회의" 는 본지 37호 (불기 2537년 5월호)에 뉴욕주립대학교 시라큐스캠퍼스 환경임업대학교 박사과정에 재학중인 이추경선생님의 글을 참조하기 바람.
*주3: 공식적인 세계종교대회기간은 1%3년 8월 28일에서 9월 5일까지이나 실제로는 4일의 달라이 라마의 연설로 폐회된 것이나 다름없고 5일에는 어떠한 공식행사도 없고 단지 관광기간으로 설정되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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