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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 명심보감'을 미리 쓸 수 있다면 조금은 더 여유롭고
맛깔스럴 것인데. 가끔은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그런데 생방송이라는 건
그렇게 미리 쓰는 게 아니거든요. 그래서 잘 쓰거나 못 쓰거나.
졸작이거나 수작이거나. 생방송은 당일 분위기 속에서 쓰는 게
글쓰는 이의 도리라고 생각한답니다. 그래서 늘상 완성도가 떨어지기도 하고
아쉽기도 하죠. 하지만 긴장감이나 역동감은 그런 절박함 속에서 작가의
온 몸을 뒤흔들기에, 고통이 7할이고 즐거움이 2-3할 되는 일을 이렇게
세월 깎고 심신을 쭈글이로 만들면서 하고 있나 봅니다.
보통은 이렇게 방송 시작되는 오후 2시 부터 방송중인 2시 30분 까지는
원고지 80장에서 90장을 써야 그날 일과를 마치게 된답니다.
오늘 같은 목요일이나 금요일은 새벽부터
토요일 일요일 방송까지 2시간 짜리 두개, 4시간 방송원고를 쓰는 날은 거의
초죽음 처럼 헤매야 합니다. 오늘 같은 날은 새벽부터 150 여매의 원고를 써야
한숨 돌리니깐요. 혹여 방송작가에 관심이 있는 분들에게는 자그만 팁이 되기도
할 듯 싶고, 이런 엄살도 슬쩍 떨면서 방송 뒷 이야기도 해드리는 게 '아하, 방송이란 게
그렇게 기획되고 쓰고 스튜디오에서 진행자를 통해 전달되는 것이구나.' 이해도 하게
될 것이니깐요. 그렇습니다. 생방이란 원래 그런 긴박감. 절박한 시간 싸움과
아이디어 싸움, 또는 기술력과 노하우, 그리고 시사의 눈을 찾아 꽁트로 전개하고
스토리를 만들거나 생활 속 이야기를 해학으로 재구성하는 싸움이기도 해서
그런대로 처절하고 뜨거운 맛이 있는 거랍니다.
81년 KBS TV로 입문해서 이날까지 이렇게 방송작가로 살았구요.
오늘 주제설정 이야기 하려다 옆길로 빠졌군요. 오늘 <신 명심보감> 주제를 뭘로 잡을까?
4분짜라 코너지만 원전 확인하고 번역 확인하고 스토리화 과정 잡으려면
꽤나 시간이 걸리는 일인데. 꼭 그날 주제를 그날 잡는다는 게 생방의 묘미이면서
고통이라는 점 이야기 하려다. 여기까지 왔습니다. 오늘은 '애간장'으로 잡았습니다.
왜냐구요. 투표는 끝났고, 어제 오늘 '애간장 태울 사람'이 너무 많았을 테니깐요.
예전에 애간장 태운 인물들이 주마등 처럼 스쳐 갔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물어봤죠.
<과연 오늘 투표 이후에 애간장 끊어질 사람은 옛 사람만치 아팠던 걸까?>
그리고 각각 다른 애간장 세가지를 이야기 삼아 엮어 봤습니다. 물론 애간장 녹는 사연은
저 갠지스강 모래알 처럼, 밤 하늘에 은하수 만치 많이 널렸겠지만 그 가운데 세가지만
골라봤답니다. 먼저 방송글 보시고 그 세사람이 말한 애간장 타던 사연 살짝 엿보고 갈까 합니다.
♣ 고전코너 ‘신 명심보감 ---단장고사, 애간장 타는 사람들 ’
놀보 이 시간은 마음을 밝혀줄 보배로운 거울같은 ‘명심보감’을
새롭게 풀어보는 ‘신 명심보감’ 자리입니다.
초란 고전 속에 오늘과 내일을 생각하며 마음에 양식을 쌓아보는
‘신 명심보감!’ 오늘은 고전 속에 어떤 구절인가요?
놀보 애간장 탄다는 말은 지금도 자주 쓰는 말이잖아요.
초란 왜 애간장인지. 알겠네요. 어제 오늘 사이 애간장 무지 탄
사람들 많잖아요.
놀보 초란이 겁나 늘었소. 그럼 창자가 아홉구비로 꼬였더란 말
들어는 봤습니까?
초란 창자가 한구비도 아니고 아홉구비로 꼬였다니 아이고
상상만해도 배가 아프려고 하네요. 누가 그런 고통을?
놀보 사기라는 역사서를 남긴 사마천이 소신껏 말한 벌로
궁형을 당하고도 사기를 완성하기 위해 살아 남았거든요.
그때 심정이 창자가 아홉구비로 꼬인다. 해서 <수장구회>
란 말을 남겼거든요. (愁腸九回)
초란 황제에게 소신발언한 벌로 궁형을 당해서 살다보니
장이 아홉 번 꼬이는 고통이라. 근데 궁형이 뭐래요?
놀보 그거 당하면 남자가 남자 아니거든요. 아 웃지 마서요.
사마천 개인에겐 얼마나 치욕스럽겠습니까. 그런데
역사서, <사기>를 완성해야겠다 이를 꾹 악물고 살아
마침내 그의 손으로 역사를 기록해 남겼던 겁니다.
초란 그러니깐 ‘수장구회’라고 하면 참으로 참고 인내하기
힘든 고통, 애간장이 녹는 고통을 말하는 것이군요.
맞잖아요. 요즘 ‘수장구회’로 끙끙 앓으실 분들 오
놀보 오세요. 그냥 요즘 이야기 접어두고 오세요. 자 그런데
사마천의 애간장은 장부의 치욕을 참으며 거룩한 대업을
이루려는 의지가 이겨낸 것이라 별과 같은 고통인데
여기 이 애간장 타는 사연은 참으로 인간적이거든요.
초란 우리 놀보씨 널뛰기는 정신이 없대니깐요. 어디로 뛰려고
어라. 이건 고려말 조선초 문신 목은 이색의 시잖아요.
제목이 바로 창자 장자를 운자로 썼다 했으니,
아주 창자 꼬이고 아픈 애간장 타는 사연 드러내겠단건가?
놀보 모두 다 감상하려면 시간 걸리니깐. 이 구절 보세요.
(낭송) 호주 자사 같이 애간장 다 끊어졌어라 / 斷盡湖州刺史腸
푸른 그늘 가지 밖에 석양이 지려 하네 / 綠陰枝外欲殘陽
초란 고려를 지키려던 목은 이색이 현재 자신의 애간장 타는
정도를 호주 자사에 비유했군요. 그럼 호주자사는 누구?
놀보 당나라 시인 두목은 우리 판소리 사설에도 자주
등장한 시인인데요. 두목이 젊은 시절 호주자사로 있는
친구를 만나러 갔다 열두어살 된 아름다운 소녀를 보고
반해서 10년만 기다려 달라. 10년뒤에 출세해서 널
찾겠다. 근데 14년만에 갔더니 3년 전에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더란겁니다. 그 시인이 얼마나 애간장
탔겠습니까?
초란 계산을 해보면 약속한 10년에서 1년 더 기다려 주고
결혼한거네요. 남자가 한입가지고 세상에 출세를 하려면
약속대로 10년 안에 할 것이지. 그래 뭐랬대요?
놀보(낭송) 그때 이쁜꽃 비바람에 다 떨어지고, 녹음 속에 주렁주렁
자손열매 무성하구려! ‘ 그 애간장 어땟겠어요.
초란 유행가 한구절 ♬때는 늦으으리이~~ 아 참 요즘
그래 저래 애간장 타시는 분들 많으신데 미안합니다앙.
놀보 과연 지금 타는 애간장이 사마천 애간장인지.
두목의 애간장인지. 궁금합니다.
초란 오늘 ‘신 명심보감’ ‘수장구회’에 대한 고전 자료는, 인터넷
‘다음 카페’ ‘우사모’로 들어가셔서 참고해 보시구요.
놀보 좋은 자료나 담론은 ‘우사모’ 카페에서 계속하도록 하겠습니다.
음악3 ‘
얼마전 한무제 이야기를 했던 게 생각난다. 세계 장수 황제 3위 장장 54년간 서한시대를 열었던
한무제 시대 동방의 역사정신을 선양했던 한 인물이 바로 <史記>의 저자 사마천(司馬遷)이다.
너무나 잘 알려진 이야기라서 식상하기도 할 것이다. 그는 흉노족을 치러 갔다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다 흉노족에 잡힌 이릉李陵을 변호 하다 한무제의 분노를 사서 사형을 언도 받았다.
그때 사형에서 벗어나려면 '허리 밑을 자르던가' '50만전이란 천문학적 벌금을 내던가'
그도 저도 못하겠으면 마지막 남은게 남자 생식기를 잘라내는 '궁형'을 받아야 했다.
사마천은 다리 없는 몸으로 살아 남기도. 그렇다고 50만전이란 거액을 낼 수도 없었다.
그래서 남성을 포기 하기로 했다. (부형腐刑이라고도 했는데 상처 부위에서 썩은 냄새가 난다고
썩은내 참형이란 뜻으로 부형이라고도했다) 그런 치욕을 당한 이후 사마천은 자신이 살아야 할
이유에 대해 오직 필생의 목표였던 '사기'를 완성하는 일. 그때문에 이를 질끈 악물고
만 천하에 드러난 사내가 아니란 눈총과 내시 아닌 내시 대접을 받아야 했다. 그때 나이가
40전후 였으니, 한창 일 할 나이에 몸으로 느낄만한 일도 많고 누릴 일도 많았을 그 찬란한
지식인의 40대를 그런 치욕으로 살기 시작했으니, 하루 하루가 어떻겠는가?
그래서 그는 그 시절 자신에 대해 '수장구회'라 말하기도 했다. 愁腸九回
하루에도 창자가 아홉번씩이나 뒤틀리는 고통을 참고 살았다는 소리다 어찌 아홉번만 장이
꼬였을까. 수도 없이 꼬이고 뒤틀리고 끊어지는 아픔을 참아야 했을 것이다.
자 그렇다면 오늘날 투표 이후에 애간장 타는 사람은 과연 사마천 같은 고뇌의 등짐을 짊어
지기라도 했던가? 사마천 만큼 목숨과 바꿀 정의로운 목표를 가지기라도 했던 걸까?
정답은 여러분의 것이니 따로 말할 게 뭐 있겠는가?
두번째 애간장 타는 사연은 나라와 겨레를 위해 역사와 정의를 위해 아홉번 창자 끊어지는
애간장이 아니라 그 흔하디 흔한 사랑 때문에 애간장 끊어진 한 시인을 말하려고 한다.
당나라 말기 대표적인 시인 두목(杜牧-杜牧之)은 시풍이 호탕하고 영리한 끼가 철철 넘쳐
흐르면서도 고매함이 있어서 가히 두보와 견줄만 하다 해서 소두(小杜)라고 칭했던 시인이다.
그가 남긴 '아방궁부'란 시에 보면 참 멋진 한구절이 있는데 '진시황의 진나라는 천하가
망하게 한게 아니라 진나라가 망하게 했다' 는 탁월한 해석이 기억난다.
그 호방하고 영매한 두목이 청년시절 호주자사湖州刺史를 지낸 친구를 찾아 갔다고 한다.
친구는 일찍 출세해서 벌써 도지사급 자사에 올랐는데, 두목지는 출세한 친구 찾아 가서
나라고 이대로 묻힐 소냐 이를 갈아도 보고, 출세한 친구 덕택에 질탕하게 시와 풍류로
놀아도 보고, 그 사이에 열두어살 먹은 이쁜 소녀를 봤는데 조숙했던가 보다.
이쁘기도 이쁘거니와 품성이 자기 스타일이었던지. 그 아름다운 소녀랑 정든 사이 내놓고
약속을 했다고 한다. '10년만 기다려 주거라. 반드시 너를 데리러 오겠다' 그 한마디 해놓고
호주를 떠난 뒤 14년만에야 찾았다고 한다. 헌데 3년 전에 결혼해서 아들 딸 잘 낳고 살더란다.
가슴 미어지는 두목지. 여인은 10년 하고 1년 더 기다리다 시집을 갔던거다. 출세 좀 빨리 하던가
11년째에라도 달려와 3년만 참아 달라고 사정하던가 하지. 그 타는 애간장을 식히면서
이렇게 노래했다고 한다.
'꽃을 찾은 게 너무 늦었구나. 왕년엔 일찍이 피기 전 꽃을 보았었지.
이제 거센 바람에 꽃은 낭자히 떨어지고, 푸른 잎새 그늘 이루고 열매가 주렁주렁하구나.
[自恨尋芳到已遲 往年曾見未開時 如今風擺花狼藉 綠葉成陰子滿枝]
때는 늦으리. 참으로 때는 늦고야 말았다. 겨우 출세 좀 했노라 하며 14년 만에 달려가서
이미 남의 여자가 돼 버린 자식 껴안고 있는 꼴을 보고 돌아서며, 두목지 타는 애간장이 오죽했을까?
사마천의 애간장과 두목지 애간장을 대비 시킨 것은 미래가 남아 있어 타는 애간장과
내일 자체가 없어 타는 애간장의 불맛이 다를 것이라는 생각에 대비해 본 거다.
사마천은 그래도 자신이 쓰고 남겨야 할 '사기'란 연인보다 뜨겁게 사랑하는 정의로운
님이 내일 또 내일 기다리고 있었다. 그래서 그의 타는 애간장은 견딜만 했을게다.
하지만 이미 남의 남자 품속으로 날아가 버린 두목지 연인은 서로에게 내일이 없는
타는 애간장이니 오죽 뜨겁고 가슴 에이었을까?
생각해 보니 중국에서만 놀면 고전 공부하는 자들 사대주의 여전하다. 핀잔 줄까 싶어.
고개를 우리 동방으로 돌려봤다. 우리네 역사에 그 많은 인물 중에 타는 애간장 사연
얼마나 많았던가. 그런데 조금은 예술적으로 타는 애간장을 생각해 봤다.
우국충정으로 타는 애간장. 로맨스로 타는 애간장도 다 거기서 거기 사이 이야기다.
그래서 평양감사 가던 길에 황진이 무덤에 술잔 올리고 시 한수 바쳤다는
풍류남아 백호 임제(林悌) 패강곡(浿江曲) 10 수 가운데
한수로 우리네 눈부신 봄날 타는 애간장 속 들여다 보자.
대동강변 소녀들 봄볕 밟고 오가는데 / 浿江兒女踏春陽
어느 곳 봄볕인들 애간장 안 끊어질까 / 何處春陽不斷腸
끝없이 내리는 저 햇살로 베를 짤 수만 있다면 / 無限煙絲若可織
님을 위해 한땀한땀 춤옷 만들어 주련마는 / 爲君裁作舞衣裳
이건 그림과 함께 봐야 절창이란 걸 알텐데. 아니 그날 그때
임제랑 같이 봄햇살 쏟아지는 대동강변 사이로 재잘거리며
나들이 나온 봄처녀들을 봤어야 그 눈부신 터질듯한 생기와
넘치는 정감에 봄햇살마저 애간장이 타들어가서 조금만 더
너를 보자, 아니 네 몸이라도 더듬자며 내리고 또 내렸던
애간장 타는 햇살, 아 임제의 가슴이 그보다 더 타고 들었으련만
임제는 오히려 봄햇살을 질투하고 있잖은가. 나는 봉실 봉싯
터질듯한 봄처녀를 떨어져 보기도 숨이 찬데, 햇살은 봄처녀
목덜미로 하얗게 웃는 치아에까지 촉촉히 젖어 흘러내릴 듯한
붉은 입술까지 반짝이며 덤벼 들고 있다니. 그래 그래 할 수만 있다면
날마다 내 님의 목덜미에 입술에 노닐수만 있다면 저 애간장 타는
봄햇살로 베를 짜서 내 정을 바늘에 실어 한땀 한땀 춤옷이라도
만들어 전해 주는 봄사내이고 싶다는 임제의 노래가락.
난 이땅에 이렇게 멋진 선대 예인이 있었다는 게, 그래서 오늘은
방송글 쓴 이후 내내 즐겁고 설레고 조금은 서두르기까지 했다.
아마도 어려운 말 쓰기 좋아하는 분들은 이 대목을 꽤나
장황하게 미학적으로 철학적으로 또는 갖가지 비유로 치장께나 했을게다.
난 그냥 오늘 만난 우리의 백호 임제 그 양반에 반해서
여기까지 달려 온 모양이다. 그러면서 물어 본다.
아직도 난 저 봄햇살로 베를 짜서 우리님 춤옷을 지어주고 싶은
열정이 남아 있는 것일까?
이제 강남가는 제비들에게 올해 부른 봄노래를
내년에도 우리님께 다시 들려 달라 뜬구름편지라도 보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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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역쉬! 가을은 남자들이 바람나는 계절이 분명쿠나.
봄엔 여자들이 바람나서 들로 산으로 쏘다니고.... 임제의 느낌대로라면 엉큼한 봄햇살!
에라~! 그래 실컷 눈요기나 해라하는 맘으로 애간장 태우게 약만 살살 올리며 저만치서
모른척 실눈뜨고 끼리끼리 뭉쳐서 깔깔깔..... 이제 갓 봉오리진 그야말로 처녀들 모습.
다 흘러가버렸는데 가슴 어디에 타다 만 숯불이 남아 있으려고?
사마천의 숭고한 신념에는 그저 옷깃을 여밀 뿐, 두목의 단장성의 시심은
안타까움이 천년을 두고 남자들 마음을 시리게 하고.... 하지만 가장 아름답고 로맨틱한 애간장은
역시나 임백호의 시에서 느껴지는군요. 얼마나 아기자기한 단장성인지.....!
"수장구회" 감히 어떤이가 이런감정을 느낄만끔 처절하게 인생을 살아갈수 있겠나요
쑥대머리에 나오죠
목숨은 풍전등화인데 님이 얼마나 보고싶었으면
간장의 썩은 눈물로 임에 화상을 그려본다고
사마천이 느꼈을 치욕과 높은 뜻으ㅡㅡㅡㅡㄹ 기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