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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과 공생하는 유토피아: 셸링, 블로흐, 아나키즘의 생태사유
조영준, 역락, 2022, P.187.
이 저술은 셸링의 작품들을 통해 그의 고유한 사상을 들여다 볼 수 있게 소개되어 있고, 그리고 그의 사상을 통해 생태론적 관점을 전개할 수 있는 길들을 서술해 놓았다. 아마도 우리 땅에서 셸링의 저술을 관통하여 일목요연하게 설명하는 책으로서는 처음일 것이다. 게다가 셸링의 자연관에서, 질료의 주관성에서 아나키즘적 요소를 끌어내어 아나키즘의 생태학과 연결시키려는 시도는 흥미롭다. 이 책에서 다양하게 인용되는 자연주의적 태도의 철학자들을 보면, 저자의 독서 지평이 넓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럼에도 인용된 사상가들이 자연주의적이라고 하더라도, 물리화학적 조직화의 견해로 보이는데, 생태학적 연관으로 연결짓는 데는 좀 더 성찰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프리고진과 마수미 등을 끌어들인다면, 관념적 자연학과 다른 계열에 대해(의식과 기억에 대해) 생각해 볼 여분을 제시하는 쪽이 좋았을 것이다.
셸링의 사유가 헤겔의 사고에 반대편에 있다고 하지만, 나로서는 적대적 공생관계처럼 읽힌다. 왜냐하면 하늘과 땅의 관계는 고대로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안에서 설명하든 밖에서 해석하든, 같은 정태적 도식, 관념체계 범주에 있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저자는 셸링의 체계는 기계론적 정역학과 달리 동력학적 유기체론이라고 대립적 관계로 설명하고 있다. 그의 유기체론이 하늘과 땅(페라스와 아페이론)의 관계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당대의 열역학과 전자기학을 수용하지 않았고, 스피노자나 라이프니츠가 사고하였듯이 전체적 통일성을, 힘의 보존법칙이든 운동량보존의 법칙이든 통일적인 단위를, 전제로 하기 때문이리라. 열역학과 전자기학에서는 전체적으로 하나 통일성이라는 것이 부정되고, 이질적 총체성 또는 이질적 확장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이다. 이상하게 다윈이 종을 설명하면서도 목적론적으로 통일성으로 설명하려고 하였듯이, 셸링이 전개한 유기체적 전체성도 그와 닮은 통일성의 동일성을 인정하고 있다. - 아마도 원자론적 관념연합의 변형으로 조직화를 생각한 것이 아닌가한다. - 셸링이 이런 체계를 세운 시기가 19세기 중엽에 열역학과 전자기학이 제기되기 이전이라는 점을 감안해야 할 것같다. 한 가지 덧붙이면 하늘과 땅(페라스와 아페이론, 정지와 운동)의 관점은 고대에서 근대에 이르기까지 영혼과 신체의 문제에 대한 고민을 투영한 것으로 읽어보면 쉽게 보일 것이다. 영혼은 통일되거나 완성되었고, 이미 만들어진 어떤 것으로 주어진 것으로 여기는 것은 진화론과 유전학이 도래하기 이전의 사유이기 때문이다.
이 저술은 ‘자연과 물질’에 대한 고대 그리스적 사유의 근원에서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근대의 자연과학의 발달에서 인간이 자연 또는 세계를 대하는 태도에서 오는 문제점을 제기한다. 다시 말하면, 근대 철학의 기본 태도에서 자연을 다루는 것을 물리학(physique)이라 하는데, 근대 물리학의 개념은 고대의 자연학(phusis)의 개념에서부터 출발하여, 하늘과 땅 사이에 운동의 상대성을 인정하는 갈릴레이에서 부터이다. 철학은 이 시점에서 자연을 대상으로 삼았을 때, 자연의 상대성에 대한 양면성을 인정하듯이, 정신과 물질 또는 영혼과 신체라는 이원성도 마찬가지로 정립 또는 구성될 것으로 착각하는 시기였다. 그럼에도 칸트와 피히테의 영향으로 정신 또는 오성(의식, 그들의 표현으로 이성)이 자연에 대한 지식(인식)을 정립하고 확보할 수 있다는 자신감에 젖어있다. 자연이 또는 딩안지히(Ding an sich)가 오성의 형식 속에 들어오지 않으면, 피히테처럼 비아에 대한 투쟁으로 복속시키려고 해보고, 그래도 잘 안되면, 헤겔처럼 변증법적으로 부정을 긍정으로, 부정의 부정을 긍정으로 단계를 높여가면서 통일성을 구축하려 하였다. 아미도 셸링이 보기에 변증법적 구축이 무리한 사유라는 것이고, 물질계 또는 자연이 그 자체의 통일성을 이룰 수 있는 능력(포텐츠든 역동성이든)을 자연내부에 부여할 수밖에 없다는 쪽으로 사유한 것으로 보인다. 그 통일성 속에 완성된 통일성과 다른 주체가 있다고 한다면, 양쪽의 통일성과 주체는 거울을 마주보는 것과 같다는 해석이 가능해질 것이고, 스피노자의 두 속성을 평행적으로 해석하는 견해를 끌어들일 수밖에 없을 것이며, 게다가 비추어본다는 것은 미세한 물체도 전체와 연관을 지어서 설명할 수밖에 없을 때 라이프니츠를 끌어들일 것이다. 물론 저자가 나처럼 이렇게 설명한 것은 아니지만, 셸링이 사변적이라는 점에 대해 저자는 서술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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셸링이 플로티노스에 관한 언급이 있는지, 그런데 ‘프랑위키’나 ‘독일위키’에서 셸링의 항목에는 플로티노스의 언급이 없다. 그럼에도 세계를 전체(holistische)로 보는 것이나, ‘세계영혼(Weltseele)’에 관한 글을 쓰는 것으로 보아 플로티노스의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런 영향이 스피노자의 독해에서 또는 예나의 분위기에서 온 것일 수 있을 것이다. 자기원인이라는 점에서는 스피노자의 영향일 것이고, 그리고 자연과 인간에 대해 전체와 부분에 관계로서 보는 시각은 분명하게 라이프니츠의 영향일 것인데, 저자는 칸트의 자연개념에서 피히테의 대상으로서 자연으로 전환에서, 셸링이 자연을 주체로서 파악하는 관점으로 방향전환으로 설명한다. 주체와 대상이라는 이원론적 구별을 그대로 두고서, 주체라는 성격(특성)을 인간에게 보다 자연 쪽으로 옮기는 것은 셸링의 유기체론의 장점일 수 있다. 게다가 셸링이 유기체에게 자기 재생산을 부여하여 원인관념을 넣어서 설명하는 것은 스피노자의 자연 즉 신을 아리스토텔레스적 방향에 서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소크라테스이전의 자연의 개념(아르케와 질료)을 수용하되, 그는 자연을 유기적(조직적) 자기 재생산의 주체로서 관념화하여 ‘사변적 자연학’이라 한다. 그럼에도 셸링은 관념론이 아니라 실재론이라 한다. 저자는 사변적이라는 의미에서 셸링을 관념론 철학자로 부르기도 하고, 유기체적 사유를 했다는 점에서는 실재론이라 부르기도 한다. “스스로 원인이자 결과인 자기 재생산의순환적 인과형태는 유기체 조직의 근본적인, 즉 첫째 특징을 이룬다.” 유기적 조직을 순환적 인과로서 사고하는 것은 아마도 원자론적 관념들의 연합의 영향으로 보인다.
아마도 당대의 사변적 이원성은 독일(계몽기 말기와 낭만주의 초기)이 고대 그리스철학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에 들어서지 못했던 것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1768–1834)에서부터 고전문헌을 시작했다고 하더라도 젤러(Zeller 1814-1908)에서야 깊이 있게 다루었다고 할 수 있다. 그 젤러에게도 플로티노스의 연구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저술을 읽다가 보면, 셸링이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의 영향을 받은 것은 분명한데 플라톤과 플로티노스의 관점에는 서술하지 않았다.
셸링의 작업상, 방대한 저술의 내용에는 플로티노스의 이야기 있을 것 같은데, 왜냐하면 세계영혼에 관하여(Von der Weltseele, 1798)(SW I/2, 345-583)의 주제가 정신이 아니라 영혼일 것이고, 이 책의 내용의 쪽수도 만만찮게 길기 때문이다. 만일 이 내용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혼론을 다루었다면, 기독교의 영향에 있을 것이고 슐라이에르마허의 영향 속에 있을 것이다. 다른 측면도 있을 것이다.
고대의 영향이 아니더라도 저자는 셸링을 통해서, 자연의 인식적 대상으로 삼는 시기를 지나 인간의 능력이 자연 속에서 스스로 길을 찾아갈 수 있다는 점을 드러냈다. 그래서 셸링작품 속에서 인간이 자연 생태 안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갈 수 있음을, 새로운 공동체를 만들 수 있음을 드러내고 했다. 인간, 지구온난화와 코로나바이러스를 겪으면서, 자연과 함게 살아갈 수 있는 공동체를 만들 수 있는지가 현재로서는 시험대에 올라와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닐 것이다. 인간이 자기중심의 이기심에서 벗어나, 또한 구성적이고 구축적인 이론 체계에서 벗어나, 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 이다. 인류는 싯달다가 말했듯이 탐만치(貪慢癡)를 버리고, 무소의 뿔처럼 나아가는 지혜를 발휘할 때 이다.
(55UKF)
* 목차
제1장 현대문명의 위기와 생태학적 세계관
제2장 근대적 자연 이해: 자연에 대한 지배
제3장 주체로서의 자연이해: 셸링의 자연철학
제4장 유기체적-전체론적 자연관
제5장 인간과 자연의 통일
제6장 인간과 자연의 공생
제7장 자연과의 연대와 제휴기술: 블로흐의 기술철학
제8장 대안 사회와 생태유토피아
주석 / 참고문헌 / 용어 해설
# 자연과 공생하는 유토피아: 셸링, 블로흐, 아나키즘의 생태사유, 2022
* 들어가며: 우리는 지금 어디로 가고 있는가? 5
여기서 최선의 출발점이 된 사상은 자연 개념에 있어서 “주체로서 자연”이라는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셸링의 자연철학’과 그 연장선에서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블로흐의 기술철학’ 그리고 환경문제의 실천적 해법으로 국가주의적 패러다임을 비판하며 지역공동체의 자율성을 강조하는 ‘생태아나키즘’이었다. (6)
제1장 현대문명의 위기와 생태학적 세계관 15
생태위기의 근저에는 자연을 인간의 욕구 충족 대상으로 파악하여 그것에 어떠한 고유성을 인정하지 않고 단순히 죽은 물질로 간주하는 기계론적 세계관과 인간을 생태계의 중심으로 생각하는 인간중심적 세계관이 깔려 있다. (19)
셸링의 자연철학은 ... 그는 기계론적 자연관에 반하여 자연을 하나의 살아있는 주체이자 거대한 유기체로 파악함으로써, 인간과 자연을 화해하고 통일할 수 있는 새로운 사유 모델을 제시하고 있다. (21)
[자연(physis) - 자연(nature)의 특성과 본성(arche)에 대한 탐구는 탈레스부터이다. 앵글로색슨의 사고에는 그리스적 탐험이 부족하다.]
제2장 근대적 자연이해: 자연에 대한 지배 23
1. 베이컨과 과학기술 유토피아/ 2.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
한편, 베이컨은 기존의 학문적 전통(연역법)과 완전히 결별하는 학문의 새로운 방법으로서 귀납법을 제창한다. (30) [귀납의 방법이 사물의 대상에 한정하지 않고 인간적 삶의 영역에 확장되기까지는 시간이 필요했다. 흄이 문화적 영역에서 귀납적 사유를 하였고, 라슐리에가 인간 활동의 영역으로 확장시키는 시기에 와서야, 귀납이 연역과 달리 삶의 총체를 다룬다는 것을 깨닫고 인류학, 역사학, 정치경제학 등이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데카르트처럼 자연을 연장(res extensa)이라는 기하학적 관념에 귀속시키고 인간을 사유(res cogitans)하는 존재로만 파악한다면, 이것은 결국 인간과 자연 양자에 대한 적대적 상황을 초래하게 된다. 그는 인간의 주체성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정신과 신체를 대립시켜 신체를 포함한 물질세계를 ‘탈 정신화’한다. (35) [하늘과 땅의 비대칭을 갈릴레이의 영향으로 정신과 물질의 상대적 관계로 전환에서, 영혼과 신체는 별개인 것으로 보았다. 그럼에도 이 둘을 연결하려는 시도는 데카르트의 중요한 과제였다. 데카르트는 관념적 연장과 달리 물질적 너비(étendue)의 용어를 사용함으로써 신체가 질료와 같은 역할을 하는 것으로 보았다. 이 질료 또는 신체 속에서 영혼의 생성을 구해내지 않고서, 관념을 다루는 정신의 역할에서 영혼을 능력을 부여하려는 오류를 범한다. 물체를 요소적으로 다루는 정신(오성)은 논리적 추론의 역할을 하는 것이지, 신체의 삶과 인식을 추론처럼 상대적으로 다루기에 신체의 본성인 물질을 다루지 못한다. 여기에서 데카르트는 영혼이 신체에 개입하는 것(송과선)으로 설명하려 하였다. 그 영혼이 자연(질료)의 변형과 생성으로 발전적 과정을 겪는 것으로 인식하지 못하여, 영혼의 능력을 오성처럼 작용하는 것으로 생각했으나, 정념에 관한 한 오성의 능력과 별개인 것으로 생각하기에 이르렀지만,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하고 생을 마감하였다. - 데카르트는 자연(physis)을 물리학의 일부로만 여기지 않았고, 생명(영혼)있는 현존에게 본성(nature)에도 속하는 것임을 인정하며, 의식의 너비(étendue)는 사고(오성)의 연장(extension)과 다른 차원으로 보았다. 영혼과 신체의 상관관계를 정신과 물질의 이원적 대립처럼 보게 되면 오해가 있을 수 있다. 데카르트는 물질 또는 신체가 자율성까지는 아니라도 정신(오성)과는 다른 차원에서 활동적임을 인정하였기에 정신과 물질의 이원론이라 한다. 즉 두 개의 원리 또는 이유(raison, 근거)가 있다. (55TMJ)]
제3장 주체로서의 자연이해: 셸링의 자연철학 43.
“자연은 그 실재성을 스스로 가진다. […]
자연은 스스로 조직화되고,
또 스스로 조직화하는 전체이다.”
셸링, 자연철학 체계의 제1기획(1799) (45)
1. 기계론적 자연관 비판 45 / 2. 인간중심주의적 자연관 비판
3. 주체로서의 자연 / 4. 자연의 주체성과 생산성
독일 관념론의 대표자 셸링은 서양 철학사에서 어느 누구보다도 인간의 주체성을 절대화하는 사고방식의 위험에 주목하고 자연에 고유한 가치와 주체성을 부여한 사상가로서 오늘날 생태위기의 시대에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47) [주체성이 있다고 생각하는 쪽은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를 범한다.]
자연철학과 개선된 피히테 학설의 참된 괌계에 대한 해명(Darlegung Des Wahren Verhaltnisses Der Naturphilosophie Zu Der Verbesserten Fichteschen Lehre, 1806?)에서 .. “나는 여기서 시대와 관련해서 {사람들이 생각하는} 나의 주요 오류는 본래 내가 자연을 기계적이 아니라 역동적으로 고찰한다는 사실에 근거하고 있다는 것을 언급하고자 한다... 따라서 자연철학에 대한 지배적인 철학의 싸움은 근본적으로 동역학(Dynamik)에 대한 [정]역학(Mechnik)의 싸움이기 때문에 ... ” (SW/I/7, 103: {}안 글쓴이) [모든 글에서 [] 안의 글은 천야의 생각이다.] (49) [데카르트의 정역학과 라이프니츠의 동역학의 문제는 우주(세계)의 힘(에너지)이 일정하다는 근거위에 있다. - 열역학의 이해없이 전개된 자연철학은 자연(물리학)을 지칭하는 것이고, 생명에 관한 논의는 1824년 사디 카르노에서 제기되고, 1865년 클라우지우스에서야 설명되기에 셸링은 이를 몰랐다.]
셸링은 자연을 그 전체와의 유기적 관련 속에서 스스로 생성하고 조직하는 하나의 유기체(Organismus)로 간주한다. 따라서 셸링에 있어 자연은 독일의 동시대 철학자 칸트나 피히테에서처럼 자아의 일방적으로 구성되거나 산출되는 대상이 아니라 그 자체에 내재된 대립적 경향(양극성, 이원성)을 통해서 끊임없이 스스로를 생성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셸링의 자연 개념은 자연을 자아의 형식적 구성물로 보는 관념론(Idealismus)의 입장이 아니라, 전체로서 자연의 선재성을 근거로 하는 실재론(Realismus)의 입장에서 그 전모가 드러난다. 왜냐하면 셸링에게 있어 자연은 그 생산적 현실연관에서 통일적으로 파악되는 것이지 우리 인식에 의해 구성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50-51) [데카르트에서 독일관념론에 이르기까지 자연(물리학)의 관점은 우주의 통일성을 선전제로 하고 있다. 이에 비해 열역학과 전자기학 이후에 생명은 이런 통일성과 달리 자연의 이질성의 혼성으로 간주하기 시작한다. 어떤 계열이 나올지 알지 못한다는 점에서, 자연은 비결정성이고 비규정성이며, 아나르키적이다. 이를 들뢰즈가 벩송의 이질성의 총체(intégralité)를 다양체라 부를 것이다.]
나희덕(羅喜德, 1966-)의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비평사, 1994)]「배추의 마음」 (54)
인식론적 측면에서 상론하면, ‘주체로서 자연’ 개념은 주체(자아)가 자연과학에서처럼 자신과 분리된 객관적 실재인 자연의 특성을 경험적으로 기술하거나 표현하는 것이 아니다. (57)
자연철학 체계의 기획 서설(Einleitung zu seinem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 1799) .. “우리는 단순한 생산물로서 자연(natura naturata)을 객체로서 자연이라 부르고, 생산성으로서 자연(natura naturans)을 주체로서 자연(모든 이론은 오직 이것과 관계한다)이라 부른다.”(SW I/3, 284) [셸링이 자연을 대하는 태도에서 양태 또는 표상으로 자연을 이원화하여, 스피노자 개념을 사용하여 한쪽을 ‘생산하는’, 다른 쪽을 ‘생산된’으로 보는 것이다. 스피노자의 자연은 영원의 상하에서 펼친다는 점에서, 아직 생명적이라기고 보다 인식적 의식의 전개임을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즉 하나가 아니면서 둘도 아닌(不一而不二 불일이불이) 것을 표현하기 위한 개념쌍이다. 따라서 양자의 차이는 자연의 자기 차이일 뿐이고, 자연 안에는 이미 능동적이고 생산적인 활동의 의미와 함께 그 결과로서 창조와 세계의 의미가 이중적으로 함축되어 있는 것이다. (59) [외부의 양태를 거꾸로 추론해 들어가서 내부에 ‘이중적으로 함축’되어 있다는 것을 추론하는 것이 로고스적 입장이며, 기독교의 입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셸링은 자신의 자연철학을 경험적 자연학과 구별하여 “사변적자연학(speculativePhysik)”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사변적 자연학의 과제가 “자연에서 비객관적으로 존재하는 것”(SW I/3, 275), 즉 주체적인 것을 사변적으로 구성하는데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60) [“주체적인 것을 사변적으로 구성하는데 있다” 이 서술은 생성과는 달리, 구성한다는 점에서 상층에서 구성할 것인지(피히테, 헤겔), 심층에서 구성할 것인지(셸링)를 해석하는 차이일 뿐이며, 생명이 생성하는 “차히”까지 경험적이고 실재적으로 들어가 못했다는 의미가 된다.]
따라서 주체로서의 자연 개념은 자기원인 체계(causa-sui-System)를 함축하며, “자연학의 스피노자주의(Spinozismus der Physik)”(SW I/3, 273)라고 불린다. (62) [스피노자를 받아들이는 두 부류가 있다. 자기 전재(생성)이 마치 수학적으로 전개된다고 하는 쪽이 있고, 두 속성의 계열이 서로 전혀 달리 생성하며 확장하는 쪽이 있다. 셸링은 전자의 사고인 것으로 보인다. 이 전자의 사고를 네오스콜라적 사고라고도 한다.]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 1956)가 “주체는 그에 대해 어떤 사건이 발행하는, 선존재하는 어떤 것이 아니다. 즉 주체 사건의 자기 발생하는 형식이다.”(마수미, 2016: 25)
벨기에 이론 물리학자 프리고진(Ilya Prigogine, 1917-2003)이 자연에서 열역학적 ‘존재’(Sein, being)의 상태는 예외적인 경우이고, 오히려 비평형의 ‘생성(Werden, becoming)’의 상태가 일반적인 경우라고 주장하는 것과 같다. (64) [셸링을 열역학쪽에 결부시키기에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열역학은 힘의 연관에 의한 설명의 물리학과는 다른 영역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유 방식은 그 후 좌파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전통에서 물질을 탐구하는 블로흐에 적극적으로 계승된다. (70) [좌파 아리스토텔레스주의라는 용어는 흥미롭다. 질료에 개입하는 형상을 벗어나서 질료의 자기 생성과 발전이 있다고 말하고 싶어하는데, 앵글로색슨은 이런 용어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것 같다. 그 질료의 자기생성은 물활론(휠로쪼이즘)에서 이미 있었다.]
제4장 유기체적-전체론적 자연관 73 [셸링의 유기체 개념]
“자연은 자립적이고 자율적으로, 즉 스스로 조직하는 것이다.
모든 개체 안에 무한한 것으로서 전체가 반영되어 있다.”
셸링, 자연철학 체계의 기획 서설(1799(P. 82) (75)
1. 유기체적 자연관의 일반적 특징 / 2. 셸링의 유기체적-전체론적 자연관
셸링 자연철학의 중심을 이루는 유기적인 것(das Organische)은 이미 18세기 독일 사상가 요한 고트프리트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 문학가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 철학자이자 시인 프리드리히 슐레겔(Friedrich Schlegel, 1772- 1829)의 저술에서 언급되었지만 셸링과 더불어 그 중요한 이론적 의미와 유기체 사상으로의 철학적 전환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80)
셸링의 .. 유기체 개념은 학문론의 관념주의에 관한 해명을 위한 논고(Abhandlungen zur Erläuterung des Idealismus der Wissenschaftslehre, 1796/97에서 처음 제기되고,자연 철학의 이념(Ideen zu einer Philosophie der Natur, 1797)(SW I/2, 1-343)에서 확장되며, 세계영혼에 관하여(Von der Weltseele, 1798)(SW I/2, 345-583)에 이르러 그 구상이 세부에 이르기까지 완성된다. 그 후 자연철학 체계의 제1기획(Erste[n] Entwurf zu einem System der Naturphilosophie 1799)(SW I/3, 1-268)과전체철학 및 특히 자연철학의 체계(System der gesamten Philosophie und der Naturphilosophie insbesondere, 1804)((SW I/6, 131-576)를 비롯한 저서들에서 유기체 개념에 대한 포괄적인 암시와 해석이 다시 등장한다. (80)
셸링에서 ... 첫째 유기체는 자체 내에서 원인과 결과의 연속이 자기 자신에게도 되돌아가는, 즉 스스로를 재생산하는 과정을 지닌다(순환적 완결성, zyklische Geschlossenheit).) .. 스스로 원인이자 결과인 자기 재생산의순환적 인과형태는 유기체 조직의 근본적인, 즉 첫째 특징을 이룬다.(84) ... 인과구조와 관련해 여기에서 유기체가 하나의 완결된 체계라는 유기체 조직의 둘째 특징이 나타난다.(85) ... 셋째 특징으로 부분과 전체의 객관적 관계를 나타내는 개념이 유기체 외부가 아닌 자체 안에 있음을 강조한다.(86) ... 형식[형상]과 질료, 개념과 대상[재현, 표상]의 불가분리성을 통해 유기체의 넷째 특징을 설명한다.(87) ... 유기체 조직의 다섯째 특징인 이 분할과 파괴의 불가능성이다. (89)
칸트에서 자연이 그 자체 실재하는 것이 아니라 이론 인식의 보편적 법칙에 따라 구성되거나 목적론적 판단력 아래 주어지는 것으로 간주됨에 반하여, 셸링에서 자연은 자신의 내재적 원리를 통해 규정되는 하나의 살아있는 유기체이다. 본래 유기체적 조직은 그 현존에 있어 외적인 원인으로부터 자유롭기 때문에 “모든 유기적 산물은 스스로 원인이면서 동시에 결과가 되고: ‘자신의 현존 근거를 자기 자신안에 지닌다.”(SW I/2, 40) 더 나아가 “어떤 개별적 부분도 그 전체 안에서가 아니면 생성될 수 없고, 이 전체 자체는 오직 그 부분들의 상호작용안에서만 성립한다.” (SW I/2, 40) (85) [벩송은 고대철학에서 세계와 영혼 사이에 연대적(solidaire)적이라는 것을 상식적 사고라고 하고, 근대 데카르트가 갈릴레이이의 상대성을 이어받아 영혼과 신체 사이에 이원성으로 파악하는 것을 양식의 사유인데, 이를 넘어서 벩송의 고등양식에 의하면 이들 사이에 연대성과 이중성이 아니라, 생성은 자연자의 자기 작동이며 이 작동에서 의식의 생성과 발전을 겪었다. 의식에서 상층에서 하향하는 지성과, 심층에서 상향하는 직관(지속, 기억)이라는 두 질서가 있다고 한다. 벩송은 두 질서 사이에 마주침에서 현존(현상)이 있고, 이 현존의 양 측면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생산하는 자연과 생산된 자연으로, 즉 공간화 사고와 지속의 사유의 두 계열이 성립한다고 본다.]
이렇게 유기체를 분할과 파괴가 불가능하고, 또 “자연에서 채체의 특성을 지닌 것”(SM I/2, 519f.)으로 파악하는 셸링의 유기체 사상에서 우리는 라이프니츠의 단자론의 영향을 엿볼 수 있다. (90)
셸링의 유기체적-전체론적 자연관은 시대와 장소를 초월하여 동서양 여러 사상에서 변주되고 있다. 오늘날 서양에서는 기계론적 자연관, 실체 개념, 심신이원론의 극복을 시도하고 독자적인 유기체 철학을 전개한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기계론적 사고로부터 시스템적 사고에로 전환을 주장하는 카프라(Capra, 1939-), 자기 조직화 이론을 전개한 물리화학자 프리고진(Prigogine, 1917-2003)과 물리학자 헤르만 하켄(Hermann Haken, 1927-), [칠레] 인지생물학자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 1928-2021), 더 나아가 가이아 가설을 제시한 대기과학자 러브록(James Lovelock, 1919-2022) 등에서 셸링과 유사한 견해가 발견된다. 이는 또한 모든 생명체의 통일성을 강조하는 동양(유교, 불교, 도교, 흰두교)의 유기체적 자연관에서도 나타난다. 특히 기(氣)를 중심으로 인간, 세계, 자연을 종합적으로 이해하고자 했던 송나라 성리학자 장재(張載, 1020-1077)의 정몽(正蒙), 「서명(西銘)」에 등장하는 다음 문장에서 셸링 사유의 선구적 형태가 드러나고, 이는 오늘날 관점에서 생태학적 의의를 지니기에 충분하다. (94) [공시태적 사고에서 통시태적 사유로 전환이 필요하다.]
제5장 인간과 자연의 통일 99 [셸링의 정신과 자연의 동일성: 원자론적 통일성]
“자연은 가시적인 정신이어야 하고,
정신은 비가시적인 자연이어야 한다.“
자연 철학의 이념(1797)[SW I/2, 56] (101)
1. 셸링 자연철학에서 정신과 자연의 동일성 / 2. 셸링 자유철학에서 자유와 자연의 결합
마치 당나라 때 화성(畫聖)이라 추앙받았던 오도현(吳道玄)[오도자(吴道子, 685-758)]이가 자신이 그린 그림 속으로 사라졌다는 전설처럼, 주관과 객관의 대립을 넘어서 이해된 자연의 경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109)
이렇게 자기성(Selfstheit)의 절대화를 통해 근원적 존재와의 통일과 결속으로부터 분리되어 나타나는 인간의 개별적 또는 집단적인 자기추구, 더 나아가 모든 것의 절대 주인이고자 하는 인간의 이기심(Selbstsucht)은 종국적으로 자기 파멸로 귀결되고 절대 악(das absolute Böse)으로 드러난다. (111) [근원적 존재 = 아페이론 – 질료 – 물질 – Ding an sich - 기억 총체 = synaisthesis(con-science)로 개념화하는 내재성은 지속이며 시간이다. 이 지속은 역사 속에서 환원되지도 동일한 적도 없는 이질성의 총체이다. 이를 다양체라 부른다. 다양체는 목적성도 최종결과도 없으며, 이점에 공통의식(con-science, 함께 알다)은 예언적으로 형성된 것도 아니고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고, 영혼이라 개념으로 불릴 수 있더라도 형상을 구성되지도 국축되지도 않는다. 의식은 만들어지고 있는 과정이며, 마치 보살처럼, 어떤 형상도 형태도 없지만, 인류가 학습과 수련을 통한 노력으로 만들고 있는 중이다. 그 모습은 아무도 모른다. 모습이 없다는 그런 의미에서 아나키즘이다. (55UKB)
제6장 인간과 자연의 공생 115 [셸링의 근원적 주체성]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그러함(자연)을 본받는다.”
노자(老子), 도덕경 25편. (117)
공동주체 개념은 셸링에게 있어서 자연 전체로 확장되어 있다. .. 20세기 노르웨이 생태철학자 아르네 네스(Arne Naess, 1912-2009)의 “대자아(Self)”, 물리학자 장회익(張會翼, 1938-)의 “온(생명으로서의) 우리”, 모든 영혼과 생명의 근원을 의미하는 19세기 미국의 초월주의 시인이자 사상가 랄프 왈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의 “초영혼(Oversoul)”, 그리고 인격ㆍ비인격, 생명ㆍ무생물을 막론하고 모두가 우주적 주체라는 시인 김지하(金芝河, 1941-2022)의 “우주적 공동 주체”(김지하, 2005: 247) 개념과 일맥상통한다. (119)
이렇게 자연을 우리의 동반자나 공동체로 간주함으로써 생태적 영성의 중요성을 일깨운 또 다른 선구자로는 새들과 대화했던 이탈리아 아시시의 성 프란체스코(Francesco d'Assisi, 1181-1226)를 꼽을 수 있다. 그는 일명 “태양의 찬가”라고도 불리는 피조물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에서 하느님을 향한 찬미를 그의 피조물이자 우리 형제ㆍ자매인 자연에 대한 사랑과 공경을 통해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다. ... (120)
제7장 자연과의 연대와 제휴기술: 블로흐의 기술철학 125. [기술철학은 생명과 무관하다]
“부패한 계급이 지닌 이데올로기의 근본적 특징은,
인간과 우주 사이의 조화로움을
상상할 능력을 조금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로제 가로디(Roger Garaudy, 1913-2012)
1. 인간과 자연의 연대 유형 / 2. 시민주의(자본주의) 기술 비판 / 3. 제휴기술로의 이행과 기술 유토피아
인간과 자연 두 주체가 연대함으로써 화합하고 공생하는 모델은 서양보다 동양사상에서 풍부하게 발견된다. / 불교의 중 아함경... 결론적으로 붓다는 인드라망처럼 삼라만상의 모든 것이 연기적으로 연결되 있으므로 모든 만물이 하나의 생명공동체임을 깨달아야 한다고 강조하여... 탐만치(貪瞋癡)를 떨치고 본래의 마음을 회복할 수 있다는 것이다. / 한편 주역(周易)도 자연을 기(氣)로서 구성된 개별 생명체의 유기적 연결망으로 파악하여 각 개체의 상호의존성을 갖오한다. .. “사람이 도를 넓히는 것이지, 도가 사람을 넓히는 것은 아니다(人能弘道 非道弘人, 인능홍도 비도홍인)” 논어(論語), 「위령공(衛靈公)」) / 구약의 이사야에서도 (128-129) [르네상스 이전에 하늘과 땅, 천원지방의 담론은 동서양이 유사한 것인데 이는 5관을 통한 경험적 자료를 사유했기 때문이다.]
셸링의 자연철학이 ... 아직 역사와 정치사회적 차원에서 자연과 공생하고 연대할 수 있는 구체적 논의, 즉 ‘사회적 노동과 실천의 범주’가 빠져있다. 이에 반해 맑스(Marx, 1818-1883)는 노동과 사회적 실천을 통해 ‘자연의 인간화’와 ‘인간의 자연화’라는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이 실현되는 상태를 지향하고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는 한 걸음 더 나아가 인간주체와 자연 주체가 매개되는 ‘제휴기술’을 구체적으로 언급하면서 인간과 자연이 서로 동반자적 관계 속에서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는 ‘기술유토피아’를 제시한다. (130)
유물론문제의 역사와 실체(Das Materialismusproblem, seine Geschichte und Substanz, 1972)에서 본격적으로 다루어진다. 블로흐는 유토피아론의 존재론적 근거인 물질을 좌파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질료우위의 해석에 따라 자기 생산적인 것으로 파악하고, 또 유토피아론의 역사철학적 근거를 위해 과정적-변증법적 물질 개념을 제시한다. 또 그는 튀빙겐 철학입문(Tübinger Einleitung in die Philosophie, 1963)에서 물질과 유토피아의 상관관계를 설명하고,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 3 Bände, 1954–1959)에서는 자연주체, 제휴기술, 기술유토피아 개념들을 언급하면서 자연문제를 기술철학 및 사회철학과의 연결구조 속에서 다루고 있다. (131) [이 세작품의 논의를 거꾸로 설명하는데, 편년체 순으로 다시 서술할 필요가 있다. 전후 복구 시기는 기술제휴를 주장했다가, 독일이 안정기에 다시 유토피아를 끌어내고 그리고 새로운 도약의 시기에는 유물론[휠레론]과 실체라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념을 다시 끌어낸 것이 아닌가 한다. 여기에는 운동(지속)이 없는 논리적 풀림(연역)의 사변에 속할 것이다.]
이렇게 기술제휴의 성립에 필수불가결한 주체로서의 자연 개념을 블로흐는 중세 아랍의 좌파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아비체나, 아비체프론, 아베로에즈), 독일 신비주의자 야콥 뵈메(Jakob Böhme, 1575-1624), 스피노자, 셸링 등의 철학적 전통에 따라 ‘산출[생산]하는 자연(natura naturans)’ 개념을 통해 설명한다. (137)
‘기술 유토피아’ 실현은 기술적 행위에 새로운 질(Qualität)을 부여하는 인간의 생산성이 자연의 생산성과 결합ㆍ통일되는 경지를 말한다. .. 청년 맑스가 말하는 “완성된 인간과 자연의 본질적 통일, 자연의 참된 부활” 상태, 즉 “인간의 자연화”와 “자연의 인간화”(Marx, 1884)라는 인간과 자연의 동일성이 실현되는 ‘자유의 왕국’을 의미한다. 블로흐는 이러한 상태를 문학적으로 “모든 사람들의 어린 시절에 나타나지만 아직 그 아무도 가보지 않았던 어떤 곳: 고향”(PH, 1628)이라 표현한다. (139)
현대산업사회의 탁월한 분석가로서 허버트 마르쿠제(Marcuse, 1898-1979)와 오토 울리히(Otto Ullrich, 1938-2015)가 기술의 자본주의적 적용이 인간과 자연을 파괴하고 지배하는 결과를 가져왔다고 주장하는 것을 뒷받침해주는 선구적 사례이다. (140-141) - [생명계와 인간을 주제로 하기보다, 과학기술을 통한 자연과 통일성 또는 합일을 주제로 다루는 쪽은 생태론자라기보다 환경론자들이다. 의학보다 기술에 관한 연관을 설명하는 쪽은 나찌의 기술 전략의 히틀러와 암묵적 연대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이데거가 그러하다.]
19세기 독일 시인 프리드리히 휄더린(Friedrich Hölderlin, 1770-1843)은 파트모스(Patmos)라는 찬가에서 “위험이 있는 곳에 구원 또한 자라네(Wo Gefahr ist, Wächst das Rettende auch)”(PH, 127)라고 노래한다. (140) [블로흐, PH안의 재인용이다.]
20세기 독일 철학자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는 과학기술 문명을 자기 존재의 가치와 의미를 상실한 채 타락된 삶을 살아가도록 부추키는 위험한 문명이라고 비판하면서 자기 나름의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제8장 대안 사회와 생태유토피아 147 [지역성에 근거한 자율적 생태공동체]
“인간은 작은 존재이므로 작은 것이 아름답다.
거대주의를 추구하는 것은 자기 파괴로 나아가는 것이다.”
슈마허(1911-1977), 작은 것이 아름답다(1973).
1. 생태적 전환을 통한 대안 사회 모색 / 2. 생태유토피아를 향한 여정
블로흐는 현대 독일철학자 위르겐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가 비판하듯이 유토피아에 대한 과도한 태도를 취함으로써 유토피아 실현의 객관적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설명하지 않는다. (150)
“가치있는 식물은 ‘농작물’이 되고, 그 농작물과 경쟁하는 종은 ‘잡초’로 낙인 찍힌다. 그리고 농작물에 기생하는 벌레는 ‘해충’으로 낙인찍힌다...” (스콧, 2010, 37)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1921-2006) (159)
크로포트킨(Pierre (Piotr) Kropotkine, 1842-1921)의 상호부조론(L'Entraide, un facteur de l'évolution 1902(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London, 1902) (161)
우리는 노자 도덕경의 제80장에서 ... ‘소국과민(小國寡民)의 세계를 대안적 유토피아로 제시하고 ... 우리에게 자본주의와 산업주의를 넘어서는 이런 생태유토피아 실현은 너무 오래 걸리고 또 험난한 여정으로 보인다. 그렇기에 이것은 “모든 고귀한 것은 드물고도 힘들다(Sed omnia praeclara tam difficilia, quam rara sunt)”(스피노자, 에티카, 마지막 문장)... (169)
(11:06, 55U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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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 신오현(申午鉉, 1938-2021) 경북대 교수.
1938 백승균(白承均 1938-) 계명대 교수.
1938 장회익(張會翼, 1938) 경북 예천 출생. 서울대 물리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박사 학위. 『삶과 온생명』(솔출판사, 1998), 『이분법을 넘어서: 물리학자 장회익과 철학자 최종덕의 통합적 사유를 향한 대화』(한길사, 2007) 물질, 생명, 인간 - 그 통합적 이해의 가능성, 2009(돌베개, 2009)
1941 김지하(金芝河, 1941-2022) 대한민국 시인. 전남 목포 출생, 본명 김영일(金英一). 흰 그늘의 미학을 찾아서(2005)
1947 김종철(金鍾哲 1947-2020) 영남대 교수, 《녹색평론》
1960 조영준(1960-) 독일 셸링 전공, <Natur als Subjekt: Schellings Naturphilosophie und ihre oekologische Bedeutung, 독일(Univ. Gesamthochschule Kassel), 2006, WolfdietrichSchmied-Kowarzik.>
1962 김일방(金日芳, 1962-) 제주대 교수 <환경윤리학의 쟁점과 그 대안, 경북대, 2000, 배한동.> “J. Passmore의 환경사상에 관한 비판적 고찰”, 철학논총, 새한철학회, 2015,
1966 나희덕(羅喜德, 1966-) 충청남도 논산, 시인. 연세대학교 국어국문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 그 말이 잎을 물들였다(창작과비평사, 1994), 「배추의마음」(20대 중반 강원도 태백의 예수원이라는 수도원에 있을 때 쓴시이며 1994년에 실려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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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K 노자(老子), 도덕경 25편: 人法地 地法天 天法道 道法自然 "인간은 땅을 본받고, 땅은 하늘을 본받고,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로 해석한다. - '하늘은 도를 본받고 도는 자연을 본받는다(天法道道法自然) - [도가: 인지천도/불가: 신수법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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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5 오도자(吴道子, 685-758)오도현(吳道玄) 중국 당나라 현종 때의 화가,又称吳道元,字道子,後改名為道玄,画史尊称“吴生”。阳翟(今河南禹州市)人。中国唐代著名画家,被称为“百代画圣”。吴道子幼年家境贫寒,初为民间画工,相传曾随张旭、贺知章学习书法,年轻时即有画名。
980 아비체나/이븐시나(Avicenna, Ibn Sina, Αβικέννας, 980-1037)[쉰일곱] 페르샤 철학자, 의사, 회교 종교인물. 천문학, 연금술, 심리학에 해박하다. 의학 전범(Canon de la médecine, 치유의 책(Livre de la guérison [des âmes]. 전쟁에 출병 중에 사망. 토마스 아퀴나스에 영향을 주었다.
1020 장재(張載: 1020-1077) 중국 송나라 사상가. 성리학의 기초를 닦았다. 자는 자후(子厚)이다. 봉상미현의 횡거진(橫渠鎭) 출신이었기 횡거선생(橫渠先生)이라고 호칭된다. 정몽(正蒙)의 「서명(西銘)」.
1021 이븐 가비롤/아비케브론(Salomon ibn Gabirol 1021-1058) 라틴명, 아비케브론(Avicebron). 안달루시아 랍비, 시인, 신학자, 철학자, 네오플라톤주의자.
1126 아베로에즈(Averroes, Ibn Rushd, 1126-1198) 스페인의 아랍계(뮈질망) 철학자, 알가잘리가 철학자의 부조리(تهافت الفلاسفة 타하풋 알팔라시파)를 쓴 데 대해 그 반론으로서 부조리의 부조리Incohérence de l'Incohérence)를 썼다. Grand Commentaire du De anima, Discours décisif. / 이븐 루슈두(Ibn Rushd, lat. Averroes, 1126 –1198), 안달루시아 철학자, 신학자, 의사, 천문학자, 물리학자, 이슬람 율법가. 언어학자.
1181 프란체스코(François d'Assise, en it. Francesco d'Assisi, 1181-1226) 이탈리아 카톨릭 종교인, 신비가. 형재 수도원 창시자l'ordre des Frères mineurs, O.F.M. 1210). 피조물의 찬가(Cantico delle creature)(fr. « Cantique de frère soleil » (ou « Cantique des créatures »).
1561 베이컨 (Francis Bacon, 1561-1626) 영국 철학자. Novum Organum(Instaurationis Magnae, Pars II: "Part II of The Great Instauration"), 새로운 아틀란티스(New Atlantis ou Atlantis nova 1626)
1575 뵈메(Jakob Böhme, 1575-1624) 독일 신비주의자. 구두 직공(le cordonnier), 독일어로 주로 저술한 최초의 사상가. Aurora, oder die Morgenröte im Aufgang (1612)(서른일곱)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쉰넷)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7)(마흔다섯) 포르투칼 세파라드 유대계, 네델란드 철학자.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n, 1646-1716)(일흔) 독일의 철학자, 과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프러시아(독일) 철학자.
1744 헤르더(Johann Gottfried von Herder, 1744-1803) 독일 시인, 신학자, 철학자. 1780년대에 괴테의 친구이자 조언자, 칸트 제자. 1787년 스피노자에 관한 신, 몇몇 대담(Gott. Einige Gespräche)(« Sur Dieu. Entretiens »)을 썼다. 1792년경에 괴테와 단절되는데 그는 프랑스 혁명에 대해 회의를 품고, 괴테와 실러의 고전주의와 대립적인 비관주의에 빠지면서, 그는 노발리스(Novalis, 1772-1801)[스물아홉]와 사귀면서 코스모폴리탄으로 기운다.
1749 괴테(Johann Wolfgang von Goethe, 1749-1832)소설가, 시인, 과학자, 예술이론가, 국가적 인물. 정치적
1762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독일 철학자.
1770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1831) 독일 관념론을 완성한 것으로 평가받는 프로이센의 철학자. 정신현상학(1807)
1770 횔덜린(Friedrich Hölderlin, 1770-1843) 독일 고전주의-낭만주의 시기의 시인, 철학자. Patmos(1803, publication en 1808)[파트모스의 요한(묵시록)을 지칭한다면 문제거리일 것이다],
1772 프리드리히 슐레겔(Karl Wilhelm Friedrich von Schlegel, 1772-1829), 독일의 시인, 평론가, 작가.
1775 셸링(Friedrich Wilhelm Joseph von Schelling, 1775-1854)(일흔아홉) 독일의 철학자. 헤겔과 횔덜린과 함께 튀빙겐 신학교에서 수학했다.
학문론의 관념주의에 관한 해명을 위한 논고(Abhandlungen zur Erläuterung des Idealismus der Wissenschaftslehre, 1796/97
자연 철학의 이념(Ideen zu einer Philosophie der Natur, 1797)
세계연혼에 관하여(Von der Weltseele, 1798)
자연철학 체계의 제1기획(Erste[n] Entwurf zu einem System der Naturphilosophie 1799)(fr. Première esquisse d'une philosophie de la Nature) 그는 개체는 수단이고, 종이 목적으로 남는다고 주장하고, “자연은 성(구별)을 싫어하고, 류적 동일성으로 돌아가기를 바란다.(« La Nature hait le sexe (...), elle aspire à revenir à l'identité générique »)..
자연철학 체계의 기획 서설(Einleitung zu seinem Entwurf eines Systems der Naturphilosophie, 1799(P. 82)
전체철학 및 특히 자연철학의 체계(System der gesamten Philosophie und der Naturphilosophie insbesondere, 1804)
자연철학과 개선된 피히테 학설의 참된 괌계에 대한 해명(Darlegung Des Wahren Verhaltnisses Der Naturphilosophie Zu Der Verbesserten Fichteschen Lehre Ueber Das Verhalt, 1806?)
신비주의자인 뵈메(Jakob Bohme, 1575-1624)의 영향으로 인간적 자유의 본질(Philosophische Untersuchungen über das Wesen der menschlichen Freiheit, 1809)을 쓰다.
1841년 베를린 대학 교수, 셸링의 취임연설에 훔볼트, 랑케, 키에르케골, 바쿠닌, 부르크하르트, 엥겔스 등이 참석했다.
1803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1803-1882) 미국 수필가, 철학자, 시인. 초월주의 운동의 선두(chef de file du mouvement transcendantaliste américain) 자연(Nature, 1836)
[1817 소로(Henry David Thoreau, 1817-1862) 미국 철학자, 자연주의자, 시인. 월든: 숲속에서 생활(Walden; or, Life in the Woods, 1854)(Walden ou la Vie dans les bois).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 정치경제학자, 혁명가(révolutionnaire). 경제학-철학 수고(Ökonomisch-philosophischen Manuskripte aus dem Jahre 1844)
1842 크로포트킨(Pierre (Piotr) Kropotkine / Peter Kropotkin, 1842-1921)은 러시아 출신의 지리학자이자 아나키스트 운동가, 철학자였다. 보로딘(Бороди́н)이라는 가명으로 활동하기도 하였다. 한 혁명가의 회상(Memoirs of a Revolutionist, 1899). L'Entraide, un facteur de l'évolution 1902(Mutual Aid: A Factor of Evolution, London, 1902)
1861 화이트헤드(Alfred North Whitehead, 1861-1947) 영국 수학자, 철학자, 논리학자.
1885 블로흐(Ernst Bloch, 1885-1977) 유대계 독일철학자. (루카치, 그람시, 코르쉬, 프랑크푸르트학파처럼) 비정통 맑스 계열. 학위 논문 토마스 뮌쩌(Thomas Müntzer als Theologe der Revolution, 1922), - [뮌쩌(Thomas Müntzer, 1489-1525)[서른하나] 농민봉기와 항쟁의 인물, 루터가 왕권과 결탁하여 제압하였다.]
희망의 원리(Das Prinzip Hoffnung, 3 Bände, 1954–1959)(PH). (fr. Le Principe espérance (3 vol., 1954-1959)
튀빙겐 철학입문(Tübinger Einleitung in die Philosophie, 1963)
유물론문제의 역사와 실체(Das Materialismusproblem, seine Geschichte und Substanz, 1972)
Utopie, Écologie, Ecosocialisme (De l'utopie concrète d'Ernst Bloch à l'écologie socialiste)(éditions l'Harmattan, Paris, 2013) .
1881 루쉰(鲁迅, 노신, 1881-1936) 중국 소설가. 본명은 저우수런(周树人, 주수인), 자는 예재(豫才), 루쉰은 필명이며, Revolution이란 뜻의 '루쉰'이라는 필명을 <신청년>에서 1918년 처음 사용, 영비(令飛), 하간(何幹) 등 100개 넘는 필명을 사용.
1889 마르틴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독일의 철학자. 현상학, 해석학, 실존주의에 전문
1898 베르톨트 브레히트(Bertolt Brecht, 1898-1956, à Berlin-Est, RDA), 독일(동독) 극작가, 연출가, 작가, 시인. 철학과 의학을 공부했다. 맑스 수용, 오스트리아 비엔나 출생인 바이겔(Helene Weigel, 1900-1971, 유대계)과 1929년 결혼. 1933년 독일을 떠나다. Die Dreigroschenoper 1931: fr. L'Opéra de quat'sous / 시 「추방(Exil) 3」
1898 마르쿠제(Herbert Marcuse, 1898-1979) 독일과 미국의 사회철학자, 프랑크푸르트 학파의 사회주의 사회학자.
1903 요나스(Hans Jonas, 1903-1993) 독일 철학자, 신지학의 역사가. 책임의 원리: 기술문명의 윤리학 탐구(Das Prinzip Verantwortung: Versuch einer Ethik für die technologische Zivilisation, 1979(Le Principe responsabilité)
1907 레이첼 카슨(Rachel Louise Carson, 1907-1964) 미국 해양생물학자, 작가. 침묵의 봄(Silent Spring, 1962)(DDT 등 살충제 남용에 대한 경고)
1911 슈마허(Ernst Friedrich "Fritz" Schumacher, 1911-1977) 독일 출생, 영국의 경제학자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Small is Beautiful: Economics as if People Mattered, 1973).
1912 아르네 네스(Arne Næss, 1912-2009) 노르웨이 철학자, 심층 생태학 사조 창시자. 생태학, 공동체, 생활양식(Ecology, Community and Life-style, 1989)(스피노자, 불교, 간디의 영향 하에서).
1913 로제 가로디(Roger Garaudy, 1913-2012) 프랑스의 철학자, 홀로코스트 부정론자이다. 1933년 공산당, 1936년 철학교수자격. 1968년 프라하의 봄을 지지하여, 1970년 공산당에서 배척당한 후, 1978년 이후에 환경론자로 그리고 나중에 극우파로 변했고, 기독교, 카톨릭, 회교로 전향했다. 산자들에게 호소(Appel aux vivants, 1979), 이스라엘 정치의 근본적 신화들(Les Mythes fondateurs de la politique israélienne, 1996)
1914 패스모어(John Passmore, 1914-2004) 호주의 철학자.
1917 프리고진(Ilya Prigogine, 1917-2003) 러시아 모스크바 태생 벨기에 물리학자, 화학자. 1977년 노벨 화학상 수상. (avec Isabelle Stengers)La Nouvelle Alliance, 1986)(deu. Dialog mit der Nature: Neue Wege naturwissenschaftlichen Denkens, 1986),
1919 러브록(James Lovelock, 1919-2022) 영국 독립 사상가, 과학자.
1921 머레이 북친(Murray Bookchin, 1921-2006) 미국의 사상가. 아나키즘, 자유지상주의적생태사회주의(écologiste libertaire), 작가, 역사가, 사회이론가, 연설가. 신좌파(Nouvelle gauche, New Left). Toward an Ecological Society, 1980 Remaking Society, 1990(1998)
1927 하켄(Hermann Haken, 1927-) 이론물리학자, 슈트트가르트 대학 교수.
1928 마투라나(Humberto Maturana, 1928-2021) 칠레 생물학자 사이버네틱학자, 철학자.
1929 하버마스(Jürgen Habermas, 1929-) 독일의 철학자, 사회학자, 심리학자, 언론인. “Ernst Bloch: Ein Marxistischer Schelling 1960)” in Ders., Philosophisch-politische Profile, 1984, 154이하.
1936 스콧(James C. Scott, 1936-) 미국 정치학자, 인류학자. 비교정치학 전문. 국가처럼 보기(Seeing Like a State: How Certain Schemes to Improve the Human Condition Have Failed, 1998)(전상인, 에코리브로, 2010)
1838 울리히(Otto Ullrich, 1938-2015) 독일 사회학자, 시사평론가.
1939 프리초프 카프라(Fritjof Capra, 1939-) 오스트리아 출신 미국 물리학자. 물리학의 도(Le Tao de la physique (1975)(양자적 신비주의를 주장하는 유사과학적이고 문학적인 경향) 생명의 그물: 살아있는 체계의 새로운 과학적 이해(The Web of Life: A New Scientific Understanding of Living Systems (1996)(fr. La Toile de la vie : Une nouvelle interprétation scientifique des systèmes vivants)(생명의 그물, 김용정, 김동광 옮김, 범양사, 1999)
1946 노르베리-호지(Helena Norberg-Hodge, 1946-) 스웨덴 출신 언어학자, 에코페미니스트이며 에콜로지 및 문화를 위한 국제 협회(ISEC)의 발기인이자 대표. Ancient Futures: Learning from Ladakh (Sierra Club, 1991), Bringing the Food Economy Home: Local Alternatives to Global Agribusiness (Kumarian, 2002), Local is Our Future (2019), 로컬의 미래: 헬레나와의 대화(헬레나 노르베리-호지 저/최요한 역 | 남해의 봄날 | 2018년)
1956 브라이언 마수미(Brian Massumi, 1956), 카나디언 철학자, 번역가, 정치학과 미학이론가. 몬트리얼 대학 교수. 들뢰즈/가타리의 번역도 하고 작품도 썼다. A User's Guide to Capitalism and Schizophrenia: Deviations from Deleuze and Guattari, 1992, Semblance and Event: Activist Philosophy and the Occurrent Arts, 2011(가상과 사건: 활동주의 철학과 사건발생적 예술(정유경, 갈무리, 2016)
2003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 2003-) 스웨덴 생태 운동가. 기후 온난화에 반대 투쟁을 하고 있다. 2019년 타임지 올해의 인물과 노벨 평화상 후보로 선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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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다라망(因陀羅網)
범어로는 indrajāla이다. 불교의 욕계(欲界)에 속한 천신(天神)들의 왕인 인드라, 즉 제석천이 머무는 궁전 위에 끝없이 펼쳐진 그물이다. 사방으로 끝없는 이 그물의 그물코에는 보배구슬이 달려 있고 어느 한 구슬은 다른 모든 구슬을 비추고 그 구슬은 동시에 다른 모든 구슬에 비춰지고, 나아가 그 구슬에 비춰진 다른 모든 구슬의 영상이 다시 다른 모든 구슬에 거듭 비춰지며 이러한 관계가 끝없이 중중무진으로 펼쳐진다. 이처럼 인드라망의 구슬들이 서로서로 비추어 끝이 없는 것처럼 법계의 일체 현상도 중중무진하게 관계를 맺으며 연기한 것이어서 서로 간에 아무런 장애가 없다고 화엄교학에서는 이 세계의 실상을 설명한다.
웹(web)은 기본적으로 거미줄을 뜻한다. 월드 와이드 웹(World Wide Web)의 약자, 1989년 3월 스위스와 프랑스 사이에 위치한 유럽 입자 물리 연구소(CERN)의 컴퓨터과학자 팀 버너스-리(Tim Berners-Lee, 1955-, 영국 옥스퍼드대학 교수)가 만들었다. 이 웹(WWW)을 무료로 세상에 내놓았다.
시애틀 추장의 연설.
백인들이 발음하기 쉽게 시애틀Seattle이라고 이름을 고쳐 부른 수콰미시족의 세알트Sealth 추장은 결국 미합중국 정부에 자신들의 땅을 팔 수밖에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 헨리 A. 스미스(Henry Smith, 1830-1915)박사가 추장의 드와미시어 연설을 받아 적은 자료입니다. 연설내용은 실제 연설이 있었던 날로부터 33년이 지난 1887년 10월에야 언론에 공개됩니다. .. 그로부터 수십 년이 흘러 1960년 윌리엄 애로스미스라는 교수가 연설문을 수정합니다. 이때까지도 “마지막 나무가 베어져나가고, 마지막 강이 더렵혀지고, 마지막 물고기가 잡힌 뒤에야 그대들은 깨달으리라. 돈을 먹고 살수는 없다는 것을” 부분은 없었습니다.
[1854년 미국 14대 대통령 프랭크린 피어스(Franklin Pierce, 1804-1869: 14대: 1853~57)는 지금의 워싱턴 주에 살고 있던 인디언 수꾸와미쉬족의 시애틀 추장(Chief Seattle, 1786경–1866)에게 땅을 팔 것을 종용했을 때, “시애틀(Seatlle)추장의 연설(편지)”을 주목할 수 있다. - 이 편지는 환경론자에 의해 완성되었다고 한다.] [헨리 스미스 다음으로 적어도 Frederick James Grant, Clarence B. Bagley, John M. Rich 등에 의해 수정된 판본들이 있다.]
[헨리 A. 스미스(Henry Smith, 1830-1915) 내과의사 시인. 그는 시애틀의 초기 정착민이며 입법의원이었다. “a speech by Chief Seattle (or Sealth or Si'ahl)]을 번역한 것으로 알려졌다.]
선애빌(2007-) 소개
선애빌은 명상학교 수선재의 회원들이 만들어 살아가고 있는 생태공동체이자 명상문화공동체입니다. 현대사회의 문제에 대한 대안으로 자연과 하나 되어 식량과 동력을 자급자족하며 영성을 키우는 교육을 하고, 보람 있는 삶과 아름다운 마무리를 할 수 있는 선인류적 삶의 모형을 제시하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선애(仙愛)란 ‘선을 사랑한다’는 의미로, 선애빌은 ‘하늘을 사랑하고, 자연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하는 마을’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 고흥 외산(전남 고흥군 포두면), 고흥 장촌(전남 고흥군 포두면), 영암 모산(전남 영암군 신북면), 충주 주치(충북 충주시 소태면), 보은 기대(충북 보은군 마로면)
[한살림: 최시형의 동학, 농민운동, 장일순의 생명사상이 한살림 운영철학에 녹아있다.]
아미시파(기독교 일파인 안만파 신도로 현대 문명을 거부함)는 1720년대에 랭커스터에 정착했으며, 삶이 덜 복잡했던 그때 그 모습 그대로의 삶을 여전히 고수하며 살아갑니다. .. 펜실베이니아주(Pennsylvania) 필라델피아(Philadelphia)에서 차를 몰아 한 시간만 달리면 펜실베이니아 주 더치 카운티(Dutch Country)에 자리 잡은 랭커스터에 도착합니다.
(17:08, 55UKF)